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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놨다 뗐다'는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것

ㅋㅋ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8-11 16: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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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단수인디요?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것은 ‘초읽기독촉’으로 인해 제 정신이 아닌 경우이다. 뇌의 지시에도 아랑곳 않고 손이 엉뚱한 곳으로 향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일 것이다. 철두철미하기로 소문난 조훈현도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

1998년 패왕전 도전1국으로 신예강자 이성재간의 대국. 혼전의 양상이 펼쳐지려면 역시 패싸움이 하나쯤 벌어져야 제격. 검토실의 중론은 조훈현이 1집반 정도 우세한 상황에서, 문제는 패싸움이 변수였는데 제한시간도 거의 10분 언저리가 남았을 정도이니 피차 올 때까지는 온 상황이었다.

이리 쓰고 저리 쓰고, 그러다가 팻감을 쓰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이성재가 중앙 흑 여섯 점을 단수 친다. 물론 팻감이다. 단수를 치니 조훈현은 당연히 이을 것이다. 물론 조훈현도 이을 것이지만 시간을 좀 벌어보자는 뜻에서 더 큰 곳인 다른 곳에 먼저 손을 한번 돌리는 여유를 부려가며 그 단수에 ‘멍군’을 부를 심산이었다.

그런데 조훈현이 콧노래를 ‘룰루랄라~’ 부르더니 손길이 향한 곳은 엉뚱한 곳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이성재가 단수를 친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린다. 조훈현은 이성재가 쓴 팻감을 받질 않고 도리어 조그만 패를 따내는 것이 아닌가.

그 패싸움은 묘하게도 단 패가 아니라 이단 패였다. 이단패라는 건 한번 패를 이겨서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두 번을 연거푸 이겨야 패를 해소할 수 있는 상황. 조훈현은 당연히 중앙 팻감을 받고 이성재가 때리면 다음에 패를 쓰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패는 이단패이기 때문에 팻감 개수가 많은 조훈현이 당연히 이기게 되어있다.

문제는 다 이긴 바둑을 확실히 이기기 위해 조훈현은 팻감 개수라든지 혹시 일어날 바꿔치기에 대해 미리 전망을 하고 있었던 것. 생각이 꼬리를 물자 조훈현이 갑자기 ‘받았다 치고' 다른 패를 한 번 더 때리고 만 것이다. 오히려 몽롱한 쪽은 이성재.

‘에잇 모르겠다! 들어내고 보자. 우르르…’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꼭 초읽기가 아니더라도 치열무쌍한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에서는 정신이 하도 혼미하여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하다. 89년 국수전 본선 양재호와 정수현 간에 벌어졌던 일이다.

국면은 종반을 향해 치달아 반상에는 수차례의 전투 중에 사망한 시체가 즐비하여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아직도 전투는 끝이 나지 않아 최종적인 대마 패가 또 하나 걸려있었다.

국면은 양재호가 좀 유리한 가운데 패싸움의 결과에 따라 약간 유동성이 생기는 정도의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큰 대마싸움이 벌어지다 보면 군데군데 작은 패 때림 형태가 생기곤 한다. 부분적인 패싸움을 벌인 흔적들이다.

자, 팻감은 이미 썼겠다. 양재호는 패만 때리면 되는데 그 와중에라도 반상을 좀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자고 잠시 뜸을 들인다. 바로 그 뜸이 문제. 잠시의 휴식이 독이 된 케이스가 되고 만다. 양재호는 갑자기 본격 패를 때리지 않고 분화구라고 할 ‘1집 짜리’ 패를 때리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분화구 패에 양재호의 손이 가긴 했고 착륙도 했다. 그런데 양재호는 ‘어, 여기가 아니지?'하며 다시 손이 올라갔고 그 손길은 원래 때리고자한 패로 향했다. 이 1초도 걸리지 않은 짧은 순간에 정수현과 양재호의 얼굴은 똑같이 달아올랐다.

분명 손이 한번 떨어졌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이륙한 양재호는 그 짧은 순간이지만 몸 둘 바 몰라 했다. 바둑도 유리했던 관계로 ‘저, 손이 안 떨어졌는데요.'하면서 상대의 얼굴을 한번 슬쩍 올려다볼 수도 있었겠지만 양재호는 그만 싹싹하게 돌을 거둔다. 스스로 반칙패를 인정한 것.


●… 팻감만 안 쓰면 패싸움은 쉬운 것

90년 왕위전 2차 결승. 2차 결승이면 프로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본선 진입을 눈앞에 둔 중대한 한판이다. 더욱이 리그전의 본선이면 최소한 본선대국이 7판은 보장되어 있는 메이저리그라고 할 수 있다. 대국자는 미남 기사 백성호와 윤기현.

역시 격렬한 승부의 말미엔 어김없이 초읽기 독촉이 들려온다. 그리고 패싸움이 하나쯤 걸려있어야 제격이다. 그들도 저승사자의 손길을 잽싸게 피하면서 한 수씩 공을 들였고 패싸움을 끝 간 데 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호가 둘 차례가 되었다. 방금 윤기현이 패를 때렸으니 이젠 백성호가 쓸 차례였다. 물론 팻감은 눈에 몇 개가 보이지만 당장은 둘 필요는 없다. 초읽기의 와중이므로 계시계가 초읽기 독촉을 하면 그때서야 한 수를 둘 요량이다. 그것이 프로의 시간 관리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이윽고 저승사자의 초읽기 독촉이 몰려온다.

“마지막 50초. 하나 둘…"

어느 정도 형세를 읽어두었다고 판단한 백성호는 한참 패싸움이 벌어지던 문제의 자리로 손길이 향하더니 패를 툭 따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말하지만 백성호가 팻감을 쓸 차례인데 팻감도 안 쓰고 그냥 툭 때려낸 것이다. 팻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남아있는 팻감이 몇 개인지, 혹시 바꿔치기가 벌어지면 그 결말은 누가 좋은 지, 마냥 형세판단에 빠져있다 시간이 되어 그냥 툭 따낸 것이다.

물론 패는 ‘동형반복 금지’라는 룰에 의해 백성호는 반칙패가 처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이리 저리 판을 살피던 윤기현이 그런 백성호의 범법사실(?)을 모르고 자신도 딴 곳에 또 팻감을 쓰는 것이 아닌가.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은 백성호가 팻감을 쓰지 않고 그냥 때렸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그 순간 바둑은 일시중지가 되어야한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자네가 팻감을 써야지…, 그냥 때리면 되나?"

“잉? 제가 그냥 때렸나요? (기록자에게) 기보 잠시 줘 봐."

“음, 이런 실수를 하다니…."

“미안하네. (주섬주섬 돌을 들어내며) 이렇게 이기는 수도 있구먼…."

문제는 서로 화급한 나머지, 그 패싸움이 승부인 까닭에 서로 팻감이 몇 개나 남았는지 그 결과는 어떠할 것인지 여러 생각에 잠겨있다 그만 서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그 패싸움의 승리가 결정적으로 바둑을 호전시킨 탓에 백성호가 바둑도 1집 반을 남긴다.


●… 입단을 하느냐 마느냐


일생일대의 입단대회에서도 흡사한 광경은 일어났다. 91년 일반인 입단대회에서다. 입단대회면 아마고수들에겐 과거시험이나 마찬가지.

당시 입단대회는 최종본선리그 12명 가운데 군계일학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사상초유의 4자 동률이 발생하여 두 장이 주어지는 입단티켓을 놓고 사상 최고의 혼전양상을 빚고 있었다.

4명이 각각 한 판 씩 서로 붙어서 이긴 쪽이 입단하게 되는 동률 재대국이 펼쳐지게 되었다. 희한한 반칙패가 발생한 것은 이관철과 김기헌의 대국. 이관철이나 김기헌은 당시 아마바둑계의 최고봉으로 진작 프로가 되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맹장들이었다.

지금은 이미 프로가 되어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째 잊었겠지만, 아마 김기헌에게는 당시의 반칙패가 자칫 바둑인생을 그르칠 수 있었을 만큼 충격이었다. 역시 그때도 어김없이 패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김기헌은 급진적인 싸움 바둑. 따라서 그가 등장하는 바둑은 승패를 떠나 관전객을 몹시 즐겁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소위 방내기 스타일이다.

제한시간이 1시간이었던 관계로 반상엔 초읽기 독촉과 어우러져 혼전에 혼전의 양상이 이어졌다. 그러다 종반에 이를 즈음 김기헌은 상대가 패를 때리자 잠시도 지체 없이 즉각 도로 패를 때리는 코미디를 연출한다.

“어 어, 또 때려도 되나?"

이관철이 어차피 황당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그들의 대국을 병풍처럼 둘러서서 구경하던 관전객들의 동시에 함성이 터져 나와 무사통과가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다. 관전객이 누구랄 것도 없이 반칙을 지적하자 김기헌은 싹싹하게 ‘자수’를 하고 돌을 쓸어 담았다.

그 한 판으로 이관철은 행운의 입단을 하게 되고 김기헌은 당시 쓸쓸히 고향으로 내려가는 밤 열차를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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