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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쌍권총과 목탁, 그리고 바둑

도신스님의 서광사 바둑 템플스테이

김종서 작가2010-12-01 14: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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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선 사범과 도신스님.

S#1. 바둑 사부 전영선

청년 도신(道信)은 홍성의 오서산 정암사에 머물면서 바둑을 접하게 됐다.
주지 법현스님에게 13점을 놓고 배우기 시작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면서 계절이 두 번 바뀌었을 때 마침내 접바둑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해가 1987년.
서울에 와 기원에 들렀더니 5급 판정이 나왔다.
기왕 배운 바둑 끝을 알고 싶어 관철동 한국기원에 수강등록을 했다.
관철동에서 도신에게 제대로 바둑을 가르쳐 준 사부가 바로 전영선 8단이다.
전영선 사범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가공할 전투력을 자랑했고 프로에서도 부분적인 전투에서 놀라운 파괴력을 과시해 ‘전류(田流)’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전류(電流)처럼 짜릿하게 상대의 급소를 눌러 꼼짝 못하게 만드는 수가 바로 전영선류였다.

소년시절 이창호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전영선 사범은 성품이 소탈해 아마추어들과 곧잘 어울렸다.
프로라고 해서 특별히 지도료를 받지 않았고 술 한 잔이면 밤새워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았다.
전성기 때 꽤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지만 마음이 여려 치열한 승부 바둑을 두지 못했다고 한다.
전영선 사범은 승부보다 바둑 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한 애기가였다.
5급이었던 도신과의 치수는 9점.
시커멓게 9점을 깔아도 승부가 되지 않았다.
전영선 사범은 프로 중에서도 접바둑을 아주 잘 두는 프로였다.
법현스님과 13점으로 시작해 가까스로 핸디를 지웠는데 또 다시 9점을 깔게 됐으니 정말 바둑은 아득한 세계였다.
제자 도신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 사범은 시도 때도 없이 바둑판을 들고 와 수도승의 흑 말을 회 치고 굽고 삶아서 내키는 대로 요리했다.
도신은 그 뭇매를 맞으며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판을 엎었겠지만 이상하게 전 사범의 매는 아프지 않았다.


▲ 도신스님과 제자인 서운스님의 대국 모습.

“그 분이 보살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어렵다는 프로기사께서 뭐 생길 게 있다고 까마득한 하수와 미친 듯이 대국을 했겠습니까? 대략 그 분과 일천 판은 넘게 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천 판 끝에 정선 치수까지 내려 왔지요.”

그때가 2000년 무렵이었는데 바둑에 눈을 뜬 도신은 프로 입단까지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힘이 센 전영선 사범에 정선 치수라면 헛된 몽상도 아닐 터.


S#2. 쌍권총과 목탁

전 사범은 지독한 애주가였다.
술을 좋아해 바지 뒷주머니에 소주 두병을 꽂고 다녀 쌍권총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매일 폭음했으니 건강이 좋을 리 만무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가면 링게르 병에 소주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
하늘나라에 가면 취하기만 할 뿐 몸은 다치지 않는 술이 있다던데 그 술을 가져와 술꾼들에게 맘껏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이놈의 세상 술을 마시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알콜로 간이 녹아내려 오래 살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 없이 쓰러졌다.
그때마다 옆에서 도신이 부축하고 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히힛, 도신이 고생 많이 했지. 맨날 나를 업고 다녔거든.”

전영선 사범이 병상에서 지인들에게 한 말이다.
보다 못한 도신은 전 사범을 산사로 납치했다.

“사부님, 여기는 절이니까 이제부터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 충남 서산에 있는 서광사 전경. 

그 순간 사제의 입장이 바뀌었다.
술을 차단하고 전 사범에게 명상을 권유했다.
순응하는 척 했지만 알콜에 중독된 전 사범은 팬티 속에 소주를 숨겨와 도신의 눈을 피해 홀짝 홀짝 마시곤 했다.
그 바람에 인연을 끊을 정도로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도신의 진정성을 읽고 나서 전 사범이 금주를 선언했다.
술을 끊고 명상으로 마음을 추스른 전영선 사범은 그때부터 놀라운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명인전에서 파죽지세로 예선을 통화하고 4강까지 올라갔다.
그 해에 전영선 사범의 성적은 생애 통산 최고의 승률을 기록했다.
그렇게 금주와 명상의 효용을 확실히 체험한 전 사범이건만 다시 세상으로 나왔을 때 약 대신 독을 택하고 말았다.
세상이 혼탁하니 독이 약 아닌가?
어쩌면 전 사범은 그렇게 자문자답했는지 모른다.
전영선 사범은 2002년 2월에 53세의 일기로 세상과 등졌다.


▲ 서광사로 바둑 템플스테이를 온 유창혁 바둑도장 아이들.

S#3. 바둑의 순정

바둑 사부 전영선 사범에 대한 도신스님의 그리움은 각별하다.

“이외수 선생님과 힘을 합쳐 전영선 사범님의 기보 집을 출간할 생각입니다. 그 분이 대단한 타이틀을 획득한 승부사는 아니지만 이 땅의 바둑애호가들에게 바둑의 혼을 심어준 은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분의 기보가 완벽한 수의 모델은 아니라도 한 수 한 수에 담긴 당신의 번뇌와 감각,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여건이 된다면 서광사에 전영선 기념관도 조촐하게 만들고 템플스테이와 더불어 바둑문화의 현장으로 가꿔볼 참입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져 간 프로기사 전영선 사범의 영혼이 이렇게 도신스님을 통해 서광사에서 빛을 발하니 가슴 뭉클하지 않은가?
도신스님의 바둑계 인맥도 전영선 사범을 고리로 이어진다.
바둑출판사 현현방에 출입하며 안영이, 박치문, 심종식, 유건재 씨 등과 친분을 쌓았고 김인, 조훈현 국수와도 막역하게 지내며 김성룡처럼 젊은 기사와도 의기투합하니 이미 바둑계에서 서산의 서광사는 한국기원 불교지부 쯤으로 인식할 정도다.


▲ 사찰에 세운 어린이 바둑교실.

도신스님은 서광사 앞 마당에 한국의 사찰 중 최초로 어린이 바둑교실을 세우기도 했었다.
2층 건물에 도장을 꾸미고 수십 조의 바둑판을 들였으며 지도사범까지 초빙해 모셨다.
바둑을 배우는 아이가 단 한 명에 불과할 때도 뚝심으로 도장을 운영했었다.
그러나 스님의 바둑에 대한 순정이 제대로 통하질 않아 바둑도장은 올 여름 정리했다.
그 대신 서광사 본전의 2층을 새로 단장해 템플스테이 도장으로 꾸몄다.

아예 사찰 전체를 바둑에 올인한 셈이다.
어린이 바둑도장처럼 바둑 템플 스테이 구상도 스님의 뜻대로 활짝 펼쳐질지 아직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도신스님의 눈빛은 형형하다.



“바둑이 살아나야 합니다. 정신을 가다듬는 데 바둑만큼 좋은 것은 따로 없다고 믿습니다. 여기 오셔서 깨달음의 한 수를 함께 찾아보시지요. 길을 찾다 보면 바둑의 길 뿐만 아니라 인생의 길도 찾게 될지 모릅니다.”

서광사의 바둑 템플 스테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도신스님의 삶을 간략하나마 3화에 걸쳐 소개해드렸다.
우리 바둑의 잠재력은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연속적으로 출현하면서 세계를 제패한 힘도 크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 바둑 팬들의 마니아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바둑이라면 죽고 못 살고, 바둑을 통해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바둑애호가들. 이런 마니아 기질이 오늘의 한국 바둑을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본다.
마니아들이 존재하기에 바둑계가 움직이고 스타들이 빛을 발하는 것 아닌가?
도신스님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혀를 깨물 만큼 대단한 바둑 마니아.
그의 바둑 순정에 전영선 사범의 의리가 오버 랩 되어 있으니 애틋하다.

12월 4일. 바둑 템플 스테이 첫 날에 바둑 순정파 군단들이 대거 모여 명상과 수담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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