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쯔배]
세계적인 기사의 통과의례, 후지쯔배
원년 후지쯔배의 교훈
i진선2011-08-09 05:54:03
1988년 한국에서 제 24회 서울 올림픽이 거행되었다. 올해의 후지쯔배도 마침 24회다. 대지진으로 연기되었던 제24회 후지쯔배 쟁탈 세계바둑선수권대회가 드디어 시작한다. 후지쯔배는 최초의 세계기전이라서 바둑史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응창기배 기전을 앞두고 서둘러 출범을 하기는 했어도, 출범 당시의 후지쯔배는 뒤를 이어 창설된 세계기전의 모범적인 사례다. 원년 후지쯔배의 주최는 후지쯔社가 아니라 讀賣新聞社-일본기원-관서기원이다. 후지쯔社(富士通株式會社)는 협찬사이며, 후원은 일본TV방송망(株) 그리고 협력사가 일본항공(株)등으로 지금의 대회 운영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제1회 응창기배에서는 한국에 배당된 선수는 단 한 명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 바둑계에서 대회를 보이콧 하자는 말들이 적지 않았는데, 후지쯔배는 지금도 상당히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각국 출전선수를 배당했다.

소속기원별로 출전선수 자격을 부여했는데, 한국기원의 출전선수는 3명이지만, 국적별로 하면 조치훈도 포함되어 한국은 4명이 출전한 셈이다. 한국기원 3명, 일본기원 5명, 관서기원 2명, 그리고 중국바둑협회 4명,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1명이 출전했다. 왜 첫 세계기전을 국가별로 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대만과 중국(中共)과의 정치적인 갈등 탓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첫 세계 프로기전이니만큼 일본기원에서는 공정한 경기진행을 위해서 각국 기원의 임원들을 초청하여 충분한 토의를 거쳐서 경기규정을 만들었다.
총 토너먼트로 하되 결승전은 1회로 한다. 지금까지도 결승은 단판승부다. 총 호선으로 흑 5집반 공제, 전체적인 바둑룰은 일본식을 따르며 초읽기 중 부득이한 사정으로 자리를 떠나는 경우에 상대방이 착수하지 않으면 그 시간은 소비시간으로 하지 않는 등의 룰을 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초읽기 문제였다. 각국 선수들이 모이므로 초읽기를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논의한 끝에, 10분부터 1분까지는 30초, 40초 등은 일본어로 한다. 그러나 10초가 남았을 때는 영어로 초읽기 했다.
▲제1회 후지쯔배 개막식 모습.
88년 3월 31일에 각국 선수들이 모여서 도쿄 그랜드 파레스호텔에 투숙한 후 다음날에 전야제와 추첨 그리고 4월2일 16강전 대국 한후 다음날 귀국하는 매우 여유 있는 대회였다. 제 2회전은 6월4일에 열렸으며, 4강전격인 3회전은 오사카로 옮겨서 7월2일에 거행하고, 결승전도 그곳에서 9월3일에 열렸다.
동경프린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거행된 세계최초의 세계기전의 출발은 화려했다. 대회 파티에 참가한 인원이 1,000여명에 달했으며, 한국에서도 조남철을 비롯하여 KBS-MBC와 각종 스포츠 기자들을 대동하고 무려 40여명의 대식구들이 이날의 축제에 참여했다.
그러나 다음날 한국은 큰 실망을 하고 귀국 보따리를 싸야만 했다. 첫 세계기전 첫 출전한 한국기원소속 3명의 프로기사가 1회전에서 모두 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팬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4월2일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한국기원에 전국의 바둑팬들이 걸어오는 문의전화로 거의 업무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 특히 대회를 앞두고 각종 언론사들의 조훈현과 서봉수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었다. 그러나 모두가 패배하자 바둑팬들은 크게 실망했고, 각 언론사에서는 한 줄의 패배기사로 마무리해버렸다.
그래도 이날의 대국의 성과는 꽤 컸었다. 한국의 정상급 기사라면 세계바둑과 수준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이는 바로 곧 있을 제1회 응창기배 세계기전을 착실하게 준비하는 거름이 된다.
▲1회 우승을 차지한 다케미야 마사키.
첫 대회는 다행히(?)도 주최국인 일본이 우승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23회까지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은 단 6회밖에 우승하지를 못했다. 그 동안의 후지쯔배 역대 우승자 결과를 보면 일본의 추락과 한국의 융성 그리고 중국의 도전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일본은 1997년 10회 대회 이 후로 단 한 번도 우승을 못했으며, 한국 14번, 중국 3번 우승을 맛 보았다.
특히 한국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10년동안 우승을 놓치지않았다. 조훈현과 이세돌이 3번의 우승을 그리고 이창호와 유창혁 박영훈이 2번의 우승을 했다. 2008년이 후로 구리와 콩지애가 각각 이창호와 이세돌을 이기면서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후지쯔배 만큼은 거의 한국 바둑을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제1회 후지쯔배 세계 선수권 대회는 1회전에서 조훈현 9단을 이겼던 일본의 다께미야 마사키 9단이 우승하여 첫 세계기전 우승자로 영원히 기록이 되었다. 그런데 곧 열린 제1회 응창기배 2회전에서 다께미야9단을 꺾은 조훈현 9단은 결국 대회 우승을 하고야 말았다. 후지쯔배 1차전의 패배는 훗날 응창기배 우승하는데 큰 원동력이 된 듯.
▲후지쯔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왼쪽부터). 이 외에도 한국은 이세돌, 박정상, 박영훈, 강동윤이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지금에 와서 타 세계기전보다 상금도 적고, 일본 바둑의 위상이 예전 같지않다하여 후지쯔배의 가치를 높게 보지않는 시선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24년동안 진행된 후지쯔배의 역사를 보면 우승자들은 거의 최정상급의 명망있는 프로기사들이다. 초일류기사가 되는데 반드시 통과의례가 된 세계기전이다. 특히 한국 프로기사들에게 의미가 깊다. 제1회 대회 1회전 탈락으로 실망하여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면 오늘의 한국 바둑이 있을까?
비록 지금의 세계 바둑계에서 일본 바둑의 위상은 예전과는 다르지만, 현대 바둑 문화의 저력은 한국, 중국을 능가한다. 일본이 유일하게 개최하는 세계기전인 후지쯔배, 最古의 세계기전으로서의 그 가치는 적지 않다.
한국 기사가 우승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대지진의 어려움 속에서 간신히 다시 일정 잡아서 개최되는 제 24회 후지쯔배 세계바둑 선수권대회에 일본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일본 바둑팬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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