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바둑雜學]

사석? 모자라면 갖고 오지 뭐?

ㅋㅋ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6-22 15:31:09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알까기만 있나, 알치기도 있지!

"몇 수까지 보세요?"

아직까지 프로기사를 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프로를 만나게 되면 어김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정답은 수읽기가 한 길로 주르륵 읽히는 것이라면 100수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수읽기의 회로가 끊어지면 단 한수, 단수도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프로도 하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프로를 무슨 ‘귀신’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 지극히 인간적인 얘기가 있다. 60년대 이야기 하나를 하고자 한다. 수년전 작고한 고광락 3단과 K초단의 대국이었다. 이니셜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서 K는 해괴한 짓을 했음이 틀림없다. 해괴한 승부조작사건에 휘말려서 제명을 당한 케이스.

엎치락뒤치락하던 바둑이 어느새 종반에 가까워졌는데 반면을 보니 K는 자신이 반집을 지게 된 상황을 직감했다. 프로들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면 계가를 해보고 반집을 이겼는지 졌는지 정도는 알 수 있는 귀신들이다. 더욱이 당시에는 제한시간도 많아서 충분히 계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승패야 병가지상사라고는 하지만, 반집을 지려고 생각하니 몹시 억울했던지 K는 계가를 하지 않고 미적 미적거리기만 한다. 뭐, 항상 승패가 뚜렷해지는 시점이 되면 흔한 광경이다. 승부의 최소단위까지 쫒아왔건만 그 아쉬운 맘이야….

결정이 선 듯 K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화장실을 가는 듯, 급하게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어디 열을 식히러 가는 것이겠지.'

한번 이겨보고자 했던 욕심이 과했던지 K는 밖으로 슬쩍 나가더니 그만 다른 돌 통에 있는 돌을 하나 슬그머니 '실례' 해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실례해온 돌을 어디다 쓰려고 하는가?

'어 어 어, 안되는데….'

그 실례해 온 돌을 계가 과정에서 써먹을 요량이었다. '쿵덕쿵덕' 뛰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계가를 하자 당연히 K의 반 집 승. 그러나 이 바둑을 프로의 대국이요 구경꾼도 프로인 상황이다. 반 집 승을 거두자 이에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은 고광락.

'아니, 계가가 이상한데…. 분명히 내가 이긴 반집인데….'

그래서 고광락은 K에게 복기를 요구했고 주변에 동료기사들이 무슨 불구경난 것처럼 몰려든 가운데 복기를 해 본 결과 고광락이 반집을 이긴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승부는 번복되었다.

그러나 판정 번복은 가끔씩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반칙이 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실례'가 그 과정에서 탄로나자 K는 바둑계에서 영구히 추방되었다. 어쩌면 스스로 그만 두었을 지도 모른다.


●…에이, 조금만 슬쩍하지

알치기 하니까 생각나는 사건이 또 하나 있다. 입단대회에서 필자가 직접 목도 한 사건이다. 시절은 1990년대 초반. 지금처럼 어린 여류프로들이 금방 나서기 시작할 참이고 김혜순, 김영, 노상희 등 기라성 같은 여류아마기사들도 입단의 꿈을 부풀리는 그런 시절이었다.

문제의 장면은 지금은 어엿한 애 엄마가 된 이정원 2단이 당시 30대 주부기사 모 아마5단과 입단대회 2차 결승. 바둑은 이정원이 엄청 이겨 놓았다. 필자가 보기에도 백이 거꾸로 덤을 내주고도 남음이 잇는 원사이드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 후반부에 돌입하자, 갑자기 상대방의 사석이 좀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하긴 워낙 난타전이어서 죽은 돌과 산 돌이 구별이 안 가는 정도였기는 하지만 '꼬마' 이정원은 별 의심 없이 그대로 계가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신이 많이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오히려 5집을 남긴 것. 아마정상급 여류기사에게 안팎으로 10여 집이나 계가가 틀린다는 것은 상식밖에 일이다.

이때 스승인 권갑룡이 의심의 눈초리를 발동, 상대에게 복기를 요구하여 이정원은 자신의 판단대로 백을 들고 반면 6집 정도를 이길 수 있었다. 상대방은 "왜 이렇게 되었지?"하면서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계가부정의 진실은 밝히지 못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 필자는 그 과정에서 진실을 알고 있다. 한 관전객에게서 '알치기(?)의 진실'을 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현행범도 아니었고 상대를 의심만 할 뿐 증거가 없는 것이기에 큰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착륙의 반복은 과거나 지금이나

95년 동양증권배 때의 이야기. 일본의 중견 야마시로히로시(山城宏)와 이창호 가 만났다.

대국에 열중하던 야마시로가 착수를 하더니 '이게 아니다' 싶었던지 '이륙'을 하는 것이 아닌가. 20세 이창호는 송아지 눈 깜박거리듯 어안이 벙벙했고, 반면 야마시로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눈치를 채고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그 순간이 문제다. 야마시로의 입장에서는 '앗, 내가 실수를 했네.' 하면서 스스로 반칙패를 선언하면 좋고, 또 이창호의 입장에서는 '상관하지 말고 두시라'고 하면 아름다운 풍경. 그러나 돌을 놓았다가 들어낸 사람도 일종의 무르기인데, 시침을 떼고 앉아 있고, 그 상대방도 '아, 이 사람 놨다 뗐어요.'라고 심판을 부르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참으로 안 좋다.

결국 이창호는 그 답게(?)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국을 속개했고, 오히려 겸염쩍은 야마시로는 돌을 거둘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끝까지 둬서 5집반패를 당했다.


●…이창호도 그랬어요~

황소보다도 신중한 이창호도 과거에 소위 '낚시질'이라고 하는 '착륙 후 이륙'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프로씨름이 생기기 전 김성률 장사가 있었다. 그 김성률 장사의 형으로 김판율 2단이 있었다. 김판율과 이창호와의 한판 승부 때 일이다.

2단 시절의 이창호는 초등학교 6학년 또는 중학교 1학년쯤 되는 아주 꼬맹이였다. 그 이창호도 그때는 못 말리는 속기파였기 때문에 손이 빨리 나가는 버릇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대국도중 김판율은 이의제기를 했고 이창호는 눈물을 머금고 그 한판을 접은 적이 있다. 그때 이창호는 알아 차렸을 것이다. 기량만 가지고 세계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님을.


●…운영자 불러줘!

프로바둑은 어디까지나 승부이지만, 친한 사이의 기사가 만나게 되면 괜한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가끔은 그러다가 진짜로 감정이 격해져서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다들 사석에서는 그렇게 친할 수 없는 사이이지만 대국 중에 사소한 감정 때문에 명국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20년 전쯤 됐을까. 홍종현과 K8단(당시)의 대국은 바둑역사상 가장 긴 바둑으로 꼽힌다. 다만 공식적으로 헤아려 보지 않았으므로 수수(手數)야 기록하지 못했지만 관전객들의 말을 빌면 400수는 넘지 않았을까 한다.

좋은 바둑을 역전 당한 K씨는 얼토당토않은 자신의 실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약 올리려고 상대방이 진작 돌을 거두었어야 할 바둑을 안 거두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심통이 났을까? 그런데 공배가 다 차도록 끝까지 둔 다음 그것도 모자라서(?) 상대의 집 속에 계속 '자살'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소싯적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순간에도 타이젬 대국실에서는 끊임없이 운영자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날고 기는 프로가 비록 아무도 안 본다고 해서, (필자는 봤음) 자살특공대를 투입하여 전부 다 자폭하고 전판이 몰살되고야 마는 진풍경이 연출하다니. 거의 18급 때나 해봄직한 투정이리라.

생각해 보라. 씩씩거리며 자살을 하는 쪽이나 자살을 받아주는 입장이나 괜히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홍종현은 이거 '잘못 걸렸네.'하면서 착수포기를 계속 종용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히려 그런 소극적 포기종용이 더 열 받게 만든 것이 아닐는지.

K는 더 이상 둘 때가 없자 전판을 몰살당하고 대략 300집을 패했다. 다분히 그 바둑은 의도적이라 기록으로 평가하긴 뭣하지만 300집 차이가 나는 바둑을 계가를 했다는 사실, 그리고 수수도 400수까지 가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록적인 바둑이었다고 할 것이다.

'에이 프로가 너무 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자칫 바둑가의 치부가 될 수도 있겠지만, 프로도 때로는 우리랑 전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만 알아두면 될 것이다.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