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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이겨있는데 던질 필요까지야…'

ㅋㅋ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5-07 10: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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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는 중도포기라는 아름다운 규칙이 있어

바둑이 여타 스포츠와 다른 점이라면 중도에 게임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야구의 콜드게임과 같은 것인데, 이는 패자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게임이라는 뜻이다.

흔히 ‘돌을 던질 시기를 놓쳤다’거나 ‘이제는 돌을 거둘 시기’라는 표현들이 있다. ‘돌을 던진다’는 말은 일본말 도료우(投了)를 의역해서 쓰는 말. 따라서 바둑돌을 던진다는 오해도 불러일으키면서, 어감이 다소 거친 듯해서 요즘에는 돌을 거둔다는 표현이 점잖아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돌은 언제 거두어야 제 멋일까? 돌은 언제 던져야 제대로 던지는 것일까? 바둑은 예도의 측면이 강하며 찌질하게(?) 계속 들고 있는 것도 실례겠지만, 지금은 승부 측면이 강하므로 일단 돌을 안 던지는 것이 그리 욕을 듣는 경우는 아니다. 언제나 그 중간선을 찾기란 쉽지 않다. 프로들에게는 돌을 던져도 격조 있게 던져야 한다.

●…프로는 돌을 던질 자유가 없다?

과거 2001년 후지쯔배 세계기전에서 ‘16집반승’이란 기록적인 기록이 기보로 남아있다. 필자가 목도한 세계대회 가운데 가장 큰 격차의 승부였다.

최명훈이 생애 처음으로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갈 때 대만의 저우쥔쉰과 4강전에서 만나 대승을 거둔 바 있다. 사실 그때는 저우쥔쉰이 4강까지 올라온 것도 엄청 대견하여, 최명훈에게 한 수 접히고 배운다는 시각이어서 이해는 했다. 그래도 ‘16집반승’은 너무 하다.

프로들은 정해둔 규칙은 없지만 대개 역전이 불가하다고 판명나면 돌을 거둔다. 집수로 굳이 얘기하긴 뭣하지만 5집 언저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과거엔 ‘반면10집’이란 것이 나름대로의 돌을 던지는 기준이 된 적이 있다.

10집 이상 격차가 나면 당연히 돌을 거둔다. 바둑 두는 재미보다는 어차피 승부가 중요한 프로에게는 1집을 지나 만방을 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형세가 불리하다면 일치감치 승부를 걸어보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돌을 거둔다.

그러나 기사에 따라서는 아주 미세한차이인데도 중간에 돌을 거두기도 한다. 자신의 상상력으로는 아무리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계산해 봐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형세라는 판단이 되면 치사하게(?) 손님실수를 기다리지 않고 깨끗이 항복하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일본>한국>중국 순으로 돌을 잘 던지는 것 같다. 아마도 바둑을 예도로 여기는 일본이 가장 돌을 쉬이 던지는 것 같다. 또한 일찍부터 스포츠의 한 축으로 여기는 중국의 경우는 가꾸로 돌을 잘 안 던지는 편이다.

수 삼 년 전 삼성화재배에서 중국의 신예 천야오가 서봉수에게 시간패를 당한 적이 있다. 돌을 거두어야 하는 바둑을 안타깝게도 미적대다가(?) 그만 시간패를 당하고 마는 꼴불견을 연출한 것이다. 타이젬에서도 중국기사들은 여간해서 돌을 거두지 않는 편임을 유저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빨리 던지는 것이나 안 던지는 것이나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중간에 싹싹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팬들을 위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음이다.

특히 요즘바둑은 속기전 추세이므로 종반 초읽기 과정에서 상대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다반사이다. 따라서 요즘 바둑은 누가 좋은 내용을 구사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좋지 않은 수를 적게 두느냐로 승부가 갈라진다고 보면, 형세가 조금 불리하다고 해서 너무 성급하게 돌을 거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돌을 던질 자유가 있다.

10년 전 만해도 해설을 듣다 보면 ‘미세하다’ 또는 ‘1~2집 두텁다’라는 식으로 형세 판정을 내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형세판단이 보다 정확해진 까닭인지 ‘흑이 반집 두텁다’라는 과감한 판단이 난무한다. 그리고 정확하다. 바둑이 다 안 끝났는데도 그런 계산이 나오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주 미세한 반집승부인데도 과감하게 돌을 거두는 ‘매너 좋은’ 기사들이 있다. 필자가 목도한 가장 경이적인 사건은 1993년 동양증권배 결승전으로 조치훈과 이창호의 대결이었다.

당시 이창호는 3-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조치훈으로서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막대한 치욕을 당한 셈. 그러나 한판 한판의 줄다리기는 3판 모두 반집 승부 세 번으로 끝난 셈이다. 당시만 해도 반집승부에서는 달인이던 이창호의 실력이 여실히 증명되었던 까닭이다.

제주에서 벌어진 1국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조치훈이 반집을 이겨있었으나, 막판에 욕심을 부려서 이창호의 역공을 받아 불계패했다. 전혀 돌을 거둘 바둑은 사실 아니었다. 역전을 당했다고 해도 아직은 100여수밖에 진행이 안 되어서 충분히 둘 수 있는 상황. 대 기사의 아량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뜻밖에 돌을 거두고 말았다.

조치훈은 1국에 앞서 조훈현과의 만남에서 “이창호를 세게 다루지 않았다.”며 조훈현에게 “선배로서 후학에게 아직은 보여줄 것이 더 많다”는 요지로 훈계(?)를 하였다고. 그러나 그 또한 이창호에게 패한 다음 “오늘의 천재에게 어제의 천재가 패했다.”며 세계무대에서 이창호시대가 도래했음을 만천하에 고백했다.


●…너무 잘 던져도 문제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해외바둑시장 개척에 나선 김명완. 그는 바둑가에서는 ‘얌전이’로 불리는 비교적 소심한 사내였다. 그도 이제는 30줄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어린 티가 난다.

1998년과 1999년 김명완은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두 번 모두 결승에 진출했으나 목진석 김만수에게 거푸 패하며 연달아 준우승에 그치는 불운을 맛보았다. 그가 98년 결승전에서 김만수와 대국을 하다 종반까지 무척이나 미세한 바둑이었는데, 대뜸 돌을 거두는 것이었다.

복기 과정에 돌아온 대답은 “아무래도 반집은 제가 부족할 것 같아요.”라는 것이었다. 사실 중요한 바둑이고 좀 더 두었다고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내용이었는데 경솔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필자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듬해 결승전에서는 ‘백7집반패’라는 어마어마한 격차인데도 돌을 거두지 않은 적도 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이세돌이 주인공인데 2002년 한중 신인왕전에서 중국의 펑췐의 대국이었다. 당시 이세돌은 불계패를 당해 조그마한 뉴스가 되었다. 삼청각에서 열린 한중신인왕전 제2국에서 이세돌은 106수만에 의문의 투석을 한 것.

1국에서 기상천외의 묘수를 등장시키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제2국에서 이세돌은 초반 발 빠른 압박 작전으로 국면의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그러나 중앙 접전에서 다소 실패한 이후 그대로 좋은 바둑을 의외로 싹싹하게 돌을 거두어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국후 소감에서 그는 “중반 뼈아픈 급소를 당해 중앙 말이 한집도 없는 곤마가 되었다. 이후 흑은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게 되므로 어차피 승부가 어렵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승리를 거둔 펑첸은 “시종일관 자신이 밀리는 국면으로 이세돌이 돌을 던진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어쨌든 고맙다.”며 정반대의 소감을 밝혔다.


●…바둑은 끝까지 두는 것이여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다. 형세판단의 오류, 형세판단의 무시라고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일본은 예도를 성실히 지키는 쪽이지만, 사카다 에이오도 한때 20집 져 있는데도 끝까지 둔 적이 있고, 고바야시 고이치의 기보도 15집반패도 기록이 있다. 그들은 역시 승부에 강한 타입이라서 특이한 케이스이리라.

서능욱은 바둑 두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그의 기보는 두 자리 숫자의 승패가 간혹 그려진다. 그는 끝까지 두기를 원한다. 진 사실이 억울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서능욱은 상대가 빨리 던지는 것도 그리 원하지 않는 듯하다.

그는 비교적 속기이면서도 바둑내용상으로는 평균 300수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324수끝 백 8집반’ 이런 식이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 탓에 지더라도 씩씩하게 진다.

필자는 한때 ‘바둑연감’이라는 바둑서적을 만들 때가 있었는데, 바둑알맹이를 교정보는 것이 난해한 일이었다. 바둑 좋아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바둑교정만 보고 있노라면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최종수순까지 가야만 일이 끝나니 참으로 고된 사역이었다.

당시 유독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프로가 바로 서능욱의 기보이다. 기보는 놓다보면 여기서는 이곳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나 신출귀몰한 서능욱의 바둑에서는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패싸움은 또 왜 그리 좋아하는지 ‘패능욱’이라는 닉네임처럼 온통 패가 쌓여서 기록지가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으며, 수수(數手)가 왜 이렇게나 긴 지…. 다른 프로들의 기보보다 2배,3배 힘든 교정을 한 기억이 있다.


●…너무 멋지게 돌을 던지려다 보니

너무 돌을 멋지게 던진 경우가 생각해보니 또 있다. 1999년 이영신과 박지은이 벌인 여류명인전 결승전이었다. 제1회 대회였는데 1:1을 맞이하여 제3국이 운명의 한판이었다. 다 두고서 계가를 하기 직전. 마지막 반패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반면으론 ‘왕언니’ 이영신의 승리였는데 나중 추격을 허용해서 반집승부의 양상이 되었고 반패싸움의 승자가 이기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육안으로 보면 이영신이 패싸움의 승자가 될 것임은 자명했다. 이영신은 반패도 자신이 팻감이 많아 훨씬 유리한데도 그냥 양보하고 만다. 그래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 그런데 반집 승부이고 그 패싸움이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던 박지은은 덥석 이어갔다.

‘언니 고마워요 땡큐!’

그래서 계가를 하고 보니 박지은이 반집을 이기고 여류명인에 오르고 만 것이다. 나중에서야 이영신이 후회하고 말았지만 그런 쓸데없는 만용은 신산(神算) 이창호가 아니면 가히 흉내 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영신은 1집 반을 이기고 있으니 1집을 그냥 양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고두고 이영신으로서는 타이틀 홀더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이세돌의 형인 이상훈과 한종진 간의 2000년 신인왕전 결승 2국으로 명지대학교에서 벌어진 대국이다. 이미 1승을 먼저 거두고 있는 이상훈으로서는 제2국마저 이기면 신인왕에 등극하게 된다. 따라서 한종진이 열심히 둘 것은 자명한 이치. 그리고 한종진이 2국을 압도하고 제3국으로 가는 분위기다.

그런데 한종진은 그 바둑을 불계패했다. 아직 반면 10집 정도를 이기고 있었는데, 패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종진은 팻감을 쓰고 나서 본 패를 때리지 않고 그 옆에 놓인 곁가지 패를 때리는 것이 아닌가.

‘어, 이게 아닌데?’

그러나 이미 떠난 손길을 어이 원망하며 한종진은 자신의 경솔을 책망하며 그만 돌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항서를 받은 이상훈은 의아한 듯

‘이겼는데 왜 던지지?’

비로소 본 패는 상대에게 넘어갔지만 그래도 반면 10집은 남아있기 때문에 한종진이 이긴 바둑이라는 것이다. 한종진은 곁가지 패를 때린 것도 후회하며 돌을 일찍 거둔 것도 후회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1수만에 불계패?

1970년대 초 조훈현이 승단대회에서 K4단과 만났다. 승단대회는 대국료가 나오지 않아 4~5시간을 대국을 위해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루를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프로라면 싫어지기 마련. 게다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조훈현이 상대라면 싸워서 뻔히 질 가능성이 크니 더더욱 싫었을 게다.

당시에는 승단대회 때 단(段)차이가 많이 날 때는 치수가 2점도 되었다. 이를테면 조훈현이 당시에 7단쯤 되었을 때의 일이니 4단과는 2점 치수였다. 같은 프로로서 두 점을 놓는 것은 규정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으로 치자면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했다. 하긴 당시에도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K4단은 오전 10시에 도착하여 규정대로 2점을 놓고는 조훈현이 다음 한 수를 두자 K4단이 잠시 자리를 뜬다. 처음엔 아침 이른 시간이나 화장실을 갈 수도 있겠거니 하여, 조훈현은 옆 대국을 관전하는 등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점점 제한시간만 흘러가는데도 상대가 나타나지 않자 난감한 것은 조훈현.

혼자서 식사를 한 조훈현은 오후가 되자 K4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네. 일이 있어 그냥 가네.”

일단 한 수만 놓으면 기권에 의한 징계는 면할 수 있으니 K4단은 편법을 쓴 것이다. 이래서 이 한판은 공식대국 1수만에 불계패한 바둑이 된다. 비록 기보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최단명국이다.

‘이왕 기권하려면 일찍 전화나 해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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