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은 신년특집기획 『이붕전설』을 통해 바둑계를 후원한 은인 故이붕 김영성 선생을 조명했다. 그리고 다시 '후원자 시리즈'의 일환으로 신춘특집『덕영비화』를 마련했다. 드러나지 않게 우리 바둑계의 주춧돌 역할을 해 온 한국바둑학회장 덕영 이재윤 선생의 삶과 바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2월 11일 : 제1화 나눔 - 맑은 부(淸富) 2월 12일 : 제2화 섬김 - 노래하는 의사 2월 13일 : 제3화 사귐 - 우정은 생명의 술 2월 14일 : 제4화 외침 - 바둑돌과 함께 묻어주오 “나 죽거든 바둑돌 3개만 함께 묻어주오.” 제목이 좀 비장하게 들립니다만 덕영 선생의 유언입니다. 왜 1개나 2개, 혹은 한 통도 아니고 3개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3개가 좋아서라고 대답합니다. 아주 소박한 소망 아닌가요? 평생 바둑을 즐기고 후원했지만 지금까지 명반이나 바둑관련용품을 수집한 건 없다고 합니다. 바둑도 그렇지만 혹여 많은 돈을 벌더라도 버는 족족 의미 있는 곳에 즐겁게 소비하고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빈손, 아니 바둑돌 3개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둑이 으뜸이라는 겁니다. 결혼할 때의 조건도 바둑을 둘 때 자유롭게 해달라는 한 가지였다네요. 부드러운 섬김의 리더쉽을 실현하고 있지만 바둑계의 미래에 관해 선생은 상당히 진보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둑학회를 통해 매년 주제를 정하고 학자 및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고 있지요. 지금까지 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바둑도 얼마든지 학문으로 가다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둑학습 아동들의 사전, 사후 뇌기능 변화에 관한 연구][바둑의 기원에 관한 연구][전북지역 바둑교실의 실태조사][현대 바둑소설의 특징 및 주제에 관한 연구] 등등 눈여겨 볼만한 주제들이 예리하게 분석되어 있습니다. 명지대와 대불대에 개설된 바둑학과 학생들에게 좋은 텍스트가 되고 바둑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데 기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에 가맹함으로써 마인드스포츠 종목으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지요. 아직도 예도와 스포츠, 게임의 요소가 중복돼 팬들 사이에서도 정체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종목으로 확정되면 스포츠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을까 전망해봅니다.
그렇게 흘러갔을 때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지 궁금해집니다. 바둑의 본산은 한국기원이지만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지요. 체육행정의 공식적인 통로가 바둑협회로 트일 겁니다. 물론 협회의 이사 대부분이 한국기원과 긴밀한 관계로 맺어져 있지만 파이가 커지다 보면 역할분담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덜컥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대 기구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바둑발전협의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도 덕영 선생이 포함됐으니 이제는 바둑 4단체가 아니라 5단체에 속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선생이 가장 역점을 두는 쪽이 바로 입단문호입니다. “프로기사의 숫자가 너무 많아도 문제이긴 해요. 그렇지만 한참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바둑을 택한 천재들이 좁은 관문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게 너무 안타깝지 않나요? 문호를 좀 넓히고 특히 지방 입단 케이스를 몇 명 더 늘려야합니다. 대구의 경우 지금까지 지방입단으로 겨우 한 사람만 프로가 됐습니다. 매년 한 사람씩만이라도 프로가 된다면 지방의 바둑교실이 얼마나 활성화되겠어요? 붐이 일어나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재능은 있지만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은 어린이들이 혜택을 보겠죠.”
선생은 대구바둑협회를 맡으면서 숱한 바둑천재들이 입단에 실패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모짜르트가 13세에 바티칸 성당의 ‘미제레제’ 합창곡을 단 한 번 듣고 정확하게 악보를 옮겼다잖습니까? 그 곡은 바티칸이 외부에 악보를 유출하지 않는 비곡입니다. 무려 11분짜리의 난해한 곡인데 천재 모차르트가 악보를 훔쳐버린 겁니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가난했고 빚에 쪼들렸어요.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어서 죽자 사자 음악에 몰두했지요. 천재의 정갈한 고독이 훗날 인류에게 최고의 선율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모차르트야 성격 상 차라리 궁핍했던 게 창작의 순도를 높였는지 모르지만 우리 바둑계에서는 그런 천재를 모차르트처럼 고생시키면 안 됩니다. 정확하게 목표와 성취동기를 부여해주고 뒤에서 밀어줘야죠. 조훈현-유창혁-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한국 형 천재의 계보가 끊어지면 곤란한 일이지요.” 선생이 바둑관련 지면에 소개한 칼럼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조훈현과 이창호 사제의 세계제패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바둑 열풍이 일었다. 그러나 그 열기는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터는 식어버렸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바둑 특기생을 모집하지 않았고 학교의 정규과목도 없는 상태에서 과외로 바둑공부를 한다 해도 바둑하나만으로 생업을 이어 갈 수는 없는 현실이 없기 때문이다. 10년 전 大邱 어린이바둑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었던 남영우란 학생의 부모는 영우가 중학교 진학을 하고 나서 바둑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 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 이유는 프로 입단이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작년바둑대회 때에 젊은 청년 한명이 필자에게 인사를 했다. “남건우입니다.” “지금 명지대학 바둑학과에 재학중입니다.” 라고 했다. 어릴 때 대구에서 가장 바둑을 잘 뒀던 남건우라는 학생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는 중학교에 진학 할 때는 바둑을 포기하고 공부만 했지만 바둑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국은 바둑계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지방에서 매년 프로1명씩만 뽑았다면 그는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바둑에 몰입해 훌륭한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인구 260만을 가지 대구의 대도시에서 윤종섭씨가 프로가 된 이후 30여년 동안 프로가 단 한명도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대구 바둑본부 창립을 할 때 찾아준 당시 한국기원 정동식 전 총장에게 전국의 5개 바둑본부 연구생 중에서 한명씩 프로로 입단시켜 줄 것을 건의했다. 그 건의가 일부 받아져 전국 5개 본부 중 한명을 뽑는 제도가 생겼다. 바로 현재의 지방 프로 입단 제도인 것이다. 그 결과 지방에서 프로를 배출한 광주나 대전, 부산 등지에서는 작은 불씨지만 바둑에 대한 약간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만일 그 때에 전국지방 5대 도시에서 프로를 한명씩 배출 했다면 아마 지금쯤은 지역의 바둑은 엄청나게 활성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둑이 스포츠로 편입되면서 과연 얼마나 생기를 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소 변화가 예상됩니다. 그런 격랑 속에서 바둑계의 마당발인 덕영 선생이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언으로 바둑돌 3개를 언급한 것은 아마 영원히 밀알이 되고픈 소망이 아닐까 추리해봅니다. 덕영 선생의 시 한 수 덧붙입니다. 바둑바캉스 - 이재윤 불볕더위에 3박 4일 휴가를 내어 범어동 한국기원으로 향한다. 신선과 함께 일백판의 바둑을 두면 세상시름 물 흐르듯이 씻어지고 복잡한 인간사 저절로 풀어진다. 가장 단순한 흑 백 두가지 돌로서 수담(手談)하는 재미는 복잡한 장난감에 견줄쏜가 이 세상 귀한 자리 어디메뇨! 돗자리 하나 바둑판 하나면 그만인 것을 신선과 함께 한판의 바둑을 두면 옆에서 선녀 시원한 부채 부쳐주니 섬섬옥수(纖纖玉手) 아가씨 그리울쏜가 이 세상 오묘한 학문 많이 있지만 삼백육십일의 팩토리아 무한의 확률,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바둑의 깊이에 비할쏜가 초반 포석이 끝나고 중반 전투에 들어가면 작은 보트를 타고 결투를 하는 것처럼 바둑판은 요동치고 풍랑은 거세진다. 한 손은 치고 한 손은 방어를 하고 일진일퇴 종반 마무리에 들어가면 반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신선과의 하루는 이 세상의 일백일에 해당된다고 했던가 신선과 일백판의 바둑을 두고 하계하니 삼복더위는 사라지고 어느덧 가을이더라.
특집을 맺으면서 지난 연말에 바둑 TV 특집 다큐멘터리 [2008 별들의 전쟁]의 원고를 맡아 한중일 바둑관계자 50여 명의 인터뷰 파일을 일주일 간 되돌려 보면서 편집하고 대본을 썼습니다. 방송 분량이 60분 2부작인 까닭에 그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 자료가 아까워 [기왕사신기 5부작]을 타이젬에 연재했지요. 그리고 내친 김에 후원자 시리즈 특집으로 [이붕전설]과 [덕영비화]까지 발표했습니다. 공중파 방송사의 [일요스페셜]이란 프로그램처럼 바둑사이트에서도 핫 이슈나 심층취재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특집으로 다룰 만한 소재는 다양합니다. 한국기원 원생들의 24시를 밀착 취재할 수 도 있고, 한국과 일본의 바둑만화가들을 탐방해 바둑 팬들이 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조명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바투 게임을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9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바둑의 전당을 세우는 지방자치단체 소개도 의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바둑사이트라 바둑만 다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바둑 팬들과 ‘목적지 없는 여행’을 기획해 르포 형식으로 소개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다른 언론사처럼 취재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아서 폭포처럼 콸콸 콘텐츠를 생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회원 여러분들의 성원과 훈수가 뜨겁다면 못할 일이 따로 있겠습니까? 바둑공동체 타이젬의 진화를 꿈꾸며 매듭 인사 올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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