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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20세기의 영웅들

조선통신사의 길 1만리, 바둑으로 통하다 제5부

김종서 작가2010-10-26 23: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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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뱃길에서 기성 슈사쿠(秀策)를 만나다/인노시마 - 바로가기
[제2부] 한류의 원조, 조선통신사/토모노우라 - 바로가기
[제3부] 조선통신사 VS 본인방/교토 - 바로가기
[제4부] 또 다른 세계를 보다/히코네 - 바로가기
[제5부] 20세기의 영웅들/도쿄
[제6부] 기타니를 기억하는 1천명의 대국/히라츠카
[제7부] 19로, 1만 리/관서일대


S#1. 그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16세기와 17세기 동아시아에서 바둑은 보편적으로 유행되고 있었다.
전편 4부에서 소개했듯이 의자왕이 일본에 보낸 목화자단기국만 보더라도 바둑의 역사는 천년을 훌쩍 넘어간다.
그러나 조선과 일본의 바둑에 대한 인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인조(仁祖)가 일본에서 온 바둑판을 되돌려 보낸 이유는 사대부가 가까이해서 안 될 잡기의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전국시대의 혼란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정책적으로 보호 육성되기 시작한다.
명인 기소(名人 碁所)라는 별도의 직책을 두어 바둑을 총괄하면서 정치권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리하여 세습제의 4대 바둑가문 혼인보(本人坊), 하야시(林), 야스이(安井),이노우에(井上)를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쇼군이 지켜보는 어성기는 가문의 흥망이 좌우되는 큰 승부로 전개됐다.
아울러 이때부터 기보(棋譜)가 체계적으로 채록(採錄)되어 보관되었다.
그런 움직임들이 바둑문화를 활짝 꽃피우게 한 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바둑 교류는 1605년 이약사라는 인물이 적광사에서 본인방 산샤와 수담을 나눈 기록이 유일하지만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간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서 활짝 개화한 바둑문화를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으리라.
필자는 1684년 7회 조선통신사의 구성을 눈 여겨 보았다.
이때는 다른 때와 달리 완전한 문화사절단 형식으로 조선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로 선발했다.
문장, 한시, 글, 그림, 악기, 춤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문화 각 분야의 명인들을 뽑아 보낸 것이다.
이들은 1만 리를 이동하면서 일본의 각 번(藩) 영주들에게 유학을 시강했고 조선의 뛰어난 문화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 사절단에 바둑의 고수 한 명쯤 포함되어 일본의 정상과 승부를 겨뤘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그러나 아무리 자료를 뒤져봐도 바둑에 관한 기록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막부의 수도인 에도(동경)에 도착했을 때 분명히 바둑이 성행하고 있음을 목격했을 것이다.
과연 조선의 선비들은 그 바둑을 보고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S#2. 일본 바둑 여행

히로시마에서 시작된 나그네의 여정은 도쿄의 신주쿠로 이어졌다.
꼬박 일주일 동안 일본 본토의 절반쯤 거슬러 온 셈이다.
함께 도일(渡日)한 일행 중, 토모노우라에서 이민진 5단이 먼저 떠나갔고, 히코네에서 유창혁 9단이 서울로 떠났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스케줄 속에서도 유창혁 9단은 피로를 드러내지 않고 의연하게 바둑여행에 임했다.

“이번에 참 많은 것을 얻고 갑니다. 지금 일본이 바둑의 침체기라 하지만 막상 와보니 배울 점이 많네요. 특히 일본 기사들의 팬서비스 정신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프로기사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바둑 팬들의 요구에 응하는 ‘낮은 자세’ 보셨지요? 기사들이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보급의 기본입니다. 기사의 의무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보급의 의무거든요.”



아! 가슴이 더워지는 고백 아닌가?
필자와 유창혁 9단은 히코네 역에서 와락 끌어안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일주일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일본바둑을 담아가기 위해 망원경과 현미경을 번갈아 써가며 밤을 지샜던 동지(同志)가 훌쩍 떠나니 외로움과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이 겹쳐 가슴이 묵직했다
신간센을 타고 도쿄로 가는 길에 일본 바둑사를 빗질해본다.
바둑 마니아라면 일본의 본인방 계보를 익히 꿰고 있겠지만 도사쿠, 슈사쿠 등 일본 이름이 듣기 혼란스러운 기우들을 많으리라.

<일본 본인방 계보>

1대 산사 (算砂, 1612-1623)
2대 산에츠 (算悦, 1630-1658)
3대 도에츠 (道悦, 1658-1677)
4대 도사쿠 (道策, 1677-1702)
跡目 도데키 (道的)
跡目 사쿠겐 (策元)
5대 도치 (道知, 1702-1727)
6대 치하쿠 (知伯, 1727-1733)
7대 슈하쿠 (秀伯, 1733-1741)
8대 하쿠겐 (伯元, 1741-1754)
9대 사츠겐 (察元, 1754-1788)
10대 레츠겐 (烈元, 1788-1808)
11대 겐조 (元丈, 1809-1827)
12대 조와 (丈和, 1827-1839)
13대 조사쿠 (丈策, 1839-1847)
14대 슈와 (秀和, 1847-1873)
跡目 슈사쿠 (秀策)
15대 슈에츠 (秀悦, 1873-1879)
16대 슈겐 (秀元, 1879-1884)
17대 슈에이 (秀栄, 1884-1886)
18대 슈호 (秀甫, 1886)
19대 슈에이 (秀栄, 1887-1907)
20대 슈겐 (秀元, 1907-1908)
21대 슈샤이 (秀哉, 1908-1940)

[현대] 혼인보기전 5연패 이상의 명예 혼인보
22대 - 혼인보 타카가와 카쿠
23대 - 혼인보 사카타 에이오
24대 - 혼인보 이시다 요시오
25대 - 혼인보 조치훈

위 도표가 곧 일본 바둑의 연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간에 적목(跡目)으로 표기된 이들은 본인방 후계자로 지명됐으나 즉위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바둑을 부흥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 4대 본인방 도사쿠(道策), 그리고 14대와 15대 사이에 요절한 슈사쿠(秀策)가 일본에서는 바둑의 3대 기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1대 산샤는 본인방의 시조 격이다. 그는 법명이 일해(日海)인 스님이었다. 그가 은퇴하고 머문 암자의 이름이 본인방이었는데 바둑 가문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바둑 타이틀로 존재한다.

4대 도사쿠는 26년간 정상에 군림한 절대고수였다.
수 나누기 이론의 창시자이며 기력 13단으로 통한다.

그리고 슈사쿠는 불멸의 3.3포석과 이적(耳赤)의 수, 어성기 13년 무패를 자랑한 천재였다.

21대 슈사이는 본인방 가의 마지막 인물, 가와바타 야스나리(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명인(名人)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신문기전이 창설되면서 현대바둑의 시대가 열린다.
대륙에서 건너온 불세출의 천재 오청원과 기타니가 포석혁명을 일으키며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일본 바둑에 관한 정보들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다음 블로그 野人으로 들어가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현대에 신문기전으로 변한 본인방전은 해마다 우승자를 뽑으므로 5연패를 이룩한 기사만 명예 본인방으로 선정된다.
현재 마지막 25대 본인방을 지키고 있는 이가 바로 한국인 조치훈이다.
(그는 본인방 특유의 작명이 있는데도 거부하고 한국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초창기 일본 바둑계를 움직인 거목은 세고에 9단과 기타니 9단, 그리고 관서기원의 창시자 하시모토였다.


▲ ① 세고에, 기타니, 하시모토가 사인한 바둑판. ② 신주쿠의 한국문화원. ③ 한국문화원 사랑방.


S#3. 20세기의 영웅들

이 바둑판에 새겨진 이름들을 확인해보시라.
세고에, 기타니, 하시모토.
초창기 일본기원의 중심인물들이자 현대바둑의 사부(師父)들이다.
이들이 사이좋게 친필로 휘호한 바둑판은 일본 최고의 명반으로 통한다.
바로 이 바둑판이 <21세기의 조선통신사> 바둑 로드 이벤트 기념대국에 사용됐던 바둑판이다.

10월 8일 신주쿠의 한국문화원의 사랑방.

전신 조훈현 9단과 우주류 다케미야 9단의 기념대국이 벌어졌다.
20세기 후반 세계를 호령했던 고수들.
당시 전 세계 바둑 팬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기사들이다.
원래 앉아서 두도록 준비됐으나 다케미야 9단이 허리통증을 호소하자 조훈현 9단이 두말없이 직접 테이블 위로 바둑판을 올려 응급조치했다.
전 세계 바둑챔피언이 소탈하게 바둑판을 들자 주최 측 요원들이 화들짝 놀라 달려가 거들었다.


▲ 조훈현 9단과 다케미야 9단의 대국.

대국자들은 돌을 가리는 대목에서 서로 백을 양보하느라 깨나 오래 신경전을 벌였다.

전신과 우주류의 한판승부는 한국문화원 극장에 모인 관전객들에게 중계방송되었다.

두 영웅이 화끈한 난타전을 마치고 해설 장으로 들어서자 관전객들이 기립해 박수로 환영해주었다.


▲ 한국문화원에 모인 관객들.




▲ 오오다케 9단이 복기를 하고 있다.

일본기원 이사장인 오오다케 9단이 특유의 활달한 스타일로 복기를 이끌었다.
복기 다음에는 한 시간 가량 토크 쇼가 이어졌다.
오오다케 이사장, 다케미야 9단, 일본 프로기사회장인 토모코, 일본기원의 고바야시 상무이사가 함께 자리했는데 모두 기타니(木谷) 도장출신이라 그 시절을 회상하는 시간이었다.


▲ 기타니 도장 출신들이 모여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조훈현 : 저도 원래는 기타니 도장에 가기로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사차 세고에 선생 댁에 들렀다가 주저앉게 된 거죠. 그래서 기타니 선생이 무척 아까워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기타니 선생이 워낙 저를 예뻐해주셔서 도장에 자주 놀러 갔습니다. 거기 가면 또래 원생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다케미야 선배는 저보다 두 살 위여서 어쩐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압도하는 뭔가가 있는 선배라서 훗날 큰 승부에서도 어려운 상대였지요.



조훈현 9단이 다케미야 9단을 치켜 올리자 다케미야 9단이 황급히 손을 저으며 끼어들었다.

다케미야 : 천만의 말씀! 조훈현 9단은 아무도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고에 도장 문하생인데도 거리낌 없이 우리 도장에 드나들면서 휘젓고 다녔거든요. 그는 저의 마작 사부입니다. 저에게 마작을 가르쳐 주었지요. 또 고바야시 고이치 9단한테는 카드를 가르쳤구요. 기타니 문하생들에게 이런 저런 게임을 마왕이 바로 조훈현 9단이었다는 점을 오늘 고발합니다.“

그러자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토모코 기사회장 : 조훈현 9단이 병역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우리들이 공항까지 마중나갔던 것 기억하시나요?

조훈현 : 네, 기억합니다.

토모코 : 그때 후지사와 선생 사모님께서 조9단과 마지막이니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너라고 짖궂게 권유하셔서 손을 잡았었죠?

조훈현 : (빨개지면서) 기억 안나는데요.


▲ 좌로부터 다케미야, 토모코, 고바야시, 조훈현.

그러자 토모코 회장이 서류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토모코 회장과 고바야시 상무이사는 여류기사로 일본바둑의 실무를 맡고 있는 실세들이다.
그녀들에게 조훈현 9단은 사춘기의 친구로 각별히 기억되어 있는 듯했다.


S#4. 한일의 거리가 좁혀졌으면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마음의 소리> 밴드의 공연이었다.
한일 양국 바둑계가 좀 더 친밀해지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준비된 공연이었다.
바둑 로드 이벤트의 기획자 기타니 씨가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큰 바둑행사에 자주 초청되는 그룹이다.
히코네 회식에서 화음을 맞춘 이후 필자도 그 밴드의 객원멤버로 스카우트됐다.
얼떨결에 아마추어가 큰 무대에 섰지만 진심으로 20세기 바둑 영웅들이 보는 앞에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열심히 불렀다.
공연을 마치고 내려왔더니 다케미야 9단이 악수를 건네며 사인을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 필자와 다케미야 9단.

에이, 무슨 말씀을!
“와우 김 선생. 멋있다. 나도 노래와 춤을 좋아하거든. 친구 먹자.”
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는데,
진짜 그가 필자의 노트에 사인을 해주었다.



<遊神>
헉! 노는데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에이, 기왕이면 우주류로 해주시지.

행사가 끝나고 일본기원 관계자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잡혔는데 다케미야 9단은 선약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할 참이었는데 아쉬웠다.
그런데 그가 씨익 웃으면서 하는 한 마디.

"춤을 추러 가는 길입니다. 쉘 위 댄스? 하하하"

실제로 그는 댄스삼매경에 빠져있다고 했다.
과연 遊神다웠다. 

조훈현과 다케미야를 비롯해 20세기는 영웅들이 명멸했던 전국시대였다.
일본기원에서 발행된 20세기 대표기사들의 타이틀에 영웅들의 기풍이 잘 압축되어 있다.

1) 화려(華麗) - 후지사와 슈코
2) 미학(美學) - 오다케 히데오
3) 강완(强腕) - 가토 마사오
4) 신통(神通) - 오청원
5) 중후(重厚) - 임해봉
6) 투혼(鬪魂) - 사카다 에이오
7) 호연(浩然) - 다케미야 마사키
8) 치밀(緻密) - 고바야시 고이치

(다음 화에 계속)

내일은 제6부 - 기타니를 기억하는 1천 명의 대국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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