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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네 이놈! 딱 놔라, 딱!'

ㅋㅋ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8-21 09: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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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바둑은 사실 심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란이 일어나지 않은 편이지만, 간혹 심판이 있어도 해결하기 곤란한 일들도 벌어진다. 보통은 입회인이 있어서 반란의 소지가 생기면 나름대로 즉석판결을 내려주지만 희한하게도 입회인의 부재시에 소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TV앞에서 감히 이사를 가?

프로도 무른다? 예의를 생명으로 생각했던 프로들에게 지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무르기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TV속기전에서 수백만 바둑 팬들이 목도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물리기가 시도되었다.

C8단과 M9단의 속기전으로 25년쯤 전의 일이다. 두 대국자는 물 흐르듯이 초반설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한쪽 귀의 화점에다 M9단이 날일자로 걸친 뒤 C8단이 날일자로 받자, 눈목자로 변 쪽으로 벌려두었다.

두 칸 높게 벌려둔 것이다. 일립이전(一立二展)이라고, 그리고 높낮이를 고려하여 눈목자로 벌려둔 건 당시의 유행이자 상식. 그런데 다른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더니 전장이 점점 옮겨져서 애초 화점정석이 벌어졌던 곳까지 옮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M9단은 슬쩍 한 칸을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시청자는 눈을 의심했다. 딴 곳에서 후닥닥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일찌감치 두어놓은 눈목자보다 오히려 날일자가 더 좋은 상황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그래서 M9단은 은근슬쩍 이미 놓여 졌던 눈목자를 날일자로 슬쩍 한 칸을 좁히는 것이 아닌가.

해설자 노영하 9단도 “아까 돌이 눈목자에 놓여 있던 것 아닙니까?"라며 ‘확실치 않은 듯 분명하게' 얼버무렸다. 그로서도 프로가 돌을 옮겼다는 사상초유의 일을 실토하기가 뭣했던 것이다. 공교롭게 필자도 학생시절 그 광경을 똑똑히 화면으로 목도했는데 훗날 알아본 결과 M9단은 수개월간의 중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딱 놔! 어쩔 수 없어"

한참 변상 전투에 몰입하다 실수로 돌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할까? 초읽기의 황급한 와중에 돌을 나르다가 떨어뜨리면 어떻게 할까?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그에 관한 실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02년으로 사료된다. 중국 신인왕전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중국바둑계 역사상 가장 해괴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른바 낙석(落石)사건.

8강전에서 왕위후이와 펑첸간의 치열한 반집 싸움이 전개 되고 있었다. 둘 간의 머리가 맞닿을 정도로 국면은 화급했고, 초읽기 독촉이 디지털 계시기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몇 번씩 계가에 여념이 없던 왕위후이는 “여덟!” 소리와 함께 돌을 집어 들었는데, 하도 황급히 손이 나오다가 그만 ‘미끌’하는 바람에 반상에 돌이 떨어지고 만 것.

필자도 수없이 프로들의 대국을 보아왔지만, 대국도중 돌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한 번도 직접 목도하지는 못했다. 초읽기 시간도 흘러갔으니, 혹시 물러준다고 해도 다시 떨어진 돌을 들어내어서 딴 곳으로 둘 수도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떨어진 곳은 100점짜리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선수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따라서 왕위후이는 선수활용 겸 가만히 떨어진 곳에 착수를 했다.

그러나 그곳은 급한 곳이 아니었으니 선수를 넘겨받은 펑첸이 완전하게 이기는 길을 본 탓에 그만 그 바둑을 패하고 말았다. 왕위후이의 반집승이 확실한 가운데, 손에 있던 바둑돌이 실수로 떨어지면서 자기 집이 메워지는 바람에 오히려 반집패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2집 주면 이기나?

한중일 젊은 사자들의 향연, 한·중·일 청소년대항전 이라고 있었다. 요즘은 대회가 중단된 듯한데, 개인도장에서 도장출신 젊은 기사를 중심으로 만든 비공식 국제대회이다.

2002년쯤인가 중국 텐진에서 벌어진 한국의 허영호와 일본의 모찌츠키겐이찌간 대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허영호의 돌이 바둑판에 살짝 닿았다가 다른 곳을 향했다. 물론 우리룰은 닿았다면 닿은 곳에 착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비공식 기전이어서 그를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모찌츠키는 이의를 제기했고, 한참 동안 설왕설래 말이 오간 끝에 돌이 바둑판에 닿은 것을 인정해 2집 공제를 당했다. ‘몸에 밴’ 관례를 따르다 소중한 2집을 날린 경우이다.

그런데 모찌츠키도 실수를 범했다. 나중 바둑이 초읽기까지 몰리면서 급전으로 치닫자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돌을 따내면서 바로 계시기를 눌렀던 것. 규정상이라면 두 점까지 들어낸 후 시계를 눌러야 하므로 이것도 반칙. 그러나 점잖은 허영호는 그냥 넘어가면서도 무난히 승점을 기록했다.

참고로 바뀐 중국룰에는 재미있는 상황이 있다. 우리와는 다른 규정이니 혹시 참고로 알아두면 좋겠다.

-상대가 패를 따냈을 때 팻감을 쓰지 않고 바로 따낼 경우 자신은 한 수를 쉬고 2집 공제.
-상대의 돌을 다 들어낸 후에야 초읽기 시계를 누른다. 어길 경우 2집 공제.
-착수 한 후에 돌에서 손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도, 다른 곳으로 옮기면 2집 공제. 그리고 일단 착수한 근처에 착점해야 한다.(근처라는 문구도 추후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임)
-초읽기 상황에 화장실을 가야하는 경우 1번은 인정. 단, 착수하고 가야 함


●…金의 전쟁

사실 프로들도 손이 "떨어졌다. 안 떨어졌다"로 옥신각신하는 상황은 종종 있다. 꼭 시간부족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앞서 경우처럼 깊은 생각 끝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뻔한 곳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손이 나갔다가 갑자기 딴 곳이 눈에 들어와 스톱을 하려다가 ‘하프스윙'으로 인정받은 케이스도 있다.

93년도의 일이다. 김성룡은 바둑도 속기파요 말씨도 속사포요 거의 모든 동작이 제트기. 그는 ‘신4인방' 그룹에 거뜬히 들었고 랭킹10위권에 확실히 들어가는 신바람 바둑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가 승승장구하던 10대 후반에 아버지뻘도 더 되는 김재구를 예선에서 만난 건 큰 경험이 된다.

모 기전의 2차 예선이었는데 조용한 별실에서 두 사람은 대국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 필자는 그 대국에서 직접 사건을 목도하게 된다. 김성룡의 후배인 류재형이 입단한 다음 첫 시합을 벌이던 중이라 그 바둑을 구경하러 대국실을 들어갔다 엉뚱한 구경을 하게 된 것.

바둑은 상당한 속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실력으로는 한창 때인 김성룡이 제법 유리한 가운데, 판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조용히 끝날 것 같던 판에서 갑자기 김재구의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대국장의 열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착 가라앉고 만다.

"네 이놈! 거기다 갖다 놔. 어디 선배 앞에서 무르기를 한다는 것이야. 버르장머리 없이!"
추상같은 김재구의 불호령에 김성룡은 물론이고 필자와 다른 대국을 치르던 기사 몇 명이 화들짝 놀란 건 불문가지. 김재구의 추궁은 이어진다.

"니가 바둑을 좀 둔다고 버릇이 그래서 되겠느냐. 어서 그 자리에 갖다놓아라. 난 네 버릇을 오늘 고쳐야 하겠다!" 김재구가 막내아들 같은 김성룡에게 화를 낸 건 대국 도중 김성룡이 자꾸 손을 바둑판에 갖다 놓았다 뗐다 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자신이 참는 데도 한도가 있어 이번만은 물러줄 수가 없다는 것.

한편 톡톡 튀는 김성룡이 대 선배의 말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전 물린 적 없습니다. 그리고 손이 떨어지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이런 실랑이가 서로 몇 차례 오고가자 김성룡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본래 놓으려고 했던 곳을 김재구의 말대로 갖다놓았다. 어차피 좋은 바둑이니 '백 번 양보하여' 그냥 좋게 넘어가자는 뜻이었다. 또 바둑기자인 필자가 보고 있으니 좋은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번엔 김재구가 또다시 가만 놓아두질 않았다. 만약 다시 갖다놓는다면 그것은 또 물리는 것이므로 바둑을 계속 둘 수 없다고 강변한 것.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되자 옆에 있던 필자가 끼어들기도 좀 험악한 상황이 되었다.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한국기원은 심판위가 급히 조직되어 심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주장은 ‘법정'이라고 달라질 게 없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두 사람에게는 사상 초유의 양자패가 성립되었다.

그 판결 이후 한국기원에서는 대국분쟁 시 의견조율이 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에게 반칙패를 선언한다고 못 박고 있다. 물론 당시 두 사람은 서로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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