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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선비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군 입대를 앞둔 조한승 9단

김종서 작가2009-11-30 09: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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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해맑은 선비의 기풍


허허벌판 상암동의 바람은 칼날 같았다. 타이젬 본사가 입주한 누리꿈스퀘어 광장에서 조한승 9단을 만났다. 미소를 달고 다니는 청년이지만 어쩐지 오늘의 미소에는 희미한 우수(憂愁)가 그늘이 느껴진다.

필자 : 입대를 앞둔 감회가 어때요?
한승 : 담담합니다.
필자 : 스물여덟인데 너무 늦었잖아요? 군에 가면 중대장과 비슷한 나인데.
한승 : 제 사정으로 늦었으니 감수해야죠 뭐.

역시 명쾌하고 담백한 대답이 돌아온다. 한참 성적을 내고 있는 정상급 프로기사가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오랜 시간 바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안타깝다.

올해 조한승 9단은 64전 42승 22패를 기록했고, 제1회 BC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요즘 잘나가는 신예 안형준과 일본의 희망 이야마유타, 중국의 기대주 황이중, 절대강자 이세돌까지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구리와 맞붙었다. 그날이 정확하게 7개월 전인 4월 30일. 필자는 타이젬 기획뉴스로 조한승을 소개한 적 있었다. [漢乘, 오늘은 위해 준비한 이름]이란 제목을 기억하시리라. ☞관련기사 바로가기

그가 중국대표 구리를 꼭 제압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편파적(^^) 소망을 담아 이름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한나라 漢 오를 乘의 조합이니 중국을 올라탄다는 이름 아니냐는 해몽이었다. (그런데 구리한테 3:1로 지고 말았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그 작명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의 기풍을 개인적으로 흠모하기 때문이다.


▲ 올해 열린 조한승과 구리의 BC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대국 장면.

최근 세계대회를 휘젓고 다니는 중국기사들의 기풍은 굉장히 거칠고 사납게 느껴진다.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가능하면 상대의 주문을 거스르고, 상대가 거북해하는 곳을 짚는다. 프로기사들의 속어에 의하면 ‘갈구는 바둑’인 것이다. 집단적으로 최신 포석을 연구하고 실전적 기풍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역설적으로 통할 수 있는 기풍이 조한승流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조한승의 바둑은 유장하고 청아하며 아름답다. 화사한 백도(白道)의 바둑이다. 승부를 서두르지 않으며 모양을 중시한다. 오다케의 미학(美學) 타이틀을 물려줘도 아깝지 않으리라. 천하의 이세돌을 꺾은 조한승의 부드러운 탄력을 주목하시라. 그때 그렇게 표현했다. 젊은 기사들의 의견도 대체로 그러하다.


▲ 프로기사vs당구여고수 대결에서 복식조로 이재웅과 조한승이 경기를 하고 있다.

이재웅 : 깔끔하죠. 대세를 잘 읽고 좋은 모양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맥을 잘 짚어요. 완력도 아주 강합니다. 오래 정상권에 머물 바둑입니다.
송태곤 : 타협과 조화의 바둑이라고 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두지요. 부딪히기보다 절묘한 타협책을 통해 판을 짜갑니다.

조한승의 외모와 기풍에서 선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항상 의연하고 올곧으며 당당한 조선의 선비. 그가 바둑을 두면 화선지에 난(蘭)을 치는 붓 길이 보인다. 정갈한 모래 틈에 뿌리를 내리고 이슬을 받아먹고 사는 난초(蘭草) 를 한 획에 그리는 손이 보인다.

S#2. 이관철 사범을 울린 꼬마

1982년 11월 27일 생이니 엊그제 미역국을 먹었겠다. 바둑은 외갓집에 놀러갔을 때 이모부들이 두는 걸 보고 흥미를 느껴 연을 맺었다. 그가 살던 동네에 바둑교실을 찾기 어려워 일반기원에 다니며 배웠고, 현대바둑교실에 등록한지 1년 만에 어느 정도 기리를 터득했다.

초등학생 시절 전국대회에 몇 번 나갔지만 통쾌한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소년 목진석이나 이세돌의 기세가 등등했을 때다. 영재바둑교실과 김희중 바둑살롱 등을 전전하다 최종적으로 안착한 곳이 이관철 사범의 품이었다.

조한승의 아버지가 어느 대회에서 열성적으로 제자를 지도하는 이 사범의 모습을 보고 무작정 찾아가 아들을 떠맡겼다. 그래서 이관철 사범의 집에 내제자로 들어간 것이다. 이 사범은 딸만 둘을 두어 조한승을 아들 삼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1993년 5월에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고, 1995년에 이세돌과 함께 프로에 입단했다.


▲ 조한승 9단의 스승 이관철.

“연구생 시절 10급부터 시작해 한 번도 강급되지 않고 올라갔어요. 한승이는 희한하게 결정적인 대국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입단대회에서도 이세돌을 꺾었지요. 중요한 판을 앞두고 우리는 내기를 했습니다. 이기면 뭐든지 사준다고 했는데 이 녀석이 꼭 이겨버리지 뭡니까? 관철동에서 통닭이며 피자, 돼지갈비 엄청 사줬습니다. 하하하”

이관철 사범의 증언이다.

“어릴 때 기재도 뛰어났지만 집중력이 굉장했어요. 바둑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하면 마지막 장을 덮어야 나왔거든요. 무엇보다 한승이는 너무 착하고 단정한 아이라서 한없이 정이 갔습니다. 제가 술을 좋아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셨는데 한승이를 맡고부터 독하게 끊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된 이후로 그처럼 오래 금주한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에휴, 프로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는 성에 차질 않고 세계 최고로 뒷바라지할 생각이었습니다.”
제자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자꾸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자꾸 아쉽다는 눈치였다.

“휴우, 한 마디만 더 할게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한승이랑 함께 살 때였습니다.” 이 사범이 내뱉은 한숨의 의미가 무엇일까? 입단하고 출가시켜야 했던 아쉬움일까? 아니면 활짝 개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입대하는 제자가 안타까워서일까? 그의 한숨에 묻어나는 물기가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 명인전 결승에 올랐던 조한승. 이세돌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07년 10월.


S#3. 절대지존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더라도


13세에 입단한 조한승은 바로 그 해에 본선무대에 진입했고, 2001년 신인왕전에서 우승하면서 61승 23패로 최다대국, 최다승을 기록했다. 그때부터 매년 기록적인 대국과 승률을 기록하며 상위권에 랭크됐지만 큼직한 타이틀을 거머쥐진 못했다.

준우승 전문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다 2002년부터 3년 연속 엘지배 4강에 진입해 세계무대에 서 이름을 알렸고. 2006년 박카스 배 결승전에서 이세돌을 3:1로 꺾고 본격기전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TV바둑아시아 대회에서 두 차례, BC카드배에서 준우승 기록을 올렸다.

그러나 타이젬의 유저들에게 조한승은 ‘절대지존’으로 통한다. 초창기부터 절대지존9단은 타이젬 최고의 승부사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바둑조폭9단과 쌍벽을 이루며 밤마다 유저들을 열광시켰던 주인공이 바로 조한승9단이다. 사이버공간에서는 그 어떤 아이디와 붙어도 상대전적에서 거의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무수한 유사 아이디가 따라 다니곤 했다.(잘때지존, 절머지존 등^^)

필자 : 요즘은 잘 안 보이던데요“
한승 : 좀 바빴잖아요. 이상하게 타이젬은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뒀다 하면 계속 두게 돼요.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입실하더라고요.
필자 : 하하 그건 우리 하수들하고 다르지 않군요.
한승 : 그러게요.
필자 : 천상천하 유아독존 절대지존이 이제 이등병이 되는군요.

다시 군 입대로 화제를 슬쩍 돌려본다.
한승 : 괜찮습니다. 그 동안 조한승은 2% 부족하단 말씀들 많이 하더군요. 그 부족한 2%를 채워서 돌아오겠습니다.

캬아! 정말 듣고 싶었던 대답을 쪽집게처럼 뽑아 내민다. 왠지 가슴이 뿌듯하게 차오른다. 타이젬 회원들께서도 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믿는다.

조한승의 입대가 아쉽고 아쉬운 것은 병역특례의 커트라인 때문이다. 그 동안 국제대회 우승으로 국위를 선양한 기사들(이창호,박영훈, 송태곤, 최철한, 박정상)다섯 명이 병멱 면제 혜택을 받았었다. 어디선가 2%만 채웠더라도 공백기 없이 승부에 전념할 수 있었을 텐데!


S#4. 선비의 마음에 무사의 눈빛을


선비의 어원은 ‘선 밝은 이’라 해서 보다 나은 것을 볼 줄 아는 이를 의미한다. 유럽의 기사도, 일본의 무사도와 비견해 우리에겐 선비의 도가 있다.
그 세 가지 모두 충성과 신의, 약자에 대한 배려, 명예를 중시하는 덕목을 지니고 있지만 선비가 돋보이는 것은 청빈의 정신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그 지적호기심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특유의 미덕 때문이다. 조한승에게서 선비의 풍모를 발견하고 그 미덕을 기대히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필자 : 군인은 무사지요. 승부사는 무사의 기질도 갖춰야 해요.
한승 : 그게 잘 안됩니다. 낙관파여서 그런지 항상 제 바둑이 좋아 보이거든요. 체질적으로 끊고 싸우는 그림이 거북해요. 웬만하면 타협하는 게 편합니다. 그리고 계산력으로 승부를 나눠 갖는다는 생각인 거죠. 상대를 갈구고 싶지가 않아요.

필자 : 헉,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밝혀버리네?
한승 : 하하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합니까? 그렇지만 저만의 기풍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 기풍으로 그 어떤 누구와 맞서도 일방적으로 밀릴 거란 느낌이 들지 않아요.
필자 : 오오! 화끈한데

그 누구도 존중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쉽게 질 것 같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창호와 이세돌과도 나름대로 상대전적의 저울추를 맞추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낙관과 긍정의 체질을 바탕으로 그는 군대생활을 아주 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부대에서 말뚝을 권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해질 무렵 그와 타이젬을 빠져나왔다. 시내로 가는 길에 오래된 굴다리가 보인다. 12월 15일 조한승은 머리를 깎고 춘천의 보충대로 떠날 예정이다. 그 앞에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구가 있으면 출구도 있게 마련이다. 조 선비. 뒤돌아보지 말고 당당히 걸어 들어가라. 거기 가서 무사의 눈빛을 얻어 돌아오길 바란다. 다시 와서 진정한 절대지존의 기상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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