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스페셜]
바둑 읽는 CEO
최고위 과정 워크샵 참관기
김종서 작가2011-06-20 16:48:14

S#1. 감자 꽃 필 무렵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 6월에 찾아가니 들녘 가득 감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지난 주말, 이효석의 생가(生家) 부근 소설 속 주인공들이 밀애를 나눴던 물레방앗간 터로 고급승용차들이 하나둘씩 미끄러져 들어왔다.

▲정감이 묻어나는 워크샵 장소
명지대 글로벌 바둑최고위과정 1기 워크샵 장소는 강원도 산촌 민가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막국수 집이었다.
▲유창혁 9단, 승순선 여성연맹 회장 VS 이의범 SG그룹 회장, 목이균 웅진루카스 투자자문 부회장
주말일수록 더 바쁜 CEO들이기에 회동시간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먼저 온 멤버들은 순서대로 짝을 지어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는 페어바둑이 대세였다.
인터넷 기력 7단이 짱짱한 상대 팀 콤비의 견실한 플레이에 고전을 거듭하던 유창혁 9단이 계속 카운트를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대국과 계시를 동시에 한 유창혁 9단.
열을 헤아리면 3개의 돌을 받고 순번을 어겨도 3개의 돌을 받는 룰이다.
훈수 성 멘트도 반칙이고 몸짓 또한 반칙으로 사석을 제공한다.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기록했던 천하의 유창혁 9단이 계시원을 겸한 바둑은 아마 이 판이 처음일 것이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장재익 고합건설 대표가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마당의 찔레꽃 넝쿨 그늘 아래서는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합류해 모처럼 바둑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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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의 힘은 페어대국에서도!접바둑의 달인 영환도사는 페어바둑에서도 신통방통한 묘수를 연발하며 상대 팀을 몰아붙였다.
페어바둑은 의외성이 강해 수시로 반전이 거듭된다.
상수는 당연히 판을 주도해야 하고 하수는 중요한 고비에서 아군의 주장에게 결정권을 패스하는 재치가 필요하다.
한 수의 선택에 따라 사활이 좌우된다거나 대세를 선점하는 대목에서 도저히 판단하기 어려울 땐 절대팻감을 써서라도 상대 주장의 발을 묶어야 한다. 그 콤비플레이가 페어바둑의 핵심이다.
회원들이 다 모인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 사이 바둑만 계속 반복되었다.

▲워크샵에 참가한 최고위1기 멤버들.
바둑을 사랑하는 CEO들의 모임.
그들이 바로 명지대 글로벌 최고위과정 1기 멤버들이었다.
2010년 과정을 이수했는데 멤버들의 스케줄을 하나로 엮기 어려워 반년 만에 졸업여행을 온 거였다.
S#2. 메세나(기업의 이타적 문화 후원)에 관하여
바둑은 두는 이, 보는 이, 돕는 이 이렇게 세 개의 축으로 이뤄진다.
두는 이는 프로와 아마를 통틀어 기사들이다.
그들은 뛰어난 두뇌와 꾸준한 수련을 통해 바둑 콘텐츠를 창조한다.
보는 이는 바둑 팬으로 바둑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비한다.
그 사이에 돕는 이, 다시 말해 후원자 그룹이 존재한다.
바둑의 역사는 어찌 보면 후원자들의 선의(善意)에 의해 유지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양반가에서 기객(棋客)들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일본의 막부정권은 바둑을 예도로 인정해 기사들에게 월급과 권위를 부여했다.
근대에 이르러서 만들어진 기전 역시 신문사를 비롯한 기업의 후원을 받아 오랜 세월 바둑문화를 가다듬어 왔다.
물론 돕는다고 해서 막연히 일방적인 시혜(施惠)일 수만은 없다.
희랍의 부자 마이케이나스가 조건 없이 문화예술을 후원한데서 비롯된 메세나가 최근 경제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데 현대에 이르러서 메세나는 일방적인 후원이 아니라 가치를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창출하는 쪽으로 해석된다. 이를테면 기업이 바둑을 그냥 돕는 게 아니라 바둑의 힘을 빌려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야기다.
▲최고위과정 강의
미국의 한 기업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연주여행을 자주 간다.
바이어들을 공연에 초대하고 음악을 화제로 자연스럽게 비즈니스를 풀어간다. 고차원적인 로비인 셈이다.
바둑도 충분히 기업의 생산활동과 접목시킬 수 있다.
이붕 김영성 선생은 대만의 잉창치 그룹과 섬유산업의 파트너로 관계를 맺었는데 두 사람이 바둑 광이라 반상에서는 한집을 두고 다투었어도 납품일자와 가격을 놓고는 무한신뢰로 거래했다고 한다.
농심은 한중일 바둑삼국 대결을 후원하면서 중국시장을 개척했고, GS그룹 역시 바둑계 전반을 후원하면서 바둑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었다.
아무튼 바둑의 가치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찾는 사람의 몫이다.
바둑의 가치를 찾는 CEO들은 훌륭하다.
찾으려고 노력하는 CEO 역시 바둑 팬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글로벌 바둑최고위 과정에 적을 둔 CEO들을 탐색하는 작업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골프를 치지 않은 멤버들은 가까운 계곡을 찾았다.
S#3. 낮보다 아름다운 밤
글로벌 바둑최고위 과정 1기의 졸업여행은 바둑과 골프, 산책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저녁식사를 마친 이후, 전원이 콘도에 모였다.
여행에 동참한 프로기사들이 간단하게 소감을 전했다.

양재호 사무총장 : 바둑계 일각에서 여러분들이 이처럼 공동체를 이뤄 바둑을 화두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는 것을 보고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업체에 바둑 후원을 요청하기 이전에 바둑이 먼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유창혁 9단 : 최고위과정을 만들고 진행하신 정수현 교수님이 호출해 후배 입장에서 무조건 달려 왔습니다. 함께 있는 동안 바둑 많이 둬 드리겠습니다.
김영환9단 : 저는 유창혁 선배님과 한 몸입니다. 하하하
1기 원우회 이의범 회장의 인사말은 더 간단했다.
“빨리 바둑 둡시다.”

▲이의범 회장과 유창혁 9단
이의범 회장은 연매출 8천억 원을 기록한 SG그룹의 총수이다.
페어바둑대회과 아시안게임 선수단을 후원하면서 최근 바둑계에서 부각되고 있는 CEO다.
이의범 : 저는 골프도 즐기지만 그보다 바둑을 더 좋아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 바둑을 두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사업적 영감이 떠오르곤 하죠. 제가 좋아하는 바둑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1기 멤버들 모두 바둑 광들입니다. 단순한 취미 차원을 떠나 바둑을 사랑하는 CEO들의 모임이니 바둑계 발전을 위해 뭔가 동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머리를 모아야겠죠.

여행지의 밤이건만 거창한 여흥 프로그램은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회원 한 사람의 클래식 기타 연주와 소박한 합창이 전부였다.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마치 수학여행은 온 학생들처럼 맑아보였다.
그리고 다시 페어바둑이 이 방 저 방에서 벌어졌다.
프로기사들의 복기강좌에 이르기까지 바둑 돌 놓는 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최고위과정 1기 원우들은 그 어떤 모임보다 바둑 모임을 중시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1기 모임에서 2천만원의 바둑발전기금을 모아 명지대에 전달했다.
바둑최고위과정을 통해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CEO들이라 바둑비즈니스 아이디어들을 수시로 교환하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 모임이 바둑계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내일은 [바둑 읽는 CEO 2편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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