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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이붕전설-바둑판이 말을 하다③

신년특집 김종서의 '이붕전설(李鵬傳說)' 연재

김종서 작가2009-01-26 14: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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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초에 세계바둑계의 4강 라이벌전을 유니크한 구성으로 조명한 특집 [기왕사신기]의 김종서 작가가 기축 년 설날을 맞아 다시 한 번 타이젬 회원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붕전설]이다. 지난해에 억대바둑판 소송사건으로 새삼스럽게 바둑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 고(故) 김영성 한국기원 이사의 삶과 바둑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설 연휴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될 [이붕전설]을 통해 우리 바둑계를 뒤숭숭하게 흔들었던 바둑판 사건의 전모와 배경, 그리고 바둑계에 무한한 사랑을 바쳤으나 아스라이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고마운 은인(恩人)한 사람의 존재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1월 24일 : 제1화 - 이붕 선생을 아십니까?
1월 25일 : 제2화 - 바둑애호가 김영성과 잉창치
1월 26일 : 제3화 - 바둑판이 말을 하다
1월 27일 : 제4화 - 仙과 俗의 경계에서




세고에 반의 비밀

이보시게. 왜 비자나무 바둑판이 대접받는 줄 아는가? 비자는 성장이 더딘 종(種)이라네. 어른 팔뚝만한 크기로 자라는데 족히 일백 년이 걸려야 된다더군. 그러하니 나이테가 촘촘할 수밖에 없지. 계절에 관계없이 나이테가 균일하고 나무 색깔이 담황색이어서 오래 바라봐도 눈이 피로하지 않아. 게다가 은은한 향기가 있고 손에 닿는 감촉이 무척 부드럽지. 탄력도 좋아서 바둑돌을 놓으면 살짝 눌렸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지. 일본이 원산지인데 일본에서도 큐슈 지방의 태평양 연안 고지대에서 자란 비자나무를 최고로 쳐준다네. 강우량이 풍부하면서도 태양광선을 많이 쬐어 재질이 좋다는 거야. 우리나라에도 제주도나 남부지방에 비자나무가 더러 있지만 보호수로 지정돼 바둑판을 만들 수가 없어.


▲ 진도의 비자나무 : 수령 600년, 높이 12m, 둘레 6.35m.

이붕 선생이 열변을 토했습니다. 평소 언변이 화려한 편은 아닌데 바둑판 이야기만 나오면 명강사로 돌변해 현란한 수사(修辭)와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곤 했습니다. 선생과 절친한 부산의 바둑 인들은 세고에 반과 우칭위엔 반에 관한 설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둑판을 직접 본 사람은 드물었지요. 여간해선 보여주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둑판 자랑을 심심찮게 늘어놓으니 듣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수액 때문에 그냥 살아있는 나무로는 바둑판을 만들기가 곤란하다네. 비자이되 고사목(枯死木)이어야 해. 고사목 상태에서도 30년은 자연건조가 되어야 하지. 그런 재목을 채취해 와서 다시 그늘에서 10년을 건조한 다음 물에 담그고 건지길 반복하지. 고지대에서 적합한 비자 고사목을 발견한다 해도 바둑판으로 만들어지려면 오랜 세월이 소요된다는 뜻이야. 세고에 반은 장인 한 사람이 당대에 만든 게 아니라 2대나 3대에 걸쳐 만들었다고 들었어. 바둑판을 유심히 보면 19줄 사이 18칸에 22줄이나 23 줄의 나이테가 균일하게 흐른다네. 내가 일일이 세어 보니 정확하게 400칸이었네.


▲ 오청원반과 은행나무로 만든 바둑판 및 고성군 은행나무.

이붕 선생 가라사대 세고에 반의 무늬가 400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바둑판에 비자나무 400년의 숨결이 찍혀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비자나무 수령을 400년으로 보면 오산입니다. 나무 중심의 옹이 부분은 원의 둘레 지름이 짧기 때문에 곡선을 피할 수 없지요. 그래서 중심에서부터 200년~300년쯤의 나이테는 포기해야 합니다. 게다가 나뭇결이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천지정목(天地柾木) 바둑판은 나무 전체에서 두 개를 건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를 구한다는 이야기지요. 바둑판만큼이나 바둑알도 진귀해 거의 보석 수준이었습니다. 이붕 선생은 집안에 있는 귀금속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세고에 반과 위칭위엔 반의 바둑알은 틈틈이 꺼내 융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았습니다.

검은 바둑알은 오석(烏石)이야. 단단하고 광택이 흐르는데 장인의 손길이 더해지면 보석이나 다름없다네. 흰 돌의 재질은 대합껍질이지. 바둑알 정도 두께의 조개껍질이 결코 흔하진 않겠지. 그런데 그냥 바닷가에서 채취하는 게 아니라 조개가 죽은 뒤 껍질 상태로 몇 십 년 해수 밑 조류(潮流)에 시달려야 해. 손가락 굵기의 알 하나를 건지려면 조개껍질 중심 부위에서 무늬가 균일한 자리를 택해야 하니까 껍질 한 개에서 알 하나를 찍어낼 수 있다네. 그렇게 360개를 채취해야 하니 얼마나 귀하겠는가? 여태 누구한테 말한 적이 없는데 이 알 하나의 값은 50만원쯤 된다네.

선생은 신주단지처럼 세고에 반과 우칭위엔 반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절친한 부산바둑 인들에게 누가 들을세라 나직하게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 낚시꾼들의 월척 자랑에 허풍이 가미되듯 바둑광의 명반 자랑도 어느 정도 접고 들어야 할 부분이 없진 않겠지요. 그러나 바둑판과 바둑알이 명품이라고 해서 이붕 선생이 애지중지한 것은 아니었으리라고 봅니다. 선생이 진정으로 아낀 것은 바둑판에 깃든 사연이었습니다.

바둑판의 내력

선생이 생전에 가장 흠모했던 기사는 우칭위엔9단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기사는 조훈현9단이었으며 가장 가깝게 교류한 기사는 윤기현9단이었습니다. 우칭위엔9단의 고매한 품격과 기도정신을, 조훈현9단의 치열한 승부 혼과 번뜩이는 기재를, 윤기현9단의 친화력과 원만한 성격을 높이 샀다고 합니다. 국내의 두 기사가 부산을 방문하면 만사 제쳐두고 동행하면서 편리를 돌봐주었습니다. 선생의 유품 앨범을 보면 가족사진보다 두 기사와 찍은 사진이 훨씬 많습니다.

선생과 우칭위엔 9단과의 에피소드도 전설에 가깝습니다. 1992년 여름에 우칭위엔 9단이 부산에 방문했습니다. 그 당시 바둑계의 살아있는 영웅 우칭위엔 9단을 한국기원 김우중 총재가 몇 차례 초청했는데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도도하고 까칠한 우칭위엔 9단을 이붕 선생이 서울도 아닌 부산으로 초청하는데 성공해버린 겁니다.

선생은 한일 왕복 항공 편 티켓을 들고 직접 일본에 건너가 정중하게 모시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우칭위엔 9단의 마음을 샀다고 합니다. 우칭위엔 9단은 애제자 린하이펑 9단을 대동하고 부산에 입성했습니다.이붕 선생은 진심으로 그 위대한 바둑 인을 환영해주고 싶어서 부산지역의 바둑 인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평소 어린이 바둑계에 따뜻한 관심을 보여준 이붕 선생의 부탁인데 전바협 소속 원장들이 외면할 리 없었지요. 그들은 일제히 제자들을 동원해 환영식장에 나섰습니다.

장소는 부산 KBS홀. 우칭위엔 9단과 린하이펑 9단이 식장에 도착했을 때 300여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한복 차림에 태극기를 흔들며 손님을 맞았습니다. 우칭위엔 9단도 어린이들의 환대에 흡족해 행사하는 내내 환하게 미소지었다고 합니다. 귀빈을 모셔놓고 어린이 바둑대회를 진행했고 다면기와 초대형 자석바둑판을 통해 공개해설도 했습니다. 그때 우칭위엔 9단과 린하이펑 9단의 사인을 비자 바둑판에 받았는데 그 것이 바로 우칭위엔 반입니다. (소송을 통해 선생의 가족들이 윤기현 9단으로부터 돌려받은 바둑판입니다.)

그런데 우칭위엔 반은 그 후로 판의 옆 부분이 약간 변색되었지요. 바둑알도 바뀌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됐습니다. 우칭위엔 반 세트를 본 사람, 그것을 전달했던 사람들이 그런 증언을 했습니다.

▲ 일본에서 거래되는 바둑알 가격표.

현재 일본에서 거래되고 있는 바둑알의 가격표입니다. 최고 가격이 2,700만엔이며 빌리는데도 30만의 보증금이 필요합니다. 현재 엔화 환율이 1600원이니까 4억 원이 넘는 셈이네요.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입니다. 이 바둑알 논쟁 때문에 바둑 인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지만 이 문제를 법으로 밝히기는 참 애매할 것입니다.

우칭위안 반이야 우여곡절 끝에 선생의 가족들이 되돌려 받았으니 그렇다치고 바둑 팬들이 궁금해하는 바둑판은 세고에 반입니다. 가치로 따져도 우칭위엔 반보다 훨씬 윗길로 친다고 합니다. 세고에 9단이 우칭위엔 9단의 스승이니까 우칭위엔 9단도 섭섭해 하진 않겠지요.

세고에 반 세트는 재질도 명품이지만 아주 오래된 골동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둑판의 오동나무 덮개에 세고에 9단과 일본의 초대내각의 대신 7명의 사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세고에 9단의 칠순을 맞아 친구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제히 휘호한 겁니다.

1889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세고에 9단은 1908년 소장 바둑대회에 출전해 현역 프로 3단을 꺾어 기단의 주목을 받은 뒤 혼인보(本因坊) 가문과 라이벌인 호엔샤(方円社) 문하로 들어가 정식으로 바둑을 수련했습니다. 당시에 일인자는 혼인보 가문의 슈샤이(秀哉) 명인이었는데 그 밑에서 배우기보다 반대편에서 실력을 키워 명인과 승부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909년 세고에는 30승 6패의 전적을 올리고 스즈키 3단의 시험대국에서 4승 2패를 거두며 정식으로 3단 인허를 받게 되지요. 훗날 세고에는 기어이 슈샤이 명인과 대결합니다. 그리고 무려 11연승을 거둬 일본 바둑계 판도를 엎어버리지요. 그런데 일본기원이 새로운 대국규정을 만드는 바람에 그 기록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립니다. 이때 상당 수 기사들이 일본기원에 반발해 탈퇴하면서 대소동이 벌어지지만 세고에는 굳건히 일본기원에 남아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바둑계의 대동단결을 도모하지요. 그런 이력 때문에 1959년 명예 9단에 추대되었고, 일본기원 이사장까지 역임하게 됩니다.

세고에 9단은 근대바둑과 현대바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후배기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일본 최고의 도장으로 유명한 기타니 9단조차도 세고에 9단을 어른으로 모실 정도였습니다.


▲ 세고에 선생과 그가 사용하던 책과 교본.

세고에 9단의 격을 한층 높인 것은 동양 삼국의 천재 우칭위엔, 하시모토, 조훈현을 제자로 키웠다는 점입니다. 국경을 초월해 그는 남다른 혜안으로 한중일 바둑사의 기둥들을 키워냈습니다. 그 세 사람이 또 린하이펑, 이창호를 비롯해 제자들을 새끼쳤으니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가늠할 수 있겠지요.

평생 오로지 바둑판만 들여다보고 살았던 세고에 9단은 제자들 때문에 마음은 한없이 부유했으나 물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1974년 84세의 일기로 자결했는데 가문에 유품으로 바둑판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 유품이 바로 세고에 반이지요.

바둑판의 행방

세고에 반이 어떻게 한국에 건너오게 되었는지 바둑 팬들은 궁금해 합니다. 언론매체들은 아주 단순하게 조훈현 9단의 소개로 이붕 선생이 구입하게 됐노라 밝혔습니다. 그 바람에 조훈현 9단도 이 사건에 휘말려 원치 않는 구설수에 오르게 됐습니다. 무척 조심스럽지만 필자가 취재한 경로를 밝히자면 이렇습니다.

세고에 9단 사후 꽤 시간이 흐른 1992년 무렵 세고에 9단의 손자가 암에 걸려 상당한 치료비가 필요하게 되자 어머니(세고에의 며느리, 조훈현 9단의 양어머니라 마마짱이라 부름)가 양아들인 조9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스승의 유품을 처분해달라는 부탁이었지요. 세고에 손자의 치료비에 상당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아 조9단은 고민하게 됩니다. 스승의 바둑판은 실로 명반이었기에 좋은 시절이라면 부르는 대로 값을 쳐주고 가보로 보관하고 싶었다더군요.

그러나 그 시기 경제적으로 다소 어려워 고민하다가 윤기현 9단에게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윤 9단이 고가를 지불할 구매자를 찾았다며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워낙 조심스런 거래라서 조9단조차 세고에 반의 구매자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훗날 알고 보니 자신과도 절친한 이붕 선생이 구매자였던 거죠. 그러므로 이붕 선생이 세고에 반을 조9단의 소개로 구입했다는 표현은 무리가 있습니다. 두 단계를 거치는 중계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필자는 작년 바둑판 소송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타이젬에 '바둑판은 말이 없다'라는 칼럼을 게재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둑판이 말을 하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 번 바둑판의 행방에 관해 화두를 던집니다. 사라진 세고에 반은 더 없이 애석하지만 그로 인해 이붕 선생의 이름이 사후 4년 만에 다시 살아나 바둑 팬들과 만나고 있으니 결코 애석해 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이런 기운이야말로 혹시 영물(靈物) 세고에 반이 일으킨 조화(造化)는 아닌지 거듭 반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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