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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그리움으로 쓰는 음악 편지

아픈 아내를 간호하며 음방을 연 미래편지 1단

김종서 작가2010-01-25 11: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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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아득한 시간을 선율로 채우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심할 때가 바로 배우자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을 때라고 한다.
내 옆 지킴이와의 그런 이별을 상상해보시라.
홀로 남은 내 아픔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떠나가는 님의 아픔이 극심할까봐 그것을 견딜 수 없는 것.
타이젬 고수2방에서 자주 음방을 여는 미래편지 1단의 방제는 '가슴이 시리도록 좋은 곡만 모아서'이다.
슬픈 엘레지가 가득한 방이다. 신청곡도 받지 않고 오직 방장이 틀어주는 레퍼토리를 스트레이트로 들어야 하는 방이다.


▲ 왼쪽부터-미래편지, 진재호 바둑평론가, 김종서 작가.

그 방의 DJ는 올해로 53세인 김병운 씨.
선곡의 수준으로 도저히 그가 그 연배의 남성이리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왜 아이디를 미래편지로 작명하셨나요?
"제 아내에게 오래도록 편지를 쓰고 싶어 그랬습니다."

강남 수서에서 만난 미래편지 1단은 눈매가 부리부리한 사나이였다. 서두에 언급해서 눈치 채셨겠지만 그는 몇 해 전 사랑하는 아내의 장례식을 먼저 치르고 홀로 남은 싱글이다.
아직 아이들이 학생이라 재혼을 생각할 법도 하건만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생각한 적 없습니다. 한 여자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남자가 뭘......"

그의 대답에서 자책과 우울이 뚝뚝 묻어난다.

-불치병으로 고생하셨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다발성 경화증이라고 해서 하반신부터 점점 위로 굳어져가는 병입니다. 6년간 움직이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고생했지요."


▲ 미래편지.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내가 너무 고생을 해서 병을 얻은 거라고 생각했다.
전남 여수 출신의 그는 16세 때 무작정 상경해서 면목동 가방공장에 들어가 재봉기술을 배웠다. 이후 옷 만드는 공장으로 옮겼다가 81년 운명적으로 아내를 만났다. 그의 자취방에 찾아와 양말을 빨아주는 그녀가 얼마나 예뻤는지 몰랐다.
그녀와 결혼을 한 뒤 밤잠 설쳐가며 함께 일을 해 돈을 모았고 집을 사러 다니던 차에 그만 아내가 쓰러져버렸다. 누운 뒤로 영원히 일어나지 못 했다.
그는 집 살 자금으로 의료용 침대와 산소호흡기를 비롯해 모든 의료장비를 구입해 집에서 아내를 간호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겨운 사연이 알려져 2003년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방송되기도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는 6년 넘게 집에 머무르며 아내를 간호했다.
아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자신도 뭔가를 해야겠다싶어 타이젬에 음방을 열었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심야에 귀가하므로 음방은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진행했다. 아득한 시간을 선율로 채우는 것, 그것이 미래편지 1단이 음방을 연 사연이다.


S#2. 잊을 수 없는 타이젬 친구들

"아버님이 여수에서 소문난 상쇠였지요. 우리 마을 만성리에 5백년 된 당산나무가 네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서 종종 제(祭)를 지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이 농악 패를 이끌며 신명나게 꽹가리를 연주했습니다. 제가 체계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진 않았어도 아버님을 닮아 리듬감은 좀 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할 장소가 여의치 않아 초저녁에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동행한 이는 진재호 기자와 이정환 기자.
타이젬의 마당발 진재호 기자는 미래편지 1단의 극렬 팬이다. 항상 그 음방에 들어가 노래를 들으며 기사를 쓴다고 한다.
미래편지 1단은 노래도 참 잘 부른다. 역시 슬픈 노래다.
부르면서 눈을 감는다. 마음으로 울고 있음을 듣는 이가 느낀다.
어쩌면 저토록 애닯게 떠나간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한다기보다 그리운 거죠."

그는 가끔 울고 싶을 때 아내를 찾아간다고 했다. 묘소가 따로 있지 않고 경기도의 어느 숲이라고 말했다. 그 숲속에서 실컷 아내와 대화하고 돌아온다.


- 아내를 간호할 때는 어쩔 수 없어 음방을 했지만 이제는 일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고컴퓨터를 고쳐 수출하는 일입니다."

지방 출장이 잦은데도 불구하고 미래편지 음방은 계속 되고 있다.

"이거 말씀드리기 참 민망하지만 작가님께 사실대로 밝힐까합니다. 아내가 아플 때 타이젬 수담동호회를 중심으로 기우님들이 제 사정을 알고 성금을 모아주셨습니다. 그 액수가 자그마치 350만원에 달했습니다. 너무 간절한 터여서 진실로 고맙게 받았지요. 이제 열심히 일을 해서 저도 제 앞가림은 할 정도 됐으니까 그때 받은 은혜를 보답해야겠는데 방법이 있어야죠. 가끔 동호회 모임이 있으면 표시나지 않게 참석해서 성의를 표하곤 합니다만 기우님들 사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음악으로라도 갚고 싶었습니다."

미래편지 음방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1백 여명 이상은 기본이고 아마 타이젬에서 가장 많은 청취자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제 방에 오시는 분들 중에 그때 저를 도와주셨던 분이 한 명은 있다고 봅니다. 누군지 알 순 없지만 그 한 분을 위해 음악을 들려드리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음방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S#3. 그녀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그는 다리를 심하게 전다. 어렸을 때 누나가 그를 업고 고무줄놀이를 했는데 강보에 매달린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다리가 꺾였다.
조속히 병원에 갔으면 치료를 받았을 텐데 동네 침술원에서 어설프게 침을 놓는 바람에 악화되어버렸다.
한 다리를 거의 쓰지 못했기에 일어설라치면 자꾸 넘어졌다. 그래도 뭔가에 의지하려면 어머님이 회초리를 들었다. 강하게 크라는 뜻이었다.
세상이 그를 자꾸 시련에 몰아넣었지만 미래편지 1단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랐고 저도 이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타이젬에 들어오면 언제나 반겨주는 친구들이 많으니 외롭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타이젬은 제 인생을 부축해 준 휠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우님들께 정말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그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타이젬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 안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고독한 사나이 미래편지 1단님께 시 한 수를 전해드릴까 한다.
이제 아프고 아팠던 그녀를 편히 떠나보내시라는 의미에서.


▲ 김종서 작가와 미래편지.

나무가 꽃눈을 피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 그 뒤안길에서
홀로 서있던 수국
그러나 시방 수국은 시나브로 지고 있다.

찢어진 편지지처럼
바람에 날리는 꽃잎
꽃이 진다는 것은
기다림에 지친 나무가 마지막 연서를 쓴다는 것이다.

이 꽃잎 우표대신
봉투에 부쳐 보내면
배달될 수 있을까?
그리운 이여.
봄이 저무는 꽃그늘 아래서
오늘은 이제 나도 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오세영의 시 -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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