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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극장]

우연일까 필연일까?

ㅇㅇㅇ

김종서 작가2009-04-16 14: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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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361극장>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며 퀴즈의 정답을 재치있게 꼬리글에 남겨주시면 김종서 작가가 직접 선정해 소정의 티포인트를 드립니다.




S#1. 우연일까 필연일까?

고성의 권재룡 박사 스토리를 연재하자 타이젬 회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5회로 마감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이야기들이 수집돼 축약하느라 애를 먹었다.
당시 옥탑 방 멤버 사범님들이 다양한 형태로 인사를 보내왔다.

박사의 장녀 권다미 씨는 메일로 장문의 글을 보내왔고, 고 임선근 사범님의 부인께서는 문자를 보냈으며 울산의 박수현, 부산의 이수명 사범님들은 쪽지를 보내주셨다.
그런가 하면 대면하지 못 했어도 꽤 많은 사범님들이 타이젬스페셜 기사 아래 댓글로 지난 추억을 달아주셨다.

그 중에서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편지가 있다.



충남 서산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기남 사범의 필체다.
무려 여섯 장에 달하는 편지 속에 최 사범은 고성시대의 아련한 기억과 바둑 청춘들의 아픔을 절절하게 적어보냈다.

김작가님의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띵해지면서 한동안 혼미해졌습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과거의 영상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지요. 너무 아팠기에 지금은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까마득히 잊혀져갔던 권박사님의 이야기를 타이젬에서 접하고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박사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바둑 보급에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겠죠. 덕분에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고성 옥탑 방에 관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았다.
서산으로 내려와 꼭 한잔 꺾었으면 좋겠다고 필자를 초청했다.

같은 날 서산에서 한 통의 전화가 날아왔다. 최기남 사범과 전혀 연관이 없는 인물, 바로 군 시절 함께 전방의 산악지대를 누비고 다녔던 중대장님이었다.

"틈나면 서산으로 내려 와라. 지금 쭈꾸미 철인데 얼굴 한 번 보자."

왜 하필 서산에서 동시 패션으로 전화와 편지가 온 것일까?
정말 믿을 수 없는 우연이라 필연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달려갔다. 서산으로.



S#2. 아무래도 이상한 봄날

서산가는 길은 추억을 반추하는 시간이었다. 희한하게 30년 전 고성시대와 군 시절이 겹쳐지는 여행이었으니까.
서해대교 휴게소에 들렀는데 더 놀라운 우연 하나가 중복된다.

가수 위일청 씨가 행담도 휴게소 광장에서 결식아동돕기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와 89년에 한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작업을 한 적 있는 동지였다. 20년 만에 부둥켜안고 그 시절의 기억들을 퍼즐 맞추기하며 껄껄 웃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봄날이었다. 자꾸 먼 과거가 부르는 듯한 이 묘한 기분은 무엇일까?


▲ 서산 부시장과 필자.

서산시청 부시장 실에서 중대장님을 만났다. 호쾌한 관상처럼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하는 행정가로 그 지역에서는 소문난 분이다. 필자는 군 시절 모르스 부호를 주고 받는 URC-87 무전기를 등에 메고 항상 저 양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특공통신병이었다.

그러나 야전에서 함께 지낼 때 중대장은 계급으로 윽박지르는 법이 없었다. 늘 지적호기심이 넘쳐서 친구처럼 세상사를 나누곤 했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부대원들이 지금까지 만나고 있으며 이 번 서산 쭈꾸미 행차에도 우르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중이었다.
전우들이야 언제 봐도 보는 얼굴들이니까 살짝 바쁜 척했다.

"취재할 일이 있어 잠깐 딴 곳으로 샐까합니다. 서산에 바둑 열기가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부시장님께서 다각도로 관심 좀 가져 주세요. 시민바둑대회 하나쯤은 있어야 서산 아니겠습니까?"
(타이밍을 잡아 민원 하나를 부드럽게 꽂는 센스^^)



S#3. 서산 명인 바둑도장

생각보다 서산시는 넓었다. 최 사범의 바둑교실을 찾지 못해 꽤나 헤맸다.
마침내 발견한 명인바둑교실.


전화를 하니 최 사범께서 빼꼼 고개를 내민다.

도장으로 들어가 보니 지방 소도시답지 않게 바둑교실이 깔끔했다.


최기남 :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필 자 : 정말 반갑습니다. 타이젬 아이디가 전투신 9단 맞으시죠?
최기남 : 네, 잘 오셨습니다. 권 박사님 기사 정말 고마웠습니다.
필 자 : 무슨 말씀을! 제가 고맙지요.
최기남 : 아이들 수업 끝나고 한 잔 하시죠. 이 지역 바둑 인들이 전부 모일 겁니다.

읔! 술을 전혀 못하는 체질인데 어쩐담?
전우들이 집결하는 서산 간월도 펜션으로 가도 술이요, 여기 있어도 술이라면 그래도 기질이 부드러운 바둑인들 편이 낫겠지.

해가 저물자 과연 몇 분이 찾아오셨다.
타이젬의 부춘산주 9단, 당진의 박재웅 사범, 충남 바둑협회 박종한 감사 등 여섯 분이 타이젬 나그네를 반겨준다.
최기남 사범이 전날 밤 바다로 나가 횃불을 켜고 잡아 올린 낙지볶음과 꽃게 찜으로 환상의 식탁이 만들어졌고 오래도록 바둑 이야기를 나눴다.



S#4. 이런 게임도 있다.

밤이 깊어서야 바둑 인들과 헤어져 간월도로 차를 몰았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지방도를 비췄다.
전우들은 그때까지도 저녁식탁을 치우지 않고 6시간째 술잔을 돌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새벽녘에야 펜션으로 들어갔는데 특공전우들이라 바둑 두는 이는 드물고 그 대신 마인드스포츠라면 이런 식이다.


▲ 화투경마.



S#5. 간월도

잠들 틈도 없이 새벽이 밝았다.
오래 전 야전생활의 거친 본능을 상기하려는 전우들의 코골이를 피해 새벽 바다로 나섰다.


간월도(看月島)는 달을 보는 섬이다. 마침 보름이니 절묘한 타이밍이다.
만조 때 섬이 되고 간조 때 뭍과 하나 되는 예쁜 섬이다.


서울에서 멀지 않으니 타이젬 기우님들께서도 가족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바람쐬기 적합한 여행지로 권해드리고 싶다.

쭈꾸미와 어리굴젓이 일품이다.
내친 김에 간월도 식당이 자랑하는 낙지 연포탕의 식탁 한 컷-



S#6. 바둑9단 노래9단 그림9단 - 도신스님

이튿날 서산의 명찰 서광사에 들렀다.
타이젬 대국실에서 막강한 공력을 자랑하는 도신스님9단이 주지를 맡고 있는 사찰이다.


▲ 서광사.


도신스님은 걸레스님 중광의 제자로서 독특한 화풍을 지닌 화가이며, 노래로 포교하는 가수이자 거의 입신의 경지에 다다른 바둑 실력을 보유한 인물.

도신 : 어이구, 어서 오세요. 잘 찾아주셨습니다.
필자 : 반갑습니다. 전설로만 듣던 도신스님이 여기 계셨군요?
도신 : 허허 전설은 무슨 전설입니까?
필자 : 스님의 방을 엿보고 싶은데요?
도신 : 그러시죠.

도신스님은 마음이 활짝 열려있는 분. 대사찰인데도 나그네의 흡연충동을 헤아려 넌지시 기회를 제공해주고 빙그레 웃는다. 자칫 엄격하게 느껴지는 계율을 앞세우기보다 대중들에게 보다 편안하게 다가서려는 스타일. 그래서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 연구실장직도 맡고 있다.

염치불구하고 노래를 청하자 도신스님 주저하지 않고 기타를 잡는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약간 탁성이지만 심금을 긁는 호소력이 느껴진다. 멋진 분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바둑에도 조예가 깊어 타이젬에서 짱짱한 9단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능력의 한계를 측량하기 어렵다.



도신스님은 포교를 위해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할 대상을 어린이로 생각한다.
그래서 서광사에 유치원을 두고 전국 최고 수준의 바둑교실까지 마련했다.

사찰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도장의 사범이 바로 부춘산주9단이다.

주말 서산기행을 다녀온 후 마음이 아침바다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느릿하고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가 아직도 이명으로 들리는 듯하다.
이 번 주 토요일(4월 18일) 도신스님의 서광사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찾아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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