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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바둑에 스토리를 입혀라!

아산복지문화원 이상욱 원장

김종서 작가2009-11-19 21: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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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욱 원장.

S#1. 바둑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갚고 싶다

바둑계는 불황이라고들 하는데 전국 곳곳에서 바둑대회는 끊이지 않고 열리는 중이다. 인터넷을 통해 바둑을 즐기는 인구를 살펴봐도 하룻밤 동시접속 인원이 10만 명쯤은 가볍게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바둑은 아직 시들지 않았다. 한때 왕성했던 바둑의 활력을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프로기사들을 비롯해 바둑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요즘의 화두가 바로 이 문제다.

"바둑에 스토리를 입히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둑계와는 조금 생소한 충남의 아산복지문화원 이상욱 원장이 오래전부터 입버릇처럼 외친 주장이다. 그냥 구호뿐이 아니라 그는 나름대로 치밀한 설계도를 그린 뒤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어 화제에 올랐다. 바둑 스토리 소재들을 수집해 다양한 콘텐츠로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동안 소수의 바둑 천재들이 한국바둑을 이끌어왔고 그들이 감동의 스토리로 팬들을 열광시켰지요.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파종과 보급으로 확산된 겁니다. 최근 한국바둑이 침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수확기를 앞둔 벼이삭을 연상합니다. 이제는 바둑 팬들이 바둑에 대한 열정과 존경심을 보여줄 때 아닐까요?"

멋진 표현이다. 따지고 보면 바둑과의 관계를 그 누가 설정한단 말인가? 내가 바둑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바둑 자체를 사랑한다면 바둑 인이라 해도 우스울 이유가 없는 것.

"맞습니다. 바둑계의 범위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요.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바둑 콘텐츠의 성공사례로 일본의 ‘고스트바둑왕’이란 만화를 들잖습니까? 그 원작자도 바둑을 전혀 모르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고정관념이 없어 창의력이 극대화된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일본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바둑도 지금쯤은 뭔가 그럴듯한 감동의 스토리가 콘텐츠로 생산되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바둑 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웅변은 무성했지만 소문나지 않게 한 걸음씩 어디에서 누군가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놀랍다.


▲ 도신스님과 함께.

S#2. 비타민 행정을 외치다

이상욱 원장은 충남 지역에서 '행정의 달인'으로 꽤 알려진 인물. 사무관으로 출발해 24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통해 '비타민 행정'의 진수를 선보이며 자신이 근무한 지역마다 강렬한 에너지를 유감없이 떨쳐 귀감이 됐었다.

중앙정부 행자부 정보화 팀장으로 재직할 때 전국 시군구와 시도 중앙부처 간에 정보교류를 할 수 있는 '행정정보망'을 구축했고, 충남도에서도 정보화 담당을 맡아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결재 및 정보의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충남 복지환경국장으로 일할 때는 하천의 물 관리 시스템과 광역 생태 네트워크를 설계했으며 서산부시장을 맡으면서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관광자원 화하고 지역 특산물인 육쪽 마늘 유통 일원화 사업을 통해 모든 농가의 마늘을 일괄적으로 전량 수매하는 체계를 세웠다.

"지역 행정도 바둑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가 담론으로 변화하는 과정 아닙니까? 수많은 정보들은 말 그대로 데이터에 불과하지요. 축적된 정보를 어떤 목적에 맞게 잘 가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침없는 해석이다. 행정이야 그의 전문분야이므로 그렇다 치지만 어떻게 바둑에 스토리텔링을 입힐 생각을 했는지 그 동기가 궁금했다.

▲ 지금은 취재중…

"서산 부시장으로 재직할 때 어떻게 하면 독특하고 멋진 바둑축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바둑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바둑 인들의 열정이 대단해서 그 분들과 의기투합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연이 맺어지지 않아 미완의 설계로 그치고 말았지요. 그러다 우연히 1970년대 경남 고성에서 많은 바둑청년들을 조건 없이 후원했다는 권재룡 박사의 스토리를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권 박사의 병원 옥탑 방에 기거하면서 바둑 공부를 했던 그 청년들이 오늘날 전국 각지에서 나름대로 활동하면서 바둑문화를 보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의 숨결이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셈이죠. 이렇게 보석처럼 아름답고 눈물겨운 스토리가 발굴돼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냥 전설로 흘러 다니고 말았을 겁니다. 구슬은 꿰어야 염주도 되고 목걸이도 됩니다. 저도 바둑은 하수지만 한때 조훈현, 조치훈, 이창호의 전성시대에 열광하고 감동을 받았던 바둑 팬 중 한사람입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저를 기쁘게 해주었던 바둑에 보은하고 싶습니다."

바둑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는 표현이 겸손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참여의 의지가 강하게 실려 있다. 또 다소 쑥스럽지만 필자가 집필한 타이젬 스페셜 ‘낭만기객 권재룡’을 읽고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니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아산복지문화원 안에 집필실을 마련해놓을 테니까 언제든지 답답할 때 동료 작가들과 함께 내려와서 콘텐츠 작업을 하세요. 숙식은 걱정마시구요."

황송하게도 그가 필자에게 그런 식으로 베팅을 걸어왔다. 맑은 눈빛, 호탕한 웃음, 가식이라고는 한 점 찾을 수 없는 선의를 읽을 수 있었다. 아울러 아산복지문화원 연구과제 중 바둑 콘텐츠 개발 사업이 확실하게 들어있어 마음에 들었다.


S#3. 바둑 콘텐츠 공모전 어때요?

"지금은 제가 운영하는 연구원 차원에서 추진하는 바둑 스토리텔링 사업이 지극히 소소하고 미미한 움직임이겠지만 언젠가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리라 확신합니다. 바둑은 동양정신문화를 상징하는 예도이자 마인드스포츠로 우뚝 설 겁니다. 막연한 구호로 ‘바둑종주국’을 주창할 게 아니라 바둑계 문화부터 비옥하게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욱 원장은 격정적으로 '바둑 콘텐츠대전'을 제안한다. 바둑계에서 틀을 만들고 바둑을 후원하는 기업들이 힘을 모아 최대의 상금을 걸고 바둑 콘텐츠를 공모해보자는 이야기다.

"다른 분야 공모전처럼 바둑이란 테마를 걸고 장편소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사료, 논문 등을 공모하는 겁니다. 당선 상금으로 1억 원 정도 걸면 재능 있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각 장르마다 골고루 상금을 안배하면 아주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오겠지요. 입상하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도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작품이 꽤 있을 겁니다. 그렇게 확보한 작품들을 출판화, 영상화합니다. 원 소스 멀티 유스 개념이죠. 핸드볼과 스키점프 등의 종목이 영화화되어 국민의 관심을 끌었듯 바둑도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강한 임팩트로 다가서야 합니다."

이런 제안이 정부의 문화담당자나 바둑계 인사들로부터 나오고 강력하게 추진되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추리해본다. 생산성과 효율을 떠나 이상욱 원장의 '바둑 콘텐츠 대전' 제안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머리에서 가슴까지도 중요하지만 가슴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실행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그의 발언이라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 시대에 과연 바둑은 기회를 맞고 있을까? 아니면 위기에 당면한 것일까? 사소한 소음에도 휘청거리는 바둑계의 문제는 '과연 누가 주인인가?'라는 물음과 닿아있다. 프로기사와 한국기원, 그리고 대한바둑협회를 비롯한 바둑단체들이 주인일까? 아니면 바둑을 좋아하고 저변을 형성하는 바둑 팬들이 주인일까?

이런 화두에 정면으로 던지는 대답이 바로 이상욱 원장의 '바둑 스토리텔링 작업'이라고 여겨진다. 바둑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보답하겠다는 의지, 그것이 바로 바둑 팬이 바둑계의 주인이 되는 참여운동의 첫걸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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