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장배]
뜨거웠던 정관장 9년사
정관장배 9번의 대회를 돌아보며
김종서 작가2011-03-30 14:56:36
S#1. 왜 이렇게 아쉬울까?
혜성처럼 등장한 문도원이 7연승을 올리며 정관장 배의 주가를 높였다.
그녀가 중국에서 연승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 국내에서 벌어진 대형 타이틀전 소식조차 뒷전으로 밀릴 정도였다.
다시 한국에서 속개된 2차전에서 중국의 주장 루이나이웨이 9단이 3연승을 달리며 정관장 성화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최종 국에서 박지은의 깔끔한 세이브로 거둔 값진 승리.
세계 유일의 여류단체전인 정관장배 바둑대회는 흥행만점의 성공한 대회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대회가 막을 내린다는 소식이다.
폐지된다기보다 격을 올려 더 큰 메이저대회로 키운다고 하는데 반가움과 더불어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메이저 세계대회가 더 생기는 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나 삼성화재, 엘지, 비씨카드 등 세계대회가 즐비한데 한국인삼공사처럼 탄탄한 후원사가 비슷한 대회를 하나 더 추가한다는 게 효율적인지 의아한 것이다.

여류기사들만의 삼국지에서 탈피해 월드 챔피언을 뽑는 대회로 바뀌는데 여류기사들이 울상을 지을 순 없을 것이다.
정관장배가 농심배와 더불어 바둑팬들의 사랑을 받아 온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승발전 형식의 묘미와 함께 남자들이 판치는 자국 바둑무대를 벗어나 여류들끼리 기량을 겨루는 특색 때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정관장배 여류삼국지 대회에 한중일 여류기사들이 열정을 쏟은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여류바둑대회의 기반은 참 빈약하다.
보해배가 탄생했다 몇 년을 이어가지 못 했고, 다시 흥창배가 이어받았다가 그 역시 반짝하고 소멸했다.
당시에 루이나이웨이가 세계여류대회 우승컵을 싹쓸이하면서 흥미를 반감시켰기에 흥행 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루이나이웨이와 필적할 신예들이 쑥쑥 커나가고 있는 마당인데 그녀들만의 무대가 사라진다니 아쉽기 짝이 없다.
'정관장' 은 한국인삼공사의 6년근 고려삼 상품이다. 정관장 바둑대회는 인삼의 주 소비국가인 일본과 중국을 겨냥해 만든 대회이다.
농심배 단체전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농심의 라면제품 매출이 늘었듯, 정관장 여류단체전이 성공해서 중국 등지에 인지도가 높아졌으므로 이에 고무돼 바둑에 더 투자하겠다는 인삼공사의 의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바둑 팬의 입장에서 어쩐지 아쉽고 또 아쉬운 것은 왜일까? 기전의 확대도 좋지만 기전의 생명력이 길었으면 좋겠다.
여류기사들에게 동기부여를 강하게 심어준 여류단체전 타이틀이 오래 지속돼 ‘그녀들만의 제로섬 게임’을 주기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회 우승을 차지한 박지은
S#2. 정관장 배 9년사
정관장배는 2003년 보해배, 흥창배의 맥을 잇는 여류기전으로 탄생했다. 총상금 4억 1천만원에 한중일 16명의 강자들을 선발해 토너먼트로 출발했다.
1회 대회 8강전에서 한국 팀은 6명이 8강에 진출해 두터운 전력을 과시했다. 대회도 한중일 트라이앵글 투어링으로 격식을 갖췄다.
초대 챔피언은 루이나이웨이. 이때만 해도 한국기원 소속으로 한국대표로 간주했었다.
2회(2004년)에는 4강 멤버 전원이 한국기사들이었다.
이른바 퍼펙트 4강(박지은, 윤영선, 이영신, 루이나이웨이)
결승에서 박지은이 윤영선을 2:0으로 완파하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3회부터 대회방식이 국가대항 연승전으로 바뀌었다.
일본은 상금랭킹 순으로 대표를 선발했고, 한국은 선발전을 치렀으며 중국은 최강 멤버를 기원 측이 선발했다.
국가대항전이라서 루이나이웨이도 중국 팀에 합류했다.
연승전의 첫 스타는 중국의 예꾸이였다.
예꾸이는 한국과 일본의 기사들을 연파하며 5연승을 기록했다.
윤영선이 예꾸이의 연승을 저지하고 박지은이 2연승으로 최종국까지 도달했으나 루이나이웨이와의 한판승부에서 무릎을 꿇고 트로피를 내줘야했다.
4회(2006년)에는 중국의 신예 왕샹윈이 5연승, 일본의 지넨 가오리가 3연승을 거두었다.
루이나이웨이가 지넨가오리를 꺾었으나 박지은에 덜미를 잡히면서 혼전 양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2장 예꾸이가 박지은을 물리치고 또 다시 우승컵을 가져갔다.
▲정관장 여신 이민진과 그녀의 가족들.
5회는 일본의 만나미 카나가 3연승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이어 이민진이 가토 게이코, 리춘화, 고니시 가즈코, 예꾸이, 여시로 구미코 등을 연파하며 폭풍의 5연승을 거두었다.
모든 바둑이 역전승이었다.(이번의 문도원처럼)
초반 포석의 단점을 중반 이후 전투력과 집중력으로 승리를 일궈낸 이민진의 뚝심은 대단했었다.
6회에도 이민진은 자신이 진정한 국가대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대회 초반 일본의 아오키가 3연승, 중국의 탕이가 2연승을 거두며 한국 팀이 위기에 몰렸을 때 이민진이 등장해 루이나이웨이를 비롯한 잔여 적수들을 올킬해버렸다.
이 대회 3연승과 전 대회 5연승을 합쳐 8연승.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민진을 ‘정관장의 여신’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7회는 중국의 송롱후이가 6연승 신기록을 세웠고 리허가 마무리를 해 중국 측이 우승했다.
▲8회 정관장배에서 한국은 대역전 우승을 차지했다.8회에도 중국의 왕천싱이 초반 3연승으로 기세를 올렸다.
이때 중국 측 여류선수단은 정관장 배를 목표로 일찌감치 팀을 꾸려 콩지에, 천야오예, 씨에허 등 남자기사들이 트레이너로 붙어 맹훈련을 거듭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강해진 중국 팀이 한국과 일본 선수들을 손쉽게 무찌르고 정상 문턱에 섰을 때 남은 이가 바로 박지은 딱 한 명.
그러나 박지은은 놀라운 승부호흡으로 4연승을 거두며 중국을 절망시켰다.
▲9회 우승을 결정지은 박지은을 꽉 껴안은 김미리.그리고 올해 벌어진 제9회 정관장배.
문도원의 7연승. 김미리의 1승. 박지은의 1승으로 합작해 낸 한국 팀의 우승.
이렇게 장쾌한 드라마로 쓰여진 정관장 배의 역사가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니 허허로울 수밖에.
국가대항 여류기사 연승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또 다른 방법으로 메이저 세계대회를 창설하는 아이디어는 없을까?
차별화된 대회가 흥행에 유리하다는 것을 한국인삼공사 측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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