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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戰神·神算·일지매 그리고 잡초

ㅋㅋ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6-04 11: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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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통칭은 '사범님'

그 사람의 실제 이미지를 실물보다 더 강렬하게 오버랩 시켜준다는 의미에서 ‘제2의 이름'이라고 할 별명. 그들만의 세계에서 불러지는 별명이라고 해도 좋고 별칭이라고 해도 좋은 것들을 망라해본다.

흔히 타이젬에서도 7단 이상을 달고 있으면 ‘사범님’이라고 불린다. 뭇 하수님들이 고수님들을 챙겨서 부르는 말이라고 사료되지만, 필자는 사범님이란 단어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거부감이라기보다 ‘황송한 맘’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일단 프로를 총칭하는 말이 ‘사범’이다. 태권도나 유도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유단자를 부르듯 프로기사는 사범으로 통한다. 바둑도 기도(棋道)라고 부르는 것임을 감안하면 태권도나 유도 등 도(道)자가 들어가는 종목의 공통된 별칭이 사범이다.

여타 스포츠맨들에겐 그냥 ‘선수'라 부르고, 프로골퍼나 프로볼러에겐 ’김프로' ‘이프로'로 부르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예우라 하겠다. 하기야 사범(師範)이란 말은 스승 사(師)에다 모범 범(範) 이니 뜻을 풀이하면 극도의 존칭인 셈.

간혹 프로를 호칭으로서 ‘조훈현 9단님’처럼 단위를 부르는 경우를 간혹 목도하게 되는데, 물론 예의에 벗어난 호칭은 아니지만 ‘조훈현 사범님’ 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좀 더 부드럽고 바둑적이다.

프로의 일반적인 호칭은 이름 뒤에다 ‘사범'이라고 붙여주는 것이지만, 타이틀 보유자가 될 경우엔 이름 뒤에다 그 사람이 보유한 타이틀을 불러주는 것이 상례다. 이를테면 조훈현 9단이 국수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면 ‘조국수‘ 명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조명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훈현 9단에게 진짜로 ‘조사범님’이라고 부르면 약간 썰렁해진다.


●…國手는 누구나 갖고 싶은 호칭

바둑가에서는 조훈현은 ‘조국수.’ 이창호은 ‘이국수(國手)’로 불린다. 지금은 국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오랜 세월동안 국수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전관예우 차원이다. 같은 의미로 김인이나 윤기현 하찬석 등 과거에 전통의 타이틀전인 국수에 올랐던 프로들도 사실은 전부 ‘김국수’ ‘윤국수’ ‘하국수’로 불린다.

과거부터 그렇게 불렀던 호칭이라 쉽사리 떼어놓지 못한 탓이다. 과거엔 국수를 땄던 김인에게 누구나 ‘김국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가 타이틀을 잃었다고 해서 갑자기 ‘김사범’이라고 격하(?)시키기가 뭣해서 계속 불러주었고 그것이 오늘날 그들의 별칭이 되어버린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돌아가신 조남철도 ‘조국수님’이 되어야 하지만, 좀 더 높혀 부른다는 의미로 바둑가에서는 ‘조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조훈현이 ‘조국수’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수라는 타이틀명은 상당히 값 나가고 전통 있는 것이어서 프로라면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이름. 따라서 바둑가에서는 꼭 프로가 아니라도 바둑가의 친구들을 일컬을 때 ‘국수’라는 어마어마한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필자 같은 하수에게도 ‘진국수’라고 불러주는 것이 그것인데, 그 호칭을 듣고 기분 나쁜 바둑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돌아가신 패왕전 관전기자였던 박재삼 시인을 또래 프로들은 ‘박국수’라고 불렀고, 현직에 있는 중앙일보 전문위원인 박치문도 탁월한 바둑실력으로 인해 ‘박국수’로 불린다. 사실 여담이지만, 돌아가신 김수영 8단은 필자에게 ‘진9단’이라고 명명했다. 바둑보다도 술 실력이 9단이란 뜻이었다.


●…전관예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

그러나 불행히도 타이틀을 딴 적이 있으면서도 그 타이틀 명을 보유한 호칭을 평생 못 단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수년전 타계한 ‘부산바둑의 대부’ 강철민은 지금은 사라진 최고위 타이틀을 2차례나 따냈었지만 그냥 ‘강사범’으로 불렸다. 같은 전관예우라면 ‘강최고위'라고 불러줘야 하지만, 일단 이름이 길어지고 딱딱해지는 탓도 있지 않았을까.

또 과거에 타이틀을 땄지만 이름 뒤에 호칭이 없거나 국수가 아닌 다른 호칭을 단 경우도 있다. 김희중․ 서봉수․ 유창혁이 그들이다.

은퇴기사 김희중은 조훈현 서봉수보다 윗길로 76년 78년 기왕전 타이틀을 따내 엄연한 타이틀홀더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에게 ‘김기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왕’자(字)가 들어가서 인간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유창혁도 좀 애매한 케이스이다. 유창혁은 세계타이틀을 6회나 때냈던 거장중의 한명이지만 지금 마땅한 호칭이 없다. 왕위 기성 등 당대의 최고타이틀을 두루 섭렵했으나 지금은 마땅한 호칭이 없다, ‘유왕위’로 조금 불리긴 했지만 그도 슬그머니 사라져 그냥 ‘유사범’으로 불린다. 이 사실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이다.

한편 서봉수는 국수를 분명히 딴 적이 있지만 국수를 거부하고 명인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지난 72년 혜성처럼 등장해 거함 조남철을 물리치고 불과 입단 2년 만에 타이틀홀더가 되면서부터 ‘서명인‘이라고 불렸다.

‘서명인’ 하니까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프로들의 세계에서는 호칭을 줄여서 부르는 면이 있다. 이를테면 서명인의 경우 길어서 짧게 앞의 두 글자만 떼내어서 ‘서명’으로 부른다는 것.

어떤 확실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프로들은 일상인들과는 다른 패턴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좀 거추장스럽고 신경을 써야하는 짓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 좀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재치가 번뜩인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간략히 부르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 있다. 김일환의 경우 또래기사들이 부를 땐 ‘김일’, 김수장의 경우는 ‘김수’로 불렸다.

그런데 그렇게 축약을 해서 부르면 좀 이상한 호칭도 있다. 광주출신 기사 공병주는 ‘공병’, 이계훈은 ‘이계’, 장수영은 ‘장수’, 장두진은 ‘장뚜’.


●…조훈현․서봉수는 별명공화국1

서봉수를 떠올리면 누구나 ‘된장바둑’ ‘순국산’ ‘토종’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그런데 정작 서봉수는 ‘된장’이 아니라 ‘고추장’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국산이라도 퍽퍽한 된장이 아니라 톡 쏘는 매운 고추장이란 얘기다. 과연 이 얘길 듣고 그의 주장이 틀리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잡초류-. 한때 서봉수는 기자들에게 자신은 잡초가 아니니 절대 그렇게 ‘미천하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강력한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은 서봉수도 언론의 속성을 이해하고 있으나, 40대 초만 해도 서봉수는 ‘잡초 운운’하는 기자를 꼭 전화로 불러 항의해야 직성이 풀렸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들풀’이라고 온화하게 부르게 되었다. 잡초나 들풀이나 어차피 조삼모사(朝三暮四)이리라.

그 외 서봉수에게는 여하튼 ‘야성’ ‘들꽃’ 등 따뜻한 온실과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다. ‘야전사령관’ ‘독종’ ‘특무상사’ 생명력 있는 별명은 온통 그의 것이었다.

75년인가, 서봉수가 명인을 허리춤에 두르고 있고 조훈현이 일본서 돌아와 한국바둑을 한 구석 한 구석 섭렵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명인전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 당시를 스케치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가장 멋진 비유이리라.

“엘리트 황태자(조훈현을 지칭) 코스를 밟은 소위와 사선을 넘나들며 실전으로 잔뼈가 굵은 특무상사와의 한판 승부”


●…조훈현․서봉수는 별명공화국2

앞서 소개한 서봉수의 별명이 주로 야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조훈현은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샤프한 이미지가 주로 쓰인다. 요즘 최고의 인기별명은 전신(戰神)이다. 다분히 이창호의 신산(神算)과 호응하는 신의 영역에 들어선 두 사람을 나타내는 적절한 별명이다.

초창기 조훈현의 별명은 ‘제비.’ 아직도 많은 이들은 ‘조제비’라는 닉네임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은 ‘바둑황제’ 조훈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바둑가에서는 90년대 이후 일체 언급하지 않는 별명이다.

조훈현에게 ‘조제비’라는 별명이 무척 어울리기는 하다. 그는 이른바 ‘속력행마’를 장기로 삼는 사람이다. (물론 ‘속력행마'도 조훈현의 별명이다) 따라서 발 빠르게 걸치고 손 빼고 달아나는 일련의 스피드는 조훈현 바둑의 특질이기때문.

1980년대 초 조훈현의 취미는 등산이었다. 하루는 같이 산행을 동행한 한 문인(文人)이 워낙 조훈현의 산 타기가 거침없어 마치 물위를 스칠 듯이 비행하는 제비의 폼과 같다고 하여 “어이, 제비 같군,” 하고 비유한 것이 별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1980년대는 조훈현 일인을 위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박치문 씨가 조훈현 바둑의 특질을 함축하는 의미로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으로 표현하여 한동안 바둑인들의 공감을 사서 조훈현의 이름 석 자 앞에 늘 따라다니곤 했다. 조훈현은 ‘흔들기의 달인’ ‘황태자’ ‘황제’ 등도 골고루 쓰인다.

조훈현의 바둑은 언제나 치열하여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는 지독한 타입이다. 수가 보이면 수를 내야하고 지키기보다는 뛰어들기, 연결보다는 절단, 화해보다는 분란을 즐기는 타입이다. 한마디로 ‘예스' 보다는 ‘노우' 쪽이다. 따라서 신문지상의 관전기나 TV해설을 보노라면 조훈현의 바둑에서 흔들기라는 표현은 줄곧 나온다.

‘흔들기’라는 표현에는 조훈현의 강함과 기풍이 확실히 담겨있는데, 좋은 말로 ‘승부수'라든지 ‘강타'라든지 ‘난전'이라든지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으련만 꼭 조훈현에게는 흔들기다. ‘흔든다는 표현에는 조훈현은 강자이며 상대를 올려놓고 흔들어댄다는 뜻이니 상대는 왜소하다는 의미가 들어간다.


●…이창호는 신산

이창호는 별명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일단 기록으로 어린나이에 타이틀을 따내기 시작하니 ‘기록제조기’라는 별명이 있다. 두텁고 인내심을 가진 바둑이라 하여 ‘기다림의 달인’이란 별명도 있다.

또 이창호가 끝내기가 강하고 형세판단이 뛰어나다는 뜻으로 ‘신산(神算)’이란 별명을 자주 쓴다. ‘신의 계산 능력’이란 뜻의 ‘신산’은 개인적으로 이창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기도 하다.

500년 일본 본인방(本因坊) 역사를 돌이켜보면 유독 ‘산(算)’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걸물이 많다. 산지(算知) 산사(算砂) 등이 그들인데, 신산(神算)도 그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터.

이창호의 별명 중 ‘돌부처’ ‘강태공’ 등도 앞서 소개했던 기다리는 바둑이란 뜻의 애칭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창호가 싫어하는 별칭이다. 나이에 비해서 좀 늙고 노회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호불호(好不好)와 상관없이 주위에서 볼 때 적절한 별명임은 사실.


●…유창혁은 일지매

유창혁은 그 유명한 ‘일지매'가 고유 브랜드. 유창혁은 가느다란 몸매에 파괴력 있는 공격력을 가미하여 중국고전에 나오는 남장여자 일지매와 꼭 흡사하다. 이제는 40대 중반이며 몸도 제법 불었지만 유창혁은 여전히 팬들에게는 일지매로 남아있다.

유창혁은 또 ‘세계최고의 공격수’라는 닉네임도 동시에 갖고 있다. 88년 대왕전에서 철통같던 조훈현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져 3:1로 ‘조서’ 이후의 첫 타이틀홀더가 되었던 유창혁은 그때부터 가공할 공격력이 눈에 띄어 호방한 대마 때려잡기 바둑을 잘 구사한다.

그의 공격력은 세계무대까지 명성이 자자한데, 상대는 웬만큼 유리한 바둑이라도 혹시 미생마가 떠있으면 언제나 노심초사하여 바둑을 그르치는 일이 허다하다. 꼭 공격으로 때려잡지 않아도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상대는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金竹峰․ 꾀중이․ 방비․ 핸섬보이․ 공부벌레…

조남철에서 조훈현으로 가는 길목에 큰 버팀목이었던 김인은 워낙 호인이어서 함부로 별명을 갖다 대길 꺼려하여 사실 한국에서 부르는 별명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일본 유학시절 일본저널은 그를 ‘금(金)호랑이’라고 불렀다. 다분히 이름(金寅)에서 따온 별칭이리라.

‘금죽봉(金竹峰)’은 김인(金寅)과 오다케히데오(大竹英雄) 그리고 린하이펑(林海峰)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지어낸 조어(造語). 역시 김인이 일본 유학시절 일본바둑저널은 한 중 일의(당시는 대만을 중국이라 칭했을 때임) 기대주라고 그들 셋을 부르며 ‘금죽봉’이라 불렀다. 마치 지금으로 치면 ‘4인방’과 같은 단체별명이라 하겠다.

하찬석은 과거 국수를 차지한 대기사의 반열에 들어가 있다. 그는 80년대초 조훈현의 아성에 도전하여 신라이벌 구도를 잠시 짜낸다. 그러나 번번이 조훈현의 벽에 막히게 되자 어느 날 홀연히 고향 합천으로 낙향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별명은 ‘합천도사’로 명명된다. ‘도사’란 아직 힘이 있어도 속세와 담을 쌓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국수’ 하찬석이 ‘떠오르는 태양’ 조훈현에게 매번 고배를 들자 홧김에 고향 합천으로 낙향했다는 소문은 상당히 그럴싸했다. 도전기를 치르던 도중 아직 승부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 도전기를 포기할 정도. 당시 바둑가는 조훈현이 넘지 못할 벽이라고 느끼자 하찬석이 승부에 회의를 느껴 홀연히 떠났다고 믿었다.

노장 고재희는 ‘독설가.’ 지금은 서봉수가 독설가의 계보를 잇지만 서봉수는 자유분방하게 대화하는 타입이고 고재희는 날카롭게 찔러가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대쪽 타입이다. 고재희는 언제 어떤 분위기에서도 하고픈 말은 분명히 하는 타입인데, 상대의 어법이 논리에 맞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정정보도'가 나가는 날카로운 예지(銳智)를 지닌 기사다.

은퇴기사 김희중의 별명은 ‘꾀중이’를 보유하고 있다. 말 그대로 꾀가 많다는 뜻이다. 그는 과거 많은 사업을 하였는데 그 ‘꾀’를 사용하고 있는데, 프로 시절에도 묘수, 기수(奇手) 등 재치 넘치는 바둑을 구사하여 그런 별명을 얻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그에게는 부르기 뭣한 별명이지만.

장수영은 이름에서 본 딴 ‘장비’가 닉네임. 사실 장수영의 기풍은 오히려 진중하여 장비의 터프함과는 좀 차별이 되지만 이름과 함께 몸집이 육중한 장수영에게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 하겠다.

또 같은 ‘도전5강’의 하나인 백성호는 50대의 나이와 입신에는 걸맞지 않게 시리 ‘핸섬보이.’ 역시 그의 외모를 겨냥한 별명인데, 그는 한때 모 제과회사의 모델로 활동한 바 있을 만큼 잘생긴 용모를 자랑한다. 백성호는 호남이기보다는 미소년 같은 귀공자 타입이다. 한마디로 ‘잘 생긴’ 왕자풍이다.

양재호는 ‘공부벌레’다. 그는 조훈현 서봉수의 대를 이을 재목감으로 꼽혔지만 실상은 후배그룹에 밀려서 정상까지 뻗지는 못했다. 그는 두꺼운 검은 테 안경에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로 늘 반상을 쳐다보는 타입인데,(지금은 금속테 안경이다) 말수도 적고 가느다란 몸집에 영락없는 모범생 타입. 그러나 외유내강이라고, 행동거지가 결단력 있고 바둑도 끈질김의 대명사로 꼽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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