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수첩]
'강프로'의 마인드컨트롤
당구 한국랭킹 2위 강동궁 선수를 만나다
김종서 작가2010-11-14 13:17:28

▲ 3쿠션 한국랭킹 2위 강동궁 선수.
S#1. 그는 바둑 광(狂)
최근 들어 TV 화면을 부쩍 자주 등장하는 당구의 프로 강동궁 선수.
김포의 한 당구장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나라의 당구동호인 수는 천만, 세계 모든 나라의 동호인 수보다 많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강동궁 선수의 랭킹은 2위.
바둑 랭킹으로 따진다면 어느 정도 급인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당구와 바둑의 동호인은 상당수 겹치지 않을까?
과거 타이젬에 <승부사>를 연재할 때 독자들 모임을 가진 적 있었는데 그때 50여 명의 기력 평균치가 3~4단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50여 명의 당구 에버리지가 250쯤으로 나왔다.
어지간하면 죄다 300이라고 했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수준 차이는 나지만 아무렇게나 복식 조를 짜도 그럭저럭 게임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바둑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당구도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 강동궁 선수의 연습장인 김포의 각구목 당구장에서 만났다.
“하하 저는 집에 들어가면 TV채널 두 개만 봅니다.”
강동궁 프로가 필자와 악수를 나누자마자 씩 웃으며 한 말이다.
바둑TV와 SKY바둑, 오직 그 두 채널만 본다고 했다.
“에이 설마 공중파도 시청하시겠죠.”
“당구 연습을 하고 귀가하면 심야거든요. 볼 것은 바둑 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박영훈 9단과 원성진 9단의 명인전 결승 대국을 숨죽여가며 봤습니다.”
이쯤 되면 바둑에 대한 그의 순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둑은 몇 급이나 두십니까?”
“기력은 약합니다. 그러나 바둑에 투자하는 시간은 꽤 많은 편이죠. 타이젬을 비롯해 모든 바둑사이트에 아이디 하나씩 있으니까 열혈기객 아닌가요?”

▲ 강동궁 선수와 김지명 사범.
사실 강동궁 프로를 필자에게 소개시켜준 주인공은 한국리그 해설을 맡고 있는 김지명 사범이었다.
요즘 김지명 사범은 밤마다 검객처럼 큐대를 어깨에 메고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 일합을 겨룬다는 당구 마니아다.
당구를 좋아하는 바둑 인과 바둑을 좋아하는 당구 프로는 우연히 만났는데 서로를 알아보고 팬이 됐다고 한다.
“바둑을 보면 당구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나 봅니다?”
“아주 도움이 되죠. 특히 국면을 풀어가는 전술, 머릿속으로 다음 수순을 그려가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아주 흡사합니다. 네모난 그라운드에 동그란 돌로 겨루는 방식도 그렇고 두 종목 다 경우의 수가 엄청나잖습니까?”

▲ 필자에게 난구를 설명해주고 있는 강동궁 선수.
그의 바둑예찬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약점은 마인드컨트롤에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해서 기량은 비슷한데 심리적인 면에서 미세하나마 안정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차이가 큰 승부에서는 여지없이 판을 가르거든요. 그래서 바둑을 통해 정신수양을 하고 있다 보시면 됩니다.”
흥미로운 고백이다.
당구의 고수가 바둑을 훈련으로 활용한다니.
“제가 당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바둑을 택했을 겁니다. 물론 정상 급의 기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바둑의 길을 걸었어도 너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동궁 프로는 올해 1월, 같은 당구 프로인 박수아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시절인데 남편이 집에서 바둑 프로그램만 시청하자 아내 박수아 씨가 어느 날 바둑판과 바둑 돌, 그리고 이창호 바둑입문 시리즈를 구입했다.
도대체 바둑이 얼마나 좋은 건지 둘이 함께 배워보자는 거였다.
역시 당구 프로선수다운 승부욕을 보여준 아내, 화끈하지 않은가?
그래서 요즘 강동궁, 박수아 당구커플은 배드민턴과 바둑을 함께 즐기며 체력과 정신을 관리한다고 전한다.

▲ 강동궁 선수가 직접 샷을 보여주고 있다.
S#2. 최강의 파워 스트로크
80년생으로 올해 31세인 강동궁 프로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부친이 당구장을 경영했던 까닭에 아들 3형제가 소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하게 되었다.
두 살 아래 동생이 항상 한 걸음 앞서가는 바람에 소년 강동궁은 오기가 솟구쳐 연습에 몰두했다. 마침내 동생을 넘어서자 동생은 영원히 큐를 접어버렸다고 한다. 승부근성이 대단한 형제들인 모양이다.^^
강동궁은 창원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2학년 무렵에 창원시민 당구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입상해 자연스럽게 프로가 되었다.
당구 프로란 바둑처럼 혹독한 입단의 관문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실력을 갖추고 연맹에 가입하고 대회에 출전하면 프로 타이틀을 붙이게 된다.
중3때 UMB 세계월드컵대회에 출전해 유명한 박성희 선수를 꺾으면서 당구신동 소리를 듣게 된 강동궁은 부산 동래원예고와 성덕대 스포츠당구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각종 프로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경남당구연맹 정기평가전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하고 2002년 SBS당구대제전에 출전해 당시 최강의 고수들이던 황득희, 장성출, 이홍기, 이천우, 이승진 등을 연파하고 우승컵과 상금 500만원을 차지했다.
겨우 스물 셋에 불과한 신예가 당구계의 거목들을 파죽지세로 물리치고 정상에 선 그 대회는 당구계의 지형을 바꾼 분수령이었다.
이후 강동궁은 김경률, 최성원과 함께 부산 출신 3인방으로 한국 당구를 이끄는 트로이카로 지금까지 맹활약하고 있다.
- 강동궁 선수의 특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파워 스트로크를 장기로 합니다. 큐 스피드가 빨라서 치기 어려운 공을 저만의 코스로 공략하는 비장의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나 할까요?”
- 동료 스타들의 장점을 간단히 소개해주시지요.
“김경률 선수는 언제나 차분하죠. 안정감이 있어 어떤 경우에도 잘 흔들리지 않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천재 형입니다. 몰아치기에 능하죠.”
-이 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구 종목에 금메달이 10개나 걸려 있습니다. 캐롬 3구 대표로 김경률, 허정한 선수가 출전했더군요.
“네, 아마 좋은 성적을 올릴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어 신경을 쓰지 못 했습니다. 아무튼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당구장과 동호인을 보유한 한국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는 게 당연하겠죠. 앞으로 우리 당구 프로들이 보다 실력을 가다듬어서 세계 정상을 차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외국 당구 프로들이 한국에 오면 거리마다 붙어있는 당구장 간판에 혀를 내두릅니다. 한 마디로 당구의 천국이 따로 없다고들 하는데 한국인들의 마니아 기질이 틀림없이 언젠가는 제대로 발휘되리라 생각합니다."

▲ 경기 전 필자와 강동궁 선수의 인증 컷.
S#3. 정상의 실력이 궁금하다
유저수첩 취재를 핑계로 한 판 지도를 청했다.
바둑으로 치자면 국수 급 고수한테 언감생심 말도 꺼내기 어려울 터이지만 강동궁 프로는 흔쾌히 큐를 잡아주었다.
필자도 30년 구력을 지닌 에버리지 300.
그 동안 방송계와 출판계에서 친구들을 꽤나 울렸던 마귀로 통한다.
특히 2점으로 쳐주는 빈 쿠션을 선호해서 국제식 큰 테이블 게임은 아예 배우지 않았다.
- 강 프로님. 어차피 하수와 치는 거니까 동네 당구 규격과 방식으로 괜찮겠어요?
“상관없습니다. 작가님이 20개, 제가 40개 치면 되겠네요.”

시원시원하게 콜한다.
바둑이라면 국수 급에게 타이젬 4단이 몇 점을 놓아야 이길 수 있을까?
놓으면 놓을수록 사석만 많아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바둑에서 고수를 이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나 당구는 좀 다르다.
컨디션에 따라 하수라도 언제든지 고수를 극복할 수 있다.
그만큼 간격이 크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아니나다를까 강 프로 중대 테이블에서 몇 차례 미스를 범한다.
오랜만에 치는 규격이라 익숙치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필자도 헤맨다.
그 사이 공의 특성을 파악한 강 프로가 작심하고 파워 스트로크를 구사하기 시작한다.
한 큐에 9점을 기록하며 주판알을 털어 내린다.
기가 죽어서 헛손질 두어 번 더하자 그가 6점, 5점을 연속으로 친다.

▲ 필자가 열심히 하나 치고 들어오면 강 선수는 여유있게 서너점을 치고와서는 자리에 와서 웃고 있었다.
- 안되겠네. 10개 더 놓으세요.
“그러죠.”
그래서 20개와 50개로 핸디를 맞추었다.
결론은 문지기였다.
필자는 큐대를 창처럼 세워 쥐고 강 프로의 개인기만 물끄러미 지켜보고 서 있어야 했다.
그가 한 줄 50개를 기록할 동안 13개만 쳤을 뿐이다.
그러자 옆에서 관전하던 김지명 사범과 타이젬 하 부장이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아아, 역시 강호는 넓고, 고수의 세계는 아득하구나!
강동궁 프로에게 직각으로 예를 표하고 관전자들을 녹색 그라운드로 불러들였다.

▲ 24분이 지난 시점에서의 결과. 강동궁 선수는 게임이 모두 끝난 뒤 10개를 더 쳤다. 모두 걸린 시간은 30분이 넘지 않았다.
“프로 선수에게 만방으로 졌다고 물 300이라 비웃는 모양인데 직접 겪어보시지?”
역시 일반 동호인들은 한결 쉬웠다.
프로와 겨루었을 때 위축됐던 손가락들이 어느 사이에 풀려 신들린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승을 거두었다.
뭐 필자의 솜씨를 자랑하려는 취지가 아니다.
이렇게 만 원짜리 게임에 강미를 보이는 동네 마귀를 거의 퍼펙트하게 제압한 당구 프로의 경지를 강조하기 위해 끌어들인 에피소드다.
- 강 프로께서는 한 큐 기록이 몇 개나 됩니까?
“35점입니다.”
- 헉! 그럼 4구 기록은요?
“그건 의미가 없지요.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 1천 점을 쳤는데 4구를 함께 치면 그냥 한 큐에 끝나더라구요. 당구 프로들은 4구를 몇 점 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둑에서 돌 가르기 하잖습니까? 그때 흑을 쥔 사람이 그냥 한 큐 끝까지 쳐버리는 거죠.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 허걱! 우문(愚問)이었군요.

S#4. 강동궁 프로의 바둑 사랑
요즘 강동궁 프로는 김포시의 각구목 당구장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
각구목이라니까 이름이 살벌하게 들리지만 한자 표기를 보면 빙그레 미소가 번진다.
각구목(角球木)
앵글과 볼과 큐대를 조합한 이름이다.
바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강 프로에게 필자가 이런 제안을 했다.
-프로기사한테 지도대국 한 번 받아 보실래요?
“우와 그럼 저야 영광이죠.”
-그 대신 프로기사나 타이젬 회원들에게 당구 한 수 지도해주는 겁니다.“
“언제든지 대환영입니다.”
- 당구 지도료는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아, 저는 기본적으로 지도료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담이 크니까요. 그냥 타이젬 회원들이라면 당구 보급 차원에서 성심껏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계약이 체결됐다.
유저수첩의 기획의도는 타이젬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는 기우들의 소통에 중점을 둔다.
바둑과 당구를 동시에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위해 유저수첩에서 이벤트 한 번 만들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은가?
강동궁 프로와 한 큐 이벤트.
원하시는 회원들께서는 댓글로 신청하시길 바란다.
신청자 전원을 모실 수는 없는 일이고,
<유저수첩 배> 예선전을 열어 1,2위를 차지한 분들게 강 프로와 지도시합 특전을 주선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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