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한 달에 한 번 경기지부 바둑 대회에 나가는 목적은 단 하나였다. 재생용지로 만들어진 두툼한 오청원 전집. 공부든, 음식이든, 모든 것에 욕심이 없었지만 오청원 전집이 그렇게 높아 보일 수 없었다. 기억에 처음으로 '저 것이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실력인지, 운인지 몇 달 뒤 오청원 2번째 전집을 선물로 받았다. 1등을 한 어린이에게만 주는 오청원 전집을 선물로 받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또 다시 목표를 세운다. 꼭 1번째, 3번째 전집도 손에 넣겠다고. 작은 손에 오청원 전집은 한 번에 쥐어지지 않았을 만큼 두툼했다. 기성의 깊은 뜻이 담긴 수를 알았을리 없고, 기성의 업적을 알았을리 없지만 그렇게 오청원 전집은 나에게 두툼한 기쁨을 줬다. 하루에 기보 하나씩 꼭 공부해보자는 마음에 눈이 아프도록 깨알 같이 작은 숫자를 찾아 바둑판에 좌르르 놓아보기를 수십번. 나도 모르게 향상된 실력으로 1번째, 3번째 전집도 손에 넣는다. 현대바둑의 초석? 바둑의 고전주의? 뭘 알았겠는가. 화점·삼삼·천원.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내가 당시 배웠던 오청원의 신포석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두툼한 전집의 페이지 만큼이나 영향을 줬나보다. 우칭위엔이라 불리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오청원. 19년 쯤 지난 2009년 3월. 제6회 잉씨배 결승5번기 싱가포르. 조금씩 허리가 굽어가면서 어떤 대회에도 불참을 알려왔으나, 제6회 잉씨배 결승 소식을 듣고 6시간 장시간 비행에도 뒤돌아 보지 않고 한 걸음에 싱가포르에 왔다. 대국 중간 마련된 공개 해설장에서 잉씨배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미국 정부 이야기를 할 정도로 노쇠했지만 태어난 지 1세기가 다 되어가는 기성의 눈 빛은 건강했고, 투명했다. 그간 바둑에 쏟아 부었던 애정과 열정을 담은 휘호를 남긴다. 몸은 지쳐있지만 평생 바둑과 함께 했던 손으로 힘 있게 붓을 놀린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지만 맑고 영롱한 기운과 향기를 보낸다. 살아있는 기성의 숨결을 느낀다. 河山一局棋. 기성에게 평생 한판의 바둑은 산하와 같았다. 오청원. 오청원.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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