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올킬! 삼국지 종결자 문도원
정관장배 1차전서 7연승
김종서 작가2011-01-16 19:42:43

S#1. Beautiful Sunday
햇살이 눈부시다.
그런데 눈꺼풀이 무겁다.
낮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7일 간의 전쟁. 하루도 쉬지 못하고 중국, 일본의 대표들과 펼친 치열한 레이스의 후유증일까?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간밤에 일찍 누웠는데 잠을 제대로 이루질 못했다.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불면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불현듯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관장 출전 기간 동안 일부러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았다.
모든 바둑매체에 도배된 정관장의 신데렐라 문도원.
포털사이트 스포츠분야 검색어 4위에 이름이 올랐고 5위에 정관장이 떴다.
그저 주어진 대국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일곱 명의 상대를 꺾어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기사마다 꼬리에 붙은 바둑 팬들의 격려 메시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 감동적이었다.
‘신기하다. 어찌 내가 여기까지 왔을까?’
인물포커스에 달린 500여 개의 댓글을 읽다 읽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쌓인 여독 때문에 대낮까지 끙끙 앓았다.
한반도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친 일요일.
그러나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마저 행복한 우리 집의 일요일이었다.

▲ 일요일 아침 커피숍에서 만난 문도원.
S#2. Coffee time
은평구 갈현동. 문도원이 사는 동네를 찾아가 커피를 함께 했다.
혼자서라도 플래카드를 들고 국제공항에 나가고 싶었는데 순천, 부산, 대구를 가로지르는 출장이 잡혀 나가질 못했다.
정관장 1차전 올킬의 신화를 쓴 문도원의 후일담을 바둑 팬들이 궁금해 할 텐데 실례를 무릅쓰고서라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피로를 애써 모른 척하고 연락했다.
“당장 나갈게요. 이번에 타이젬 회원님들이 너무 고마웠거든요.”
역시 착한 문도원이다.
타이젬 회원들이 보낸 응원 메시지를 다 읽었단다.
정말 대단했었다.
문도원의 쾌거도 훌륭했지만 아낌없이 애정을 보내준 바둑 팬들의 순정도 보기에 좋았다.
프로답게 문도원은 팬들의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는 걸 안다.
- 어떤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던가요?
“모든 댓글이 다 고마웠지만 그래도 포커스 첫 번째로 올라온 댓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디 30028899. 문도원 이름을 거꾸로 읽으면 원더우면이 된다고 부르짖었던 글이다.
정관장의 주인공이 선정한 댓글이므로 3억 이벤트의 장원은 30028899님으로 정한다.
(그리고 타이젬 운영팀과 협의해 메시지 567개를 올려준 모든 유저들에게 골고루 티머니 100만 포인트를 나눠드리기로 결정했다.)
- 이번 정관장배처럼 바둑 팬들이 한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응원했던 적이 드문 것 같아요. 고생 많았죠?
“고생은요. 하루하루 편한 마음으로 두었어요. 다만 완성도가 떨어진 기보가 온 세상에 알려져 조금 부끄러워요. 사실 저 실력은 아직 부족하거든요. 미완성교향곡을 얼떨결에 발표해버려서 제 내면이 전부 노출된 것 같아 떨떠름하다고나 할까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 행운도 행운 나름이지 7연승까지 이어졌다는 건 뭔가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런가요? 이상한 말씀 같지만 일곱 번 두면서 마음이 참 편했어요. 거의 모든 바둑이 초반에 어려웠는데 인내하고 기다리면 기회가 올듯 싶었어요.”
▲지넨 가오리와 의견을 나누는 문도원(오른쪽).
- 가장 어려웠던 판은?
“3국이었습니다. 지넨 가오리와의 대국에서 대마가 쫒겼었죠. 살길이 막막했는데 상대가 실착하는 바람에 역전했습니다.”
- 연승을 이어가자 중국이나 일본 측에서 잔뜩 긴장했을 텐데?
“중국 기사들의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특히 루지아의 경우 표정이나 돌 놓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 그러니까 더 전의가 솟구치지 않던가요?
“아뇨. 저는 일곱 판 모두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두었어요. 제 갈 길만 가겠다고 마음 먹었거든요.”
듣다보니 돌부처 이창호가 연상된다.
아직 어린데도 본능적으로 평정심을 깨닫고 바둑의 본질이 ‘자신과의 승부’라는 걸 체득한 느낌이다.

▲ 전신 조훈현 책을 보고 있는 문도원. 문도원이 7연승을 거둔 항저우 기원은 1989년 응씨배에서 조훈현 9단이 대첩을 거둔 장소다. 22년만에 문도원이 항저우에서 올린 쾌거와 인연이 있다.
S#3. 루이나이웨이와의 만남
루이 9단은 검토실의 감초였다.
그런데 한국 선수단 입장에서 루이 9단은 참 애매한 존재였다.
왕십리에서는 대선배지만 중국에서는 적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이 9단이 문도원을 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3연승하던 날 루이 9단이 한국선수단을 초청해 저녁을 샀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중국대표 리허가 식당에 나타났다.
그녀 혼자서 조용히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마침 루이 9단과 한국선수단이 있었던 것.
순간 리허가 당혹스러워했으나 루이 9단의 권유로 합석했다.
한국선수단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니 사실 이튿날 4장으로 출전할 선수가 바로 리허였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은 자리에 합석했으니 리허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을 터.
다음날 대국장에서 리허와 마주친 문도원은 깜짝 놀랐다고 했다.
7연승으로 1차전 올킬을 하고 대국장을 나서자 루이 9단이 또 축하인사를 전해왔다.
“축하해. 2차전도 다 이겨버려.”
그러나 문득 자신이 중국 측 수문장이란 걸 깨닫고 번복했다.
“아니, 마지막 판은 이기지 말고 후훗.”
그러자 당돌한 문도원이 씨익 웃으며 던진 대꾸.
“루이 사범님. 조만간 찾아뵐게요.”
마지막 10차전에서 한칼 겨뤄보자는 의미심장한 출사표였다.

S#4. 고마운 이들
정관장의 시상 규정까지 허물어버린 7연승의 대형사고.
1차전에 함께 출격한 동료들을 뒷짐진 관전객으로 만들어버린 그녀가 성모상 앞에 섰다.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르다 보니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무성영화의 필름처럼 돌아갔다.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셨던 강만우 사범님.
참고 기다리면 길이 보인다 하셨던 장수영 사범님.
문뚜기 파이팅을 외치며 문자 응원 세례를 보내주었던 무여회 언니들.
그리고 바둑사이트마다 넘쳐났던 오빠, 삼촌부대의 격려메시지.
“너무 과분한 사랑을 갑자기 한 몸에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녀가 그렇게 미소를 짓는다.
- 그래도 이 코너를 통해 꼭 인사를 전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무여회 멤버 전원이지만 한 사람을 꼽는다면 혜림이죠. 어제 공항에 마중 나와서 미리, 지연이와 넷이 저녁을 함께 먹었어요. 혜림이는 한 살 어린 동생이지만 저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에요. 장 도장 시절에 저는 숫기가 없어서 친구들과 말도 못붙였는데 걔가 다가와 복기도 같이 하자고 권유하고 집도 같은 쪽이라 함께 다니면서 선의의 경쟁을 했죠.”

▲ 문도원이 고마운 사람으로 꼽은 김혜림.
- 둘이 바둑도 많이 뒀겠네요?
“네, 혜림이가 꼭 기록을 하는데 100판을 두었더라구요.”
- 혜림 양도 요즘 국수전 준결승까지 올라 기세가 좋던데 상대전적은 어때요?
“혜림이가 기재는 저보다 앞서죠. 그런데 희한하게 100판의 기록을 보니까 거짓말처럼 50:50이더라구요.
정관장에 출격해 기적과도 같은 7연승을 올린 문도원과 5할 승부를 기록한 김혜림.
그리고 김윤영, 박지연, 김미리, 이슬아 등 그 또래의 신예들 그 누구라도 요즘 자신감이 가득하다.
우리 여자바둑의 기세가 수직상승하고 있다.
문도원의 투지가 작렬한 정관장배 1차전은 어쩌면 예고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즐겁다.
다음 주부터 중국에서 속개되는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도 정관장의 기를 이어받아 국가대항전 최강의 가치를 하늘높이 휘날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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