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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장미와 별, 그리고 어린 왕자 ①

2009년 상반기 다승, 승률, 연승 1위 김지석 5단 스토리

김종서 작가2009-07-13 09: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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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최고의 히어로

안경 사이로 물결치는 눈웃음,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 김지석은 귀엽다. 1989년 생으로 벌써 스물 한 살인데 아직도 소년의 티가 가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이 바둑계에 알려진 것은 15년쯤 전부터다.

6세 때 바둑 TV개국특집으로 조훈현 국수와 4점 대국을 펼쳐 바둑신동으로 떠올랐고, 11세 때 이붕 배 청소년 바둑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 받았던 김지석이 준수한 청년으로 돌아와 눈부신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있다.

36전 32승 4패. (승률 89%)
3월 19일부터 5월 4일까지 14연승을 거두었다.
아직 세계대회와 국내대회 타이틀에 접근하진 못했으나 이 정도의 무한질주라면 머잖아 성층권에서 스타워즈를 벌이는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십단전 예선 결승 대국 모습.(김지석vs박시열)


○…또 하나의 어린 왕자

7월 10일 오후 3시 한국기원 2층 대국실.
원익 배 십단 전 예선 대진표가 붙어있는 출입문 앞에서 일군의 젊은 프로기사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석이는 지는 법이 없네?”
“그러게. 이기는 길이 보이나 봐.”

김지석 또래의 기사들은 그렇게 전적 표를 유심히 살펴본 후 대국실로 들어갔다. 전적도 고공비행이지만 동료들의 평가가 요즘 김지석 5단의 상승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날 김지석은 십단 전 예선 두 판을 이겨 거침없이 전적표 사다리를 올라탔다.(오전 김진우, 오후 박시열)

김지석은 별명은 ‘땡글이’다. 얼굴형이 동그랗고 하는 짓이 귀여워서 친구와 선배들이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필자는 오래 전부터 김지석의 풍모에서 어린 왕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이미 박영훈에게 붙어버린 닉네임이라 중복이겠지만 박영훈은 벌써 오래 전에 세계 타이틀 홀더로 등극했고 정상권에서 활약하고 있으므로 이제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김지석에게 물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캐리커처를 봐도 잘 어울리지 않은가?

‘어리다’는 표현이 지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동안(童顔)의 김지석은 영원히 소년의 얼굴을 지닐 것 같다. 다섯 살 때 바둑을 만나 지금까지 줄곧 바둑판 앞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동심(童心)마저 오래 간직할 것 같다.

‘왕자’는 장차 큰 성취를 이룰 유망주를 가리키며 유복한 환경까지도 살짝 암시한다.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나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전남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부친 김호성(52)씨와 이대 약학과를 나와 분당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모친 정호은(49)씨 사이에서 태어난 김지석은 일단 지적(知的) 유전자의 결합이라는 축복을 받은 셈이다. 그 준비된 유전자가 바둑을 바라보게 된 것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광주에 거주했던 지석은 주말마다 서울의 외가댁에 들르곤 했는데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제시한 숫자 게임에 호기심을 보였다. 구구단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는 배 수 게임(2-4-6-8 혹은 3-6-9등)을 다섯 살짜리가 곧잘 대답하는 거였다. 두 살 위의 형과 경쟁하듯 다음 수를 불렀는데 높은 숫자로 올라갈수록 지석의 대답이 빨랐다.

그 뿐 아니라 지석은 구구단을 빨리 암기한 것도 모자라 10단 11단 12단 13단까지도 혼자 만들어서 흥얼거렸다. 다섯 살 꼬마 지석에게 언어보다 숫자가 먼저 다가온 것이다.
부모는 수리력이 남다른 형제를 바둑도장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프로기사로 만들 욕심은 없었다. 그저 좋은 취미나 특기 하나 정도를 심어주고 싶을 뿐이었다.
광주시 운암동에 있는 김정렬(현재 골든벨 도장 원장) 도장에 찾아갔는데 원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난색을 표했다.

“형은 괜찮은데 동생은 너무 어린데요? 아직까지 다섯 살 아이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곤란합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간곡하게 부탁하자 원장이 지석을 바둑판 앞에 앉혔다.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말고 10분을 앉아 있어보란 주문이었다.
지석은 평소 성격이 활달하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잠시도 한 자리에 가만있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희한하게 정물화처럼 주어진 시간 동안 바둑판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최연소 수강생이 된 지석은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바둑돌을 만지게 되었다. 한국기원에서 출간한 문제집 1612제를 어머니가 읽어주면 지석은 고사리 손으로 답을 풀어냈다.
아직은 초보 단계에 불과했지만 제법 바둑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싶어 원장이 지석을 도장 내 바둑대회에 출전시켰다. 격려 차원에서 ‘자세 상’ 하나를 만들어 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꼬마 지석이 하급자 조에서 덜컥 우승을 차지해버렸다.

“어? 요 녀석 보게나!”

그때부터 꼬마의 기력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갔다. 잘 두는 형들이 우글거리는 상급자 조에서도 4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렇게 지석은 유치원 대신 바둑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어린 시절의 김지석.


●…소년에게 바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7살이 되었을 때 지석은 광주의 오규철 도장 문하로 들어갔다. 박지훈과 최윤석과 함께 본격적인 바둑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광주의 신동 김지석의 진가는 바둑TV 개국특집대국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조훈현 국수와 4점으로 대국했는데 해설을 맡은 김수영 8단이 소년의 기재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했고 중앙일보 박치문 위원도 바둑 란에 김지석을 소개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지석은 대망의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다.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 때 평창동 조훈현 국수집에 머물며 테스트를 받았다.
밝히기 좀 민망하지만 그때 지석의 스파링 파트너가 바로 필자였다. 2층 거실에서 앙증맞은 잠옷 차림의 꼬마가 바둑돌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너무 귀엽고 신기해서 한판을 신청했다.

“너 몇 급이니?”

급수를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다. 대신 조 국수의 답이 날아왔다.

“네가 네 점은 깔아야 할 걸.”

기원3급 정도에 불과하지만 수천 판의 전적을 자랑하는 필자가 설마 2학년 꼬마에게 네 점씩이나 깔아야 한단 말인가? 내심 치수에 불만을 품었지만 과거 내 제자였던 소년 이창호로부터 호되게 당한 적 있었기에 겸손하게 4점으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세 판을 깨지고 삼진 아웃 당했다. 옛날 소년 이창호는 받아줄 데 다 받아주면서 부드럽게 판을 짰었는데 김지석은 여차하면 끊고 돌려 치고 먹여치고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4점 하수가 쩔쩔매는 건 당연했다.

‘안 해! 안 해! 바둑 안 배운다.’

필자가 바둑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맘먹은 게 바로 꼬마 지석이한테 초토화 당하고 나서부터였다. 생각해보시라. 우리 같은 범인들은 죽어라 기보 놓아보고 인터넷 대국을 수천 판씩 두면서도 이 모양인데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꼬마가 바둑의 이치를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때 필자는 조 국수의 드디어 두 번째 내 제자로 김지석이 낙점 받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어쩌면 이창호보다도 더 큰 기재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저급한 기력이라도 손맛으로 따지면 소년 이창호보다 김지석이 강렬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김지석은 열흘 만에 평창동에서 하산했다.
조 국수께 이유를 여쭸더니 다소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기재가 확실히 뛰어나긴 한데 바둑 말고도 다른 것들에 호기심이 강해서 산만한 느낌이 들어.”

창호는 국수의 아들 민제가 놀자고 조르면 놀아주는 척하다가 살짝 빠져나와 바둑 공부를 했는데 지석이는 오히려 민제에게 놀자고 조르는 쪽이었다고 했다.
어렸던 지석은 그때 평창동 하산이 개운했을 지도 모른다. 부모나 바둑 인들은 안타까웠겠지만 어디 세상의 진리가 온통 바둑에만 있노라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분명히 김지석은 누구보다 일찍 빛나는 재주를 세상에 드러냈고 지금 약관의 나이에 2009년 바둑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그는 일곱 살 때 한국기원 원생이 되어 중학 2년 때 입단했다.
무려 10년의 세월을 바쳤으니 결코 쉬운 길을 걸었다고 볼 수는 없을 터.
맑은 심성이 그대로 투영되는 동안(童顔)을 보면 그가 순조롭게 바둑 엘리트 코스를 달려왔다 싶지만 그 10년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김지석 5단.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왕자는 사막의 지혜로운 여우를 통해 진리 하나를 배운다.

"네 장미가 네게 그렇게 소중한 것은 그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고 있어. 그러나 너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는 거야."

또 하나의 어린 왕자 김지석에게 장미는 바둑일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장미를 바둑으로 바꿔 부르면 그에게 의미 깊은 울림으로 전해지리라.

........................................................[제2화로 계속]...........................................................

제2화에서는 김지석의 소년기와 원생시절의 방황, 프로입단 이후의 경로가 소개되고 동료기사, 스승들의 인터뷰를 통해 김지석의 기풍과 대국 에피소드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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