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金 2개는 따야지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대표팀 총감독 양재호 인터뷰
진재호 바둑평론가2010-09-24 09:19:18
그를 만나러 간 날 한국기원 4층 회의실에는 대표팀 단복이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그는 단복과 와이셔츠를 번갈아 직접 입어보길 수차례. 다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또 전화.
오는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대표팀 양재호(47) 감독을 어렵게 만났다.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해 일로매진하는 대표팀의 근황. 그리고 첫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소회 등을 들어보았다.

▲ 한국기원 4층에서 양재호 감독과 인터뷰 중.
- 지난 번 삼성화재배에 출전했다.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 느낀 점이 있다면?
선수로 세계대회에 나간 지 6~7년 된 것 같다. (웃음) 사실 내가 이기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선수들이 중국과 대결한 바둑에 신경이 많이 가더라. 둘째 날은 내가 떨어졌는데도 웃고 다녔다. (더블 일리미네이션 둘째 날 대국에서 이세돌-콩지에, 박정환-저우루이양, 창하오-이창호 등 한중 아시안게임 대표끼리 맞붙은 시합에서 세 판 모두 승리했다.) 국내시합도 대표선수들이 이기면 기쁘고 지면 마음이 아프더라. ‘감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광저우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전망은?
금메달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세 종목 다 딸 수도, 다 못 딸 수도 있다. 다만, 두 개는 따야하지 않을까. 원래 여자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랫동안 보강해왔고 현재도 전력투구하고 있어 상승일로에 접어든 느낌이다. 반면 남자팀은 각자가 세계적인 선수들이므로 그들의 개인적인 정신무장은 되어 있다. 평소 중요대국이 많으므로 실전이 곧 훈련이다.
금메달이 유력한 것은 남자단체전이다. 원래 강팀이기 하지만, 지난번 삼성화재배에서 희망을 얻었다. 에이스 이세돌이 좋은 컨디션이다. 이창호는 결혼준비에 바쁘지만, 언제나 제 몫을 해주는 선수라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최철한 강동윤 박정환 조한승. 모두 뛰어난 선수들이지 않은가. 여자단체도 박지은이 빠져 전력손실이 예상되지만, 이슬아 김윤영 등 젊은 기사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이민진 조혜연의 노련미에도 기대를 건다. 금메달 가능성이 50%는 된다. 혼성페어는 중국에서는 씨에허와 류싱이 남자선수로 거의 확정이다. 대만은 장쉬+씨에이민, 저우쥔쉰+헤이쟈쟈 조가 모두 복병이다. 한국 두 팀도 금메달 후보이다.
(페어부는 프로가 존재하는 국가는 2개 팀, 그렇지 않은 국가는 1개 팀이 출전한다. 한국의 혼성페어는 최철한+김윤영, 박정환+이슬아로 20일 최종결정을 내렸다.)

- 남자팀의 경우 중국의 콩지에 구리를 양강(兩强)으로 본다면, 다음 3~5위 선수가 누가 될 것인지도 몹시 궁금하다. 어떻게 보고 있나?
조금 애매하다. 콩지에 구리를 제외하고 창하오 저우루이양 씨에허 류싱인데, 누가 센 지 애매하다. 최근 저우루이양의 상승세가 좋아서 높게 봤는데 박정환이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콩지에 외에는 다 비슷하다는 판단이다. 중국에서도 한국을 어렵게 볼 것이다. 아무래도 에이스 이세돌을 약체와 만나게 하고 싶을 것이고, 다음 이창호를 경계할 것이고 나머지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이세돌 말고 5명은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최철한이 중국리그에서도 전승을 달리니까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될 것이다. 오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리라 생각되는데 머리속에 항상 왔다 갔다 하고 있다.
- 여자팀은 상비군 시절부터 훈련한 것으로 따지면 거의 1년이 되었다. 중국과 비교하여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 2~3년간 중국의 경우 국가에서 관리한 효과가 많이 나타났다. 숙식은 물론 트레이너까지 붙여줬었으며 구리 콩지에 등 일류들이 복기지도까지 해주었다. 반면 한국여자바둑은 전체가 의욕상실이었다. 국내에서는 루이가 강세였고, 해외시합도 거의 없었다. 여자선수들은 프로가 되고 나서 바둑공부보다는 ‘딴 생각’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앞두고 면학분위기를 만들어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여자 기사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뭐든 다 할 테니 우리를 관리해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짧은 시간동안 강도 있는 훈련으로 중국을 이길 방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코피도 흘리고 밤늦게까지 훈련했다. 아마 입단 직전 연구생시절도 이렇게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 지난 3월, 여자 상비군 훈련 모습. 박영훈 9단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 지난 이야기이지만, 선수 선발에 관한 미련은 없는가?
어떤 감독도 선수선발에 미련이 없을 수 없다. 작년 12월 상비군이 창설되었을 때부터 상비군 위주로 대표팀을 강화를 하자는 것이 경기력강화위원회의 결정 사항이었다. 대표선발도 그러한 매뉴얼에 따라 가는 것이다. 대표선수 4명 모두 상비군에서 뽑으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와일드카드로 한 자리를 남겼으면…’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론이다. 조혜연이 학교문제로 상비군에서 빠졌다가 선발전을 통해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러나 박지은은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여자 상비군은 1년 동안의 긴 프로그램을 소화하면 중국을 따라잡는다고 보았고, 젊은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때까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여자대표팀 김윤경 이슬아 이민진 조혜연을 믿는다.
- 가장 관심이 덜 한 부분이지만 금메달은 똑같다. 혼성페어부분은 어떻게 훈련하고 있나?
남자최강과 여자최강을 합쳐놓으면 최강의 복식조가 나올 것 같지만 그것은 아니다. 테니스나 배드민턴에서도 단식 선수가 복식에서 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는가. 호흡 융화가 원칙이니 서로에게 채워 줄 수 있는 선수로 최상의 조합을 짰다. 사실 혼성페어도 유력한 금메달 후보이다.
(중국은 지난번 세계페어바둑에서도 우승했던 류싱-탕이 조가 결정되었고 호흡 잘 맞는 것으로 알려진 씨에허-송롱후이 조가 유력한 상태이다. 인터뷰 후인 9월 20일 최철한-김윤영, 박정환-이슬아 조로 한국의 혼성페어 선수가 확정됐다.)

▲ 인터뷰 당일에도 훈련은 계속됐다. 최철한-김윤영, 박정환-이민진 조가 페어 시합을 벌이고 있다.
- 대회 규칙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점은?
페어대회가 예선의 경우 제한시간 45분 타임아웃제라서 시간상의 제약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자의 경우 오더를 미리 정해야 한다면 후보는 5장과 후보만 바뀌는 식이다. 오더를 막판에 결정하자고 제의 했다. 중국 위빈 감독도 조직위 측에 건의하겠다고 했다.
- 막바지 담금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혼성페어의 취약점을 만회하는 데 시간을 쓰겠다. 우리는 남자선수가 늦게 뽑혀서 혼성페어도 늦게 결성되어 훈련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20일 출전 팀이 가려졌기 때문에 이제부터 진짜 훈련이라고 하겠다. 다음 여자팀 훈련인데, 이젠 양보다 질이다. 예를 들면 이민진에게 박영훈을 붙여주는 식으로 ‘족집게 과외’를 할 계획이다. 또 이제부터는 정신력 강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대표선수들은 아직 금메달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모른다. 따라서 기술 외적인 자긍심 고취 프로그램을 접목하려 한다. 11월8일~11일 태릉선수촌에서 합숙을 계획해놓았다. 합숙에서 여타 종목의 선수들이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의 기저에 있는 애국심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계획이다.
- 노파심인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선수들이 개인적으로 부와 명예가 따르는 여타 세계대회처럼 열심히 하리라고 보는가?
애초에 이세돌도 선발전부터 나간다고 했을 만큼 아시안게임에 거는 기대가 컸다. 선발전의 치열함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최철한도 10여 판 소화했고 선발전에서 떨어진 박정상 원성진은 20판 가까이 두었다. 일류프로들이 대국료도 한 푼 없는 선발전에 이처럼 매달렸다는 것이 바로 태극마크에 대한 열정이 아니겠는가.
- 대표팀의 지원문제는 원활한지?
사실 그 문제가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작년 12월 상비군 결성했을 때만 해도 지원이랄 것은 없었다. 선수들이 빵 우유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식사도 하지 않고 후딱 헤어졌다. 코칭스텝도 다들 박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만 부족할 뿐, 국가대표 된 이후 후원업체도 생기고 있어 형편이 나아졌다.
(후원 기업명을 굳이 밝혀달라고 했다. 한국기원 허동수 이사장. 고려용접봉 홍봉철 사장. 그리고 타이젬을 비롯한 바둑사이트, 바둑TV, SG세계물산 등이라고.)
- 떡부터 관심을 갖는 것 같지만, 포상금 문제도 알려진 바가 없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 금메달을 못 따면 한국으로 제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각오이다. 어차피 1,2등을 다투기 때문에 3종목 모두 금메달을 못 딸 수도 있고…. 그러나 현재 3종목 다 금메달 후보니까…, 기대는 하고 있다. (웃음)
-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떨까. 그리고 금메달을 꼭 따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단 눈물이 날 것 같다. 선수들 껴안고 펑펑 울 것 같다. 사실 그 짜릿한 순간을 위해 우리가 고된 훈련을 하는 것 아니겠나. 내가 금메달 따서 명예를 누린다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격앙된 듯 순간적으로 목이 잠겼다.) 어느 순간보다 영광스러울 것이다. 바둑계가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아시안게임을 기대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에도 바둑이 가고 싶다. 한국바둑계를 위해서 금메달은 꼭 필요하다.
- 감독이 몹시 외로운 자리인 것 같다. 그간 감독으로서 소회는?
몇 번 있었다. 잘못되면 모두 다 감독 책임이고 잘 되면 선수 덕이 된다. 금메달 획득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개인전을 위주로 한 승부에 익숙한 바둑에서, 나보다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변신이다. 감독은 중요하다기보다 막중하다. 한번은 금메달을 향해 달려가는 꿈도 꾸었다. 선수들 보다 나 자신이 금메달을 원하는 게 아닌가,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지장(智將) 용장(勇將) 맹장(猛將 덕장(德將) 운장(運將) 중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하나 고른다면?
덕(德)은 모자라지만 덕장이 되고 싶다. 요즘 이시형 박사의 책을 읽고 있는데 세라토닌에 관해 관심이 많다. 신나게 만들고 집중력 있게 만드는 호르몬인데,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에 대한 각오와 하고 싶은 얘기는?
처음에 여자팀 감독을 맞았을 때와 2개월 전 남자대표팀을 또 맡았을 때 느낌이 달랐다. 여자는 준비기간도 길었지만 남자는 내가 먼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가 대표팀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인적인 명예는 없다. 누군가는 감독을 맡아야 하고 한국대표팀 감독이면 금메달을 따야 한다.
실험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비커나 현미경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양재호 감독과 인터뷰는 여기까지. 그는 인터뷰 도중 ‘우리선수들’ 이란 대목이 나올 마다 목소리는 잠시 떨렸고, ‘금메달’이란 단어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 국가대표 감독이란 자리가 얼마만큼의 무게로 다가오는 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저 생기는 메달은 없다. 금메달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고 한다. 코칭스텝의 눈물과 선수들의 피땀과 1000만 응원단의 한없는 성원이 함께 할 때 영광의 금메달은 잉태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한국바둑 파이팅!! 한국바둑대표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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