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바둑雜學]

바둑과 야구의 어울림에 대해

ㅇㅇ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3-23 17:22:24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스스로도 놀랐다

요즘 화두는 단연 WBC야구이다. 바둑과 야구는 30년 세월의 갭을 두고서 같은 깨달음을 경험하고 있다. WBC와 제1회 응씨배는 닮은 점이 있다. 한국은 WBC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다.

야구하면 미국, 일본이었고 쿠바도 일정 지분이 있어 ‘넘사벽’이고,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등 한국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의 국가들이 즐비하다고 여겼다. 오히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과 전통적인 강호 대만이 함께 맞붙은 1예선통과가 어렵지 않을까 보았다.

메이저리그로 전 출전선수를 채웠던 베네수엘라를 10-2로 격파하면서 결승에 진출하자 이제는 우리가 우리 수준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직도 인프라가 약하니 말들은 많다.

콜라 한 박스가 걸리지 않아도 ‘조기축구’를 하다보면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승부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타이젬 9단이 아무리 술을 한잔 걸치고 바둑을 둔다 한들, 자다가 금방 일어나서 둔다고 해서 5단에게 질 까닭은 없지 않을까?

조훈현은 국내대회 우승상금을 합쳐봐야 1억 남짓이었던 89년. 당시 한국은 잉씨배에 출전하면서 설움을 곱씹어야 했다. 당시 일본이 최강국이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중국이 그 다음 순위이며 한국은 대만보다도 낮은 4위권으로 인정한다는 세계바둑계의 평가가 서러웠다.

16강을 초청하면서 한국대표로는 조훈현 혼자만이 선택되어 한국의 우승을 가당치도 않은 상상이었다. 그때 한참 잘 나가선 네위이핑을 우승시키기 위해 대회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훈현이 결승까지 혁혁한 전공을 쌓은 다음 네위이핑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둑과 야구의 어울림에 대해

박찬호, 김병현, 이승엽, 김동주 등이 모조리 대표팀 고사를 선언한 가운데 한국야구가 WBC결승까지 올랐다. 더욱이 8개 구단 감독들이 전부 대표팀 감독을 고사하는 가운데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며 다시금 12척을 이끌고 나선 ‘충무공’ 김인식 감독이 너무나도 멋진 사나이이다.

야구배트를 만들 때 쓰이는 물푸레나무가 바둑판에도 좋은 재료가 된다는 것과 정도가 공통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둑과 야구는 경기의 속성, 역사를 보다보면 의외로 비슷한 대목이 많이 발견된다.


“메이저리그와는 두 점, 일본과는 정선 치수죠.”

3년 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당당 4위에 오른 김인식 감독이 미국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수준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실력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단기전에서는 당일 컨디션과 집중력 그리고 팀 분위기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수 있는 수준차라고 했다. 바둑에서 2점이나 정선 치수의 상대라도 공식시합의 ‘한판승부’는 모른다는 예와 흡사하다.

한국형 야구의 본령을 보여주고 있는 김인식 감독은 바둑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많은 별명 가운데 바둑에 얽힌 별명은 ‘신산.’ 김 감독은 복기에 능하다고 한다. 자신이 경기 중에 낸 피칭사인이나 야수들의 움직임에 관한 사인 등을 마치 시뮬레이션으로 복기하듯 전부 다 머릿속에서 끄집어낸다고 한다. 천변만화하는 바둑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바둑 최강국은 야구 최강국이 될 수 있다

투수가 타자에게 공을 던지려는 그 짧은 순간 그의 머릿속을 들어가 보자.
‘어떤 구종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카운트에서 결정구를 던질 것인가?’ ‘이번 타자에게 승부를 피하고 다음 타자를 선택할까?’ ‘아웃카운트를 몇 개인가?’ ‘주자가 몇 루에 있는가?’ ‘그 주자가 발이 빠른가?’ 등등 하나의 공을 던지기 직전에 투수가 생각해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다.

한국의 야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피지컬으로는 미국이나 중남미에 비해 결코 우세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의 무대에서 통하는 것은 바로 생각의 힘에 근거한다. 따지고 보면 1회부터 9회까지의 모든 상황이 전략과 전술의 집합체이다. 바둑에서 말하는 포석이 있고 중반이 있고 마무리가 있는 셈이다, 형세분석과 수읽기의 혼합체인 것이다.

원조 ‘일본킬러’였던 구대성의 바둑예찬은 유명하다.
“바둑판을 그려 보면 야구판과 흡사하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승부라는 차원에서 야구와도 많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역최고령 투수 송진우와 자주 점심내기를 하는 바둑마니아라고.


기록의 경기

스포츠 신문마다 야구 기록표라는 것이 있다. A투수가 선발 등판하여 몇 회까지 던지고 주자 1, 2루인 상황에서 B투수로 바뀌었다는 정보. 또 C타자가 4타수 3안타를 쳤다는 정보가 송두리째 들어있다. 한편 바둑에서도 기보라는 것이 있어서 자신이 둔 수순을 그대로 지면에 옮길 수가 있다. 한 수마다, 또는 공 하나 하나마다 구체적인 인터벌이나 승부호흡이 희미할 뿐이지, 모조리 복기해 낼 수 있다.


실수의 미학

투수가 완벽하게 던지게 된다면 게임은 0:0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실투가 홈런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사사구가 남발되기도 한다. 야수의 경우 초등생도 잡을 수 있는 플라이 볼을 ‘만세삼창’이나 ‘알까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도 균형을 깬 것은 에러였다. 정근우가 친 공을 우익수가 놓치면서 시작된 에러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바둑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수 앞을 보지 못하거나 중차대한 장면에서 팻감을 쓰지 않고 따내는 등 어이없는 반칙패도 간혹 발생한다. 때로는 귀신 잡는 프로이지만, 어이없는 에러에 우리는 결국 인간인 것임을 깨닫는다.


마무리가 중요하다

한국 야구팀은 계투가 인상적이었다. 그야 말로 선발 투수는 가장 먼저 나오는 투수일 뿐이며, 그 다음 줄지어 나오는 투수, 정현욱 정대현 임창용 등이 너무나 제 역할을 잘 해주었다. 흔히 바둑에서 “다 이긴 바둑을 졌다.”는 핑계를 자주 듣는다. 야구로 치자면 7~8회까지 넉넉하게 리드하고 있던 바둑이 역전패를 당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따라서 후반에 강한 사람일수록 고수가 된다는 것이나 야구에서 제대로 된 클로저가 있어야 강팀이라는 얘기는 일맥상통한다. 임창용이나 오승환 정대현 같은 특급 마무리투수를 보유한 팀이 강팀이 되는 것이다. ‘돌부처’ 이창호와 같은 닉네임을 쓰는 야구선수는 오승환인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위기의 순간에 미동도 않고 표정의 변화도 없는 오승환과 이창호는 닮지 않았는가?


마니아가 많다

야구가 없으면 못산다는 야생야사(野生野死) 팬이 많다. 야구가 생활자체인 사람이 많지만 바둑 또한 매한가지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서 24시간 동안 접속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10판 이상을 두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며 타이젬 9단바둑을 따라다니며 베팅하는 사람은 하루해가 어찌 저물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스포츠TV를 틀어 놓거나 바둑TV를 틀어놓거나 매일반이다.

이러한 면은 바둑이든 야구든 배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역설적인 애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말을 바꾸어, 바둑이 처음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발을 내딛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이 있다.

4월은 야구와 바둑의 계절이다. 최고의 기전 한국바둑리그는 프로야구를 표절(?)했다. 8개 구단에서 정규리그를 치르고, 상위 4개 팀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규정의 원조는 프로 야구가 아닌가. 다분히 야구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데에서 기인한 것일 터.

또 바둑에서는 중도에 게임을 포기하는 불계라는 제도가 있고 야구에서는 콜드게임이라는 제도가 있어, 패자의 부끄러움을 중도에서 해방시켜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제도도 있다.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