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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제한시간 없이 신(神)과 대국한다면?

ㅋㅋ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4-08 1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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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神과의 치수는 석 점?

60년대 린하이펑(林海峰)은 20대에 명인(名人)에 오른 뒤 기자의 질문에 “석 점 정도면 신에게 뒤질 것 같고 넉 점 정도면 해볼 만할 것 같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서봉수도 10년 전 쯤에 비슷한 발언을 했다. “넉 점을 놓으면 누구에게도 안질 것 같다. 글쎄 석 점은 모르겠다.”


우리같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그 경지가 얼마나 드넓은 것이며 그 위의 경지는 얼마나 넓을 것인가를 예상도 못하지만, 일정 정도의 경지에 올라있다는 프로들, 그 중에서도 정상급기사의 예를 보면 신과의 격차를 대충 느낄 수 있다. ‘바둑의 신’이라면 최선의 수를 찾는 단계를 말한다.

바둑연구가 귀를 주변으로는 이미 끝나 있는 상태이며, 끝내기는 이미 신산(神算)이란 별칭을 가진 기사도 있을 정도이니 석 점보다는 좀 더 좁혀진 상태일 것이다. 다만, 신과의 실력이 가장 많이 나는 부분이 중앙 쪽 처리와 중반 이후의 처리일 것이다.

중앙이라는 것도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가 ‘우주류’를 들고 나오면서부터 비교적 개발이 가까워진 시대다. 또한 ‘포석 겸 정석’이라는 신무기가 등장하면서 귀 위주의 처리에서 변과 나란히 균형을 중시하고, 또한 그에 따라 전체를 눈여겨보는 흐름에 따라 중앙에도 눈길이 많이 간다.

바둑판이 사각형인지라 귀를 포함한 가장 난해한 부분을 4점으로 커버한다면 그 누가 덤벼 오더라도 힘들 것이라는 얘기는 설득력이 있다. 4점은 확실하게 신과 겨룰 수 있다는 얘기는 인간사고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대목이며, 절대 선(善)인 신에 대한 경외심과 또 인간의 최고 덕목인 도전의식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도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단편적인 관념들이다. 즉, 신과의 한판의 바둑을 시간을 얼마로 하느냐에 따라 앞에서 나누었던 얘기는 송두리째 다시 써야 할 지 모른다는 얘기이다. 신이란 초초속기도 가능한 존재이거늘.

한판의 바둑에 있어서 시간의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면 바둑은 어떻게 변화할 까. 만일 무제한의 시간을 쓸 수 있고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바둑을 대한다면 신(神)과 동등한 수준에서 바둑을 둘 수 있지 않을까?



○… 수재의 은퇴기는 158일 동안 두어져

1938년 본인방 슈샤이(秀哉)의 은퇴를 기념하여 기타니미노루(木谷實)와 역사적인 한판을 두는 데 무려 제한시간이 40시간이었다. 물론 근대적 의미에서 제한시간이 처음으로 채택된 그 시합은 장장 158일간 두어졌다. 연로한 마지막 세습 본인방은 2일 혹은 5일 만에 대국을 재개하고 봉수를 하는 식이었다. 기타니는 34시간 19분, 슈샤이는 19시간 57분이 걸렸다.

그 대국 이후에 현대식 본인방전은 3일간 13시간에 걸쳐서 두어졌다. 지금의 일본 3대 기전(기성, 명인, 본인방)은 8시간 2일제로 줄어들었기는 하다. 당시 제한시간 단축을 부르짖은 이는 바로 우칭위엔(吳淸源)이다.

그 역시 건강이 나빴던 탓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대국도중에 대국장을 비어야 하는 2~3일간의 대국은 문제가 있다고 강변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선진적인 발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다양해진 제한시간-그러나 짧아지는 추세


제한시간이 없다면 인간의 두뇌를 최대한 발휘하며 최선의 수를 찾는 구도의 일면을 걸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스피드시대 추세에 발맞춰서 제한시간의 단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은 TV속기전에서 보듯 무진장 빨리 두는 형태에서 준 속기기전이라 할 수 있는 농심배처럼 1시간 정도의 제한시간까지 다양하다.

바둑TV가 생기기 전만 해도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본격기전은 제한시간이 5시간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대국은 각자가 제한시간을 모조리 쓴다면 최소 10시간이 걸렸다.

왕위전, 명인전, 국수전, 패왕전 등은 모조리 5시간이었다. 본선대국은 4시간을 쓰고 예선은 제한시간을 3시간으로 하고 있었다. 현재 우리 기사들이 참여하는 국내외 대회 치고 제한시간이 3시간을 초과하는 기전은 아예 없다.

일본에는 아직 이틀거리 8시간 바둑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다른 기전도 5시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바둑이 스포츠의 영역이 아니라 예도의 영역이다. 반면 한국은 스포츠로 방향을 잡으면서 기전이 속기전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주로 요즘은 3시간 바둑이 본격기전의 바로미터가 된다고 보면 된다.



○… 과거엔 참 열심히 두었다

한국기원 공식대국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중간에 점심시간이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이니, 도전기라면 일단 밤9시까지는 갈 생각을 하고 임해야 했다. 거기다가 초읽기가 있으니 실제로는 종료시각은 밤 9시가 될 지 10시가 될지 모른다.

1993년에 벌어진 기성전 도전기가 생각난다. 당시 기성전은 국내 제일의 기전이었다. 그때 조훈현과 이창호가 맞붙어서 11시30분까지 간 적이 있다. 당시 기성전 도전 7번기였는데 4-3으로 이창호가 방어에 성공했다.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시대를 통째로 넘겨주기 시작하던 때여서 정말이지 피터지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흐르는 세월을 막대로 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그 때. 당시에는 드물게 보았던 반집승부가 참으로 자주 나왔다. 늘 반집의 주인은 이창호였다.

그때 세대교체의 순간을 경험했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패자(覇者)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정이 임박한 시각에 기자와 두 대국자만 남은 어색한 공간에서 침묵을 먼저 깬 이는 늘 조훈현이었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자리를 박차던 그의 뒷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 먼저 갈께.”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는 본격기전이 제 맛이었다. 바둑은 조용히 침잠하여 숙고하는 맛이 있는 것이다. 티격태격해서 승자를 가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을까. 15년 전 그날이 속기전의 일환이었다면 과연 필자의 추억 속의 한판이 될 수 있었을까.



●… 제한시간은 갈수록 짧아질 듯

바둑TV가 생겨나면서 바둑TV에서 주최하는 기전이 많다. 길어야 2시간 남짓에서 끝나게 마련되어 있다. 바둑대국이 아니라 바둑방송이기 때문에 대국자보다는 시청자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다. 흔히 축구시간 정도로 마무리가 되어야지, 너무 늘어지면 시청자가 괴로워한다는 것.

사실 ‘번갯불에 콩 구워먹기’라는 핀잔을 들을 수 있지만, 프로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의외로 “짧아서 좋다”는 식이다. 어차피 전력을 기울이는 시합도 아니고 감각에 의존하는 대국이기 때문에 20분도 길다고 푸념하는 기사도 있다. 그러나 전 기전이 이렇게 속기화 되어간다면 경쟁력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바둑의 대중화와 함께 생겨나기 시작한 제한시간은 이렇게 다양하게 실시되지만 길어지는 것은 없다. 역시 프로도 아마추어가 ‘노우’하면 바꿔야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기원 대국일정표를 받아보다 보면 과거에는 없던 주말 대국이 상당히 늘어났다. 또한 ‘더블헤드’도 상당히 늘어났다. 시대의 흐름이다.

중국의 경우는 도전기든 예선이든 대부분 3시간이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세계기전이 3시간인데 세계기전을 차지하려면 그 시간에 익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본이 세계무대에서 힘을 못쓰는 것도 시간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만약 그들도 시간을 일찍이 조정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어엿하게 한국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꼭 길어야만 전통적인 것이란 시각은 좀 아닌 듯하다.



○… 시간으로 인해서 바둑의 정체성은 재확립될 것

바둑을 도(道나) 예(藝)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둑은 스포츠’라는 주장이 별로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제한시간을 단축하는 움직임은 세계적인 공감대로써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본다.

바둑판을 링이라고 생각한다면, 공이 울리고 난 후에 연구하고 고뇌하는 것은 관중이 없을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일 것이다. 의외성을 가져다주는 의미에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속기가 우선시되어, 바둑의 고유한 색채까지 잊어버리지 않을 지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고뇌하는 프로가 아름답다’는 말도 타임머신을 타고서야 들을 수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나치게 속기일변도로 흐르는 지금의 기전은 앞으로 자정(自淨)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추억을 하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정의 목소리는 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바둑의 발전은 덤의 조정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는 시간의 조정을 통해서 정체성이 변화되는 시기가 도래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한국이 요즘 중국에게 추월을 허용하는 것도 시간을 잘 못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은 기보를 남기고 싶다”는 인터뷰는 이제 와서 기대하기 난망한 일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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