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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덕영비화] 섬김 - 노래하는 의사②

덕영 이재윤 선생의 삶과 바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김종서 작가2009-02-12 15: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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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은 신년특집기획 『이붕전설』을 통해 바둑계를 후원한 은인 故이붕 김영성 선생을 조명했다. 그리고 다시 '후원자 시리즈'의 일환으로 신춘특집『덕영비화』를 마련했다. 드러나지 않게 우리 바둑계의 주춧돌 역할을 해 온 한국바둑학회장 덕영 이재윤 선생의 삶과 바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2월 11일 : 제1화 나눔 - 맑은 부(淸富)
2월 12일 : 제2화 섬김 - 노래하는 의사
2월 13일 : 제3화 사귐 - 우정은 생명의 술
2월 14일 : 제4화 외침 - 바둑돌과 함께 묻어주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여 부드럽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섬기는 리더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섬긴다는 말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잘 받들어 모시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니 종교적으로 쓰이기 딱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례(洗足禮)를 들어 오히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배려하라고 설파합니다.

북한의 국어사전에는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이 이뤄지도록 힘과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 섬김이라 적혀 있지요. 선생의 일상은 ‘섬김’의 정신으로 일관됩니다. 직업적 특성 상 늘 환자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병원의 동료, 직원들도 섬긴다고 말합니다.

선생의 별명은 ‘노래하는 의사’입니다. 어느 날 중년 부인의 치아를 치료하는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요즘은 노래를 안 하세요?”

“노래라니요?”

“제가 십여 년 전에 이 병원에 왔었는데 선생님께서 휘파람을 불며 진료하셨어요.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시 찾아왔거든요.”

“하하하, 그랬었나요?”

그래서 선생은 다소 쑥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그녀를 치료했다고 합니다. 자꾸 미소가 번져 휘파람 소리가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네요.^^


▲ 환자를 직접 치료하고 있는 이재윤 회장.

선생은 경북 달성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계성고를 나오고 1970년 서울치대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서울치대는 동숭동과 연건동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마로니에와 학림다방으로 유명한 지금의 대학로 부근이죠.

그 무렵 캠퍼스에서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 1기가 결성되고 신중현과 송창식, 윤형주 등이 록과 포크송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입니다. 시골 출신이었던 선생은 친척 집에 방 하나를 얻어 생활했는데 가수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에 중독돼 휘파람 연주를 즐겼습니다.

성격이 밝고 부드러우며 음악을 좋아하는 까닭에 의사가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는데 의외로 환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고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의미에서 틈나는 대로 흥얼거린다고 합니다.

서울치대 70학번 동기들이 기억하는 이재윤 친구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담배를 즐겼으며 100명에 달하는 동기들과 두루 잘 어울렸다고 합니다. 치과대학생들이 유난히 바둑을 좋아해 ‘흑백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100명 중 바둑을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고 무려 10명 정도가 1급 수준이었습니다.

그 중 김병준 아마7단, 임동욱 아마 7단 등 정상 급 기력의 소유자들이 포진해 서울대 바둑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선생도 흑백회 춘계친선바둑대회 입상자 명단에 꼭 이름을 올릴 정도로 바둑에 몰두했지요. 당시에 함께 바둑을 둔 기우들은 선생을 포커페이스로 불렀다네요.

담배를 약간 비스듬히 입에 물고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대며 수를 읽는데 아무리 불리해도 낯을 찡그리는 법이 없고 크게 패해도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천성이 모질지 못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거죠. 아마 이 때 바둑과 운명적으로 맺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 이재윤 회장이 모아놓은 스크랩 자료. 바둑, 봉사, 의학 관련 자료들이 눈에 띄인다.

대구로 낙향해서 병원을 개업한 이후에도 바둑 동호회를 만들어 기역 기우들과 바둑을 즐겼는데 이때 별명은 두 가지였습니다. ‘야통무적’은 밤을 새워 바둑을 두면 새벽에 당할 자가 없다 해서 붙여진 호칭입니다. 낮에는 병원 일 때문에 바빠서 밤이나 주말에 기원으로 가 바둑을 즐겼는데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새벽녘이 되면 상대들이 혼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별명은 선생 듣기 좋으라고 라이벌들이 붙여준 떡밥 성 호칭이고 선생이 없는 곳에서 실제 통용되는 별명은 ‘호구^^’였습니다.

바둑을 워낙 좋아하는 선생은 누구라도 내기를 걸어오면 회피하는 법이 없었는데 거의 딴 적이 드물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말에 ‘무박3일’ 장기 레이스 바둑을 둘 경우 상대들이 서너 명씩 돌아가면서 컨디션을 조절해 선생을 도리깨질했습니다. 큰 내기는 아니었어도 그렇게 내기바둑으로 잃은 돈의 총액도 만만치 않겠지요.

필자는 선생의 그런 일면도 역시 ‘섬김’의 마음씀씀이로 이해합니다. 돈을 딴 적 없다는 건 상대들을 섬겼다는 반증입니다. 붙을 때마다 거의 잃었다는 건 애초 딸 생각이 없었기에 치수의 이익을 주장하지 않았을 테고, 대국 환경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저 바둑이 좋아 삼매경에 빠졌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불교 용어로 ‘보시(布施)’와 다르지 않으니 섬김이 맞지요.

그런 성품은 오늘까지 한결같아 대구에 프로기사들이 방문하면 극진히 예우해주고, 아마 강자들에게도 환대를 베풀어 대구바둑의 인심과 긍지를 높이는데 일조한 것입니다. 바둑과 바둑 인을 섬기는데 인색하지 않기에 바둑 4개 단체에 몸을 네 개로 쪼개 성심을 다해 온 것이구요.

대개 그런 단체에 속할 때 스스로 원해서 한다기보다는 바둑계의 요청이 먼저 와 수락하는 형식으로 인연을 맺습니다. 요청을 사양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겹겹으로 직책을 맡게 되고, 또 맡으면 숙제를 뿌리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때문에 열심히 하게 됩니다.


▲ 헤럴드경제에 실린 월간우먼라이프 관련 기사.

선생이 가장 섬기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여성입니다. 그의 저서 [밀레니엄 이슈]에 여성예찬이 가득합니다. 작년 한국여성바둑연맹회원들이 안동에 연수회를 갔을 때 선생은 일부러 찾아가 융숭한 대접을 베풀었습니다. 또 여류국수전 대국을 대구에 유지하기도 했지요.

덕영병원 5층에는 ‘우먼 라이프’라는 잡지출판사가 있습니다. 지방인데도 서울의 메이저 여성잡지사와 버금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전문여성지를 매달 찍어냅니다. 가격은 붙어 있지만 판매용이라기보다 비매품에 가깝지요. 취재, 작성, 편집, 디자인, 인쇄, 출판, 배본에 이르기까지 전량 전액 덕영 선생의 출연으로 이뤄집니다.

전문직 여성들을 표지모델로 쓰고 기사내용도 광고가 많지 않아 알차게 느껴집니다. 상업성을 배재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우리 시대 출판여건 속에서 꿋꿋하게 결호를 내지 않고 매달 발간되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7천 부 가량 찍어서 전국적으로 발송한다니 배짱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성과 바둑을 묶어 괜찮은 기획이 만들어진다면 선생은 틀림없이 까치발을 들고 뭐 도와줄 일 없을까? 살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이를 섬기는 에피소드.
선생은 틈틈이 필리핀의 낙도를 방문해 의료혜택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들의 구강위생을 돌봅니다. 올해도 일정이 잡혀 덕영의 의료진을 이끌고 찾아갈 예정입니다. 또 한일 아동 미술전시회를 15년 넘게 개최해오면서 어린이들의 꿈을 일구고 있지요.

바둑 쪽에서도 재능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입단문호를 넓혀야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입단 자 수를 늘려야 지방의 바둑이 활성화되고 현역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은 프로기사들이 지방원생들의 교육을 맡는 방식으로 파이를 넓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섬김’은 결코 자존심을 낮추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섬기는데도 정결한 마음과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덕영 선생이 섬기고 아끼는 바둑이 당신의 뜻과 다르지 않게 번창하고 생동한다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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