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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씨카드배]

名局의 條件, 보이지 않는 가치

제3회 비씨카드배 결승5번기를 보면서

김종서 작가2011-04-29 1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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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이 시작되기 전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는 이세돌(오른쪽)과 구리.

S#1. 지성 VS 야성

아직도 이세돌과 구리의 명승부 5번기 여운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칼날이 부딪히고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격정의 대충돌.
그런데 왜 그 처절한 쟁투가 이토록 가슴 먹먹할 정도로 아름답게 새겨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영웅, 이세돌과 구리가 쌓아올린 업적이나 훈장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요.
전류와도 같은 감각, 폭풍의 기세, 치밀한 수읽기 등 두 기사는 너무도 닮은 점이 많은 호적수입니다.


▲구리.

그러나 구리가 좀 더 지성적으로 느껴집니다.
아주 오래전 필자는 구리를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법가로 연상된다고 표현한 적 있습니다.
뭔가 정연하고 각지면서 반듯하게 다가옵니다.

이창호와 창하오가 유가(儒家) 계열의 선비에 가깝다면 이세돌은 어느 쪽일까요?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해 도가(道家) 쪽이라 규정했습니다.
왠지 몽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세돌.

이세돌은 확실히 야성적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기보가 뜨겁습니다.
구리의 지성은 포석감각으로 나타납니다.
무수한 중국 두뇌들의 집단연구 끝에 네 귀의 기본변화도는 몽땅 구리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리는 거의 모든 판의 초반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들어갑니다.

그 바람에 이세돌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우리들의 애간장은 다 녹아버렸습니다.
병력배치의 전술에서 한계를 실감한 이세돌은 급전으로 변화를 선택합니다.
시작하자마자 참호 밑으로 게릴라가 침투하는데 무슨 작전이 필요하겠습니까? 당장 응징하고 봐야죠.
그래서 한 판 전체를 관통하는 난타전이 전개됩니다.

참 실례지만 지켜보는 길라잡이 해설자들이 끙끙 신음 소리를 내고 심지어 '해설불가'를 고백할 정도로 두 대국자들은 기묘하고 신통한 수를 연발하며 엎치락뒤치락 외줄타기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세돌과 구리의 복기를 지켜보는 많은 관계자들.

청룡과 백호가 운우 속에서 얽히고 주작과 현무가 회오리 속에서 설키는 강신무(降神舞)와도 같았지요.
한 수에 원모(遠謀)의 계책이 묻어나고 또 한 수에 심려(深慮)의 기백이 실린 흑백의 접전, 그것은 신들의 향연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영웅이 펼친 비씨카드 결승 5번기 명승부는 두고두고 바둑 사에 회자될 것입니다.
우리의 총아 이세돌이 승리했기에 한없이 자랑스럽고 뿌듯하지만 구리 또한 이 땅에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구리는 패자가 아니라 이세돌과 한 시대를 동행하는 파트너입니다. 굳이 그의 패인을 짚는다면 지성을 견고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야성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 피비린내 나는 발톱싸움을 벌였기 때문 아닐까요?
적어도 야성의 바둑 생태계에서 이세돌은 괴수와 다름없는 최고 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중인 이세돌.

S#2. 진화인가? 돌연변이인가?

이세돌은 최종국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몸을 감싸고 있다.”
교감신경이 작동해 체내에 아드레날린이 팍팍 분비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기름과 포탄을 가득 채우고 발진하는 기갑부대 병사들의 기분이 그러할 겁니다.

2:2로 팽팽한 상태, 게다가 4국에서 유리한 바둑을 역전 당한 터라 상대에 대한 공포심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저런 기분이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언제부턴가 그는 바둑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터뷰 중인 구리.

구리는 인터뷰를 통해 말했습니다.
“이세돌과의 초반 접전은 연구된 그림이 아니었다. 과도하게 육박해오자 즉흥적으로 끊어갔고 그 후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수순으로 진행됐다.”

가만 보면 구리도 이세돌과의 난전을 즐기는 듯 보입니다.
천재 형인 두 사람 모두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상대의 의도를 거스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짭니다. 비씨카드 5번기의 기보를 두고 이세돌은 ‘좋은 기보를 남기지 못했다.“라고 자평합니다.
바둑 팬들의 의견 중에도 ‘명국이 아니다.’라는 소리가 더러 들립니다.
해설자들은 ‘이런 그림은 상상도 못한다.’라고 했지요.

그러나 필자는 감히 비씨카드배 5번기를 명국이라 단정합니다.
거꾸로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명국의 조건이 무엇인가요?
흑과 백이 잘 어울리면서 모양 좋게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바둑, 그것이 명국입니까?
그보다는 한 수 한 수에 기와 혼을 담아 상대에게 밀리지 않으려는 난타전의 바둑이 현대에서는 명국의 조건이라고 봅니다.

▲최종국이 끝난 뒤 이세돌과 구리.

상식의 창조적 파괴.
사고의 자유분방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시도.
사방이 포위되었을 때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흔들어대는 처절함.
변화의 궁극을 추구하는 모험심.
이런 미덕들이 비씨카드 5번기에서 화염으로 피어났습니다.
바둑은 타협이 아니라 싸움이다.
어떤 핸디캡도 없이 맨손으로 치고받고 비트는 열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질서가 그려지는 법이다.
어설픈 타협은 추하다.
필자는 두 영웅의 격돌에서 그런 속삭임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박력만점의 육박전에 중국대륙과 한반도의 바둑 팬들이 얼마나 열광했습니까?
다음과 네이버 등의 포털 스포츠 뉴스 코너에 이세돌 구리의 이름이 상위권에 포진되었습니다.
이런 열광이 바로 명국의 조건이라는 이야깁니다.
세상에 진정으로 완성도 높은 악보가 어디 따로 있을까요?
대중들이 많이 듣는 음악이 곧 명곡이지요.
바둑의 완성도는 영원히 측량하기 어려운 우주라고 봅니다.

그러나 답은 명료합니다.
이 시대의 바둑 인구 전체가 주목하고 환호하면 완성도는 절로 따라오는 것이겠지요.
시간제한이 있는 현대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순의 미학보다 승부의 치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리 바둑은 참 신기하다.
이세돌 바둑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돌연변이 천재들일까요?
아니면 수법의 진화일까요?
필자는 후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싶습니다.
성능 좋은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고 19로의 난해한 미로를 무한질주하며 레이스를 펼친 이세돌, 구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우승자 이세돌.

S#3. 이세돌은 19로의 마젤란

적수가 보낸 선물은 언제나 불길합니다.
구리가 여기저기 던지는 강속구와 변화구는 아찔했습니다.
적수가 강력하면 할수록 승리는 값진 법입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아 안티도 많았던 이세돌이 비씨 대첩으로 새로운 전기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창호처럼 달관의 성인이 되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격정을 유지하되 눈물도 품고 겸양도 간직한 인간적인 고수로 우뚝 섰으면 좋겠습니다.
권위를 조소하고 규율에 반항하는 개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장점을 집중적으로 활용해 최선의 특질을 찾을 줄 아는 천재입니다.
아주 사소한 결점도 있지만 결점은 뒤에 남겨둔 채로 장점만으로 진보하려는 탐험가 기질이 농후합니다.
그런 기질이 자기완성으로 이어지리라 확신합니다.

P.S
뜨거웠던 비씨카드 열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글로벌 카드를 구상하고 있는 비씨카드사는 거대시장 중국에 인상적인 홍보를 했다고 여겨집니다.
바둑, 참 저렴한 비용으로 무한한 광고효과를 올릴 수 있는 종목, 확실합니다.
이세돌과 구리, 3억원과 1억원의 광고출연료는 합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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