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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덕영비화] 나눔 - 맑은 부(淸富)①

덕영 이재윤 선생의 삶과 바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김종서 작가2009-02-11 16: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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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은 신년특집기획 『이붕전설』을 통해 바둑계를 후원한 은인 故이붕 김영성 선생을 조명했다. 그리고 다시 '후원자 시리즈'의 일환으로 신춘특집『덕영비화』를 마련했다. 드러나지 않게 우리 바둑계의 주춧돌 역할을 해 온 한국바둑학회장 덕영 이재윤 선생의 삶과 바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2월 11일 : 제1화 나눔 - 맑은 부(淸富)
2월 12일 : 제2화 섬김 - 노래하는 의사
2월 13일 : 제3화 사귐 - 우정은 생명의 술
2월 14일 : 제4화 외침 - 바둑돌과 함께 묻어주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말 4천 필을 가졌으되 사후에 그의 부(富)를 덕(德)이라 칭송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백이숙제(伯夷叔齊)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뜯어먹고 지내다 굶어 죽었으나 수천 년 동안 만민이 추앙하지요.

탐욕스런 부유는 당대에 즐거울지라도 연기처럼 덧없으나 청빈(淸貧)으로 지킨 명분은 오래 가는 법입니다. 그렇게 청빈은 아름다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소유보다 소유가 훨씬 어렵기에 청부(淸富)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부(富)가 미덕인 시대에 기왕이면 ‘맑은 부’가 ‘맑은 가난’보다 보기 좋지 않을까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 요즘 부쩍 자주 쓰입니다. '공인의 도덕적 책무'쯤으로 해석되지요. 쉽게 말해 있는 자, 가진 자들이 사회를 위해 넉넉하게 베풀라는 이야깁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과 프랑스 전쟁 때 적군에 포위된 칼레의 귀족과 부자들이 시민들을 위해 목숨을 던진 비장한 스토리가 있지요.

바둑이 잡기 차원을 벗어나 예도와 게임, 스포츠로까지 발전하고 수백만 명의 애호가들을 확보한 내력에는 후원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어떤 형태로든 바둑계를 받치는 조력의 손이 존재했습니다. 역대 한국기원 총재와 이사장, 그리고 이사들의 명단을 보면 어렴풋하게 그런 손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신년특집으로 ‘이붕전설’을 통해 부산의 김영성 선생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비록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선생의 지극한 바둑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기록으로 남겨야 옳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춘특집으로 대구의 덕영 이재윤 선생을 소개할까 합니다. 덕영 선생은 이붕 선생과 더불어 영남 바둑계를 지탱해 온 후원자이자 리더입니다. 대구의 바둑 역사를 일구고 가꿔온 바둑 인이지요. 그러나 덕영 선생을 대구 바둑의 지킴이로 국한 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단견(短見)일 겁니다.


▲ 덕영치과병원 이재윤 원장.

선생은 현재 한국바둑학회 회장, 한국기원 이사, 대한바둑협회 수석 부회장, 대구바둑협회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한국바둑의 지도를 펼친다면 마치 네 화점(花點)에 놓인 듯 요석(要石)으로 활동 중입니다. 바둑계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않아도 후방에서 치밀하고 전방위적으로 병참과 보급, 그리고 전략을 세우는 지원 사령관으로 칭해도 아깝지 않은 표현일 겁니다.

바둑 4단체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어느 쪽 하나 소홀함 없이 두루 챙기는 선생의 열정을 아는 분들은 압니다. 그런 자리들은 적잖게 돈을 써야 가능한 자리지요. 그래서 대부분 바둑을 좋아하는 경제인들이 맡는 편입니다. 그런데 덕영 선생은 기업가가 아니라 치과의사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물론 16명의 의사와 200여 명의 직원이 한 병원에 근무하는 대구 덕영 치과병원의 규모가 가히 세계적이라서 기업에 가까울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병원이 크다 해도 일반기업들처럼 천문학적 단위의 수입을 올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상으로 바둑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원 이사 직(職)은 역할이 광범위하고 다분히 상징적이기에 차치하고 우선 대구바둑협회장으로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대구는 한국기원 지부나 협회가 만들어진 이후 단 한 번도 단체가 와해된 적 없이 역사를 이어 온 곳입니다. 현재 협회 이사만 무려 50여 명에 달하고 아마추어 및 여성 바둑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타이젬이 온 라인 바둑의 메카로 만들어질 때도 대구의 바둑 팬들이 자발적으로 일시에 100여 명이 유료 가입해 힘을 실어줬다고 합니다.


▲ 아마대왕전 시상식 모습.

대구에서 열리는 바둑대회로 덕영 배 전국아마대왕전이 있습니다. 2008년까지 25회를 이어온 대회죠. 우승상금 500만원, 전국의 아마 강자들을 초청해 주니어 부와 시니어부로 나눠 진행됩니다. 초청된 선수들에게는 초청료가 지급되고요. 연령 별로 구분하므로 시니어 강자들이 유감없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을 안배해서 중앙집권화 된 바둑환경과 주니어들이 득세하는 승부의 정글에서 진정한 바둑 인들의 축제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대회지요. 이 대회가 열릴 때 덕영 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도 동시에 진행됩니다.

또 대구직할시와 자매결연 맺은 외국의 도시들과 정기적으로 교류전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 시와는 15년 넘게 진행 중이며 니카타 시와는 바둑학회 차원에서 학술교류를 나누고 있지요. 최근에 히로시마도 포함됐습니다.

중국의 닝보와 칭타오, 성뚜 바둑 인들과도 정기적으로 수담을 나누며 세계 로타리 바둑클럽의 규모는 친선이라도 국제대회 급입니다. 이처럼 대구 바둑 인들이 똘똘 뭉쳐 바둑공동체를 이루고 이슈를 창출하며 독특한 지방바둑문화를 지켜온 데는 덕영 이재윤 선생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바둑의 후원자들을 조명하는 특집이므로 보다 구체적인 후원의 형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지요. 선생의 경우 바둑학회장으로서 학회의 세미나, 출판, 만찬 등의 경비를 부담합니다. 프로 기전을 대구에 유치해도 비용이 소요되고 지역의 협회도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아마대회나 외국과의 교류전도 상당한 비용이 들지요. 다양한 형태로 선생은 최소 1억 원 이상 바둑에 후원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대구 덕영치과병원 건물.

덕영 선생이 1999년부터 대구 바둑의 수장으로 나섰으니 어림잡아도 10억 원 이상은 지출한 셈입니다. 공식적으로 협회를 맡기 이전인 80년대에도 대구 바둑 인들의 모임인 기우회를 만들어 왕성하게 활동했으니 그간 얼마나 바둑계에 기부했는지 본인조차 알지 못합니다. 선생이 워낙 열정적으로 바둑을 아끼니 본의 아니게 장기집권을 하는 모양이 됐습니다만 그런 자리가 어디 집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막말로 생기는 것 없이 돈만 들어가는 자리인데 말입니다. 장기봉사(長期奉仕)라는 말이 타당하겠지요.

그런데도 선생은 바둑에 돈쓰는 일을 기꺼워하고 앞으로도 그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이붕 김영성 선생이 그러했듯 덕영 이재윤 선생도 조건 없이 바둑에 자신의 여력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분입니다. 당신들께서 조건을 따지지 않았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보고 넘기기에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한국 바둑의 몸체는 누구일까요? 한국기원입니까? 프로기사들입니까? 아니면 몇 백만에 달한다는 바둑 팬들입니까? 여러 형태의 바둑매체가 비추는 뉴스는 항상 프로기전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프로기사들이 세계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으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봐야겠지요. 또 바둑외교와 행정을 총괄하는 한국기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바둑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는데 지렛대 구실을 하는 후원자들의 비중이 저 평가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바둑대회를 후원하는 기업이야 광고효과와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투자한다 치지만 개인후원자들은 그야말로 스스로 좋아서 바둑계를 지탱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으니 진정한 은인으로 칭송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세간의 칭송마저 부담스러워 할 분들이지만 바둑 팬들이라면 최소한 은인들의 존재라도 기억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1화의 제목을 '淸富의 나눔'으로 정한 것은 덕영 선생의 존재와 독특한 철학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선생은 오로지 의술을 통해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을 화염방사기처럼 사방에 난사(^^)합니다. 저축의 개념은 잘 모른다더군요.

바둑 이외에도 로타리 클럽,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전국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 자연보호중앙회대구광역시협회, 월간 '우먼 라이프' 발행인 등을 맡고 있어 지출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직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권한이나 명예보다 의무와 봉사가 우선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입의 70~80% 정도를 각계에 골고루 환원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선생보다 부자는 많으나 선생만큼 돈을 쓰는 부자를 찾아보기도 힘들 겁니다. 그러면서 치과병원에서 소요되는 재료비는 꼬박꼬박 현금으로 결재합니다. 외상 달아 놓아봐야 시간만 낭비한다는 거죠. 세금도 매년 30% 상향 신고합니다. 그런데도 덕영치과 병원은 불황이 없다니 신기합니다. IMF 시절에도 매달 수입이 기록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병원 건물을 지금의 규모로 크게 신축할 때 자금이 없었는데 대구은행에서 거의 전액 대출해주며 오히려 인사를 했다네요.

"덕영처럼 신망 높은 병원에 대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때 선생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서 ‘시혜수덕(施惠修德)의 교훈을 실천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사회적 공인으로 많은 일을 맡아 뛰면서도 항상 평일에는 병원에 붙어 직접 진료와 치료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근무 시간 이후에 사회활동을 하는 거죠. 운동할 시간이 거의 없으니까 진료를 운동 삼아 땀을 흘린다고 밝힙니다. 선생의 그런 성실한 노력의 대가 중 일부가 바둑계로 흘러들어 오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은인을 바둑 팬들이 반드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바둑의 몸체 중에서 피를 공급하는 심장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한국바둑학회 홈페이지.

지난 연말 어떤 바둑 시상식장의 한 풍경. 한국을 대표하는 바둑 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둑계의 스타들이 로열 테이블에 앉았지요. 덕영 선생은 대구협회장 명패가 놓인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 배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통속에 찌든 필자의 눈에 어쩐지 선생의 포지션이 어색해보였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담당자의 의식 속에 그리 각인되었기에 자연스레 명패가 놓였겠지요.

그보다 바둑학회, 측, 바둑아카데미 학회장 명패로 선생을 로열 테이블에 모셨다면 참 보기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주 사소하고 뜬금없는 지적이며 선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테이블 배치를 논한다는 것은 실례이겠습니다만 그 행사장 풍경이야말로 '바둑의 몸체'를 누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자신의 가치를 기꺼이 바둑에 쏟는 후원자에게 바둑 팬들이 돌려줄 수 있는 가치는 ‘존경과 지지’아닐까요? 나눌 줄 아는 분께는 우리도 나눔으로 응하는 게 당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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