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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낭만기객 권재룡] 뿌리를 찾아서⑤

베일에 가려 있었던 권재룡 박사의 삶

김종서 작가2009-04-07 15: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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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은 2009년부터 매달 특집기획으로 우리 바둑계에 보이지 않게 헌신한 은인(恩人)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발표하고 있다. 집필을 맡은 김종서 작가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해 마치 방송 프로그램처럼 생생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 인물들을 되살려 바둑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은인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모자이크하고,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해 아름다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재창조해내는 타이젬 스페셜은 바둑과 문학의 접목, 기억의 영상복원, 바둑문화의 기록과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앞으로도 계속 야심차게 진행될 것이다.

[낭만기객 권재룡]은 [기왕사신기][이붕전설][덕영비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리즈 작품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쳐 경남 고성읍의 한 병원 옥탑방을 무대로 프로 입단을 열망하는 청년들의 열정과 애환, 그리고 그들을 조건 없이 후원했던 의사 권재룡의 삶을 소개한다.

4월 2일(목) - 제1화 : 고성 양산박
4월 3일(금) - 제2화 : 30년 만의 귀환
4월 5일(일) - 제3화 : 옥탑방의 러브레터
4월 6일(월) - 제4화 : 달아 노피곰 도다샤
4월 7일(화) - 제5화 : 뿌리를 찾아서


S#1. 다시 바닷가에 서서

4월의 바다에 서서 흘러간 흑백 영상의 시대를 생각합니다. 조수간만의 흐름처럼 무수한 상념들이 몰려들었다가 물러가곤 합니다.

지난 4화의 스토리를 되돌아보면 모든 에피소드 앞에 바다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마지막 에필로그 5화에도 역시 바다가 중요한 공간으로 작용합니다.

이제 고성 양산박의 주인공 낭만기객 권재룡 박사의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70년대 후반 옥탑 방 팔각정에서 꿈을 키운 바둑 청년들이 중년을 훌쩍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지금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풀어내려면 한이 없겠지요. 오늘은 그 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던 권재룡 박사의 삶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S#2. 진주에서 시모노세키로

권재룡 박사는 1926년 경남 진주 금산면에서 출생했습니다. 월아산이 병풍을 두르고 남강이 젖줄로 흘러 비옥한 농경지였으나 지금은 택지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선 곳입니다.
일제 시대였는데 기독교 집안이어서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고 하네요.

부모들은 탄압을 피해 아예 일본으로 이주를 결심합니다. 차라리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일본으로 들어가 살면 감시의 그물코가 좀 헐렁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부모와 2남 2녀, 모두 6명의 가족이 큐슈의 모지(門司)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모지는 작년 여름부터 부산항과 크루즈 여객선 항로가 개설된 관광지입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지구촌 전체로 가득 번질 무렵 일본군은 중국의 해안지역과 동남아까지 집어 삼키며 대동아공영권의 패자(覇者)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당연히 많은 병력이 필요했겠지요. 이때 모지 항은 조선반도에서 강제징집한 병력을 각 전선으로 쪼개 파병하는 1차 집결지였습니다.

16살이 된 권재룡도 모지에서 학도병으로 징집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고교 1년생이니 아주 어린 군인인 셈이지요.



S#3. 미얀마(버마) 전선에 투입되다

일본군에 징집된 권재룡의 행로를 정확히 포착할 수 없으나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미얀마에 투입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미얀마가 가난하지만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우리보다 선진국이었어. 부유층 저택에 실내수영장이 있었고 에어컨도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별세계였단다.”
권 박사는 이따금 딸들에게 미얀마의 회고담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거기서 네덜란드 간호사를 봤는데 세상에 그처럼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가 있을까 싶더라.”

아무튼 미얀마에서 권재룡은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유럽 사람들이 쓰는 비누 LUX를 사용해봤는데 향이 너무 좋아 아주 먼훗날에도 딸들이 그 비누를 구해 선물하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S#4. 바다 위에서 떠돌다

미얀마 전선 다음 행로는 태평양입니다. 그는 해군소속이었는데 어느 곳으론가 항해하다 미군 함대와 마주쳐 포격전을 벌이다 침몰하게 됐습니다.

많은 일본군들이 수장(水葬)되었고 구조된 병사들은 미군의 포로가 되었지요. 태평양 해전에서 잡힌 포로들은 하와이 포로수용소로 이송되는데 이 대목에서 권재룡의 운명이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지요.

그는 미군 함정에 구조되었는데 그 함정이 바로 병원선이었습니다. 병원선 함장이 직접 구조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권재룡이 식민지 조선 출신임을 알고 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통역이 있었겠지요^^)

“수용소로 갈래? 내 밑에서 시중을 들래?”

어린 권재룡이지만 지옥 같은 포로수용소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함장의 하우스보이를 택했습니다. 막말로 몸종이라 해도 그다지 틀린 소리는 아니겠지만 그 쪽이 포로 신분보다는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병원선 함장은 의사 출신이어서 집무실에 의학서적이 가득했습니다. 권재룡은 집무실 청소를 하면서 그 책들을 훑어보곤 했지요. 그 모습을 본 함장이 영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권재룡은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집념으로 보여 함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뛰어난 두뇌를 지닌 이 청년 권재룡을 함장이 끔찍이 아꼈습니다. 그래서 비서나 전령처럼 옆에 두고 오래 데리고 다녔지요.

그 바람에 권재룡은 전쟁이 끝났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병원선 위에서 망망대해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 세월의 부피를 정확히 측량하진 못 하나 그가 가족들과 만난 것은 스물 여섯 되던 해였으니 무려 10년 만이었지요. 그렇다면 1942년 징집돼 1952년에 귀향한 셈이지요.

친절하고 매너 좋은 미국인 함장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겠지만 바다 위에서 권재룡은 국적도 없고 직업도 없는 부초나 다를 바 없었을 겁니다. 고향과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S#5. 마산이 바둑의 요람이다!

병원선 함장은 자신이 전역하게 되자 권재룡을 놔주었습니다.

“미국에서 살래? 일본으로 갈래? 아니면 네 조국 한국으로 갈래?”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가곡 ‘가고파’의 선율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내가 마지막 선물을 줘야겠군.”

함장은 권재룡의 고향 부근인 마산국립의료원에 일자리를 얻어주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조국에 돌라온 권재룡은 마산국립의료원에 취직하게 됩니다.

해방과 함께 모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가족들은 숙부가 사는 마산시 진동면에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전사한 줄로만 알고 있었던 가족들에게 장남 권재룡의 등장은 꿈과도 같았겠지요. 게다가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던 시절인데 국립의료원 직원 신분이었으니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마산 진동면! 이 지명을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주지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이 곳이 바로 타이젬스페셜 1편의 주인공 이붕 김영성님의 고향입니다. 동시에 권재룡 박사가 귀국해 자리 잡은 제2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바둑대회 학초 배의 후원자 학초 최재영 선생이 마산 출신이니 이 공통점을 우연이라 치기에는 너무 묘하지 않습니까? 바둑계의 은인 세 사람을 배출한 마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S#6. 대구에서

국립의료원에서 일하던 권재룡은 국가고시를 통해 의료면허를 취득하고 대구에서 병원을 개업합니다. 아마 바둑은 20대 후반과 30대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추리해봅니다.

그리고 60년대 대구에 거주하면서 프로기사 이창세와 정창현을 후원했습니다. 고성 양산박 시대처럼 본격적인 사숙(私塾) 형태는 아니었을지라도 병원에 두 기사가 자주 드나들며 바둑을 공부했고 권재룡 박사가 여러 형태로 생활을 돌봐준 모양입니다.

지금은 두 기사 모두 작고했으나 60년대에 이창세와 정창현은 대단한 분들이었지요. 대구에서 나란히 고교를 다녔던 두 사람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습니다. 정창현이 이창세보다 늦게 바둑을 배웠는데 늘 자극을 받고 추격하는 입장이었다고 하네요. 이창세는 국수전 도전자로 나서 조남철 국수와 3:2 명승부를 펼치며 각광을 받기도 했습니다. 훗날 독일로 이주해 섬유산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고 러시아 볼가 강의 유람선 알렉산드르 호를 인수한 뒤 조훈현, 이창호 사제를 초청해 국수전 선상대국을 연출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독일과 유럽 전역에 한국바둑을 널리 알린 공로가 크지요.

이미 3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 바둑을 보급하기 시작한 일본이 바둑의 종주국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만큼은 한국의 지분도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다 이창세 씨의 공로라면 그 이전에 프로기사 이창세를 후원했던 권재룡 박사의 존재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S#7. 부산에서

대구에서 간호사 출신 최송자 씨와 결혼을 한 그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본적지 진주로 돌아와 군의관 복무를 합니다. 그리고 전역 후 부산으로 나와 연산동에 병원을 차렸습니다.
이때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지요.

자녀들의 기억에 의하면 집에 있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앉은 책상에서 논문 쓰는 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군용담요 한 장을 뒤집어쓰고 일본어로 원고를 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큐슈대학 이학 박사 학위를 땁니다. 일본의 국화 문양이 금장으로 박힌 학위증이 등기소포로 날아왔는데 무척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칭이 권 박사로 된 겁니다.

증언을 종합해보면 권 박사는 아주 두뇌가 비상하고 집중력이 대단한 분으로 여겨집니다.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일본어로 박사 논문을 쓰고, 바둑 정석 책을 암기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국립의료원 근무 시절에 알려지지 않은 세균 4종을 발견해 국가문서기록에 등재되어 있다는 증언도 들었습니다. 권 박사가 가장 본받고 싶어 했던 인물이 일본의 생물학자 노구치 히데오였습니다. 매독균을 발견하고 황혈병을 연구하다 오지에서 그 병에 걸려 죽은 인물이죠. 노구치의 별명이 ‘세균헌터’이고 일본 화폐 1천 엔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권재룡 박사. 바둑에 전념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또 의학에 전념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S#8. 김해를 거쳐 고성으로

사진으로 보면 고지식한 의사 선생님이나 한학자로 보이는 권 박사지만 또 예측을 뒤집는 일면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김해로 이사하고 권 박사는 이상하게 생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당시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해괴한 오토바이였습니다. 고물을 뜯어 모아 조립한 듯한 모양이었지만 배기량은 상당히 큰 오토바이였다네요.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 부산에서 열린 국제 모터사이클 대회에 출전해서 메달과 트로피를 쓸었다니 또 놀라고 맙니다.

팔각정에서 찍은 저 사진 속 트로피가 바둑대회에서 획득한 게 아니라 모터사이클 대회에서 타온 영광의 부상이라고 합니다.



S#9. 우울한 시대의 영웅

권재룡 박사의 일대기를 깔끔하게 축약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만 이제 어느 정도 궁금증은 풀리셨으리라 믿습니다.

고성의 바둑 청년들이 어쩌다 서투른 영어를 쓸라치면 유창하게 영어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권 박사. AFKN 방송을 편안하게 시청했던 이유, 큰딸 다미의 대학원서 ‘서양사 강독’을 술술 독해해버렸던 이해할 수 없는 영어 실력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슬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식민지시대 한 청년의 초상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5화의 구성으로 권재룡 박사와 고성 양산박 바둑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부 담아내는 일이 무리기에 다소 난삽한 복합구성으로 여러분께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연재가 되면서 그 시절 동지들이 타이젬에 들어와 필자와 함께 회상여행 가이드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또한 진정성 가득한 댓글로 주인공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셨지요.

추억이 결코 덧없는 영상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우울한 시대에 태어나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 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을 겪었으나 긴 세월 돌아와 한국의 바둑청년들에게 지혜와 온기를 전해준 분.

멀리로는 이창세, 정창현으로부터 가깝게는 김영환 9단에 이르기까지 권재룡 박사와 연이 닿아 있으니 우리는 그 분을 바둑계의 은인으로 불러 마땅합니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는 필자의 칼럼 코너를 통해 추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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