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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하나가 된 러시아 바둑계

한상대 교수의 세계바둑사 러시아 1편

한상대 교수2011-02-13 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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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믈린 궁

1. 바둑쟁이는 어딜가나 외롭지 않다.

89년 12월 모스크바. 아직 고르바초프가 수상인 시절이다. 나는 어제와 다름없이 F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철커덕’! 장전 소리와 함께 총을 든 7, 8명이 나를 포위하더니 거칠게 벽에 밀어 붙인다. 두 손을 올리게 하고 몸수색을 한다. 난생 처음 당해보는 영화 속의 한 장면에 그만 숨이 탁 막혀온다.

이들은 누구인가? 내가 “무슨 일이냐?”고 영어로 묻는데 창피하게 내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위기에서 침착한 게 우리 집안에선 내 트레이드마크인데 워낙 겁이 나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걸 나도 처음 알았다. 그 중 한 명이 “우리는 특수경찰이다. 이 회사를 수색하고 있다”고 한다.

곧 F회사 간부 한 명이 포박된 체 끌려 나와 “그는 한국계 호주 인이다. 우리회사에 사업을 의논하러 온 외국 손님이다.” 라고 확인해 주자 이들은 더없이 친절해진다. 행여 소련의 이미지가 훼손될까 염려되어 자기네 차로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등 갖은 호의를 베푼다.

F회사는 불법외환소지와 무기소지로 기습수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체제하에서는 사기업들이 자주 겪는 일이다. 이 일로 이날 F회사 사장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입원을 하게 된다. 뜻밖에 한 이틀 시간이 남게된 나는 한달 이상 모스크바에 묵으면서 벼르기만 하던 바둑협회를 찾아 가기로 했다.


▲ 모스크바의 밤

택시기사에게 말보로 담배 한갑을 주고 올림픽촌 모스크바 바둑협회를 찾아갔다. 당시에는 미제 말보로 담배라면 현찰보다 잘 통했다. 내 파커 주머니엔 항상 말보로가 여러 갑 있었다. 바둑협회에 갔더니 총무라는 뚱뚱한 30대 후반 여자 혼자 있다. 그 날 체조선수들이 장소를 쓰느라고 바둑은 오늘 쉰다고 한다. 전화연락을 받은 소콜로프 회장은 영어를 꽤 잘 한다. 내가 호주 챔피언이라고 했더니 “그럼 Mr. 한이냐?”고 묻는다.

내가 그 해 세계대회에서 러시아 챔피언을 이겼기 때문에 아는 것 같다. “그렇다” 고 했더니 한 시간 내로 모스크바 바둑 5단 이상 5명이 전부 내가 묵는 벨그라드 호텔로 달려 왔다. 나까지 6명이 바둑을 두려면 바둑판 세 세트가 필요하다. 소콜로프회장이 “누가 집에 두 세트가 있느냐?”고 묻는다. 직업이 의사라는 친구가 자기 집에 두 세트가 있다고 한다. 소콜로프 집에서 한 세트를 더 가져가기로 하고 나는 소콜로프 차에 탔다.

소콜로프 집에 바둑세트를 가지러 갔는데 놀랍게도 한 아파트에 두 세대가 살고 있다. 소련에서는 보통 있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려준 지도를 봐가며 영하 25도의 눈보라 속을 한 시간 이상 달려 그 의사네 집에 도착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벌써 판을 벌리고 있다. 이 추위에 바둑광이 아니면 누가 이런 얼빠진 짓을 하겠는가? ^^ 밤을 새워 리그전을 하여 내가 4승 1 패로 우승을 했다.


▲ 모스크바의 겨울 거리

그 날 밤참으로 러시아 검은 빵, 발고랑내가 나는 치즈, 상어알 캐비어, 보드카, 커피와 약간의 야채, 과일이 나왔다. 그들과 대화 중 많은 부분이 조훈현 9단이 응씨배를 우승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12월의 모스크바는 오후 4시면 어두워 지고 아침 10시면 밝아지기 시작한다. 밝을 때 들어가서 밝을 때 나왔으니까 시간이 꽤 오래 흘렀나 보다. 아침에 그 집에서 나와, 머리카락은 뻗치고 눈은 충혈된 체 누렇게 뜬 얼굴을 서로 보며 웃었다. 하룻 동안에 꽤 친해졌다. 바둑쟁이는 어딜가도 외롭지 않았다.


▲ 소콜로프와 대국 - 의사의 아들 애기가 사람들이 오니까 흥분해서 잠을 안 자고 있다.


2. 고르바초프는 미국 스파이?

당시 러시아는 역사의 진통기를 겪고 있었다. 글라스노스트(개방) 이후 모스크바엔 ‘거리의 웅변가’들이 생겨났다. 북국의 추위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날, 나는 안내자 니콜라이와 함께 모스크바 최고급 식당인 ‘프라하’ 앞에서 군중 틈에 끼어 들었다. 거리의 웅변가가 한참 열변을 토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와’ 웃는다. 니콜라이가 나에게 설명해 준다.

“그는 비능률적인 소련행정을 성토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올해부터 해외여행을 자유화한다니 소련국민은 모두 외국으로 가고 결국 고르바초프 하나만 남을 것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웃은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잠든 북극곰의 혼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소련에 와서 본 고르바초프는 모순 덩어리인 ‘당’과 모순에 길들여진 ‘인민’속에서 폭풍속의 돛단배처럼 힘든 항해를 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불은 뜨겁고 얼음은 차고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처음 인정한 소련지도자다. 이 때부터 지구를 반쪽으로 나누고 있던 공산국가들이 앞다투어 사회주의를 버리고 소련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고르바초프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서구에서는 그를 ‘80년대의 인물’로 뽑았지만 러시아에선 ‘도마 위의 생선’ 이다. 누구나 고르비를 사랑하지만 누구나 고르비를 공격한다. “고르바초프 이마의 붉은 반점은 악마의 표시인 666이다” “그의 머리에 있는 반점은 미국지도이고 그래서 그는 미국 스파이다”

 
▲ 고르바초프 크레믈린 궁 겨울

소련은 1917년 공산혁명 이후 최대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운영만 잘하면 공산주의는 좋은 이념이다. 우리가 지난 70년간 잘못 운영해서 실패했다. 이제부터 개혁을 통해 다시 출발하자” 하는데 반해 옐친은 “역사에 실패한 이념은 필요 없다. 이제는 러시아에 맞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 고 대립한다.

도시 한복판으로 모스크바 강이 굽이쳐 흐르고 곳곳에 보이는 러시아정교의 황금빛 돔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이 나라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저력을 느끼게 한다. 소련에서 한달 반 동안 나에게 줄곧 뇌리에 남아있던 의문이 있었다. 개혁의 선두에 선 붉은 반점의 선장 고르바초프, 그는 과연 소련의 희망인가? 아니면 난타당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 모스크바 강


3. 대식(大食)국민 러시아인


소련인들은 외모로 봐서는 다 부자다. 밍크 털모자에 외투도 대부분 가죽제품을 입고 다닌다. 여기에 슬라브족의 당당한 체격과 균형잡힌 용모가 더하여 그들이 무더기로 걷는 모습은 아주 볼품이 있다. 역사적으로 수 없는 진통기와 시련을 견뎌왔고 강추위를 극복해 온 강인한 민족이다.

소련인은 굉장한 대식국민이다. 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벌이는 한판의 ‘식사’를 빼놓을 수 없다. 넓은 식탁에 음식이 놓이면 예외 없이 돌아가며 건배를 위한 연설을 한다. 하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짧고 유머있는 멋진 연설들을 한다. 손님인 나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세 번이나 건배연설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분 나면 ‘한숨에 들이키기’ 건배가 시작된다. 중국처럼 한숨에 마시고 잔을 머리 위에 뒤집어 들고 있어야 한다. 그들을 따라 보드카를 마시다간 기어나가야 할 것 같아서 보드카 잔에 맥주를 마시는데도 여자들 주량을 따라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식사시간은 보통 3시간. 먼저 전식으로 소련식 검은 빵에 상어알, 연어알 등을 얹어 야채와 함께 먹고 훈제한 연어나 다른 생선을 먹는다. 수 없는 건배를 거치며 잉어탕 비슷한 살리앙카(Solyanka)란 수프를 먹고 나면 배가 불러 식식거리게 된다.


▲ 살리앙카                         ▲ 내가 즐겨 마시는 아쿠루시카(Okroshka)

그 때쯤 주식으로 스테이크가 나온다. 한국사람이 많이 먹는다지만 러시아인을 따라가기엔 어림도 없다. 식사가 끝나고 아이스크림 등 후식을 먹고 진하고 쓴 커피를 마신다. 뱃속 어디로 저게 다 들어가나 어안이 벙벙해진다. 하루는 점식식사를 시작해서 그 자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밖은 영하 35도였다.
추운 나라에서 식사시간은 오랜 세월 하나의 사교장이었다. 그러나 페레스토로이카의 소련에서 이런 식사는 너무 사치스럽고 한가롭다는 생각이 든다.

모스크바가 자랑하는 지하철도 그렇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내부는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또 속도 빠른 에스컬레이터도 사람을 질리게 한다. 기차도 자주 오고 좌석은 언제나 한산하다. 그런데 지하철 차내에서 독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다. 서울, 뉴욕, 파리, 런던 등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띄던 지하철 독서가 이곳엔 없다. 도쿄에선 역구내의 거지도 주간지를 보고 있는데 모스크바는 어찌된 일인가?

그러고 보니 83년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그곳 부다페스트 지하철에서도 독서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것도 사회주의의 한 현상인 것이다. 그들은 공부를 해도 보상이 뒤따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과학자가 월급을 5백 루블 받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그의 운전수가 4백 루블 받으니 ‘공부해봤자’다. 정치에 흥미가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일이 시큰둥하다 보니 지하철에서까지 골머리 아프게 신문이나 책을 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상향의지와 지적호기심이 약화된 것이리라.


▲ 모스크바 지하철

한 번은 우리 일행 3명이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탔는데 처음으로 좌석이 다 찬 것을 보고 놀랐다. 그때 군인 3명이 재빨리 일어나 좌석을 양보한다. 내가 괜찮다며 그냥 앉으라고 해도 얼굴이 빨개지며 미소만 띄고 앉지 않는다. 안내자 니콜라이가 소련군대는 ‘인민의 군대’라 정신훈련이 잘 돼있으니 우리에게 빨리 앉아주는 게 좋다고 한다.


▲ 붉은 광장(Red Square)


▲ 모스크바 강변


4. 역사의 다른 시각

모스크바강의 보로딘스키 다리. 이곳은 바로 나폴레옹군과 러시아군이 대 격전을 펼쳤던 ‘보로디노 전투’의 현장이다. 톨스토이로 하여금 ‘전쟁과 평화’를 쓰게 했고 차이코프스키에게 교향곡 ‘1812년’을 작곡하게 한 역사의 현장이다. 쌍방 1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이 후퇴하자 나폴레옹은 자신있게 모스크바에 입성한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불지르고 달아난 모스크바엔 추위밖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때부터 나폴레옹군은 저 유명한 ‘초토작전’과 동장군 때문에 패퇴를 시작하게 된다.


▲ 보로딘스키 다리


▲ 보로디노 전투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 지휘하에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 패하여 나폴레옹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역사책에 있다. 그러나 보로딘스키 다리 위의 기념비까지 동행했던 모스크바 대학의 세르게이 교수는 내가 배운 ‘서구 중심의 역사관’과는 시각이 다른 ‘소련 중심의 역사관’을 펼친다.

“1812년 쿠투로프장군이 지휘하는 우리군대는 이곳에서 나폴레옹의 대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주력이 손상된 나폴레옹군은 그 후 러시아의 초토작전과 기습전술에 휘말려 70만 대군 중 살아 돌아간 자가 만 명도 안 되었다. 나폴레옹을 멸망시킨 것은 워털루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 전쟁이며 우리가 그를 꺾지 않았다면 나폴레옹의 유럽정복은 실현됐을 것이다” 소련이 자랑하는 에미르타지 박물관의 한 대형 홀은 우리 귀에 생소한 ‘1812년의 영웅들’을 그린 초상화로 꽉 차있었다. 또 가는 곳마다 ‘1812년’에 대한 기념비, 동판화, 그림 등이 눈에 띈다.


▲ 나폴레옹                              ▲ 히틀러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2차 세계대전’을 보는 시각이다. 내가 들은 레닌그라드의 ‘요새전쟁’은 처절의 극을 달린다. 1939년에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히틀러의 나치가 1941년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분노한 러시아 국민은 러시아인의 기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건물을 부셔서 길을 막은 후 도시를 완전히 요새화하여 독일탱크의 진입부터 차단했다.

남자는 모두 전선에 투입됐고 노인, 여자, 아이들은 무기공장에서 24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도시가 완전 포위된 상태에서 나중엔 식량으로 한 사람에게 검은 빵 4분의 1조각만 지급됐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레닌그라드가 화력이 절대 우세한 독일군에 저항하여 3년 가까이 버틴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영하 40도의 동장군이 찾아왔다. 독일군 탱크가 기름까지 얼어붙고 기관총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 해골처럼 마른 러시아 군대가 공격을 시작한다.


▲ 요새전쟁 레닌그라드(1941~43)

열받은 독일군은 부근의 문화재들을 파괴하고 후퇴한다. 소련인들은 나치 독일의 멸망을 “연합군의 힘에 밀려 항복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독일이 요새전쟁의 패배와 지금은 볼고그라드 라고 부르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80만 독일대군 중 주력부대의 지리멸렬로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소련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애국전쟁’ 이라고 부른다. 애국전쟁 때 29개월간의 독일군 포위속에서 40만의 전사자(戰死者)를 내면서 시를 방위하여 ‘영웅도시’의 칭호를 받은 레닌그라드는 모스크바보다 더한 자부심이며 소련의 정신으로 그들 가슴에 남아 있다. 크레믈린 입구와 붉은 광장 사이의 담장 밑에는 애국전쟁 영령탑이 있고 ‘영원의 불’이 타고 있다.

소련에선 신혼부부가 결혼식이 끝나면 이곳에 와서 순국선열에게 경의를 표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이 순서로 돼있다. 과연 내가 20분쯤 지켜 보는 동안에도 다섯 쌍이나 다녀간다.


▲ 스탈린 애국전쟁 영령이 있는 크레믈린 외곽벽


▲ 애국전쟁 승전기념일 5윌 9일 거리 군대행진


5.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

내가 묵는 호텔에서 길 하나 건너면 ‘아르바트’란 거리가 있다. 예술가, 학생들이 모이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파리의 몽마르트, 뮌헨의 슈바빙 같은 성격의 동네다. 소극장, 미술관, 장식보석상, 카페 등과 거리에서 그림을 파는 아마추어 미술가들로 꽉 찼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 서면 젊은 연인들, 관광객, 풋내기예술인, 커피 냄새가 가득하다 – 아직 대가(大家)는 안됐으나 꿈이 많은 젊은 예술인들과 낭만으로 활기찬 거리다. 소련엔 화가협회에 등록된 이런 아마추어 화가가 50만 명이 넘는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이들은 전시, 판매 등을 허가나 제약없이 하고 있다.


▲ 아르바트 거리

아르바트의 그림 시세는 한국의 10분의 1 정도. 카잔에서 왔다는 어느 화가는 내방에 와서 내 초상화를 2시간 30분에 걸쳐 파스텔로 그려준 후 2달러 50센트를 받아갔다. 하루는 아르바트에서 그림 하나를 샀다. 그 젊은 화가는 수줍어서 얼굴을 붉힌다. 수염 끝에 고드름을 덜렁거리며 “내 그림이 정말 서울로 갑니까” 하며 열심히 포장해 준다.


▲ 아르바트(Arbat)의 밤

서울에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언제쯤 생길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예술을 키워온 소련이란 나라가 지금도 불가사의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정춘삼(64세)씨는 이민 3세대로 모스크바 대학을 나온 엘리트다. 그는 모스크바 방송국 조선어 담당이다. 20세에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했다는데 아주 잘한다. 내일은 정춘삼씨의 안내로 레닌그라드에 가기로 했다.


▲ 쿠스네스키 거리


▲ 이런 건물이 한 없이 계속 되는 곳이 모스크바다. 왼편이 중앙전신국 건물. 이 거리는 톨스토이 소설 안나카레니나 무대로 유명하다.


6. 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북방의 ‘물의 도시’ 레닌그라드. 오랜 세월 ‘유럽으로 열린 창’ 이며 과거 러시아의 수도였다. 이곳에 기차를 타고 도착하니 온화한 공기가 코끝을 감싼다. 모스크바에서 물품 품귀현상으로 고전하다가 레닌그라드에 와보니까 상점마다 물건이 풍성하다. 나는 한달 만에 내복도 새로 사 입고 쇼핑도 했다.


▲ 샹트페테그부르크

정춘삼씨는 “발틱해를 끼고 있는 지방 소도시에서 배로 계속 물건이 도착하여 이곳은 물건이 동나지 않습니다”고 한다. 인구 5백여 만 명의 소련 제2의 도시, 네바강 하구엔 백 개도 넘는 섬이 장관을 이루고 수십 개의 지류(支流)에 놓여진 5백여 개의 다리는 러시아적 색채를 짙게 풍긴다. 북위 60도의 고위도 지역이어서 6~7월엔 밤이 없는 백야(白夜)가 계속된다. 그러나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남쪽의 모스크바보다 기온이 높다.


▲ 백야 계절 중 가장 어두울 때. 운하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춘삼씨는 “세계의 3대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레닌그라드, 베네치아, 암스텔담을 꼽는데 한선생이 보기에는 어느 도시가 가장 아름답습니까” 라고 묻는다. 실제 소련 사람들은 ‘북의 베니스’로 불리는 레닌그라드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네바강 양쪽에 늘어선 대리석과 화강암 건물들은 마치 18세기 서양건축의 전시장 같다. 예술가들의 이름을 딴 극장과 궁전들의 풍모는 그 옛날의 러시아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의 영광을 다시 보는 듯 하다.


▲ 겨울궁전(에르미타지) 광장

네바강가의 에르미타지 미술관, 그곳 3층 창가에 앉아 정춘삼씨가 ‘혁명광장’을 내려다보며 역사의 한 토막을 설명해 준다. “마지막 날 혁명군이 저쪽에서 이쪽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자 차르의 군대는 이 밑쪽에 집결하여 항거하다가 저쪽으로 도망갔지요. 혁명군은 궁전 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되던 순간이었습니다.”


▲ 1917년 볼쇄비키혁명 당시 겨울궁전 광장

과거의 호화찬란한 겨울궁전(冬宮)이 지금은 에르미타지 미술관이 됐다. 사방에 소련학생들이 수학여행 와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을 가봤지만 이곳 에르미타지가 더 화려하고 크다. 차르(러시아 절대왕정시대의 황제)만큼 사치의 극을 달린 왕정은 내가 알기엔 지구상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황금색으로 칠한 방안에 각종 보석, 예술품이 꽉 차있어 하나의 환상으로 착각될 지경이다. 그 옛날 차르나 귀족들이 이런 환경을 즐기며 살았으니 굶어 죽어가는 수 많은 농노들의 처지를 알 턱이 없었다. 그런 사치는 가장 잔혹한 농노제도를 유지했던 제정 러시아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푸카초프의 농민반란’이나 공산혁명이 이곳에서 일어난 것도 어떻게 보면 역사의 필연이었던 것 같다.


▲ 성 이삭교회의 황금 돔.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심장’ 이라면 페테르스부르크는 ‘러시아의 머리’로 일컬어져 왔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시작되는 러시아 제1혁명, 1917년의 2월 혁명, 10월 볼쉐비키 혁명이 결행되어 혁명 이후 지도자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로 개명된다. 이 도시에는 무려 2백70여 군데에 레닌의 이름을 붙여놨다.


▲ 레닌과 그의 사무실

소련 어딜가나 레닌(1870~1924)의 동상, 박물관, 사진, 책, 배지로 차 있다. 이곳에 와서야 소련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레닌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크레믈린 궁 안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가 봤는데 분위기는 좋으나 검소한데 놀랐다.


▲ 눈이 온 러시아는 동화처럼 아름답다


7. 하나가 된 러시아 바둑계

러시아에는 바둑협회가 둘로 나뉘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체육부 산하의 협회는 세르게이 르포프(Sergey Lvov)가 회장이고 다른 협회는 이고르 그리쉰(Igor Grishin)이 회장이다. 체육부 산하협회는 바둑대회 개최에 치중하고 이고르 쪽은 바둑보급에 활동을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서로 주도권 다툼을 할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주위의 권유로 2010년에 두 사람이 만나 서로 협조하기로 하고 악수를 했다. 앞으로 두 협회가 합하여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본다.


▲ 악수하는 르포프(좌)와 그리쉰

키프로스 편에서 비행기 날개 위에서 바둑을 둔 이고르 그리쉰을 다시 소개 한다. 그는 바둑을 1991년에 배웠다. 바둑에 푹 빠진 그는 5년 후에 모스크바 어린이 바둑학교를 개설한다. 뒤이어 그는 청소년 대회, 국내, 국제바둑대회를 개최한다. 2004년에는 기존 러시아협회의 활동에 만족을 못해 자기가 러시아 바둑협회를 창설한다. 이 협회는 현재 50개 도시에 50개의 클럽을 갖고 있다.

2005년부터 이고르는 한국에서 프로가 된 사샤와 바둑뉴스레터를 만들고, 웹마스터인 사샤 동생 레오니드를 시켜 러시아어, 영어로 된 여러가지 바둑 웹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서양인이 바둑을 제일 많이 두는 KGS에서 우승상금 천불짜리 대회도 두 번 개최했다. 그는 2010년까지 자기가 썼거나 일본 책을 번역한 바둑책을 10권 넘어 출판한다. 이고르는 TV, 라디오에도 출연해 바둑을 소개하고 있다.


▲ 강의 중인 이고르

그는 많은 바둑강자들을 활동하도록 도와주어 이고르의 ‘바둑 팀’이 유럽최강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의 ‘실리콘벨리’로 바둑을 진출시켰다. 그는 바둑을 박물관이나 전시회에서도 소개한다.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2006년 중국위기협회는 그에게 아마 5단증을 수여했다. 이고르는 러시아에서 사업 콘설턴트로 돈을 벌었다. 바둑을 안 후 바둑에 빠져 자기 인생을 올인하고 있다. 명예용으로 직책을 맡고 있는 한국 바둑계 지도자들과 비교가 된다.

나는 1989년과 2003년 두번 러시아에 갔다. 첫번엔 한달반, 두번짼 보름 동안 있었다. 러시아는 놀랍게 변하고 있었다.

러시아 2 편에 계속……

한상대(전 시드니대 교수 sdh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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