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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파리

4명의 제자와 프라하, 이태리를 거쳐 파리로 향하다

한상대 교수2010-03-14 12: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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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수도 프라하(Praha)


▲ 프라하 바둑클럽과 교류전


▲ 다네크, 체플리 등 체코협회 간부들과 우리가 바둑클럽 근처 식당에 갔다.

1. 이틀 반의 자유
2007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3일 간 바둑행사를 끝낸 후 우리는 옛 동독 수도 드레스덴을 거쳐 체코의 프라하에 갔다. 체코 바둑협회 회장단과 나와 친한 체플리(Cieply), 다넥(Danek) 등이 우리를 맞아 준다.

체코 바둑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곧장 바둑클럽에 가서 교류전을 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밤 12시가 넘었다. 나를 제외 하곤 우리 일행이 프라하에 초행이라 유명한 ‘구 도시 광장’에는 가 봐야 한다. 그래서 늦은 밤이라도 나가겠다고 했더니 체플리 유럽연맹 이사(핵 물리학자)와 체코 바둑의 대명사인 다네크 5단, 체코 바둑협회 총무가 우리와 함께 나선다.

우리는 심야에 구 도시 광장으로 나갔다. 유럽 최초의 독일어 대학이었다는 프라하 대학 옆을 지나는데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라고 해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는 불꽃을 보며 우리는 속 없이 “우리를 환영하는 불꽃놀이다” 하며 환성을 올렸다. 이강욱 사범이 특히 프라하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 한다.

우리는 광장 부근을 한 시간쯤 거닌 후 나는 체플리 박사 집에 가서 자고 나머지 일행도 각자 자기를 재워 줄 바둑인 집으로 갔다. 나는 체플리와 새벽 두 시 너머까지 이런 저런 바둑 얘기를 한 후 잠이 들었다. 이렇게 각 자 바둑인 집에 배정 되어 갔는데 영어가 딸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우리는 내일 아침 9시에 바둑협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 밤의 프라하 성(城). 사진에 보이는 칼(Carl) 다리를 걸으며 우리는 야경을 즐겼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바둑클럽에서 모였다. 프라하 출발 전 나는 안영길 사범, 이강욱 사범, 홍슬기 베를린 사범(지난 2월 7일 이승현 바둑 TV 진행자와 결혼), 강경낭 사범(여자 연구생 1조)을 불러 모았다.
“우리가 파리 바둑클럽과 약속까지 이틀 반의 시간이 남았다. 너희들이 지금부터 알아서 일정을 짜라. 다만 사흘 후 정오까지 파리에 늦지 않게 도착하도록 해 다오. 지휘권을 영길이에게 주겠다.” 했다.

영길이는 일행 중 제일 연장자다. 영길이는 그 동안 나하고 여행을 많이 해서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원래 내 계획은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에 들린 다음에 독일 뮌헨(Muchen)에 갔다가 스위스의 취리히(Zurich)를 거쳐 프랑스로 가는 코스였다. 그러나 내가 짜는 일정은 강행군 성격이 있어 젊은 사람에게 한번 맡겨 본 것이다.


▲ 언덕 위로 잘츠부르크 성이 보인다. 영화 ‘사운드 오프 뮤직’에서도 나온다.

영길이가 주도하면서 4명이 함께 유럽지도를 놓고 한참 의논을 하더니 “저희가 코스를 결정했어요” 한다. 나는 이제부터는 모든 신경을 끄고 차창 밖 경치만 즐기면 된다. 첫 날은 체코 국경 근처 시골에 있는 쇼핑센터에 들렸는데 물건이 아주 싸다. 우리는 몇 가지 쇼핑도 하고 점심도 여기서 먹었다.

우리는 오후 늦게야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시간이 조금 늦어 우리가 가려던 모차르트(Mozart) 하우스나 페터(Peter) 교회 등 이 다 닫혔다. 나는 작년에 한해원, 이하진 사범과 같이 와서 잔 모텔에 갔다. 중국인 주인이 날 알아 보고 “왜 딸들은 안 데리고 왔느냐?”고 묻는다. 해원이와 하진이를 내 딸로 알고 있다. 이 집은 아리랑 TV가 나오고 깨끗하여 내가 다시 온 것이다. 우리는 그 근처 케밥(Kebab) 집에 가서 작년처럼 사 먹었는데 영길이가 케밥을 좋아해서 여행 중 내가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면 “케밥이요” 할 때가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일어나는 대로 시내에 가서 모차르트가 좋아했다는 페터 교회와 모차르트 하우스를 들렸다. 그 후 유명한 게테라이터 거리와 시장에 잠깐씩 들리고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잘츠부르크를 떠난 후 한 동안 슬기가 운전하고 영길이가 지도를 읽으며 네비게이터(Navigator ? 원래 항해사란 뜻이나 차에서 지도를 읽으며 방향을 알려 주는 사람도 이렇게 부른다) 노릇을 하며 남쪽으로 향한다.

나는 뮌헨에 가는 줄 알았는데 50km쯤 계속 남쪽으로 가서 베르펜(Werfen)이란 곳으로 간다. 이 곳은 세계에서 제일 큰 얼음동굴이 있는 곳이다. 슬기가 전에 얼음 동굴에 와 보고 감명을 받은 곳이라고 한다. 다른 일행에게 여기를 보여 주고 싶어서 영길이를 설득하여 방향을 이리로 틀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식으로 가면 내일 낮에 파리에 도착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맡긴 일이니까 잔소리는 안 하기로 했다. '나 같으면 이 시간에 뮌헨과 취리히를 볼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얼음 동굴에 도착한 후 "나는 전에 다른 곳에서 얼음동굴을 경험해 봤고 들어가면 춥고 고생스러워서 안 들어 간다. 나는 저 건너 편에 보이는 성에나 다녀 오겠다” 했더니 슬기가 “저희가 한 시간 반쯤 후에 나올 테니까 그 때 데리러 오세요" 한다.


▲ 얼음동굴 입구(왼쪽부터) 강경낭, 홍슬기, 안영길, 이강욱 사범

나는 산에서 차를 몰고 내려와 이 곳에 있는 유명한 중세 성(Hohenwerfen)을 방문 하기로 했다. 베르펜은 영화 “사운드 오프 뮤직”에서 나오는 유명한 “도레미 송”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내가 시내로 내려와 따뜻한 차를 한잔 하면서 현지인들에게 물어 보니까 “얼음동굴을 보고 나오려면 최소한 세 시간이 걸린다” 고 한다. 내가 “내 학생들이 한 시간 반 후에 데리러 오라고 했다”고 하자 그들이 웃으며 “최소한 그 두 배는 걸릴 거다”고 한다.

이 곳 성(城)은 알프스 산맥 중 잘자흐(Salzach) 계곡의 어느 산 꼭대기에 지어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인데 1075년부터 3년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40km 떨어진 잘츠부르크 성과 자매 요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산 꼭대기에 있어 서양 동화에 나오는 성 같다.


▲ 베르펜 성(Burg Hoenwerfen)은 1077년에 건축되었고 지금은 ‘중세 체험지’로 쓰이고 있다.

성(城)에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어 타고 올라갔다. 성에 들어가니까 ‘중세체험’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있다. 천년 전에 쓰던 무기와 물건들이 진열된 박물관이 있고 매를 시켜서 사냥하던 옛 관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성의 구석구석이 고색이 창연하다. 성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걸어 다니니까 그 것도 꽤 힘이 든다. 복도나 방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없을 때는 타임머쉰을 타고 내가 천년 전으로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나는 성에 한 시간만 머물고 얼음 동굴로 갔다. 나오는 사람들은 없고 차들만 길게 주차되어 있다. 내가 추워서 차에 히터를 키고 앉아 있는데 산 속이라 라디오 음악도 잘 안 나온다. 읽을 것도 없고 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정말 마을 사람들 말대로 3 시간도 한참 지나서야 우리 일행이 나온다.


▲ 얼음동굴에서 나와 차로 오고 있는 강경낭, 이강욱 사범

동굴 밖으로 나온 4 명의 얼굴이 추위에 얼어서 꼴불견이다. 경낭이가 차에 뛰어 들어 오더니 덜덜 떨면서 내 손에다 자기 손을 한참 비빈다. 경낭이 손이 얼음처럼 차다. 얼굴에 보라 빛이 돌도록 얼어 갖고 돌아 왔다. 내가 슬기에게 “세 시간이 넘는 코스를 한 시간 반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니? 내가 여기서 두 시간쯤 기다렸다” 하니까 “제가 전에 왔을 때 감으로 한 시간 반쯤 걸린 것 같아서 그랬는데 죄송합니다” 한다. 내가 “갈 길이 바쁘니까 서두르자” 하고 그 곳을 떠났다. 그 동안에 눈이 많이 와서 길 바닥이 몹시 미끄럽다.

구불거리는 산길이 위험하여 운전은 내가 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는 ‘볼보(Volvo 760)’ 신형이었다. 내가 차를 빌릴 땐 자동차 렌터카 회사를 모조리 뒤져서 값을 비교하여서 제일 싼 차를 고르는데 장기 렌트면 특별가로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차는 6기통에 고급인데 빌리는 값은 4 기통 소형 차보다도 쌌다. 우리가 운이 좋았다.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우리는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로 가야 한다. 영길이가 역시 지도를 읽으며 국경을 넘었다. 국경 통과비를 20유로나 받는다. 나는 스위스 역사에 대해 말해 주고 스위스 민속 ‘요들 송’까지 부르며 스위스에 온 기분을 한참 내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내가 “영길아, 여기가 스위스 맞니? 왜 분위기가 이태리 같지?” 하니까 영길이가 “스위스 맞아요” 한다.

한 30분쯤 더 달렸을까 영길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교수님” 한다. “왜?” 하니까 “다음 나올 도시를 보니까 저희가 이태리로 들어 왔네요” 한다. “어쩐지 꼭 이태리 같더라”

우리는 제일 먼저 나오는 출구로 나가서 다시 국경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벌써 날이 어둡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이태리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가 얼음 동굴 하나에 금 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제는 도저히 내일 정오에 파비앙(Febien)과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드디어 내가 열을 받았다. 영길이에게 “내가 너에게 이틀 반 동안 지휘권을 맡겼더니 결과가 겨우 이 모양이냐?” 하면서 화를 냈다. “지금부터는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파리를 향해 달리기만 한다” 영길이가 의도적으로 국경을 잘못 들어 온 게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내가 화를 낸 것이다. 일이 잘못 되면 내 주위 사람들만 죽어 나는 내 악습이 나온 거다. 내가 화를 내니까 젊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차는 스위스 국경을 통과해 프랑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들려서 가려고 했던 스위스 도시 취리히도 멀리서 불 빛만 보면서 지나치고 그 이후 여러 도시를 멀리서 야경만 보면서 차는 계속 어둠을 뚫고 달렸다. 주위는 어두운데 음악을 적당히 틀어 놓고 도란도란 대화를 하면서 고속으로 차를 달리는 맛이 참 좋다. 분위기 때문에 누구나 안정을 찾는다. 진지한 대화를 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새벽 두 시쯤 슬기가 운전대를 영길이에게 주고 잠이 들었다. 영길이가 운전 한지 한 시간도 못 되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운전 경력이 짧고 밤 눈이 어둔 편인 영길이가 겁을 먹고 우리 차가 60km 정도로 속도가 줄었다.

내가 “다른 차들은 다 100km로 달리는데 너 혼자 이게 뭐니? 너 끝까지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일 거니? 차를 옆으로 세워라 내가 운전한다” 하니까 뒤에서 웃는 소리가 난다. 마침 경낭이가 깨어 있다가 우리 차만 너무 느리게 가고 있는데 내가 영길이를 그런 식으로 구박하니까 웃는 거다
.


▲ 잠이 덜 깬 체 샹젤리제 거리로 향하는 일행

비 속을 내가 운전하니까 조금 후 다 잠이 들어 버린다. 새벽 5시쯤일까? 내가 프랑스 국경을 넘어 한참 달리는데 휴게소가 나오길래 들렸다. 프랑스는 휴게소까지 세련된 곳이 많다. 우리는 음식도 사 먹고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에도 가고 연료도 넣고 모든 걸 재 충전했다.

우리 일행은 이런 경험이 재미있었는지 자다가 깼는데도 음식도 잘 먹고 다 명랑하다. 젊음이 좋다. 젊은 사람들과 여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의 젊음, 호기심, 미숙함 등이 어느새 나 까지도 젊음에 전염되게 만든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가 파리에 들어 서니까 아침 8시가 조금 넘었다. 나는 처칠 가에 있는 ‘작은 궁전’이란 이름을 가진 박물관 앞에 차를 세웠다. 전부터 내가 들어가 보려고 노리던 곳이다. 네 명에게 “너희는 저기 보이는 이 길 끝으로 가면 거기가 샹젤리제 거리니까 거기에서 개선문까지 걸어서 다녀 와라. 나는 눈을 10분만 붙이고 이 옆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겠다. 두 시간 후에 만나자” 했다. 네 명은 잠이 덜 깬 얼굴로 걸어 간다.


▲ '작은 궁전' 박물관(Petit Palais - Small Palace Museum)

내가 박물관에 갔더니 입장료가 공짜다. 렘브란트(Rembrandt), 루벤스(Rubens), 모네(Monet), 세잔느(Cezanne), 모딜리아니(Modigliani)의 그림과 로뎅(Rodin) 조각이 있고 박물관 시설도 고급이다. 파리가 ‘세계 문화 수도’란 말이 실감 난다.

박물관을 다 돌아 보고 차로 나와서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 애들이 안 온다. 나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안 올 리가 없는데. 이 때 영길이가 전화를 했다. 내 휴대폰은 먼저 한국을 거쳐서 다시 오는 거라 국제 전화비가 두 배다. 영길이가 “교수님 저희가 아까 그 박물관에 와서 한 시간 이상 교수님을 기다리는데 안 계셔서 걱정이 돼서요”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니?” 하니까 건물 이름을 데는데 내가 있는 곳은 ‘작은 궁전’인데 바로 옆 거리에 비슷한 건물 ‘큰 궁전(Grand palais)’ 박물관이 있는데 이 촌놈들이 거기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너희가 넷이나 되는데 아무도 나간 구명을 못 찾아 오니? 쯧쯧” 하니까 “저희는 교수님이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신 줄 알았어요” 한다.


▲ 박물관 앞에서 우리가 타고 다니는 ‘볼보 760’과 경낭


▲ 개선문 앞(전에는 일본인이 많았으나 지금은 세계 어딜 가던지 중국인들로 붐빈다)


▲ 잠이 모자라 피곤한 몸을 개선문에 걸 터 앉아 서로 안마로 풀어주고 있다


▲ 샹젤리제 노천 카페 파리는 이런 건물로 꽉 차 있다

드디어 열 두 시에 파비앙(Fabien)을 만나서 우리는 점심을 먹고 북동쪽에 있는 "파리20구역클럽(Club Paris 20ieme)"이란 바둑클럽으로 갔다. 프랑스 바둑협회는 예산 부정집행 문제로 싸움이 나서 기능이 정지된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연락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파비앙이 말한다.

유럽은 도시 바둑클럽이 몇 천 유로, 전국협회는 몇 만 유로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우리에 비하면 영세하지만 정확한 걸 선호하는 서양인들은 집행부가 조금이라도 약점이 잡히면 용서를 못 받는 게 보통이다. 이태리도 그렇고 여러 나라가 비슷한 내분을 겪고 있다. 그래서 바둑 인구가 20 명도 안 되는 도시에 바둑협회가 둘인 곳도 있다.


▲ 필자(앞줄 오른쪽)와 파비앙 4단. 뒷줄은 이강욱 사범


▲ 홍슬기, 강경낭 사범. 잘 찾아 보면 안영길 사범도 있다 ^^

바둑클럽에 도착하니까 10 여 명이 있다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에게 “이렇게 고수가 여러 명이 왔는데 우리 수가 적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간식, 맥주, 주스 등을 열심히 서브한다. 2년 전 프랑스 챔피언을 했다는 5단 두는 젊은 친구 다음엔 4단인 파비앙이 제일 고수다. 나머지는 1~2단 저단들이다. 우리가 접바둑으로도 승률이 압도적인데 그들이 놀란다.

우리는 바둑을 몇 판 두어 준 후 어둑어둑한 거리로 나왔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그 근처 색다른 식당들을 기웃거리다가 아랍식당이 있길래 들어가서 “못 먹어 본 음식을 먹어 봐야 지” 하면서 먹었다. 익숙한 맛은 아닌데도 우리는 음식을 남기지는 않았다.


2. 프랑스 바둑 약사

1) 바둑의 발달
1999년 3 번 기로 진행된 프랑스 챔피언 전에서 1대1상황이 되었을 때다. 대국자 중 한 명인 말리크(Malik)가 늦잠을 자서 10시까지 안 나타남으로써 기권 패를 당해 꼴메즈(Colmez)가 챔피언이 된 해프닝이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2000년 프랑스 연맹은 회비 내는 회원(Paid members) 1200명을 확보한다. 바둑인구가 드디어 1만 명이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11월에는 ‘LG 컵 8강전’이 파리 루테티아(Lutetia) 호텔에서 열렸다. 한국 프로기사가 프랑스에 이렇게 여러 명이 오기는 처음이었다. 2001년에는 연맹에서 사무직원 한 명을 고용한다. 이제는 경제적 역량이 생기고 있다.

바둑캠프도 본격화 된다. 인터넷 바둑이 이 무렵 유행되고 다수가 일본 KGS 사이트에서 바둑을 두고 그 밖에 소수는 IGS에서 바둑을 둔다. 다수가 KGS, 소수가 IGS의 패턴은 지금도 그렇다. 타이젬을 비롯한 우리나라에서 영어 사이트를 안 만드는 한 서양인들의 이 패턴은 계속될 것이다. 인터넷 바둑교육도 이 무렵 시작된다.


▲ 파리 시청

'2002년 파리대회'는 가장 권위 있는 장소 시청에서 부활절 연휴에 열렸다. 230 명이 참가했고 중국프로 판후이(Fan Hui) 가 우승한다. 그는 파리에서 네 시간쯤 떨어진 뚤루즈(Toulouse)에서 살고 있다.

10월에는 만화 ‘고스트 바둑왕(Hikaru no Go)’ 불어 판이 나와 인기리에 읽혔고 이 만화를 읽은 많은 청소년들이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다. 누구나 만화가 일본어로 망가(Manga)라는 걸 알게 된다. 에도(江戶)시대 바둑 고수들의 얘기에 근거를 두어 만든 만화인데 일본에서 발행한 한 권의 만화 책이 전 세계에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고 동양 바둑문화를 이해하는 척도가 되고 있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이 걸 400년의 프로제도를 이어 온 일본 바둑문화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만화의 위력은 내가 서양에 갈 때 마다 새삼 더 절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바둑만화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2003년 봄에 아름다운 남불 해안도시 깐느(Cannes)에서 유럽 청소년 대회가 열린다. 273명이 전 유럽에서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 일본 프로기사 야수토시 야수다(Yasutoshi Yasuda)가 자기 저서 “소통 수단으로서 바둑(Go as a communication tool)"을 발표하고 이를 계기로 불어로 번역되어 출판한다. 18세 이하가 참가하는 이 대회는 스트라스보그에서 온 앙또니 페네슈(Antonie Fenech) 3단이 우승한다. 이 해에는 바둑캠프가 벨몽(Belmont)에서 200여명이 참가해 2 주간 성황리에 열렸다.


▲ 초기 프랑스 바둑 전도사 임갑선생

처음으로 ‘팀 대회’가 열려 판후이가 이끄는 뚤루즈 팀이 우승한다. 2004년부터는 이 대회의 이름을 초기 모든 프랑스인의 바둑선생이었던 한국인 임갑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임 컵(Lim Cup)’ 대회로 부르기로 한다. 이창호가 쓴 “침입과 삭감’이란 책이 파리에 사는 한국인 프란시스 주 3단과 장 필립 2단에 의해 번역되었다. 프랑스에서 발간된 최초의 상수를 위한 책이다. 2004년에는 프랑스 챔피언 베르나르 엘름스떼떼(Bernard Helmstetter)가 세계대회에서 4위에 오른다. 이 해 파리대회에는 323명이 참가했다.

9월에는 한국 바둑교실을 모방해서 만든 바둑교실을 판후이가 뚤루즈에 연다. 그 후 리옹과 파리 일본문화센터에 바둑교실이 생긴 걸 계기로 그레노블, 뚜르(Tours) 등에 연이어 비슷한 바둑교실이 생긴다. 2005년 연맹회원은 1400명에 이르고 2004 프랑스 챔피언에 17세의 벵자멩 빠빠조글루(Benjamin Papazoglou)가 우승하여 최연소 우승자가 된다. 327명이 참가한 2005 파리대회에 일본 여류 프로 고바야시 치수(Chizu Kobayashi) 5단이 와서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지도를 했다.

2005년 6월에 프랑스 연맹 웹사이트 와 가 열려 인터넷을 통한 바둑교육이 활발해 진다. 판후이가 프랑스 바둑연맹의 공식 유급사범이 된다. 2006년에는 유급회원 수가 1650명에 이른다. 이런 증가 이유는 ‘고스트 바둑왕’과 ‘인터넷 바둑’ 덕분이다. 2007년 초 국가사범 판후이가 “바둑의 영혼”이란 책을 발간한다. 바둑의 기본개념을 다룬 책이다. 각 종 국제대회에 프랑스가 활발히 참여하고 8월에는 빠빠조글루가 유럽 학생대회에서 우승한다.

2) 현 바둑연맹 집행부
회장: 에메릭 쌀몽(Emeric Salmon)
총무: 로랑 꼬끄레 & 베로니끄 라무르(Laurent Coquelet and Veronique Lamour)
재무: 제랄딘 빠제 & 다니엘 또쎄또(Geraldine Paget and Daniel Tossetto)

3) 바둑인구
2009년 7월 절정기가 지났음인지 유급회원 수가 1558명으로 약간 줄었다. 현재 프랑스 바둑인구는 약 2만 명으로 집계된다.

4) 바둑 클럽
110개가 약간 넘는 바둑 클럽이 전국에 퍼져있다. 이 중 회원이 25명이 넘는 클럽을 아래 표에 정리했고 이 외에 10여 개의 바둑 교실이 있다.

25명이 넘는 클럽
낭뜨(Nantes), 뚤루즈(Toulouse-85명),
스트라스부르그 꼴레쥬 쌩 떼띠엔느(Strasbourg-College Saint Etienne),
루앙(Rouen), 렌느(Rennes), 빠리 아리그르(Paris Aligre),
빠리 우에스트(Paris Ouest), 빠리 옵쎄르봐뚜와르(Paris Observatoire),
빠리 쥐쒸(Paris Jussieu), 빠리(Paris), 오르세(Orsay), 마흐리(Marly),
리옹 까뉘(Lyon Canut), 마르세이유(Marseille), 그르 노블(Grenoble),
앙또니(Antony), 르바르와(Levallois), 몽트뤠유(Montreuil),
보르도(Bordeaux), 쌩-떼띠엔느(Saint-Etienne), 디종(Dijon), 릴(Lille)


5) 토너먼트(대회)
300명 이상이 참가하는 파리대회를 비롯 도요타 판다넷 대회가 있다. 2007년 각 대회 참가자 수는 아래 표에 정리되어 있으며 이 밖에 프랑스 대회, 팀 대회, 청소년대회, 페어대회 등이 있다.

대회 및 참가인원
빠리(Paris-292명), 그르노블(Grenoble-107명), 낭뜨(Nantes-60명),
앙또니(Antony-106명), 르바르와(Levallois-89명), 아미엥(Amiens-60명),
디종(Dijon-64명), 뻬르삐냥(Perpignan-55명), 릴(Lille-40명),
빠리 메젱(Paris Meijin-140명), 꽁그레 오베르냐(Congres Auvergnat-90명),
안씨(Annecy-45명), 뚤루즈(Toulouse-60명), 몽뻴리에(Montpellier-60명),
뚜르(Tours-65명), 마르세이유(Marseille-80명), 리옹(Lyon-160명).

2006년부터는 한국대사배가 시작되었다. 여기 우승자는 한국 국무총리 배에 프랑스 대표로 참가한다. 초대 우승은 말리크에게 돌아 갔다. 한국대사 배 개최 첫 해에 한국에서 여류기사 3 명을 포함한 바둑 사절단이 참가한다.


6) 강자들 프로필
- 판 후이(Fan Hui) ? 프로 2단으로 유럽 최강자다.
- 노구치(Motoki Noguchi) ? 아마추어 7단. 2008년 프랑스 챔피언
- 융푸(Dai Jungfu) ? 아마 6 단
- 시에 웨이 동(Xie wei dong) - 아마 5단
- 이마무라(Toru Imamura) - 아마 4단. 프랑스 바둑역사 초기부터 활약.



7) 청소년 강자
- 벵자멩 빠빠조글루(Benjamin Papazoglou) ? 5단 2004년 17세로 최연소 챔피언
- 또마 데바르(Thomas Debarre) - 5 단 16세에 세계대회 8위
- 또마 위베어(Thomas Hubert) - 5 단
- 앙뜨완 페네슈(Antoine Fenech) - 5 단
- 제롬 쌀리뇽(Jerome Salignon) - 4 단
- 밥띠스뜨 느와르(Baptiste Noir) - 4 단

8) 바둑사에 남는 강자들
- 앙드레 무싸(Andre Moussa ) - 프랑스 대회 13 회 우승
- 삐에르 꼴메즈(Pierre Colmez)와 쟝-프랑스와 쎄아이유/셀레(Jean-Francois Seailles) ? 프랑스대회 4회 우승자
- 쟝 미셸(Jean Michel) - 프랑스 챔피언 2회
- 또마 위베르(Thomas Hubert) ? 챔피언 1회
- 파리드 벵 말릭(Farid Ben Malik) - 유일한 일본 원생 출신

7) 보급활동
- 판 후이를 공식 국가 코치로 임명
- KGS 사이트나 지역 클럽에서 중점 훈련
- 연맹회원이면 판 후이의 무료 지도 가능
- 초보회원은 노구치의 무료 지도 가능

8) 바둑 캠프, 세미나, 교류전
- 여름 캠프 2 주간
- 겨울 스키 바둑캠프
- 같은 지역 클럽끼리 교류전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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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프랑스 편을 마친다.


▲ 프랑스 국기


▲ 프랑스 지도

<국제사범이 되는 길>
국바둑 세계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프로와 아마 강자들을 전 세계에 내 보내는 작업을 바둑계가 시작했다. 예산을 확보 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막 보내는 건 안 보내느니만 못하게 된다. 적합한 인물을 뽑아 보내야 한다. 그러려면 인품과 어학이 필수조건이다. 선발 과정에서 다음 조건을 잘 살펴 보아야 한다.

1. 어학
국제사범은 영어나 혹은 현지어가 바둑을 가르칠 수준에 올라야 한다. 가장 확실한 기준은 기보를 보며 영어나 그 나라 말로 복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경우 대학 졸업자 수준이면 1년(1주에 6시간 경우), 왕 초보자는 2년 이상 공부해야 이 수준에 달한다. 영어로만 생존능력(Survival level)에 도달하려면 약 300시간의 수업이 필요하다. Full-time(하루 5시간)으로 공부하는 경우 약 12주가 걸린다. 어학실력이 확실한 사람이 현지에 가서도 빨리 발전한다.

2. 교양
그 나라 문화 체득자(역사, 문화적 배경)가 이상적. 외국에 나가서 가르치는 사범은 누구나 한국 문화외교관이 된다. 한국에선 별 볼일이 없어서 외국에 나가는 사람은 안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술, 담배, 도박 등이 지나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형은 곤란하다. 서양 경우 식사 테이블 매너, 화장실(욕실) 사용 법까지 그 나라 관습을 교양으로 미리 배워야 한다.

3. 파견대상 국가와 도시
현지의 바둑인구, 다른 사범의 체재유무. 현지 바둑협회(클럽)가 사범을 필요로 하는지 현지인과 어떤 연계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안영길 사범

<참고사항>
1. 보급대상
초보자를 가르치는 일은 현지인이 현지어로 해야 효과가 높다. 한국사범은 바둑 강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그 곳의 바둑인구 저변확대를 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사범이 세미나, 바둑캠프 등을 조직하는데 참여 하는 게 좋다. 교민들에게도 바둑보급을 한다.

2. 교재, 바둑세트
교재를 선정한 후 현지인의 도움을 얻어 현지어로 번역을 해 놓으면 나중에 수월해 진다. 바둑세트는 국산을 사용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현지사정에 따라 신축성 있게 대처한다.

3. 입국사증(Visa)
간과하기 쉬운 일이나 아주 중요하다. 바둑으로 장기체류를 허용 안 하는 나라가 많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바둑계가 해 주어야 한다. 그 동안은 이 방면 전문가가 모든 국제사범의 비자문제를 일괄 취급해 주는 게 바람 직 하다.


한상대 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010)6286-5878, 017)276-5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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