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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디아나의 고향 '헝가리'

1983년 바둑협회 창설, 제 30회 유럽바둑대회 유치 등 바둑 활동 활발

한상대 교수2010-03-30 09: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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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사로 입국
1983년 2월 내가 멜본에 살 때다. 헝가리대사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에게 "캔베라에 있는 헝가리 대사관에 올 수 있는가? 중요한 일이다"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헝가리 대사가 나를 보자고 할까?" 멜본과 캔버러는 700km가 넘는 거리다. 나는 며칠 후 차를 운전하고 캔베라에 갔다. 대사관저에서 나를 위한 만찬은 알라 카르테(Al la carte) 메뉴로 대사가 주인석에 나는 주빈석에 앉고 전 대사관 직원 부부가 다 참가한 성찬이다. 나와 헝가리 대사 부부는 ‘호주의 다문화’ 문제로 이틀 간 열린 세미나에서 만나 친해진바 있다.

▲ 한국 대사관/ 헝가리 대사관

헝가리대사가 나에게 "국교가 없는 한국과 무역을 하고 싶은데 두 나라 사이에서 역할을 해 줄 인물로 당신을 헝가리 정부에 추천했다"고 한다. 나는 다음 날 헝가리 대사관과 길 하나 옆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갔다. 외무차관이었던 윤하정대사를 만났다. 윤대사가 “한국도 헝가리와 같은 생각이니까 적극 추진해 달라”고 한다. 나는 이 날 한국-헝가리 대사관을 6번을 왕복하면서 의견조율을 했다. 두 나라 대사는 자기 나라와 연락을 하고 그 결과를 나에게 얘기했다. 주로 제 3국을 통해 무역을 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국교가 없는 두 나라 대사는 골프장에서 만나 목례만 했지 대화도 서로 나눈 적이 없다고 한다. 헝가리 측에서는 나에게 삼성, 현대, 대우 세 회사 중 하나를 골라 그들 대표단과 같이 헝가리에 들어와 달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 들어와 삼성 측 사장단과 몇 번 회동을 가진 후 삼성물산 전무와 특수(공산)지역 담당과장 등으로 팀을 이루고 내가 단장이 되었다. 나는 팀 구성을 마친 후 오후에 한국기원엘 갔다. 이홍식 이사장이 선친끼리 가까운 사이라 나를 반긴다. 직원에게 조남철, 김인, 조훈현, 서봉수 사범을 저녁식사에 부르라고 한다. 조금 후 직원이 오더니 서봉수 사범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과 술자리에는 3명만 같이 자리를 했다. 서사범을 사석에서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2. 서봉수사범

이홍식 이사장이 나에게 "앞으로 행마가 어떻게 됩니까?" 하길래 내가 "다시 호주로 돌아가 일주일쯤 있다가 헝가리로 들어갑니다. 거기에서 3주쯤 일을 봅니다. 그 후 프랑크푸르트로 와서 가족과 만나 자동차로 유럽일주를 할 생각입니다" 했더니 옆에 있던 서사범이 "제 소원이 유럽을 그런 식으로 돌아보는 건데요" 한다. 내가 "서사범이 가겠다면 내가 여행을 쏘지요. 차로 같이 유럽을 돕시다. 우리 속담에 잔칫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히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했다.

이튿날 서사범이 전화로 나에게 만나자고 한다. 점심식사 예약을 파인힐(Pine Hill)이란 양식집에 해 놓았다. 내가 서사범에게 "나는 양식 보다 냉면이 먹고 싶은데" 해서 관철동 한국기원 뒤 신라식당이란 곳엘 갔다.

나에게 서사범이 "어제 저녁 유럽여행을 쏘겠다는 말이 취중에 하신 겁니까? 진심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 "내가 어제 내가 술을 조금 밖에 안 마셨는데 무슨 취중? 진심이지요" 했더니 "그럼 유럽에 따라 가겠습니다"한다. 나는 내 동생을 불러내 서사범을 소개하고 “나는 모레부터 한국에 없으니까 정확히 한달 후 서사범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삼성지점에서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라” 부탁하곤 이틀 후 한국을 떠났다. 그 때가 서사범이 조훈현 사범에게 전관 왕을 내어주고 무관으로 전락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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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헝가리 입국
헝가리 입국 비자(Visa)를 받고 나니까 기분이 묘하다. 어려서부터 반공교육만 받고 자란 나에게는 공산국가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당시로는 보통 일이 아니다. 시드니를 떠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호텔에 체크인 하고 나서 우연히 오늘 오후에 차범근 선수가 뛰는 분데스리가 축구가 있는 걸 알았다. 나는 부지런히 표를 구해서 운동장에 가서 차선수가 뛰는 걸 보았다. "bum Bum"하며 차선수를 응원하는 소리도 자주 들린다. 이 경기를 보니까 “앞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서양에 많이 진출하면 우리 국가브랜드도 올라가고 외화수입도 짭짤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 아침 프랑크푸르트 삼성지점에 갔더니 만나기로 한 이전무 일행이 안 나와있다.

조금 후 이전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저녁 파리에서 자고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놓쳤습니다"고 한다. 내가 "어렵게 공산국가에 들어가는데 나와 같이 들어가야지 이러다가 못 들어 가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걱정하니까 "파리지점 직원들이 본사에서 전무가 왔다고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음 항공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미안합니다" 한다. 나는 속으로 “원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하며 계획에 차질이 생겨 화가 났으나 도리가 없어 혼자 부다페스트 행 비행기를 탔다.



▲ 부다페스트 가운데로 흐르는 다뉴브 강(江)

처음 가는 공산국가라 평소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 하는 궁금증을 풀 기회가 드디어 왔다. 호기심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부다페스트 공항은 살벌했다. 공항직원까지 다 군복을 입고 무장한 사람도 보인다. 나에게 "서울에서 출생했느냐?" 하면서 내 얼굴과 여권사진을 세 번쯤 번갈아 보며 확인한다. 눈초리가 매섭다. 공항시설은 사회주의 국가라 상업화가 안 되었다고 해도 너무 초라하다. 택시를 타고 내 호텔로 가는데 시내로 가는 길도 2차선에 노면도 안 좋다. 택시도 헝가리에서 만든 차라는데 소형에 힘도 없다. '그러면 그렇지. 아주 형편 없구나' 생각하며 30분 후쯤 시내로 들어 섰다.



▲ 부다페스트 거리



▲ 부다페스트

4.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그런데 갑자기 건물, 거리 등 모든 게 내 눈을 의심하리 만치 멋져진다. "아! 사회주의 국가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맞아, 여기가 합스부르크 시대에 오스트리아와 2 중 왕국이었던 헝가리 왕국 수도였지. 그러니까 건물들이 저렇지” 아까 실망이 이제는 감탄으로 바뀐다.



▲ 마가렛 섬(Margaret Island) 내 호텔이 보인다.

5. 실업률 0 %
나는 다뉴브 강 한 복판 마가렛 섬에 있는 떼마르(Thermal-온천) 호텔에서 묵었다. 외국인 여권은 호텔에서 다 맡는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다 그렇게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많이 와 있다. 특히 동독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는 부다페스트가 온천으로 유명해서 사람들이 병을 고치러 오는 곳인 줄 처음 알았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라 월요일 아침까지 이틀 간 나는 자유다. 당시 부다페스트 인구는 2백만이 조금 넘는 도시였다. 서울 보다 훨씬 작다. 나는 이 도시를 걸어서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에 상점에 나가서 운동화를 한 켤레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군것질을 좀 사려고 슈퍼마켓에 들렸다.



▲ 영웅 광장. 가운데 ‘천년 기념비(Millenary monument)는 마자르(Magar) 족의 헝가리 진출 천 년을 기념한다.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누가 오더니 나에게 트롤리(카트)를 갖다 주며 끌고 가라고 한다. 내가 “작은 걸 사기 때문에 트롤리는 필요 없다”고 하니까 그가 뭐라고 하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어디로 뛰어간다. 조금 후 사전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는데 'regulation'이란 단어다. 규칙이니까 끌고 다니란 얘기다.

물건을 샀는데 포장이 너무 조잡하다. 누런 종이에 인쇄도 형편없다. 돈을 내러 가니까 돈을 안 받고 어딜 자꾸 가르친다. 보니까 조그마한 창문 안에 누가 앉아 있다. 가니까 물건을 보고 나에게 얼마라는 값을 써 준다. 카운터에서 그제야 돈을 받는다. 트롤리만 맡고 있는 사람, 값만 써 주는 사람, 아까 지하철에서 쓸데 없는 일을 하던 사람 생각이 난다.

고용 100 %란 사회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용창출을 억지로 하다가 보니까 필요 없는 자리까지 만들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비효율, 비능률이란 말이 바로 이런 거 구나” 실감 할 수 있었다. “이러니까 국가 경쟁력이 없지. 쯧쯧” 호텔에 돌아와서 헝가리 돈 포린트(Forint)를 환산해 보니까 모든 게 너무 싸다. 운동화 값 빼고는 하루 종일 천원도 못 썼다. 지하철 값이 20원이 안 된다. 사 온 손톱 깎기를 써 보니까 너무 잘 든다. 눌렀는데 ‘딸깍’ 손톱 잘리는 소리가 안 들렸는데 손톱은 잘려 있다. 내가 "어! 보기하고 다르네" 혼잣말하며 웃었다.



▲ 부다 성(城)



▲ 밤의 부다 성(城)



▲ 부다 언덕 수도원에서 다뉴브 강 건너 보이는 페스트(1850년 그림)



▲ 어부의 요새 부다 언덕

6 . 부다와 페스트
나는 부다페스트 지도를 보면서 토, 일 이틀간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걸었다. 옛날 왕궁(王宮)이었고 지금은 박물관이 된 곳부터 시작했다. 언덕을 걸어 다니느라고 힘은 들었지만 전체가 옛 건축물이 잘 보존되고 아름답다.

부다 언덕 위 '어부의 요새' 옆에 있는 힐튼 호텔은 옛 수도원 자리가 폭격으로 무너진 위에 지었다. 부서진 폐허 부분을 그냥 놔 두어서 중세와 현대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저녁에 이 곳 야외 전망대에서 실내악을 들으며 페스트 쪽 야경을 내려다 보는데 분위기가 환상적이다. 나는 첫 날 부다를 보고 그 다음 날 페스트를 보았다.



▲ 채인(Chain) 교(橋) 부다페스트 지도



▲ 오페라 하우스 /미술관

▲ 뉴욕 카페 /페스트 거리



▲ 부다 쪽에서 보는 페스트 /마티아스(Matthias) 교회

다뉴브 강을 끼고 양 옆으로 언덕 쪽은 부다, 평야 쪽은 페스트다. 페스트에서 러시아 식당이 있길래 들어가서 먹었는데 실내 장식이 완전 러시아다.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러시아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놀라운 일은 일요일이라 마티아스 교회를 들여다 봤더니 예배 보는 사람이 많았다.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 영향으로 교회는 텅 빌 줄 알았는데. 백화점에도 가봤다.

자본주의 국가에선 물건이 다양하다. 가죽잠바만 해도 수 백 가지는 될 거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죽잠바가 같은 질의 가죽으로 대여섯 가지 모형 밖에 없다. 어딜 가도 모양도 값도 다 똑 같다. 거리에 같은 잠바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획일화된 사회는 인생을 지루하게 만든다.



▲ 영국 국회의사당 보다 조금 더 크다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다뉴브 강가에 있다

7. 한강 다리와 비교 말라!
드디어 월요일 아침부터 내 공식일정이 시작되었다. 소련제 검은 리무진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내 안내를 맡은 사람은 상공회의소 의장 보좌관인데 경제학 박사다. 먼저 상공회의소 의장을 만났다. 내가 헝가리 대사관에서 국제전화로 통화했던 사람이다. 영어를 아주 잘 한다. 그가 안 좋은 소식부터 전한다. 삼성팀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절 당하고 쫓겨 갔다는 내용이다. 오늘 내 스케줄을 보여 주는데 점심은 상공부 장관과 먹고 저녁은 자기와 한 후 국회의사당 방문이 있다. 저녁 8시에는 상공회의소 강당에서 내 연설이 있다. 헝가리 50대 기업에서 5명씩 오고 관계자까지 약 300 명이 모일 거라고 한다.

상공부 장관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상공회의소 의장도 나왔다. 알고 보니 그가 전임 상공부장관이었다. 구내식당에 수 십 명이 식사를 하는데 구석에 칸막이를 치고 웨이터가 서브를 해 주는 것만 다르지 장관도 직원들과 같은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 평등을 외치는 사회주의답다. 장관이 나에게 “주말에 어디 좀 봤느냐”고 하길래 본 곳을 대강 말하고 “다 걸어서 돌았다”고 하니까 자기네 가 걸었으면 한 달은 걸릴 거리라며 놀란다. 나 보고 “젊음이 좋다”고 한다. 당시 두 명은 나 보다 20 년쯤 연장자들이었다.

내가 “다뉴브 강을 건너는 다리들이 예술이다” 하자 “2 차 대전 후에 우리가 8 개나 지었다” 하며 자랑한다. 내가 “서울 한강엔 다리가 18 개 된다”고 하자 장관이 “당신네는 미국 앞잡이 노릇하면서 지은 거고 우리는 소련에게 뜯기면서 지은 거라 차원이 다르다. 또 서울의 다리와 우리 다리를 단순 비교하지 말라”고 하는데 뭐가 불쾌했는지 어조가 꽤 강하다.



▲ 의사당의 밤

8. 역사적인 날
내가 탄 리무진이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니까 의사당 전체가 서서히 밝아 진다. 보좌관이 나를 환영하는 절차라고 귀띔해 준다. 밖에는 군인들이 서 있다. 내가 내리니까 일제히 ‘받들어 총’을 한다. 보니까 의장대다. 남녀 두 명이 서 있다가 나에게 “환영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국회사무총장이고 젊은 여자는 안내원이다. 나를 국빈 대접을 하고 있다.

한 시간 이상 국회를 돌아 보며 두 명에게 설명을 듣는데 내가 오기 전 헝가리역사를 읽은 덕에 재미있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신 고틱(Neo-Gothic) 식 국회건물 안에 걸린 그림이나 진열된 전시품이 옛 헝가리 왕국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사무총장이 나에게 “남한이 그렇게 빠른 경제성장을 하는 비결이 무어냐?”고 묻는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에 ‘경이의 대상’이었다.



▲ 국회 내부 입구/ 왕관

상공회의소 강당에 내가 들어서니까 박수 소리가 요란해 진다. 내가 단상까지 올라가는데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한다. 상공회의소 의장이 영어로 사회를 보면서 나를 소개한다. “오늘 저녁은 2차 대전 후 남한 출신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첫 공식연설을 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하자 박수가 터진다. 그 말을 들으니까 나도 기분이 짜릿해 진다 ^^.

내가 인사말에서 "나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다. 공산주의자들은 나와 전혀 다르리라고 생각했는데 와 보니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이틀간 돌아 본 부다페스트는 너무 아름답고 사람들은 친절하다”고 하자 또 박수가 터진다. 누가 손을 들고 일어 서더니 나에게 “공산주의자는 뿔이라도 달린 괴물로 생각했느냐?"고 하니까 또 다 웃는다. 여기 있는 동안 여러 번 느낀 거지만 유모어 감각이 다른지 나에게는 그다지 우습지 않은 일에도 이 사람들은 다 웃는 경우가 많았다. 각 기관장 옆에는 통역이 조그만 소리로 내 말을 전하고 있다.

내가 "오늘 연설초안은 내가 잡았지만 중앙정보부에서 검열하고 손질을 했고 준비도 경제부분은 삼성과 한국정부 측이 써주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 나는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앵무새나 다름 없다" 고 하니까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 진다. 그런 말을 내가 솔직히 하는데 대한 '놀라움'이었다. 나는 준비해 간 연설문을 읽어 내린 후 50대 기업 중 나를 초청한 기업들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이 후 나는 3주 동안 헝가리를 대표하는 26개 기업을 방문한다.



▲ 상공회의소 건물 / 한국-헝가리 수교기념 공연

9. 안드라쉬(András Göndör)
오늘은 마침 기업 방문이 없는 날이다. 오후 3시에 부다페스트 음악대학(리스트 아카데미) 약속까지 시간이 많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택시를 불러 놓았다. 헝가리 바둑챔피언 안드라쉬 곤도르 네 집에 찾아 갈 생각이다. 먼저 아침을 먹으려고 1층 식당엘 갔다. 문을 여니까 조용하다.

내가 프런트로 가서 "아침을 어디서 먹느냐?" 고 했더니 내가 막 나온 방을 가리킨다. 다시 가서 칸막이 옆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까 사람이 20명은 족히 앉아 있다. 가만히 보니까 서로 대화도 하고 웃기도 하는데 너무 조용하게 얘길 해서 인기척을 내가 못 느낀 거다. 동독 사람들이라 그렇다고 한다. 나중에도 내가 관찰 했지만 그들은 항상 조용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식당에서 생기는 소음이 굉장했을 텐데.

주소로 찾아간 안드라쉬 아파트 7층에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안 보인다. 택시로 나와 운전수를 데리고 들어가니까 어느 방처럼 생긴 곳을 여는데 그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조리개식 문을 또 열고 엘리베이터 문은 그 안에 있다. 안드라쉬 집에 없고 부모만 있다. 특히 어머니가 교양이 있고 영어를 잘 한다. 내가 "안드라쉬는 영어가 초보인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하자 그녀가 웃으면서 "나는 영어선생이고 안드라쉬는 수학선생이라 그렇다"고 한다. 모자가 교사다. 아버지는 안드라쉬 보다 영어를 더 못해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기만 한다.

차 한잔 마시고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안드라쉬가 들어온다. 내가 “바둑쟁이(Baduk freaks)는 만나면 바둑부터 두고 얘기는 그 다음에 한다”고 하자 안드라쉬가 얼른 바둑 세트를 들고 온다. 안드라쉬가 “이번 금요일 저녁에 모이는 부다페스트 대학 바둑클럽에 우리가 당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놨으니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한다. 바둑을 두 판 두고 택시로 나오니까 기사가 자고 있다.



▲ 부다페스트 음대(리스트 음악 아카데미)

10. 마스터 클라스
음대에 도착하니까 '바르토크 4 중주' 단의 리더 메저 교수가 나를 반긴다. 여러 해 전 내가 멜본 음대 다닐 적에 그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의 방문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내가 노래를 한 적이 있다. 그 후 내가 그들에게 시내 안내를 해 주어서 친해졌다. 헝가리의 '바르토크 4 중주단'은 이태리의 유명한 ‘이무지치(I Musuci)’처럼 챔버 오케스트라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메저 교수가 나의 방문을 환영하는 마스터 클라스가 있다고 한다. 음대에서는 전통적으로 귀빈이 오면 마스터 클라스를 하는 게 보통이다. 주제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1번’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헝가리 출신 음악가로는 피아노의 아버지 리스트(Franz Liszt), 헝가리 민속음악을 소재로 현대 음악의 길을 연 바르토크(Béla Bartók)와 코다이(Zoltán Kodály) 등이 유명하다.

나를 위한 ‘마스터 클라스’가 코다이와 세계적 첼리스트 스타커(János Starker)가 쓰던 연구실에서 열렸다. 학생들이 들어 오는데 그 중 여학생 한 명이 나에게 뛰어 오더니 포옹을 한다. 내가 음대 다닐 적에 첼로 공부하던 새라(Sarah)다. 생각도 못한 만남이었다. 여기에 유학 와 있다고 한다. 나는 30대 중반에 음대에 입학했기 때문에 학생들과 15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났다.

학생들 연주가 시작 되었는데 역시 학년이 올라 갈수록 실력이 좋다. 메저 교수가 음 하나하나에 생명이 있음을 강조한다. 대학원생까지 연주가 끝나자 자기가 마지막으로 전곡을 연주를 한다. 너무 연주가 좋아서 끝나고 내가 기립박수를 했다.

다 끝나고 새라와 학생들 7~8명이 나를 안내하여 스테판이라는 민속거리를 방문했다. 나에게 영어를 하면서 수줍어서 얼굴이 빨개지는 학생도 있다. 내가 저녁식사를 쐈는데 우리나라에선 나 혼자 식사하는 정도의 값이다. 이 날 나는 택시를 12시간 이상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 돈으로 1400원을 주었다. 택시기사가 고마워서 여러 번 절을 하고 간다. 이 후 시간만 나면 저녁에 새라가 친구들과 내 호텔에 찾아와 나에게 시내에 재미있는 장소들을 안내해 준다.

<헝가리 바둑 약사(略史) >
헝가리에서 바둑은 수학자 팔 에르도쉬(Pál Erdős)란 교수가 시작했다. 그는 1970년대에 수학과 직원과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바둑을 에엇워스 로란트 (Eotvos Lorand)대학클럽에서 두었다. 다른 서양 국가와 마찬가지로 헝가리에서도 수학과 컴퓨터 하는 사람들이 먼저 바둑을 두기 시작하였다.

1981년 고등학교 수학선생인 30세의 안드라쉬 곤도르가 처음 세계대회에 출전했다. 나는 그와 세계대회에서 공식대국을 한 후 금방 친해 졌다. 그는 저녁에도 내 방에 들어와 몇 판씩 두곤 나갔다. 당시 그는 나에게 두 점으로도 계속 밀리는 실력이었다. 1983년 헝가리에 처음으로 협회를 탄생시키는 준비가 한참일 때 내가 헝가리에 들어 간다.

1983년 ‘헝가리 바둑협회’가 창설되자 바둑보급에 박차를 가한다. 1986년 제 30회 유럽 바둑대회(EGC)를 부다페스트에 유치한다. 2년 후 1988년에는 티보르 포차이(Tibor Pocsai)가 유럽대회에서 우승하고 곤도르는 세계대회에서 8위에 입상한다. 헝가리 바둑이 날린 해였다.



▲ 한국에서 프로가 된 디아나 코세기

유럽 청소년대회에서 헝가리가 뛰어난 성적을 올린다. 1996년에 차바 메뤄(Csaba Mérő), 2000년에 디아나 코세기(Diána Kőszegi), 2001-02년엔 팔 발로그(Pál Balogh)가 2년 연속 우승한다. 이 후 디아나는 한국에서 바둑수업을 하여 프로가 되었으며 발로그는 유럽대회에서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성장한다. 2003년 부다페스트에 여러 개의 바둑클럽(Barcza Gedeon, Agyar, Dunago)이 생기고 지방(LoGosz in Miskolc)에도 생긴다. 2005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인 기구로 헝가리 바둑협회(HGA Hungarian Go Association)가 발족하고 독립 운영하던 10 개의 클럽이 다 산하로 흡수된다. (헝가리 2에서 계속……)

한상대(전 시드니대학 교수 sdhahn@gmail.com 017)276-5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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