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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19路, 1만 里 - 여정을 마치며

조선통신사의 길, 1만리 바둑으로 통하다 제7부

김종서 작가2010-10-29 14: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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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뱃길에서 기성 슈사쿠(秀策)를 만나다/인노시마 - 바로가기
[제2부] 한류의 원조, 조선통신사/토모노우라 - 바로가기
[제3부] 조선통신사 VS 본인방/교토 - 바로가기
[제4부] 또 다른 세계를 보다/히코네 - 바로가기
[제5부] 20세기의 영웅들/도쿄 - 바로가기
[제6부] 기타니를 기억하는 1천명의 대국/히라츠카 - 바로가기
[제7부] 19로, 1만 리/관서일대


S#1. 조선통신사의 재발견을 위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 팽창의 시대에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하며 유럽과 미국의 선진문물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중화문명, 그러니까 아시아의 범주를 부정하고 새로운 일본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식민지 경영과 산업혁명은 영국, 스포츠와 군대는 독일, 예술과 음식은 프랑스, 인본주의적 가치관과 건축은 이탈리아, 법률의 기초는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여 열도에 맞게 변형시킨다.
모방과 재창조에 뛰어난 그들은 동양의 유럽을 꿈꾸고 있었다.
그 몽상이 지나쳐 발작에 가까운 대동아공영권의 주창으로 한반도를 침략한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이후 300년 동안 지속됐던 조선과 일본의 우호와 평화는 물거품이 된다.
30년 간격으로 일본에 파견돼 성심으로 외교에 주력했던 조선통신사는 메이지 유신 때 전격적으로 폐지되는 것이다.
더 이상 조선으로부터 받아들일 문물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일본은 동양의 일원이라기보다 다분히 서구지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가 고도성장을 이루며 전 세계가 무한 경쟁하는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고전적 패러다임인 ‘탈아입구’의 효용은 퇴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아시아의 정체성을 벗어버린 데 있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일본 바둑의 퇴조도 같은 맥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메이지 유신 이후 100년간 한일 양국에서 ‘조선통신사’의 존재는 망각되다시피 했다.
36년에 걸친 식민통치의 후유증이 너무나 컸기에 ‘믿음으로 통했던 통신사(通信使)’의 기억이 부질없었는지도 모른다.
1980년대에 이르러 오사카의 재야사학자 신기수 선생의 집요한 노력의 결실로 ‘조선통신사’에 관한 사료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0년 여름 필자는 방송작가로 일본에 파견돼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탐색하다 신기수 선생의 사무실에서 ‘조선통신사’에 관한 대화로 격정의 밤을 샌 적 있었다.
그러나 너무 광범위한 지역에 흔적들이 분포해 촬영을 포기했었다.
그 아쉬움을 딱 20년이 흐른 2010년 이 번 바둑기행을 통해 해소하고 신기수 선생께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음을 밝힌다.
(현재 조선통신사에 관해 출간된 서적의 절반은 신기수 선생 작품이며, 그가 연구한 자료가 후학들의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일본 쪽에서 해마다 부각되고 있는 ‘조선통신사’의 존재가 반가운 게 사실이지만 솔직히 필자가 보기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부흥의 전략적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에도 부산문화재단에 ‘조선통신사 사업위원회’가 만들어져 일본의 각 도시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며 합동 페스티발을 비롯해 학술조사, 도록 출간 등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쪽도 뭔가 공허한 느낌이다.
두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 평화에 큰 기여를 한 ‘조선통신사’의 역할을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한일 간 진정한 교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됐으면 참 좋겠다.



일주일 동안 필자와 함께 돌아본 일본 바둑기행 어떠셨는지?
특별한 이슈도 아닌데 대문짝에 큼직하게 7일간 7부작 다큐멘터리를 연재한 타이젬 콘텐츠 팀의 뚝심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조선통신사의 길 1만 리, 바둑의 通하다>가 타이젬에 발표되면서 몇몇 방송사와 신문사,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제대로 한 번 파고들어보자는 제의였다.
대하소설 10부작쯤으로 기획해서 16세기, 17세기 조선, 일본의 사회상과 모험에 가까운 사신들의 대장정을 집필해보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언젠가 필자의 뜻이 이뤄진다면 그건 순전히 지적호기심이 강한 타이젬 회원들의 성원의 힘일 터.


S#2. 일본 속의 타이젬 포커스

조선통신사의 길과 병행해 일본의 바둑문화, 한일 바둑교류 등에 관해 짚어본 이 번 여행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인물들을 부록 형식으로 담을까 한다.

◆ 일본의 바둑 요정 만나미(万波) 2단 ◆



만나미 2단은 NHK 바둑 프로그램의 MC로 일본 바둑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가는 곳마다 사인공세에 시달리는데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특유의 왼손 사인과 기념촬영에 응한다.
올해 25세. 절정의 개화기를 맞은 그녀, 뜻밖에도 한국어에 능통하다.
대국 전야제 때 야마다 9단과 함께 유창혁 9단의 방에 인사차 방문해 즉석 술자리가 만들어졌는데 그녀가 통역을 맡을 정도였다.


▲ 만나미2단과 이민진5단

한국과 한국바둑을 좋아 한국어를 독학했다는 그녀,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민진 5단과 대국을 앞두고 필자와 임전소감을 물었다.



그런데 대뜸 그녀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
“두기 싫어요. 너무 강하니까요.”
솔직해서 더 귀여웠다.

- 미녀기사라서 프로포즈 많이 받지 않나요?
“아뇨. 그런 남자가 별로 없어요.”

- 한국의 젊은 기사들은 어때요?
“좋아요! 너무 좋아요. 한국기사들 너무 멋있어요. 바둑도 세고.”

-그러면 제가 타이젬에 공개구혼장을 올려 드릴까요?
“와우, 정말이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봐서 예의 상 하는 대답 같진 않다.
세계대회 현장에서 눈여겨 봐둔 한국기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그녀의 부탁을 받았으니 이 자리를 빌려 공개한다.
한국의 총각 프로기사들이여. 앞으로 어디선가 만나미 2단을 만나면 일단 대시해보시라. 그보다 마음이 앞서걸랑 지체하지 말고 필자에게 쪽지를 날리시길.^^


▲ 도모노우라 시가를 걷는 만나미2단

그녀는 현재 도쿄의 아파트에 부모님과 함께 산다. 언니도 프로기사인데 시집가서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산다고 했다.
(그녀는 타이젬에서 인터넷 바둑을 둔다고 했다.)


◆ 하네 9단 ◆



일본의 천원 타이틀 보유자 하네 나오키의 부친으로 히코네 기념대국의 공개해설을 맡았다.
오래전부터 바둑도장을 운영했는데 아들 나오키는 일부러 다른 도장에 보냈다고 한다.

“일본 바둑계의 고민은 바둑을 배우려는 어린이들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때 <고스트바둑왕>의 히트로 반짝 붐이 일었는데 일시적이었습니다. 바둑이 확산되기 위해서 모두가 고민을 같이 해야겠죠.”

쉬는 시간,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하네 9단의 성품은 역시 인자해보였다.


◆ 김현정 3단과 나카네 나오유키(中根直行) 8단 부부 ◆



두 부부기사가 일본기원 중부총본부 소속으로 나고야에 거주한다.
김현정 3단은 지난 주말 결혼한 김효정 2단의 언니다.
이 번 히코네 기념대국의 해설을 맡았는데 필자의 요청으로 남편과 동행했다.



전형적인 일본 장사 스타일의 나카네 8단은 소문난 타이젬 마니아다.
두 아들이 개구쟁이여서 아내가 해설을 하는 동안 진땀을 흘리며 돌보는 모습이 인간적이었다.
그러다 해설하던 김현정 2단이 계가를 부탁하자 머쓱해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시원시원하게 계가를 하며 승패를 진단했다.



-김현정 사범이 한국식 요리 종종 해주던가요?
“집에서 요리는 제가 합니다.”

-헉, 그럼 아내는 뭘 하죠?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없어요.”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 장남이 연못 쪽으로 달려간다.
동시에 소리치며 달려가는 부부.
역시 사전통화에서 김현정 3단이 귀띔해줬던 말이 사실로 드러난다.

“인터뷰하기 어려울 걸요. 그냥 인사만 드리러 갈게요. 후후”


▲ 유창혁에게 인사하는 나카네.

유창혁 9단을 만나자 경의를 표하는 나카네 8단.
이 한 장면에 그의 마음이 보이는 듯싶다.


◆ 히코네의 선남선녀 ◆



일본 중부의 소도시 히코네에는 70명 정도의 바둑 클럽이 있다.
회원들은 매달 1천엔의 회비를 내고 아무 때나 기원에서 바둑을 즐길 수 있다. 대형 아케이드 3층에 있는 기원은 늘 비어있다.
그냥 회원들이 와서 두고 가면 되는 곳이다.



히코네 기념대국에서 기록과 계시를 맡은 선남선녀.
이 두 남녀가 각각 히코네 아마추어 챔피언이다.


▲ 히코네 아마추어 여류최강 교우카 양


▲ 사카모토.

사카모토 씨는 히코네 동고의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며 타이젬에서 6단을 둔다고 했다.


◆ 마쓰모토 쓰기오(光元次夫) ◆



조선통신사 인형수집가.
일본 전역을 돌며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인형을 오랜 세월 수집하고 있는 마니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한 이후 한국에 이끌려 인형을 수집하게 됐다고 함.
신주쿠 한국문화원과 부산에서 인형전시회를 열기도 했음.


◆ 오오다케 9단 - 현 일본기원 이사장 ◆


▲ 조국수와 오오다케 이사장

전성기 때 ‘반상의 미학자’로 일세를 풍미했던 거인.
기타니 사단의 맏형으로 보스 기질이 넘쳐보였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서 지켜보니 소탈하고 유머러스했다.
한국문화원 공연을 통해 필자와 알게 된 오오다케 9단 이틀 만에 히라츠카에서 다시 만나자 반색하며 손부터 내민다.

▲ 필자와 오다케 선생.

“오오 김선생. 목소리 엄청 우렁차더라고. 언제 나랑 술 한 잔 하자고.” 그 약속에 대한 인증 샷으로 찰칵.(눈매가 닮았다는-)


◆ 요다 9단 ◆



과거 이창호 9단의 천적으로 맹위를 떨칠 때 필자가 가장 경원했던 사무라이 요다 9단.

타이젬에서 취재왔다고 하니 반가워한다.
하지만 왠지 위축되는 이 느낌은 무얼까 - -;;;


◆ 다케미야 9단 ◆



역시 이틀 만에 다시 만난 다케미야 9단.
플레이 갓(Play god, 遊神) 구락부 멤버들끼리 건배.


◆ 유키카 히라다 ◆



필자와 함께 전 지역의 바둑행사를 취재했던 방송 프로덕션 드림그래프트의 카메라 우먼.


◆ 기타니(木谷正道) ◆

▲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기타니씨

기타니 미노루 9단의 3남.
조선통신사 바둑이벤트의 기획자.
음악가로 활동 중이며 내년에는 한국에서 바둑 로드 이벤트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3. 에필로그 - 신주쿠에서



신주쿠에 비가 내린다.
메트로폴리탄 도쿄를 보는 마음은 언제나 착잡하다.
400년 전 조선통신사들이 100만 인구의 에도(江戶)를 보며 혹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늘 한 발 앞서갔던 일본.
가까워지기에 너무 멀었던 이웃.



저 많은 철로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일까?
호텔 창 아래로 복잡한 신주쿠 역의 철로를 내려다보니 19로와 조선통신사의 1만 리 여정이 오버랩 된다.
길은 그대로 길일뿐이다.
길의 주인은 바로 길 위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리라.
두 나라 사이에 난 길 중 가장 가까운 길이 바로 19로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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