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러의 예상대로 이세돌이 3-0으로 이겼다. 바둑점재이 입장에서 결과를 맞춰서 참으로 행복하다. 맞힌다고
해서 누가 눈깔사탕하나 주는 것은 아니지만, 빈지갑을 주워도 기분은 좋다. 뭐, 24연승을 덤으로 얻었다나?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그에게
이젠 무척 신뢰감이 쌓이고 있다.
인제 비씨카드배도 끝나고, 심심해서 어떻게 사나. 걱정 붙들어 매시길 바란다. 동양증권배의
계절이 왔다. 워러의 명품 돗자리에 대해 이젠 관심을 좀 줄 때가 온 것이다. 워낙 가면무도회에서는 본주와 손주(타젬지식IN: 손주=손의
주인을 일컫는 타젬 은어)가 다를 때가 많아서 가끔은 안 맞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번 비씨카드배도 명품 돗자리로 회귀한 느낌이다.
제7회 동양증권배 2차 예선이 월요일부터 개시되었다. 1~9조까지 본선진출자가 가려졌는데 예상대로(?) 한국의 참패이다.
그런데 디펜딩 챔피언 daxiang이 한국의 첨성대(P)에게 패해 탈락했다. (실제로는 접속이 너무 불량해서 금요일에 다시 두기로 했음. 그
외 4판 정도가 연기되어 실시 될 예정.)
작년 철이(P) 외톨이를 꺾고 구리급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daxiang도 어느새
‘배둘레햄’이 되었을까. 하긴 두어 달 전부터 촐랑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유저들에게 손주가 바뀌었다는 평을 들었던 그가 급기야 본선 구경도
못하고서 탈락했다. 패인은 접속장애패.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동양증권배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② 슬슬 불이 붙다
제7회 통합예선 한판을 소개한다. 주인공은 tenho-(일본)과
tryortry(중국)의 중일전이다. tryortry야 소문난 강자이고 한국팬도 상당한 실력파이거늘, 일본선수 tenho-는 낯선 인물이다.
워낙 본선 무대에서는 힘을 못 쓰는 일본인지라 한번 소개를 해줄 요량으로 기보를 골랐다.
일본의 tenho-가 흑 차례.
흑9까지 침착한 정석진행이다. 이 정석이 자연스레 깔리게 된 이유는 백6으로 보통보다는 한 칸 높게 놓여있어서 그렇다. 백7\6이 날일자라면
흑5의 옆구리에 붙인다든지 하는 진행이 예상된다.
흑11은 일단 백이 뛰어나가서 응수하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하변에
흑돌이 미리 진을 치고 있어서 흑이 주도권을 잡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백12로 붙여서 타개하려는 것은 당연한 판단.
흑13은
위와 옆에 흑 돌이 도와주고 있기에 이렇게 강력하게 두고 싶다. 여기서 백16으로 젖힌 수가 좋다. 수순 중 흑21은 22자리로 늘고 싶지만
흑15 한점이 축이 되어버린다.
백30으로 젖혔을 때 바깥 흑에 워낙 많은 흠결이 있어서 흑31로 보강한다면 백34까지 한쪽은
수습이 쉽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하변이 문제다. 백16의 아래 1선으로 백이 내려 빠지는 수가 있다. 따라서 쉽게 잡힐 것 같지는
않다.
흑35는 당연한 압박이며 백36도 유일한 타개책이다. 또 비슷한 형태가 나온다. 백40으로 젖혀서 패가 나도 괜찮다고
한다. 실제로 패가 난다면, 팻감이 백이 좀 많아 보인다.
백42까지 또 살았다. 하변 흑이 두텁긴 하지만 백이 양쪽은 둔
모습이다. 백은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양쪽 모두를 쉽게 수습하는 형태여서 오히려 백이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닌가 한다.
흑43으로 걸쳐서 제2라운드. 좌변에서 49까지 흑이 자세를 잘 잡는다. 이런 대목을 보면 일본바둑은 매끄럽게 하는 능력은
타고난 듯하다. 돌이 엉겨 붙는 대목에서 생각만큼 안 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③ 외화벌이에
나서다
‘멀리 있는 친척도 사촌만은 못해요~♬’
혁성의 이철용 사장은 워러의 이웃사촌이다. 1년에
대략 10번 정도 만난다. 그럼 한달에 한번 꼴인데, 사실 직장동요나 거래처 빼고 그렇게 많이 만날 수 있는 사이는 드물다. 비씨카드배
덕분에 5일 연속으로 만나다 보니 지겨울 만큼 친한 친구이다. (대회는 3일이지만 이틀은 딴 일 하러 그들과 밤을 새기도 했음)
어제는 대뜸 나를 보더니 바둑을 한판 두잔다. 그는 이미 타이젬 4단 정도 되는데, 워러에겐 전번에 받을 돈이 생각났다.
그와는 통상 만원증권배를 하는데, 지난 달 LG배 참가차 서울을 왔을 때 바둑한판 부도를 놓은 게 생각이 났다. 따라서 전번 빚 만원을
해결해야 한판 가르쳐준다고 하자, 얼마나 심심했던지 그 피 같은 돈 1만원을 지갑에서 꺼낸다.
결국 그의 돈 2만원을
묻어놓고서 석 점 바둑을 뚜드렸다. 워러의 전매특허 5,5를 구사하며 거의 놀려가면서 한판을 따 먹었다. 늘 얻어맞는 사람에게는 다정한
멘트를 잊지 않았다. ‘저녁 되면 큰돈 가지고 놀 것인데, 만원정도야 까딱도 않는구먼. 역시 큰 사람이야.’
이철용 사장은
워러와 19년 전 처음 만났다. 과거 월간바둑 기자시절 서울 관철동 한국기원에서 처음 보았다. 워러가 27세이고 그는 23세였다. 당시 그는
보드 드문 중국인이라서 좀 촌스럽기는 했으나 참으로 신기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면 바로 착석하여 만원증권배를
시작하는 워러는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1만원이면 중국으로서는 매우 큰 돈이었다. 우리 돈 3만원정도면 그네들 한달
윌급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국교가 정상화되지도 않아서인지 중국이란 세계에 대해 잘 몰았던 워러는 1만원이면 중국기원의 1주일치
봉급 정도가 되는 큰 돈이었다고 한다.
그가 난색을 표하자 그럼 툭별할인하여 5000짜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10만원쯤 놓고 내기바둑을 하는 것이니, 그가 얼마나 떨렸겠는가. 그가 손을 벌벌 떨면서 대국을 했던 기억을 돌이키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중국의 외형적인 성장과 맞물리며 그의 행색도 점점 귀티가 난다. 왜 나의 주변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까. 그래도
변치 않는 교훈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