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은 2009년부터 매달 특집기획으로 우리 바둑계에 보이지 않게 헌신한 은인(恩人)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발표하고 있다. 집필을 맡은 김종서 작가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해 마치 방송 프로그램처럼 생생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되살려 바둑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은인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모자이크하고,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해 아름다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재창조해내는 타이젬 스페셜은 바둑과 문학의 접목, 기억의 영상복원, 바둑문화의 기록과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도 계속 야심차게 진행될 것이다.
[낭만기객 권재룡]은 [기왕사신기][이붕전설][덕영비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 작품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쳐 경남 고성읍의 한 병원 옥탑방을 무대로 프로 입단을 열망하는 청년들의 열정과 애환, 그리고 그들을 조건 없이 후원했던 의사 권재룡의 삶을 소개한다.
4월 2일(목) - 제1화 : 고성 양산박
4월 3일(금) - 제2화 : 30년 만의 귀환
4월 5일(일) - 제3화 : 옥탑방의 러브레터
4월 6일(월) - 제4화 : 달하 노피곰 도다샤
4월 7일(화) - 제5화 : 뿌리를 찾아서
S#1. 추억이라는 것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마지막 날까지 악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에서
우리는 고성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중입니다.
가슴이 시리지만 어려웠던 시절 맑은 가난과 절제로 바둑판을 대했던 바둑 청년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우리도 더불어 정신을 헹구고 있지요.
지금이야 바둑의 일인자가 되면 거액의 기전 상금을 획득해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언감생심 부유는 꿈도 꾸기 어려웠습니다.
바둑 1급을 둘 두뇌라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도 최소한 중간 이상은 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고행을 택해 모여든 양산박 멤버들이기에 우리들은 조건 없이 사랑을 보내는 것입니다. 설령 그 멤버들이 훗날 찬란한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손 치더라도 그 한때의 치열한 연소(燃燒)를 추억한다면 고단한 삶쯤이야 그럭저럭 견디며 흘려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S#2. 권 박사의 무협야화(武俠夜話)
고성 동산의원 옥탑 방 팔각정의 겨울은 춥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보일러 시설이 되어 있진 않았어도 연탄난로를 피웠지요.
청년들은 그곳에서 연탄재처럼 뜨겁게 바둑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습니다.
깊은 밤 권재룡 박사는 연구생들을 동그랗게 앉혀놓고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일본열도의 모든 도장을 찾아다니면서 강호의 고수들을 차례로 꺾는 스토리에 청년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빠져들었지요.
맞수 사사키 고지로와의 운명적인 승부를 묘사할 때는 난로 옆의 연탄집게를 빼들고 리얼하게 동작을 재현했습니다.
바둑이나 검술이나 승부의 호흡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그런 무협야화도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S#3. 겨울 길의 동행
어느 겨울날. 멤버들 중 맏형 격인 이기섭과 박수현이 옥탑 방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날따라 햇살이 따스해 어디론가 무작정 걷고 싶었다네요.
그들이 떠올린 곳은 남쪽의 미항 충무였습니다. 지금은 통영시로 바뀌었죠.
충무에는 양산박 동지 제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충무 정제 집에 놀러 가자."
그런데 둘 다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날도 따뜻한데 천천히 걸어가죠 뭐."
그렇게 둘은 고성에서 충무까지 걷기 시작했습니다. 거리가 대략 20여 킬로니까 오십 리가 넘는 거리였지요.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서 다섯 시간쯤 걸으니 아름다운 충무항이 나타났습니다.
"어휴, 배 고파. 정제 집에 가서 밥이나 얻어 먹자."
반찬이 없더라도 따뜻한 보리밥에 묵은 지만 얹어 먹어도 행복할 것 같았지요. 그런데 친구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절망적인 대답이 돌아 왔습니다.
"어? 정제는 방금 전에 고성읍으로 버스타고 떠났는데?"
이런 빌어먹을! 서로 행로가 교차해버린 겁니다. 정제의 어머니께 차마 손을 벌리지 못하고 이기섭과 박수현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갑자기 옅은 구름이 드리어지고 찬바람이 엄습했습니다.
돌아가는 오십 리 길은 아득히 멀고 추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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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고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허기진 둘은 어둠 속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신작로 옆 점방이었지요.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주인 아저씨가 외상으로 어묵 꼬치와 차비를 빌려주었답니다.
지금도 두 분이 만나면 그때를 회상하며 껄껄 웃습니다.
S#4. 바둑 의적(義賊)들의 부산 원정
그 무렵 바둑계는 조남철, 김인 시대가 저물고 일본유학파 조훈현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1976년 5관왕, 1977년 6관왕, 1978년 6관왕으로 위세를 떨치다가 마침내 80년에 전관왕으로 국내의 모든 타이틀을 휩쓸어버리는 파천황의 지존으로 군림하게 되지요.
고성 양산박 청년들에게는 두려우면서도 꼭 극복해야 할 대상이 조훈현이었습니다.
그들은 권 박사의 배려에 힘입어 합숙하면서 차례로 프로 관문에 도전했습니다. 양산박 멤버의 기준은 한 번이라도 그 옥탑 방에 들른 사람이라면 포함해도 괜찮으리라 봅니다.
1978년 강만우, 이주용 입단
1979년 양재호 입단
1980년 임선근, 조대현 입단
1981년 박상돈 입단
1982년 정대상 입단
1983년 문용직 입단
1985년 차수권 입단
바로 이 때가 양산박의 전성시대라고 보여지네요.
아무런 대가없이 한 사람의 후원자가 만들어 준 연구실을 통해 이처럼 많은 인재들이 프로기사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입단하기 전 청년들은 이따금 아마추어 대회에 우르르 몰려가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권 박사가 들려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화처럼 큰 대회에 나가 타 지역의 강자들을 꺾고 고성 양산박의 파워를 널리 떨친 거지요.
어느 해 부산의 한 기원에서 오픈을 기념해 바둑대회를 열었습니다.
상품이 당시에는 귀했던 대형냉장고였던 까닭에 양산박 의적들이 일곱 명이나 원정을 떠났습니다. 대국시간이 오후 2시였던지라 7인의 총잡이들은 점심 무렵 용두산 공원에 도착해 간단히 관광을 즐겼습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일곱 명의 호주머니를 털어 모아보니 200원뿐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겨우 식빵 한 봉지를 살 수 있었지요. 음료수도 없이 그들은 식빵을 실탄처럼 분배하고 비장하게 씹었습니다. 꺼억 목이 메어 삼키기가 어려웠고 다른 관광객들이 마시는 사이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랐습니다.
그 날 대회에서 임선근이 우승을 차지했고 냉장고를 받았습니다.
임선근은 단번에 냉장고를 팔아 10만원을 준비했고 멤버들과 다시 용두산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경양식집에 들어가 돈까스, 비후까스, 생선까스가 삼위일체로 나오는 정식을 썰었습니다. 슬픈 점심, 화려한 만찬이었지요.
S#5. 아아! 임선근
옥탑 방의 멤버들의 바둑에 관해서는 1화 댓글 중 오키드 님이 상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정대상과 김기헌은 하루에 스무 판을 속기로 두었고, 힘이 센 정대상에게 박수현이 밀렸고, 박상돈은 정대상에게 강했으며, 또 박수현은 박상돈에게 반집승을 거두었다고 소개합니다.
김기헌은 강미(强味)가 있어 신참들을 테스트하는 교관 역할을 했습니다.
누군가 고성에 찾아오면 김기헌이 기력 테스트를 하고 임무를 부여합니다.
그에게 바둑으로 호되게 당한 신참들은 꼼짝없이 병원 4층을 봉걸레로 밀고 다녀야 했다네요.
양산박에서 가장 기재가 뛰어난 인물은 임선근이었습니다. 아마 국수와 최고위전에서 우승을 했고, 한국대표로 세계 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성격이 원만하고 남 돕기를 좋아해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맡았을 때 많은 이들이 좋아했습니다.
산을 좋아해서 후배 기사들을 데리고 자주 등산했습니다.
또 프로에서도 ‘검토실의 황제’로 불릴 만큼 감각이 뛰어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인물이었지요.
다음 5화에 부연설명하겠지만 권재룡 박사는 바둑청년들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으나 자신의 삶은 제대로 챙기지 못해 말년이 편치 않았습니다.
임선근 사범은 권 박사 사후 고인의 아들에게 생활비를 매달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양산박 출신 프로기사들도 십시일반 돈을 모아 스승의 은혜를 갚았습니다.
아름다운 바둑 인 임선근 사범은 사무총장으로 격무에 시달리다 암에 걸려 2006년 3월 28일 향년 4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S#6. 다정(多情)도 병이어라
고 임선근 사범의 자택은 과천 쪽 인덕원이었습니다.
"아, 어서 오세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성 스토리를 쓰기 위해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밝히자 의외로 사모님은 흔쾌히 맞아주었지요.
놀랍게도 방문한 날이 정확히 3주기되는 날이었습니다.
임 총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면 한이 없겠지만 물음을 아꼈습니다.
그냥 사모님께서 들려준 이야기만 적었지요.
"참 보기 드물게 따뜻한 분이셨어요. 사람을 좋아해서 술자리가 많았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더 없이 따뜻한 가장이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그 점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 고백이 임 사범의 삶을 명료하게 그려냅니다. 역시 사(私)보다 공(公)에 치중했던 바둑 인. 자신과 가정을 챙기기 이전에 바둑계에 헌신했다는 점이 권 박사의 삶과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박사는 임선근 사범을 수제자로 여겨 자신의 모든 바둑 서적과 자료를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책들은 지금 인덕원 아파트의 베란다 구석 창고에 박스로 묶여 있습니다.
전집 몇 권만 안방 책장 속에 꽂혀 있었습니다.
S#7. 달바라기
PS - 제5화 '뿌리를 찾아서'편에서는 권재룡 박사의 흥미로운 청년시절과 가족들 뒷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