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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사석은 좀 들어내고 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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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호 바둑평론가2009-09-06 15: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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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도 아닌데 들어내나?

강훈 9단과 김학수 7단간의 1989년 승단대회에서의 일. 서로 자잘한 패싸움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김학수가 평범한 곳에 팻감을 썼는데 강훈은 그 팻감으로 두어진 상대의 돌을 그냥 들어내 버려 해괴한 반칙패를 당하고 만다.

팻감은 흔히 멀쩡한 상대의 돌을 떼어달라고 떼를 쓰면서 시작된다. 김학수는 멀쩡한 강훈의 돌에다 단수를 친다. 물론 팻감으로. 그러면 그 단수를 ‘멍군’하면서 다시 때려내면 그만이다. 문제는 강훈의 프로다운 짐작이 김학수의 지극히 아마추어다운 팻감 처리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는 데에 있었다.

보통 팻감을 쓸 때는 가능하면 많이 나오게 쓰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단수를 칠 수 있는 상황도 가능하면 먹여치기를 하여 한번 더 팻감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김학수는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연히 먹여 칠 곳을 그냥 단수를 쳤고 강훈은 당연히 먹여 쳤을 것을 가정하고 엉뚱하게 ‘멍군’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 단수는 되어있고 그 단수를 받기는 받았는데 그래도 '진짜 단수'가 되어있다. 한술 더 떠 단수를 친 돌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 돌을 들어내어서 시체취급을 해버린 것이다.

“잉? 이게 뭐야!”
“멀쩡히 살아있는 돌을 들어내다니?"
“아니, 이렇게 팻감을 쓰는 법도 다 있어?”

김학수는 당연히 ‘분노'했고 다 이겼던 바둑을 강훈은 어이없는 반칙패로 그 한판을 날리고 만다.


●…귀찮아. 그냥 해...

이보다 좀 더 재미있는 경우는 상대의 돌을 잡았음에도 안 들어내는 경우일 것이다. 참 드문 일이지만 1990년 국수전 2차 예선에서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신사로 소문난 홍종현 9단과 노영하 9단의 대국이다.

노영하가 좀 유리했던 상황으로 기억한다. 홍종현은 역전의 기회로 삼을 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상대의 돌을 끊자고 들여다본다. 잡혀있는 자신의 돌을 잇자고 들여다 본 것이다. 바둑속담에 “들여다보는데 안 잇는 바보 없다” 란 말도 있듯이 당연히 이으면(정확히 표현하면 이으면서 상대 사석을 들어내는) 되는 곳이다. 물론 노영하는 ‘무슨 소리?'하면서 상대의 요석을 따낸다. 그리고 노영하는 ‘이제 당신이 두시오'란 뜻으로 계시기를 ‘찰칵'.

홍종현은 당연히 딴 곳으로 손이 향했고 몇 수가 더 진행이 되었는데 나중에 두리번거리다가 아까 그 장면에서 노영하가 돌을 잡고도 들어내지 않은 괴상한 장면을 목도 한 것이다.

“어, 사석 왜 안 들어내?" 

잡은 돌도 귀찮아서 안 들어낸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돌을 들어내는 것보다는 좀 더 희귀한 케이스에 속하는 이 광경은 심각한 해프닝이었다. 우리 아마추어들이라면 “어. 이게 왜 여기에 놓여있지"하면서 슬며시 나중에라도 들어내면 그만이겠지만 철두철미를 기초로 하는 프로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가.

홍종현은 ‘당당히' 큰소리를 친다.

“어이, 노사범. 진작에 죽은 돌을 왜 안 들어낸 것이여?"

이리하여 심각한 해프닝은 시작되었고 심사위원회가 부랴부랴 소집되었다. 결론은 재 대국. 노영하가 분명 제때 사석을 들어내지 않은 건 의아한 일이지만 전체적인 대국흐름에 지장을 준 것은 아니므로 패배로 인정하기엔 좀 인간적인 아쉬움이 들어간다는 유권해석이었다.

1990년 기사회에서 만들어낸 대국분쟁 해결 원칙은, 문제 발생 즉시 이의신청을 해야하며 설사 옷깃에 쓸려 돌이 옮겨지더라도 본래대로든 옮겨진 대로든 상대끼리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양자패. 그러나 양자패가 웬 말인가. 상대에게 피해가 가는 엄연한 반칙이 아니라면 실전 도중이라도 “여기지?"하면서 분쟁 소지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마추어의 경우는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규칙이라는 것은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자는 뜻이지 그 규정을 이용하자는 취지는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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