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는 완전연소(燃燒)를 꿈꾼다. 김지석의 바둑은 격렬하다. 아직 미완의 그릇이기에 대가들처럼 멋진 단어 하나로 압축할 기풍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젊은 기사들은 그의 바둑에 강미(强味)가 넘친다고 입을 모은다. 백홍석 7단 : 연구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풍이 변하지 않은 친구는 지석이 밖에 없는 듯싶어요. 대개 오래 바둑을 연구하다 보면 패러다 임이 변화하거든요. 그런데 지석이는 한결같아요. 굳이 표현하 자면 불(火)의 바둑이라고나 할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착해 보이는데 바둑은 격렬합니다. 힘 바둑이라면 몇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백홍석 7단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촌평할 정도면 김지석의 기풍이 어떤 쪽인지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김지석 5단 본인에게 기풍을 물으니 양 볼에 홍조를 띄며 뭐라고 말할 듯 말 듯 망설인다. 까다로운 상대를 물어봐도 망설임은 계속 된다. 좋아하는 기사를 물으니 조그맣게 ‘이창호 사범님’이라고 대답한다. 이유는 없다. 물어보는 쪽이 복장 터진다. “어릴 때부터 산수를 잘했다던데 계산이 강한가요?” 짧지만 씩씩한 대답이 모처럼 돌아온다. 이세돌, 이창호와도 자주 대국해보고 싶단다. 역대 전적은 밀리지만 지금 만나면 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표정이다. “여태 둔 바둑 중 가장 기억나는 명국을 든다면?” 곱상한 얼굴에서 과격한 언어가 불쑥 튀어 나온다.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는 표정이다. 아아 이 스물 한 살의 청년, 정말 가슴에 불덩어리가 이글거리고 있구나! 명국을 고르라 했더니 열혈패국을 들고 나오다니.
○…네비게이션은 언제나 한 길만 가리켰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원생이 되어 중학교 2학년 때 프로에 입단한 김지석의 행로를 다시 밟아본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서울과 광주를 무던히도 자주 오르내렸었다. 주말마다 한국기원에 나가야 했으니 어머니가 몰았던 승용차의 누적 주행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토록 고생했으면서도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밝힌다.
“지금 열심히 하고 스스로 즐거워 하니까 대견하지만 어쩔 때 잠든 지석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미안해서 눈물이 핑 돌곤 해요. 너무 어려서부터 바둑돌을 쥐게 해서 친구가 없거든요. 바둑계 친구들밖에는. 별다른 취미생활도 즐기지 못 했고, 가족끼리 여행해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남달리 뛰어난 재능을 보여 많은 이들이 큰 기대를 했지만 김지석의 행보는 예상과 달리 경쾌하진 않았다. 소년기에 자신의 기재를 확인해보고자 하는 어른들의 채근이 부담스러웠고, 바둑도장에서는 형들의 텃세에 시달리다 못해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때 건강이 좋지 않아 심신이 무기력했던 때도 있었다.
2003년 11월 김지석은 마침내 제97회 일반인 입단대회에 출전해 파죽의 6연승을 거두며 선두를 달렸다. 한판 만 더 이기면 입단하는 상황. 광주의 아버지가 달려와 자리를 지켰는데 공교롭게도 삐끗 실족하며 1패를 기록했다. 아버지는 그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며 화들짝 놀라 기원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 다음 판을 거뜬히 이기고 김지석이 프로 면장을 확보한 순간 아버지는 자신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보다 기뻤다고 고백했다. 유년기와 소년기 전부를 바쳐 얻어낸 ‘프로’라는 타이틀. 그 엄청난 성취감을 맛보자 다소 긴장이 풀렸다.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는 ‘좀 놀았다’고 했다. 초등학교부터 오전 수업만 해왔지만 김지석의 학업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충암중, 충암고를 나와 외국어대학교 수시모집에 응했는데 백홍석은 붙었고 김지석은 떨어졌다. 지석의 일본어 실력을 아는 이영구(외대생)가 교수님들께 애교어린 항의를 했다. “아직 부족합니다. 좀 더 성장하고 나서 인터뷰했으면 고맙겠습니다.” 김 5단의 부친 김호성 씨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아직 타이틀을 따지도 않았고, 국제무대에서 큰 활약을 펼친 적이 없는 김지석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시기상조 아니냐는 뜻이었다.
지구를 찾아와 1년 동안 많은 진리를 깨우친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귀환하게 된다. 지구를 떠나며 어린 왕자는 나에게 말한다. 어린 왕자 김지석. 바둑계를 바라보면 그 안에 그대가 웃고 있어 우리는 웃을 줄 아는 별 하나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바둑계 전체가 환해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언제나 흔쾌한 마음으로 바둑의 창문을 열 수 있기를. ☞ 장미와 별, 그리고 어린 왕자 ① 바로가기 1. 취미 - 테트리스(공간지각력 습득을 위해^^레벨 : 神 등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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