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바둑雜學]

'야~가, 버릇이 와 이래 나뿌노?'

ㅇㅇㅇㅇㅇ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8-30 16:56:05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어릴 땐  누구나 속기

이창호도 과거에 소위 ‘낚시질’이라고 하는 ‘착륙 후 이륙’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이창호는 지금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분히 속기였다.

프로씨름이 생기기 전 김성률 장사가 있었다. 그 김성률 장사의 동생이던 김판율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그 김판율 2단과 이창호(당시 몇 단인지 모르겠지만 대략 2단쯤 되었을 것이다.) 가 대국을 가졌을 때의 해프닝이다.

2단 시절의 이창호는 초등학교 6학년 또는 중학교 1학년쯤 되는 아주 꼬맹이였다. 그 이창호도 이럴 때는 못 말리는 속기파였기 때문에 차가운 머리보다 손이 빨리 나가는 버릇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손이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나가려다가 돌아오고 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 반면 김판율은 자기의 아들 뻘 되는 이 소년이 ‘피스톤 운동’을 보자 좀 짜증이 났다.

“야~가 버릇이 와 이래 나뿌노?”

그래서 김판률은 ‘관중에게’ 이의제기를 했고 이창호는 눈물을 머금고 그 한 판을 접어야 했다. 그때 이창호는 알아 차렸을 것이다. 기량만 가지고 세계정상에 서는 것이 아님을.


○…살아있는데 들어내다니…

상대의 돌을 잡으면 들어내는 것이 원칙이고 그 사석을 들어내는 과정은 승패를 떠나 몹시 즐거운 행위의 하나. 그런데 귀신 잡는 프로들도 잡은 사석을 들어내지 않는다든지 안 잡은 돌을 들어내는 몹시 웃기는 짓을 할 때가 있다.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일어난 사고 하나. 김수장과 서능욱 간에 벌어진 대국.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사이. 그러나 바둑내용은 아무도 친구라고 보지 않을 만큼 치열하여 반상에 올라간 돌보다 돌 통 뚜껑에 담긴 사석이 더 많을 정도.

막바지에 이르러 역시 대형 패싸움이 발생했다. 물론 천지대패였고 그 패싸움은 한판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평소 신중하기로 소문난 김수장은 서능욱이 패를 써오는 걸 보고 바로 문제의 패를 해소할 맘을 먹고 있었다.

워낙 큰 패라서 어떤 곳에 팻감을 써오더라도 김수장을 패를 해소할 일종의 만패불청(萬覇不聽)이었으므로 서능욱의 착점이 나오자마자 패를 해소하면서 주섬주섬 상대의 사석을 들어내었다.

‘느낌이 이상한데….’

들어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아직 공배가 비어있어 법적으로 사망하지 않은 돌까지 모조리 들어내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돌이 얽히고설키어 있으니 전체가 다 사석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돌까지 모조리 들어낸 것은 분명 반칙패. 그런데 김수장으로서는 일이 되려니까 상대인 친구 서능욱이 그를 모르고 그냥 지나가 버린 것은 행운이었다.

이를 엄연히 목도하고 이의를 제기했다면 당연히 김수장은 반칙패. 역시 도둑을 맞으려면 그 충성스런 개도 하필이면 그때 곯아떨어질 게 뭔가. 진행자인 노영하까지도 까맣게 모르고 지나갔던 것. 종국 후 결과는 김수장의 승리.

그런데 그 같은 해프닝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급 하수의 질문 때문. 바둑을 잘 모르는 담당PD가 워낙 궁금해 하여 ‘큰맘 먹고’ 질문을 하게 된다.

“돌을 들어낼 때는 안 갇혀있어도 들어내남유?”

“하하, 그런 게 어디 있어. 안 죽었는데 어떻게 들어내?”

“아까 안 죽었는데 들어냈거든요?”

물론 김수장은 전혀 고의가 아니었고 사실 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팻감으로도 써먹을 수 없는 ‘거의' 사석이었지만 김수장은 용궁 같다 온 기분이었을 터. 그도 그럴 것이 김수장은 그 판을 이기고 승승장구하여 준우승까지 이르렀으니 반칙 한번 용하게 했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다.

하여튼 그 날 바둑은 343수나 가는 보기 드문 대혈전이었으니 한 여름 밤에 벌어졌던 납량프로그램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이다.


○…어, 공배가 비었는데?

똑같은 상황으로 반칙패를 선언 당한 케이스도 있다. 주인공은 역시 속사포의 귀재 정대상과 임선근의 1986년도 바둑왕전.

임선근은 당시 4단으로 24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며 부산바둑의 매운 맛을 중앙에서 한껏 과시한 바 있는 힘 바둑이다. 물론 힘으로는 전혀 지고 싶은 맘이 전혀 없는 정대상과의 일전은 묻지 않아도 당연히 죽고 죽이는 살상극의 극단을 치닫고 있었다.

수수(手數)는 총 280수 정도가 진행되었는데 피차 잡힌 돌이 무려 30개였으니 그 열전의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터. 역시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정대상은 패도 불리할 뿐 아니라 팻감도 없어서 그냥 돌을 던지는 것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정대상의 대마는 ‘분노의 바다' 중앙을 향해 하릴없이 떠돌며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상황이라 천지대패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 바둑은 아마유단자가 두어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정대상은 불리했다.

돌을 거두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 보람이었을까. 정대상은 단 한마디의 대사로 그 바둑을 승리로 이끌고 만다.

“어 공배가 하나 비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중앙에 부초처럼 떠도는 대마를 위협하는 수가 모조리 팻감이라 임선근은 속된 말로 아무 데나 돌을 던져서 두어도 이기는 상황. 그런데 팻감을 쓰고 패를 때려 자신이 단수에서 벗어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상대가 팻감을 쓸 때 때려야할 것을 맘이 급하여 아직 공배가 하나 비어있는 정대상의 생떼 같은 말을 그만 들어내고 마는 게 아닌가.

물론 다음 자신은 팻감도 없고 하니 그 패싸움은 무조건 지게 되어 있었지만 정대상에게는‘무조건’은 없는 것이었다. 정대상은 현행범(?)을 보자마자 카메라 맨을 향해 ‘컷!'을 외치며 이의제기에 나섰다.

그러자 해설자인 노영하가 바둑을 중지시키고 즉결에 회부하여 부당한 착수행위의 형벌을 적용하여 임선근의 반칙패를 선언하게 된다.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