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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한 방의 블루스, 독사권법

농심배 스타 최철한 9단을 만나다

김종서 작가2011-01-25 10: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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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독사는 잘게 씹지 않는다

발톱으로 짓누르고 아귀처럼 고개를 저어 물어뜯지 않는다.
부리로 쪼아 내장을 뽑는 통증을 주지 않는다.
한 순간에 덮쳐 강력한 근육으로 먹이를 질식시킨 다음 독니를 한방에 꽂아 보내버린다.
그냥 개운하게 원샷 원킬이다.
반상의 독사 최철한 9단이 농심배 최종국에서 콩지에를 상대로 보여준 독수 한방을 모두 기억하시리라.
지난해 세계대회 4관왕의 콩지에는 부동의 랭킹 1위.
최철한이 잉창치배 타이틀을 쥐고 있다고는 해도 어쩐지 콩지에의 기세 앞에서는 미세하나마 작아 보였다.
최종국의 흐름은 아니나 다를까 콩지에의 구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콩지에는 몽구스나 오소리처럼 독사의 이빨을 피해 빠른 스피드로 흑백 구역을 정리해갔다.
국내에서 중계된 모든 바둑매체 해설자들이 불리하다고 짚었다.
그런데 샹하이 현지 검토실의 중국 측 기사들은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길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 지난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농심배 3차전 제13국. 최철한과 콩지에가 복기를 하고 있다.

끝내기 단계에서 최철한은 계속 초강수를 두었고 마침내 코 붙이는 묘수 한방으로 콩지에를 무너뜨렸다.
다카오 신지, 저우루이양, 유키 사토시, 콩지에까지 깔끔하게 밀어버린 퍼펙트 마무리였다.
최철한의 농심배 종결 4연승이 더 짜릿했던 것은 바로 직전 벌어졌던 여자단체전 정관장배에서 문도원의 7연승 행진이 절묘하게 맞물렸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이창호의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후배 최철한이 해결했다는 것.
이창호의 모습에서 문득 박지성의 얼굴이 겹쳐진다.
오늘 저녁 벌어질 아시안컵 준결승전 대일본전이 박지성의 A매치 100회째라고 한다. 축구선수들에게는 꿈과도 같은 센츄리 클럽 멤버가 되는 것이다.
조광래 감독의 포부가 의미심장하다.
 
"박지성에게 한일전 승리를 선물하겠다."

어떻게 국가대표 감독이 한 선수에게 이처럼 비장하고 격정적인 멘트를 던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한국축구를 위해 헌신한 영원한 주장 박지성에 대한 존경과 애착에서 우러나온 선언인 것이다.


▲ 최철한은 네 번째 주자로 나서 4연승을 거두며 한국 우승을 견인했다. 주장 이창호는 출전하지 않고도 우승에 대한 기쁨을 만끽했다.  

3년 전이던가?
한국 바둑대표단 김인 단장이 비슷한 말을 했었다.

"이창호의 검에 피를 묻히지 말라!"

우리는 안다. 한국바둑의 주장 이창호가 그 동안 농심배 무대에서 얼마나 외롭고 처절하게 깃발을 지켜냈었는지.
최철한이 장한 것은 영원한 주장 이창호에게 자신의 힘으로 완투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최철한은 그 동안 농심배에 5번 출전해 5차례 다 우승을 경험했다. 당연히 이창호의 덕을 많이 본 셈이다.)


S#2. 그러나 사실 독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년

농심배에서 금의환향한 후 이틀 뒤 왕십리에서 최철한을 만났다.

- 우승하고 나오니까 이창호 국수가 좋아하던가요?
"이 국수님보다 그 옆의 형수(이도윤)가 더 좋아하시던데요.^^"

대답만 들어도 그림이 눈에 선하다.

- 최근 들어 제2의 전성기가 열렸다고들 하더군요.
"그런가요? 사실 지난 아시안 게임 때부터 뭔가 잘 풀리는 느낌입니다. 기분도 산뜻하구요."

새해 들어 최철한의 기록은 영양가 만점이다. 10전 7승3패.
국제대회와 도전기로만 이뤄진 알짜배기 기록인 것이다.
현재 국수전에서 이창호와 1:1로 팽팽하게 맞선 상태고, 천원전에서 이태현에게 2:0으로 앞서고 있다.
세계대회인 후지쓰배와 초상부동산배 시드를 받아 출전을 앞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올해는 최철한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 그런데 '독사'라는 별명이 마음에 듭니까?
"하하. 이미 그렇게 붙어버린 걸 어쩝니까? 나쁘진 않습니다."

최철한은 대마도살자다. 묵직하고 육중하게 상대를 따라가면서 끝까지 숨통을 노린다. 한 번 대마를 잡기로 맘먹으면 실리 따위는 낙엽 쓸듯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중국의 강자 왕야오와 류싱이 최철한의 도살초식에 걸려 혼쭐이 났었다.
그래서 중국리그에서 최철한의 인기는 높고 그네들도 자연스럽게 '최독사'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 왜 그렇게 독하게 대마사냥을 즐기는 겁니까?
"제가 계산이 좀 약해서 전투로 확실하게 우세를 잡으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한다.
계산이 약하다고? 쉽게 동의할 수 없어 다시 반문했더니 명쾌하게 답이 돌아온다.

"이창호 국수님부터 이세돌, 박영훈, 박정환 등 주변의 기사들이 얼마나 계산력이 뛰어납니까? 거기 적응하려다보니까 계가보다는 불계로 끝내려는 본능이 꿈틀거렸나 봐요. 하하."

때마침 BC카드배 통합예선대국을 끝내고 최철한의 스승 권갑룡 사범이 찾아왔다.
권 사범은 최철한을 보더니 마냥 즐거운 듯 활짝 웃는다. 

▲ 권갑룡 사범과 최철한 9단.

"철한이에게 독사라는 별명은 온당치 않습니다. 기풍을 한 마디로 묘사하기가 좀 어렵지만 제 생각에 철한이는 어릴 때부터 스펀지처럼 상대의 장기를 쭉쭉 빨아들이는 장점을 가졌지요. 흡인신공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 공력을 다시 반탄력(反彈力)으로 튕겨내는 거죠."

역시 사부답게 예리한 진단이 떨어진다.

-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독사 대신 스펀지로 할 순 없잖습니까?
"음 그런가요? 아무튼 느낌은 아시겠죠?"

그래서 결국 독사를 대체할 만한 상징을 찾지 못하고 화제를 돌린다.

- 권갑룡 사범님께 최철한은 어떤 제자입니까?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철한이가 두었던 모든 중요 대국을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다 지켜봤습니다. 그저 장하고 고마울 밖에요. 초일류가 됐는데도 도장 후배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친구입니다."

그 말에 권갑룡 사범이 느끼는 인간 최철한의 모든 것이 녹아 있었다.

필자도 최철한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의 조각을 하나 지니고 있다.
지난 해 부산의 부경대회에서 함께 회식자리에 있었는데 건망증이 심한 필자가 그만 모자를 식당에 놓고 온 적 있었다.
한참 후 최철한이 모자를 들고 조용히 다가오더니 씩 웃으며 두 손으로 건네는 것이다.
뭐, 모자 하나 찾아주었다고 야단법석인가 하실지 모를 일이나 세계 랭킹 1위 기전인 잉창치배 우승자가 찾아 돌려준 그 모자를 아직도 탈모은폐용으로 잘도 쓰고 있으니 지금 사진 속의 모자가 바로 추억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최철한은 그런 스타일이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고독한 승부사의 세계를 들여다 본 이들이라면 알리라.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치열하고 날카롭고 뜨거운지를.
그래서 때론 안하무인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비쳐지기도 하며 성취에 비례해 빛나는 금속성 권위로 인해 얼마나 거리감이 생기는지를.
그런데 이상하게 최철한에게서는 그냥 인간의 내음이 강하다.
늘 웃는 낯이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의 눈빛이 역력하다.
우리는 최철한이 한때 '병역 브로커'라는 기분 좋은 닉네임을 획득한 적 있다는 걸 잘 안다.
병역혜택이 걸린 후지쓰배 준결승과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동료들에게 장렬하게 패배한 순간을.
프로의 세계에서 어찌 감히 승부를 함부로 들먹이겠느냐만 우리는 그냥 느낌만으로 기분 좋은 그 패배의 기보 바깥 풍경을 마음껏 상상하게 된다.
권갑룡 사범이 자리를 뜨면서 한 마디를 강조한다.
 
"최철한은 아주 수명이 오래 갈 겁니다. 그리고 이런 기사를 얻은 한국은 축복을 받은 겁니다."

팔불출이라 흉봐도 상관없다고 했다.
실력과 따뜻한 인성을 갖춘 초일류기사가 완성을 향해 빚어지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 다정함이 묻어나는 사제.


S#3. 업동이에서 국수까지

부산 출신 최철한은 7세때 서울로 이주했다.
바둑광인 부친 최덕순 씨가 막내 철한에게 바둑교육을 시키기로 결정해 어머니가 강남 교대 부근에서 바둑교실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권갑룡 바둑도장의 승합차를 발견하고 선이 닿게 되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권갑룡 바둑도장에 다니기 시작한 철한은 가끔 어머니 등에 업힌 채 드나들었다고 한다.
부산 사투리가 모날까봐 도장에서 입을 꽉 다문 채 수업을 받던 철한은 문제를 풀 때면 눈에서 초롱초롱 광채가 발하고 스승과 눈이 마주치면 다시 원생들 틈 사이로 몸을 숨기기 일쑤였다.
그랬던 업동이 철한이가 9살에 1급이 되고 10살에 어린이 대회를 휩쓸었으며 12살(1997년)에 초년병 시절 자신을 가르쳤던 박성수 사범과 나란히 프로 입단을 하게 됐으니 최연소 기록으로 역대 네 번째였다.
2000년 농심배 국가대표로 출전해 3연승을 거두었으며 배달왕전과 국수전 본선에 진입했다.
2003년 박카스 천원전 우승을 차지했고 -


▲ 2004년 이창호와 처음 벌이는 국수전 도전기 대국 모습.

그리고 대망의 2004년 천하무적 이창호 국수에 도전해 3:2로 승리를 거머쥐었으며 기성전에서도 이창호를 연거푸 꺾고 우승해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렇게 이세돌보다도 강력하게 이창호의 아성을 허물며 질주하던 최철한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4회 잉창치배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패하면서부터였다.
4년에 한 번 오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까닭인지 이상하게 슬럼프가 오래 이어졌다.
물론 슬럼프라고 해도 최철한의 기록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큰 승부에서 자꾸 실족하곤 했다.
질풍노도의 시대가 그에게도 찾아왔었다.
많이 방황했다.
멀리 여행도 떠나보았고 산에도 자주 오르내렸다.
그러면서 가까워진 여자 친구 윤지희 3단이 큰 위안이 되었다.

 

"고마운 친구에요. 어려울 때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그가 심기일전 다시 일어선 계기는 아시안 게임이었다.
당시 최철한은 중국리그 용병으로 뛰면서 한판 이길 때마다 7만 위안의 승리수당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좋은 기회를 반납한 채 국가대표 합숙훈련에 몰두했다.
이창호, 이세돌, 조한승, 박정환과 함께 시간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아시안 게임 단체전 결승에서 최철한은 우승을 확정짓는 3승째, 즉 결승타를 때린 주인공이었다.
그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이 생애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고백하는 최철한.
농심배의 여운을 다시 상기하면서 자랑스런 청년 최철한을 다시 한 번 여러분께 소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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