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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바둑열기가 뜨거운 싱가포르

1981년 협회 결성 이후 바둑사범 초청, 보급, 국가대항전 등 왕성한 활동

한상대 교수2009-10-18 17: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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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동물 ‘Merlion’이 싱가포르의 상징 동물이다.

싱가포르(Singapore)
바티칸과 모나코에 이어 가장 작은 나라 싱가포르.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있는 섬으로 도시면서 국가다. 면적은 274킬로평방미터. 인구는 5백만 명이 체 안되나 1인당 소득은 5만불. Wikipedia 2009를 보면 세계 4위라고 나와 있다. 위치가 적도에서 가까워서 항상 더운 나라다. 인종은 중국인이 75.2%, 말레이인이 13.6%, 인도인이 8.8%가 살고 있다. 도시가 깨끗하고 유교적 전통 가치가 법으로 엄수되고 있는 나라다. 싱가포르란 말이 말레이 어로 ‘사자’란 뜻이다. ‘Mer’는 바다를 뜻한다. 이 나라 상징 동물은 “Merlion(獅子魚)”이다. 인어(人魚)는 영어로 “Mermaid”이다. 


1. 싱가포르의 바둑대부 티안(田) 교수
나는 1977년부터 7년간 호주 멜본에 있는 모내쉬(Monash) 대학교의 바둑 사범이었다. 내가 받는 사범료는 매주 11불. 당시 대학클럽의 모든 사범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금액이었다. 당시는 호주 달러가 미화 보다 강했으니까 요즘 가치로 한 3만원쯤 될까? 적은 액수지만 그 때는 바둑이라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가르치려는 열정이 있었기에 나는 만족하면서 가르쳤다. 싱가포르 대학의 티안(田银河 수학) 교수는 싱가포르 바둑협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이 된 후 모내쉬 (Monash) 대학에 1년간 교환교수로 온다. 

매주 화요일 내 강의가 20분 정도 있고 나머지는 회원간 리그전을 했다. 회원은 평균 30명 정도. 그 중 교수가 제일 많았고 대학원생, 학부 학생 수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대학 졸업생 중 변호사 회계사들도 몇 명 있었다. 내 열성으로 당시 모내쉬 대학 바둑클럽은 ‘호주최강클럽’으로 오를 수 있었다. 이 때 나에게 바둑을 배운 회원들은 지금도 친하다. 이 중에는 완전 초보에서 2~3단까지 올라온 회원이 몇 명 있었다. 찬 교수는 1년 동안 바둑클럽에 빠짐 없이 출석했다. 그의 기력은 당시 2단이었다. 그는 탁구도 강해 나와 대학 탁구클럽 A조에서 정기적으로 만났다.

▲ ‘인간 수퍼 마켓’이라고 학생들이 부르는 모내쉬 대학 인문대 건물. 여기에 바둑클럽이 있다.

하루는 내 강의 중 “이 곳은 기세(氣勢)로 2단 젖힘(Double hane)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호주회원들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듣는다. 나보고 기세와 무리수 (Overplay)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달라고 한다. 영어로는 기합(氣合), 기세 등이 ‘Fighting spirit’으로 번역 되어 있으나 이 말은 기세 보다 투혼(鬪魂)에 가깝다. 내가 칠판에 이 걸 한문으로 써 놓자 찬 교수가 나와 합세하여 설명 한다. 조금 후 일본 교수 한 명도 합해 동양인 3 명이 나서서 한참 설명 하니까 호주인들이 “상황 설명으로 짐작은 간다”고 했으나 얼굴 표정을 보니까 완전한 이해는 못 했다. 나중 우리 세 명은 “그 날 동서양 문화 차이를 실감했다”며 웃었다. 우리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단어들 정(情), 인격(人格), 의리(義理) 등도 영어로 설명 할 때는 애를 먹는다. 동의어가 없기 때문이다.

1983년 2월 나는 싱가포르에서 제일 유명한 거리 오차드(Orchard)에 있는 어느 호텔에 check-in 한 후 찬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곧 내 호텔로 와서 나와 반갑게 만났다. 그는 나를 뉴턴 서커스(Newton Circus)란 곳에 데려가서 저녁을 산다. 노천 식당가인 데 없는 음식이 없다. 특히 해산물이 풍족했다. 이후 내가 싱가포르에 갈 때 마다 내 단골 장소가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싱가포르 최강이라는 두 명이 바둑세트를 들고 내 호텔에 나타난다. 나는 세 명의 2단에게 4점 접 바둑을 새벽 4시까지 두었다. 그들이 현재 싱가포르 바둑계의 지도자들이다. 잠을 네 시간이나 잤을까? 전화로 티안 교수가 날 깨운다. “아침식사 하고 싱가포르 대학에 가서 대학 탁구챔피언과 시합이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호텔에서 부페로 아침을 하고 10시에 싱가포르 대학에 갔다. 대학 체육관에 수 십 명이 나를 박수로 환영해 준다. 그 곳 챔피언과 나는 21점 5세트 3 승제 탁구를 쳤다. 하루 종일 비행기 타고 밤새도록 바둑 두고 잠은 조금만 자고 탁구를 두 시간쯤 쳤다. 내가 그 때는 어지간히 건강했나 보다.

▲ 과수원(Orchard) 이란 이름의 오차드 거리는 싱가포르의 중심지다.

▲ 오차드 거리 호텔이 모인 지역.

▲ 뉴턴 서커스(Newton Circus) 노천 식당가.

점심은 중국 촌에 가서 먹고 찬 교수는 나를 그 근처에 있는 힌두교사원으로 데려 간다. 힌두교는 인도의 종교다. 신(神)이 많은데 나는 그 중 비슈누(Vishnu)와 시바(Shiva) 정도 이름을 기억 한다. 이 종교는 창설자도, 선지자도, 교리체계도 없다. 종교보다는 인도인들의 생활신조(Creed of life)에 가깝다. 싱가포르엔 의외로 인도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힌두교는 소를 성스러운 동물이라고 여겨 먹지를 않는다. 인도의 유명한 신분제도(Caste)도 힌두교 산물이다. 세분하면 수 천 개로 나뉜다지만 대표적인 네 계급이 있다.

▲ 시바(Shiva) 신의 명상 시바 신이 산다는 성스러운 산 카일라쉬(Kailash 티벳).

창조의 신 브람마의 입에서 나왔다는 브라만(Braman-성직자, 학자), 팔에서 나왔다는 크샤트리아(Kshatriya-왕, 무사), 허벅지에서 나왔다는 바이샤(Vaishya-상인) 그리고 발에서 나왔다는 수드라(Shudra-농공업, 노예)가 있다. 닿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는 불가 촉(Untouchables) 천민(賤民)인 수드라가 베다 경전을 몰래 엿들으면 귀에다 끓는 쇳물을 붓고 입으로 경전을 외우다 들키면 혀를 잘라냈다. 그들은 내세에서 좋은 곳에 갈 자격도 안 되는 천민들이었다. 1947년 법으로 계급제도를 없앴으나 아직도 인도 사회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민 사이는 양호한 편이다. 나는 12억 인구의 인도는 종교 때문에 발전을 못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IT산업에 인도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최근 눈 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 내가 가 본 중국 촌 근처 힌두(Hindu)교 사원 지붕.

힌두교 사원에서 나와서 찬 교수는 나를 전자시장 자기 단골 가게로 데려 간다. 당시 싱가포르는 물건이 아주 쌌다. 나는 몇 가지를 샀는데 그 중 17불에 산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 다리미는 집 사람이 20년쯤 썼다. 이 사람은 지금도 “다리미 중 최고”라고 한다. 내가 싱가포르에 2박 3일 있는 동안 티안 교수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돌봐 준다. 바둑으로 맺어진 우정(友情)이다.

2. 바둑사범 파견
몇 달 전 다니엘(Daniel)이란 싱가포르 청년이 내 교실에 몇 번 출석했다가 싱가포르로 돌아 갔다. 그는 유창혁 도장에서 바둑을 배웠다. 얼마 전 그 곳 총무가 나에게 “혹시 이하진 사범의 바둑영어 선생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반가와 하며 자기가 다니엘이라고 한다. 그가 싱가포르 바둑협회 총무가 되고 자기네 명예 회장인 티안 교수와 내가 친구인 걸 알아 냈다. 얼마 후 싱가포르에서 나에게 한국 프로기사 한 명을 보내 달라고 E-메일이 왔다. 중국 말을 하면 더 좋겠다고 한다. 내가 우리 교실회원 김성룡 9단에게 부탁했더니 “아! 중국어라면 박승철 사범을 보내면 되겠네요. 가서 말해 보겠습니다” 하더니 다음 주에 와서 “승철이가 아직은 여기서 승부를 더 해보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구해 보겠습니다” 하고 몇 주가 또 지나 간다.

이 동안 나도 알아 봤으나 마땅한 사범이 얼른 안 찾아 진다. 싱가포르에는 이미 중국 프로 2명과 대만 프로 1명이 활약하고 있다. 내가 얼른 사범을 못 구하니까 싱가포르는 한국기원에도 직접 의뢰했다. 나는 이 무렵 내 학생 중 조미경 초단을 추천했다. 미경이 영어가 지난 1년 동안 눈에 띄게 늘었다. 만 20세 밖에 안된 처녀가 혼자 객지생활을 하는 게 꺼림직했으나 본인이 인도와 베트남에서 객지 생활도 해 봤고 결심이 선 것 같아 추천했다. 싱가포르 측 첫 반응은 미경이 이름을 한문으로 알려 달라는 거였다. 미경이가 한국기원에 보고했더니 기원 측이 “다른 사람들도 응모할 기회를 주기 위해 몇 주 더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와 사범 일로 요즘 E-메일을 자주 주고 받다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가 그들 바둑계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 조미경 사범(우)과 이하진 사범. 교실에서

3. 공짜여행
15 년 전쯤 일이다. 방학 동안 내 아들 오람이를 데리고 시드니에서 싱가포르 경유 한국 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 도중 기내 방송에서 “싱가포르에서 한국 행 예약이 잘 못되어 승객이 겹치게 되었다. 여러분 중에 싱가포르에서 이틀 동안 묵을 사람이 있으면 신청하길 바란다. 호텔 경비와 1인당 하루 4백 불씩 주겠다”는 방송이 나온다. 내가 제일 먼저 신청했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한국 아가씨 몇 명에게도 통역을 해 주며 “바쁘지 않으면 싱가포르 구경도 하고 돈도 벌자”고 했더니 좋아한다. 나는 자식 놈에게 싱가포르 구경 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게 왠 떡이냐” 하며 좋아했다. 방학이라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던지 있다. 호텔은 공짜고 주머니에 생각도 안 했던 1600불이 생기니까 횡재한 기분이다.

다음 날 우리는 하루 종일 싱가포르를 일주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돌았다. 아랍인 지역, 보태닉 가든(Botanic Garden-식물원 공원), 형제가 시작했다는 “Tiger oil” 만드는 공장도 가보고 전망대와 열대 식물이 가득한 외곽지대도 다 돌아 보았다. 이렇게 도니까 싱가포르가 작은 나라라는 생각이 안 든다. 맛 있는 것도 사먹고 저녁에 백화점에 가서 오람이에게 50불을 주며 “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사라” 하고 선심을 썼다. 그런데 이 놈이 나에게 “아버지가 제 8백 불도 가지셨잖아요. 저 고급 진바지 하나 사게 150불쯤 주세요. 저기 봐 둔 게 있어요” 한다. “이 놈아, 너 아버지 주머니에 있는 걸 네 돈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니?” 하니까 이 놈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150불 만 주세요” 하고 조른다. 내가 천 6백 불을 받아 넣을 때부터 이놈은 “저 중 8백불은 내 거” 하고 응큼하게 골통을 굴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돈을 주었다. 이 놈이 영어를 못 알아 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 때 여행은 내가 싱가포르 전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다른 때는 사람을 만나거나 같이 간 사람이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없거나 해서 식당이나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내 자식을 데리고 느긋하게 샅샅이 돌아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 번엔 유럽 가는 길에 싱가포르 공항에서 9시간 기다려야 했다. 창이 공항은 한 때는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공항이었다. 지금도 분위기가 고급이다. 내가 고스톱을 시작하는 한국인들에게 “여기서 택시로 30분만 가면 싱가포르 시내인데 가서 7시간쯤 구경할 시간이 있습니다. 잘 모르시면 내가 안내를 도울 수 있습니다” 했더니 “우리는 고스톱이 더 좋아요. 그냥 다녀 오십시오” 한다. 시내에 나가서 실컷 돌아 다니다가 공항으로 돌아오니까 그 사람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게임’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쯧쯧

▲ 싱가포르 시내. 최고 70층 건물은 한국 건설회사가 지었다고 한다.

2004년 11월에 나는 스카이 바둑 TV 유럽 취재 단 단장으로 유럽에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 들렸다. 프로 기사는 윤영선 사범과 강승희 사범이 동행했다. 우리가 낮에는 총통 관저, 중국 사원, 중국 촌, 오차드 거리 등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강변 유람선을 탔다. 야경이 생각 보다 화려했다. 저녁은 해산물로 먹으면서 인생과 남녀관계에 대해 얘기했다. 영선이가 속으로는 독일 하노버에 있는 라스무스를 만날 생각에 들 떠 있으면서 나에게는 시치미를 뚝 때고 얘길 안 했다. 영선이는 나에게 오래 동안 배워서 제자지만 가깝다. “네가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앙큼하게 나에게까지 포커 페이스를?”

▲ 강변 유람선에서 보는 시내.

▲ 싱가포르에서 저녁을 먹는 나와 영선

나는 베를린에 도착한지 나흘 만에 갑자기 부친상을 당해 급히 귀국했다. 내가 유럽으로 떠나면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더니 나에게 “네가 돌아 오는 날 나는 지방에 강연하러 가 있을 거다” 하셨는데 92세를 한달 남겨두고 “오늘은 몸이 좀 안 좋다” 하시곤 그 날 밤에 돌아 가셨다. 그렇게 건강하셨는데. 나는 바둑여행 때문에 맏아들인데도 아버지 임종을 못 지킨 불효자가 되었다. 한편 유럽에선 내가 없는 일행에게 라스무스가 합류해 많이 도와주었다는 얘길 나중에 들었다.

▲ 하노버에서 만난 영선이 신랑 라스무스(키 197cm). 나와 석 점 대국. 영선이와 사귀면서 시치미를 땠다.

4. 싱가포르 바둑 역사
1981년 일본에서 거행되는 세계아마추어바둑대회에 싱가포르가 초청되면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뽑을 아무런 공식 기구가 없을 때였다. 그래서 바둑인 39명이 모여서 싱가포르 바둑협회 (Singapore Weiqi Association)를 결성하게 된다. 이 모임을 주도한 티안(田银河-Tian Yin He) 박사가 초대회장이 된다.

▲ 티안 교수 부부와 오청원 선생 부부 (2009년 4월)

5. 바둑인구
클럽 등록인원(Paid members) 1천 명. 전체 인구 약 1만 명. 독일 인구가 8천 3백만인데 바둑인구는 2만 명쯤이다. 싱가포르는 5백만 인구에 1만 명 바둑인이 있다. 역시 동양 권이라 바둑보급이 훨씬 빠름을 알 수 있다. 태국은 바둑 인구가 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6. 클럽(Clubs)
현재 매주 바둑강의를 하고 있는 클럽은 비샨(Bishan)과 부기스(Bugis)가 있다. 이 중 부기스는 대만의 응창기 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다.

▲ 응창기 재단에서 구입한 부기스 클럽. 싱가포르 협회 보다 더 크다.

7. 현 집행부(제15대)
회장: 커 진 장(柯金章 Ke Jin Zhang)
총무: 천 한 송(陈汉松 Chen Han Song)
재무: 카이 보 마오(蔡博茂 Cai Bo Mao)

■ 집행부 전체 명단

명예회장(Honorary President)
Dr. Huang Shang Zhe(黄上哲)
Dr. Tian Yin He(田银河)
자문 (Honorary Adviser)
Yao Kai Bai(姚开百)
회장 (President)
Ke Jin Zhang(柯金章)
부 회장 (Vice President)
Chen Ding Chuan (陈丁川)
 Fu Qi Fa (傅启发)
 Zhao Zhi Gang (赵志刚)
총무 (Secretary)
Chen Han Song (陈汉松)
부 총무 (Assistant Secretary)
 Zheng Min Yi(郑敏怡)
 Huang Yong Han(黄勇翰)
재무 (Treasurer)
Cai Bo Mao(蔡博茂)
부 재무(Assistant Treasurer)
 Guo Wen Jun(郭文俊)
위원 (Committee Member)
Dr. Tian Yin He (田银河)
Dr. Gao Chu ren (高初人)
Chen Jia Cheng (陈嘉成)
Tang Xiao Song (唐小松)
Chen Yi Rui (陈奕锐)
Fu Chuan Lin (傅川林)


8. 바둑강자 (Strong players)
현재 싱가포르는 두 명의 6단이 있다. 한 명은 천 지아 청(Chen Jia Cheng-陈嘉成 23세)이다. 6 살 때 바둑을 배워 기력(棋歷)이 벌써17년이다. 그는 국내 대회는 물론 2009년 일본 세계대회에서 6위를 했고 삼성 마스터스에 출전권을 얻었다. 다른 한 명은 장 시앙(Zhang Xiang-张翔)으로 9세 때 시작해서 지금 20세다. 기력 11년의 그는 2007 한국 국무총리 배에서 11위를 했다.

▲ 다니엘(좌)과 최 강자 천 6단 다니엘이 군복무 중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9. 프로기사(Professional players)
두 명의 중국 프로기사 양진화(杨晋华) 6단과 강잔빈(康占斌) 6단이 있다. 대만 프로 시아시엔위(夏衔誉) 2단이 싱가포르 바둑협회 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싱가포르협회 측은 나에게 얘길 안 했으나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양6단이 중국으로 돌아 가야 하기 때문에 그 후임으로 한국 사범을 찾는 거라고 한다.

▲ 중국 프로기사 강잔빈(康占斌) 6단의 어린이 교실.

10. 기도 보급(Promotion programs)
싱가포르 협회는 매 6개월 마다 3일간 바둑 보급기간을 두어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각 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매주 열리는 바둑 교실에 참여한다. 바둑 교실은 연령, 급수에 따라 분류된다.

11. 국가 대항전(National matches)
매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가 돌아가며 ‘3국 정기대항전’을 주최한다.

12. 바둑 광(Baduk freaks)
바둑에 너무 열광한 회원 한 명이 자기가 바둑 돌로 목걸이를 만들어 매고 “안 벗겠다”를 선언한 후 아직 한 번도 안 벗었다고 한다. 만만치 않은 변태인 듯 ^^

13. 대회(Tournament)


승단대회 (Dan Upgrading Competition)
청소년 대회 (National Youth Weiqi Competition)
동 토아파요 대회 (Toa Payoh East Tournament)
초등학교 대항전
(Shoutan Cup National Inter-Primary Schools Weiqi Tournament)

퀴핑컵 중고생 대회
(Qiuping Cup National Inter-secondary Schools Weiqi Tournament)

란케컵 대학생대회
(Lanke Cup National Inter-tertiary Insitutions Weiqi Tournament)
싱가폴 토너먼트 (Singapore Weiqi Tourney)
싱가폴 바둑리그 (Singapore Weiqi League)

여자대회 (National Ladies Tournament)

페어대회 (National PairGO Tournament0)
마사고스 컵 국경일과 페스타수칸 바둑대회
(Masagos Cup National Day and Pesta Sukan Weiqi Competition)
상청컵 대회 (Chang Qing Cup (常青杯)
왐포아 전국대회 (Whampoa National Weiqi Championships)
주롱그린 속기대회 (Jurong Green Weiqi Fast Game Tournament)


▲ 한국에 바둑 공부하러 온 싱가포르 팀 강사 다니엘라와 디아나의 얼굴도 보인다.

▲ 박정상 9단, 원성진 9단, 이창호 9단과 함께

▲ 싱가포르 항공 스튜어디스

▲ 단위증서

▲ 싱가포르 바둑협회 정문

▲ 바둑협회 내부.

▲ 오자(왕좌) 전 싱가포르 대회.

▲ 결승전과 패어 결승전

▲ 우리교실에 나온 바둑학과 싱가포르 입학생 신디 림(왼쪽 사진)과 이성준(좌), 조미경 사범(우)

국기
▲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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