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농심신라면배]

다시 숙제로 남겨진 와일드 카드

적어도 랭킹 1위에게는 자동출전권 줘야

안성문 바둑기고가2011-07-20 15:46:30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이영구와 이창호의 예선 5회전 모습.이영구가 승리했다.

제13회 농심배 국가대표 선발전이 지난 주로 사실상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원성진, 김지석, 강유택이 이미 지옥의 레이스를 통과했고, 내주에 미뤄진 A조 결승전(이영구-인국현)이 치러지면 와일드카드를 제외한 4명의 자력 진출자가 확정된다.

이번 농심배 예선은 그 어느 때 보다 '랭킹 파괴'의 바람이 거세서 국내 랭킹 1~5위가 무더기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해까지 ‘4년 연속 예선 탈락, 4년 연속 와일드 카드’의 주인공이었던 이창호 9단은 이번에도 자력으로 관문을 통과하는데 실패했다. 인터넷 게시판은 벌써부터 남은 한 장의 티켓, 즉 와일드카드의 주인공이 누가 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와일드 카드란 무엇이며, 어떻게 선정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나아가 선발전 방식은 이것이 최선일까. 바둑계는 올해도 농심배가 던지는 이런저런 숙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 와일드카드와 흥행

와일드카드는 원래 카드게임에서 나온 용어로 자기가 편리한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패  즉 조커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은 축구나 야구, 테니스 등 스포츠에서도 그 의미가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스포츠에서의 와일드 카드는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특별히 출전이 허용된 선수나 팀'을 말하며, 이는 대회 시작 전에 미리 자동출전권을 부여하는 시드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올림픽 축구팀의 경우, 원래 출전하는 선수는 프로와 아마추어에 관계없이 23세 이하로 제한되어 있으나 23세 이상의 선수를 3명까지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월드컵에 비해 뒤떨어진 올림픽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국제축구연맹(FIFA)이 도입한 제도이다.

또한 테니스의 경우, 그랜드슬램 대회 같은 큰 대회의 본선에서 뛰려면 원래는 지역 예선을 통과하거나 세계테니스 랭킹 몇 등 안에 들어야 하지만 대회조직위의 추천을 받으면 그렇지 않더라도 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종목마다 운용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와일드 카드란 제도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흥행' 때문이다. 영어의 ‘와일드(wild)’란 단어 자체가 ‘거칠고 제멋대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흥행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있다면 주최측 맘대로 뽑을 수 있게 만든 것. 그것이 와일드카드의 탄생 배경이라는 얘기다.

▲11회 농심배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이창호가 소감을 말하는 모습.

농심배만 놓고 보더라도 그 동안 이창호 9단에 대한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지만 농심의 지명권 행사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다름 아닌 '중국에서의 흥행'이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바둑대회를 만들었다 해도 매년 8억 이상을 투자하는 후원사 입장에선 당연히 최고의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농심이 대회 타이틀 이름을 그냥 농심배가 아닌 농심신라면배로 고집하는 까닭, 총 12년의 농심배 역사에서 무려 8번이나 시드 또는 와일드카드를 주면서 이창호 9단을 개근시킨 이유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 와일드카드란 태생적으로 형평성과 맞지 않는 존재다. 어떤 기준을 내세우든, 한 사람에게 본선 직행의 특혜를 준다는 것은 여타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공정한 것이다. 실재로 농심배 역시 5회 때인 2003년, 이런 불공정 시비에 크게 휩싸인 적이 있었는데 당시 불참을 선언하면서 까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이세돌이었다.

▲2003년 7회 LG배에서 이창호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이세돌(사진 앞 줄 맨 왼쪽).

■
이세돌, 농심배를 거부하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3년 6월, 제5회 농심배 예선을 정확히 2주 앞둔 상황에서 이세돌이 돌연 농심배 불참을 선언했다. 그 해 이세돌은 LG배서 이창호를 누르고 우승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기에 그의 발언은 당연히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궁금증은 불참을 선언한 며칠 후 밝혀졌다. 이세돌은 바둑 담당기자들과 직접 마주한 자리에서 불참의 이유로 "와일드카드에 대한 선발 원칙이 모호하다"고 밝혔다. 풀이하면 시드를 배정하려면 어떤 객관적 기준을 정해 그에 해당하는 기사들에게 모두 주거나, 그럴 수 없다면 모두 예선에 공평하게 참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99년 1회 대회를 시작한 농심배는 3회 대회까지는 지금처럼 모든 기사가 예선에 참가한 다음 나중에 주최측이 와일드카드를 선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 결과 1회 유창혁 9단, 2회 조훈현 9단, 3회 유창혁 9단이 순서대로 와일드카드의 주인공이 됐다. 이 때만 해도 이창호 9단은 늘 자력으로 선발전을 통과했기에 혜택이고 뭐고 할 것이 없었다. 

▲4회 농심배에서 중국주장 뤄시허를 꺾고 우승을 결정지은 이창호(왼쪽)

하지만 4회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한국기원과 농심이 협의 하에 이제부터는 대회 공로가 높고 지명도가 있는 기사에게 대회 시작 전 미리 시드(자동 출전권)를 준다고 방침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창호 9단이 예선에서 탈락하면 어차피 와일드 카드를 받을 텐데 굳이 시합에 출전해 여럿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기사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창호 9단은 4회 대회서 5연승을 달리고 있던 중국의 후야오위 7단과 중국 주장 뤄시허9단을 연파하며 우승을 마무리했고, 영웅 대접을 받으며 금의환향했다.

이세돌 9단이 선발 방식이 바뀐 것에 불만을 표시하며 불참을 선언을 한 것은 이로부터 6개월 후. 지금 와서 보면 이세돌다운 의사표시였다는 생각이지만 당시엔 이창호의 영광을 시샘하는 것으로만 비쳐졌고, 혼자 너무 튄다는 비난과 함께 보기 좋게 묵살되고 말았다. 농심은 이후에도 7회까지 4년 연속 이창호에게 시드를 주다가 8회때(2006년)에 가서야 지금의 방식으로 선정 방식을 환원하게 된다.


■ 이번에도 과연 이창호일까

결론적으로 와일드카드를 논의하는데 있어 흥행이 우선이냐, 실력이 우선이냐는 문제는 며칠 밤을 새며 토론한다 해도 정답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와일드 카드란 존재 자체가 흥행을 위해 태어난 것이지만 대중의 여론이나 형평성이라는 잣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창호 이세돌의 동반 탈락이라는 요즘과 똑 같은 상황이 4년 전에 벌어졌을 때 주최측인 농심은 이창호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적지 않은 고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지 흥행만을 고려했다면 그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고심의 강도로 본다면 농심이 4년 전에 했던 정도는 이번의 케이스에 비하면 세발의 피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그로부터 2년 사이, 이창호와 이세돌의 위상이 현격히 변했다. 이창호는 2년 전만 해도 타이틀 보유자였지만 지금은 무관이다. 랭킹도 그 때보다는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

▲비씨카드배 우승을 차지한 후 복기하고 있는 이세돌.

반면 이세돌은 올해 열린 비씨카드배와 춘란배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면서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심은 이전처럼 눈 딱 감고 이창호를 껴안을 수 있을까. 이창호가 농심배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큰 관계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지만 이 번 만큼은 만만치 않게 땀을 흘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

차제에 13회째를 맞은 농심배에서 이창호와 이세돌을 얘기하자면,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쪽은 꽃밭이었고 다른 한쪽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먼저 이창호 얘기를 하자면, 한국은 이 대회를 10차례나 제패했는데 그 중 8번을 이창호가 마무리했다(지난 해와 2008년은 이창호가 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세돌과 최철한이 각각 마무리). 1회부터 7회 대회까지의 14연승 포함 통산 19승 2패(승률90.5%)라는 족적 또한 독보적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이라면 이창호는 벌써 명예의 전당에 모셔졌을 것이다.

▲지난대회 오랜만에 농심배에 출전한 이세돌은 2승에 그쳤다.

반면 이세돌과 농심배는 아무리 인연이 없다 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총 12년간의 역대 농심배에서 이세돌이 본선 땅을 밟은 것은 고작 2번이었다. 전적도 통산 4승 1패에 불과하다. 단지 농심배만 놓고 본다면 지난 10년간 두 기사가 한국 바둑계를 양분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창호처럼 시드나 와일드카드의 혜택을 보지 못한 이세돌은 매번 맨땅에서 출발했는데 그 때마다 불운이 거듭되면서 출전권을 놓쳤다. 심지어 5회 때는 이미 언급한 대로 주최측이 이창호 만을 편애한다며 스스로 불참한 일도 있었다. 그가 이제까지 단 2회만 참가한 배경이다.

이세돌 입장에서 더욱 억울한 것은 농심배로 인해 이창호는 '애국자' 자신은 '반항아'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4년 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다시 이창호에게 와일드 카드가 돌아갔을 때 이세돌은 예상을 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자신은 주최측에 찍힌 마당이니 와일드카드 같은 건 체념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세돌은 누가 뭐라 해도 세계대회 2관왕에 17개월째 국내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절대 강자다. 믿음성이나 단체전서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이창호만 못하다해서 마냥 이런 실력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팬들이 이런 상황을 용납하기 어렵다.


■ 차제에 선발 방식을 바꿔야

초점이 와일드카드로 좁혀진 탓에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사실 와일드카드는 국가 대표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한 부분,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의 틀이 바뀌면 부분의 문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결되는 것이 세상사다.

농심배만 하더라도 진작에 랭킹 1위에 대해 시드를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면 지금의 와일드카드 논란 같은 것은 없지 않았을까. 대표팀 라인업에 꼭 필요한 1인자는 확보를 해놓은 상태에서 주최측이 원하는 선수는 탈락할 경우 와일드카드로 구제하면 되니 말이다. .

▲한국랭킹 1~3위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농심배는 상위 랭커 16명을 초반부터 만나지 않게 4개조로 나누어 배치할 뿐, 랭킹에 대한 어떤 프리미엄도 주지 않는 유일한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재밌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번처럼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우수수 떨어졌을 때 전력 약화가 불가피해진다. 농심배는 세계 유일의 국가 단체 대항전이니 만큼 최강의 라인업으로 구성돼야 마땅한데 제도 자체가 그것을 막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선발전을 치르는데 시간과 예산이 너무 많이 소모된다는 것도 문제다. 만약 정해진 예산이 있어서 한국기원 소속 250여명의 기사들에 골고루 나눠줘야 하는 입장이라면 차라리 다른 이벤트를 강구할 일이지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할까. 더불어 랭킹제가 시행된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를 반영하는 노력이 없다는 점도 농심배가 플어야 할 과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농심배의 성상은 그 시간을 넘긴 지 오래다. 그런데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요지부동, 티끌 만큼의 변화도 없다.

▲17개월 연속 한국랭킹 1위 이세돌.

■ 적어도 랭킹 1위는 보호하자

좋은 말도 길어지면 잔소리가 된다. 결론은 간단하다. 최소한 국내 랭킹 1위는 시드를 주어 보호하고 나머지를 대상으로 선발전을 치르자는 것이다. 주최측이 원한다면 별도로 와일드카드를 주어도 좋다. 이렇게 되면 순수 선발전이 필요한 티켓은 3장이 남는데 그 주인공을 결정하는 방식은 KT배 처럼 다단계 랭킹 방식을 적용하든, 지금처럼 뽑든 그 때 가서 결정하자. 만약 이것 저것 다 싫다면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으는 노력이라도 당장 시작하자.

참고로 중국은 지난 농심배 대표를 선발하는데 있어 자국 랭킹 1위인 콩지에와 전기인 11회 대회에서 5연승한 씨에허에게 선발전 없이 자동 출전권을 부여했다. 이어 나머지 3명의 선수는 16명의 상위 랭커들이 '패자 부활전'이 가미된 토너먼트를 치러 왕시, 저우루이양, 퉈지아시가 대표로 뽑혔다. 이 과정에서 구리가 탈락하는 바람에 잠깐 소동이 일기도 했지만 콩지에, 씨에허 같은 강자가 이미 확보된 상태라 대표팀 라인업에 대한 논쟁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어떤가, 말 많고 소모적인 우리의 선발 방식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합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일본의 경우는 타이틀 보유자와 상금 랭킹 우선이라는 원칙을 두고 그 때 그 때 국내 일정을 감안해 선수를 선발할 뿐 따로 선발전을 치르지 않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이래도 말 많고 저래도 말 많은 것이 국가 대표 선발 방식이고 보면 어쩌면 이것이 가장 간단한 답일 수도 있겠다.

농심배 선발 방식,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