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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雜學]

어이! 남의 새끼는 왜 만져?

ㅇㅇ

진재호 바둑평론가2009-10-01 08: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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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총장님이 그러한 버릇을?

대국 버릇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돌 만지기이다. 돌 만지기는 바둑돌 통에 담긴 돌에 관한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반상에 놓인 돌을 만지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돌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기원 초대 총장을 역임한 정동식 7단은 돌 만지기의 일인자. 그는 시합 중에 돌을 한 움큼씩 왼손에 집어 들고 오른손으로는 두 서 너 개씩 들었다 놨다하는 오래된 습관을 갖고 있다. 

사실 이 버릇은 시중 기원에서 흔히 보는 행위인데, 근 50년간 프로생활을 한 정동식도 언제나 한판의 바둑을 둘 땐 긴장이 되는 것일까. 그는 돌을 '자르르' 소리를 내며 들었다 놓았다할 뿐 아니라 동시에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하여 주위를 산만하게 만든다.

정규시합 뿐 아니라 심지어 기사실에서 필자와 ‘자장면배’ 연습바둑을 둘 때도 ‘자르르’ 소음을 낸다. 혹자는 워러가 프로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으로 착각하기 딱 알맞다. 본인 말로는 ‘50년 된 버릇’이라 어쩔 수 없다고 머쓱해한다.


●…변화무쌍하나 흐트러진 것은 못 본다

상대가 착수하면 그냥 자기 착점을 하면 될 것을 꼭 반상의 돌을 한번 만지고 수읽기를 시작하는 타입이다. 그것이 자기 돌이거나 삐딱하게 놓여진 돌을 가지런히 만지는 것이라면 누구나 이해가 되지만, 누가 보아도 반듯이 놓여진 돌을 꼭 한번씩 비틀면서 매만지는 버릇이다. 다분히 수읽기의 한 방편이라 볼 수 있다.

서능욱 9단은 신출귀몰의 대명사. 그는 기풍이 전투적이고 화려무쌍, 변화무쌍한 체질. 그는 착수가 시원시원하나 착점 자체는 상당히 신중한 편이다. 돌 놓는 모습이 교과서적이라고 할 만한데, 그 이전에 상대의 돌을 꼭 한번 만지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초반에 돌이 듬성듬성 놓여있을 때에는 별 일이 없다. 그런데 돌이 좀 얽히고설키면 영락없이 손이 올라간다. 착수를 위한 ‘예비동작’으로 꼭 한번씩 올라간다. 상대가 한 수를 두면 그 수에 대한 생각을 위해 다시 한번 검지와 중지의 스냅을 이용하여 상대의 돌을 지그시 눌러 비틀어 놓고 시작한다. 손으로만 보면 노타임으로 갖다놓는 줄 알지만 사실은 착점의 예비동작이다.


●…단수를 쳐도 일단 비벼놓고 '멍군!'


최규병 9단은 횟수로는 서능욱보다 더한 체질이다. 최규병은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 ‘충암사단’의 형님답게 후배들을 자상하게 이끌며 대형(大兄)의 풍모를 보이지만 성격은 꽤 깔끔하여 군더더기가 없다.

너무 깔끔해서 그럴까. 그는 바둑돌이 삐딱하게 놓여진 꼴을 못 본다. 삐딱하게 놓여진 것이면 당연히 바르게 위치시키는 것이 옳겠지만, 사실 안 삐딱한데도 돌을 다시 정좌시키는 것이 문제.

최규병은 꼭 자신이 착수하기 전에 남의 돌을 만진다. 예뻐서 만지는 것인지,  미관상 안 좋아서 만지는 것인지는 몰라도 모니터로 대국 장면을 지켜보다 보면 상대가 ‘시비를 걸만큼’ 자주 만진다. ‘아니, 남의 돌은 왜 자꾸 만지는 거야?’

성실의 척도 중 하나가 시간소비라고 본다면 최규병은 속기로 한판을 마무리하는 적이 없다. 아무리 돈이나 성적과 관계없는 대국이라도 그는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설사 단수라 할지라도 그냥 응수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한 수를 놓으면 그 수에 대해 일단은 생각에 잠긴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착수와 함께 그 주변의 돌을 한꺼번에 손가락 두 세 개로 좀 비빈 다음 착수에 들어간다.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막상 앞에 앉은 상대는 스스로도 수읽기에 골몰하느라 최규병이 자신의 돌을 여하히 ‘트위스트 시키는지’ 알아챌 겨를이 없다.

김수장 9단은 큰 몸집에 비하면 비교적 모범적으로 정좌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반상으로 향하며 뚫어지게 쳐다보는 타입. 그런 김수장도 돌을 자주 만지작거린다.

아마 깔끔한 체질이란 점에서는 최규병과 흡사하다. 최규병은 본능적으로 손이 반상으로 향하는 것과는 달리 김수장은 좀 슬로비디오로 서서히 반상으로 손이 간다.


●…기합의 사나이 훈이형!


김수장과 절친한 친구인 강훈 9단이 반상에 손을 옮기는 것은 좀 특이하다. 강훈은 이름에서 풍기듯이 기풍도 상당히 터프하다. 그는 실리파이면서도 치열한 전투를 즐긴다.

그는 평소의 행동거지도 파이팅 넘친다. 화해보다는 싸움을, 짓기보다는 부수기를 좋아하는 기풍 탓에 그는 반상에 놓인 돌을 만질 적에도 곱게 만지는 것이 아니라 약간 어눌하게 꼬나보면서 ‘어쭈? 그래 한번 해보잔 말이지?’식으로 누르는 타입이다. 거기다가 자세를 약간 비틀면서 야릇한 웃음을 띠면 강훈 포즈의 완결편이 된다.

강훈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착점이 대단히 강력한 기사이다. 요다노리모토 9단보다는 좀 더 예리한 타입이다. 요다가 장작을 패는 스타일이면 강훈은 그 팬 장작을 수직으로 송곳처럼 뚫고 들어가는 타입이다. 
 
강훈은 ‘딱’ 소리가 경쾌하지 않다. 뭔가 무채색에 가깝고 뭔가 외상보다는 내상을 입을 듯한 깊이 있는 내공을 자랑한다. 그가 두드린 바둑판은 족히 1㎜는 팰 정도.


●…왜 이번에는 살짝 놓는 것이야?


강훈 9단의 착수에 대한 일화가 있다. 80년대 초 지방대국이 벌어졌을 때였다. 조훈현 9단과의 대국이었는데 당시 조훈현과의 대국이면 보나마나 도전기일 것.

조훈현은 대국 당일 몹시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가 워낙 속기바둑이고 어떤 상대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력을 가진 때여서 대국엔 큰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도전자 강훈은 어김없이 얼굴을 바둑판에 묻을 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조훈현은 그 장고에 버티질 못하고 새록새록 단잠이 들고 마는데….

몰론 좋다고 해서 깊은 잠에 빠질 턱이야 없지만, 조훈현은 졸아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강훈이 워낙 강하게 반상에 착수를 하기 때문에 조훈현은 깜짝 깜짝 놀라서 자신의 착수를 별 무리 없이 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조훈현이 상대의 장고에 지쳐 정말 깊이 꿈나라로 빠져들고 있었다. 조훈현의 예상대로라면 강훈이 착수를 시원하게 ‘꽝’ 소리가 들리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이번엔 왠지 그 소리가 제때 들려오지 않는다. 자연스레 조훈현은 예정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강훈이 수읽기가 몹시 어려웠는지 조심스레 기나긴 수읽기를 한 후 조용히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강훈은 담배 하나를 맛있게 뻑뻑 피우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자명종’이 울리지 않으니 조훈현은 계속 꾸벅 꾸벅 졸고 있지 않은가.

결국 1시간여를 넘어가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조훈현은 맛있는 선잠을 깨고 바둑을 이어갔다. 강훈의 착점은 ‘역발산기개세’, ‘요다 저리가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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