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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아름다운 체코 안에 녹아 있는 바둑

3천명의 바둑인구와 많은 클럽이 있는 체코

한상대 교수2011-08-20 10: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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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한 복판을 흐르는 볼타바(몰다우) 강

1.내가 기억하는 체코
"구름위의 성(城)에 가고 싶어요" 레미제러블에서 고아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구절이다.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고 구름이 저 밑으로 보인다. 위에서 보니까 정말 어느 것은 꼭 성처럼 보인다. 2011년5월 5일. 나는 인천에서 KAL기편으로 프라하행 비행기에 올랐다. 체코주재 한국대사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내가 대사배 창설자라 작년에 오갑렬 대사의 초청을 받았는데 사정이 있어 못 가고 금년에야 가게 되었다. 비행기가 날라가는 동안 내가 언제부터 체코를 알고 그 나라에 대해 무얼 기억하고 있는지 더듬어 봤다.

내가 어릴적 체코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무기를 잘 만드는 나라였다. “권총은 체코제가 세계에서 제일이야” 6.25 전쟁 중 당시 육군대령이었던 우리 어머니 4촌 오빠인 아저씨 말을 듣고 체코제 총을 가진 군인이 되는 게 9살 된 나의 꿈이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영웅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은 장거리 종목인 마라톤, 1만미터, 5천미터에서 금메달 3개를 모두 휩쓴다. 특히 그는 1만미터를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다음날 마라톤에 출전, 우승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한다.

▲자토펙

1만미터가 끝나면 선수들이 여러날 쉬어야 하기 때문에 주최측은 다음날 마라톤에 또 출전한 선수가 있다는 자체에 경악했다. 생년월일이 같은 자토팩의 부인은 투창선수였는데 부부가 같은 날 금메달을 따내기도 한다. 자토팩은 체코 육군대위였다. 그는 18번이나 세계기록을 갈아치운다. 그의 별명은 ‘인간 기관차’다. 당시 11세였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자 밤에 동네를 뛰어 다녔다. 우리 어머니가 “너 왜 요새 자꾸 뛰어 다니니?” 하던 기억이 난다.

▲몰다우강에서 보는 까를 성(城)

내가 젊어서는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음악을 들으며 보헤미아의 나라 체코를 동경했다.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 –1884)는 50세부터 베토벤처럼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교향시 ‘나의 조국’과 ‘몰다우’를 작곡한다. 몰다우는 독일어이고 체코에선 볼타바라고 부른다. ‘신세계’ 작곡가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 1841년 ~1904년)의 오페라 루살카 중 아리아 ‘달에게 보내는 노래'는 나에겐 아주 이질적 멜로디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는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어 내가 수 없이 들었다. 이 두 작곡가가 체코 민족음악을 세계로 널리 퍼트린 사람들이다.

▲스메타나 / 드보르작

대학을 졸업한 후 체코가 나에게 다시 다가온다. 1968년 공산당 제일서기장 둡체크(두브체크)가 소련에 대항하여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을 때 일이다. 일국의 집권자가 자기 나라를 위해 강국 소련에 대항하여 앞장 설 때 나는 열광했다. ‘프라하의 봄’으로 불린 체코 자유화 운동이 소련제 탱크 앞에서 물거품이 되어갈 때 나는 사태를 방관만 하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을 원망했다.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매일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바르샤바 조약 동맹국가들이 소련의 강요에 의해 군대를 조금 보냈으나 루마니아 등 몇개 국가는 러시아를 공개 비난했다. 체코를 침공한 소련은 당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둡체크를 망명시킨다. 이로써 체코의 자유화운동은 막을 내린다.

▲둡채크(Alexander Dubček) 제일 서기장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소련수상

▲루마니아 대통령 초우세스쿠(Nicolae Ceauşescu)가 소련 침공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채코 테니스 선수들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내 관심을 끌기시작한다. 남자 렌들은 해골 상으로 다네크와 비슷하게 생겼다^^ 여자선수는 나브라틸로바가 세계 1위를 오래 지켰다. 그러나 내가 좋아한 선수는 만들리코바였다. 그녀를 실력으로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다. 경기 자체가 시원스럽고 멋진 선수다. 자기 어머니가 올림픽 육상선수여서 그런지 아주 민첩하다. 다만 자기와의 싸움에서 져서 세계 1위를 못한다. 큰 승부에 약해서 세계 3위까지가 기록이다. 예를 들어 85년 US오픈 결승 제 3세트에서 나브라틸로바에게 5대 0으로 리드했을 때다. 한 게임만 더 이기면 자기가 세계 1위에 오르는 순간 떨려서 실수를 시작한다. 결국은 7대 6으로 역전되는 걸 지켜 보면서 내가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있다.

▲렌들(Ivan Lendl) /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 만들리코바(Hana Mandlíková)

세계적 국제음악 향연인 ‘프라하의 봄 축제’가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매년 5월 12일부터 6월 초까지 열리는데 내가 언젠가는 참석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축제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하고 드보르작의 ‘신세계’ 연주로 막을 내린다고 한다. 전에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이 마지막 공연이었다고 한다. 이 행사 이름을 빗대어 드붑첵의 봉기도 ‘프라하의 봄’으로 불렸다. 내가 이번에 체코를 11일에 떠나는데 음악축제는 다음 날인 12일부터다. 중요한 약속이 12일에 잡혀 있어 프라하를 음악제 전날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음악제 말고도 프라하가 부다페스트와 함께 동구의 ‘두개의 보석’이란 말을 듣고 “프라하엔 꼭 가봐야지” 하며 내가 오래전부터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두 보석’ 중 부다페스트는 1983년에 일찍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프라하는 2002년에서야 들어갔다. 프라하는 세계대전 중 전화를 안 입어 중세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인구는 수도권이 230만. 프라하 중심가엔 바로크, 르네상스, 큐비즘, 고딕, 신고전주의부터 초현대적인 건축물들이 함께 섞여 있다. 시내 중심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내가 유럽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3~4백년 이상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구(舊)시가지다. 프라하는 전체가 구시가지 같은 인상을 준다.

▲프라하

다음해인 2003년에 나는 명지대 바둑학과 팀 18명을 인솔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코에 입국하려다 실패한다. 독일 운전기사 발터가 “내 고향이 린즈(Linz)인데 그쪽 국경보초들을 아니까 그리고 가자”고 한다. 우리는 린즈로 가서 발터가 아는 보초 8명에게 맥주 8병을 사주고 입국했다. 우리는 프라하로 가는 도중 버드바이저 맥주공장을 지나기도 했다. 체코가 맥주와 수정제품으로 유명한 것도 그 때 알았다.

친선바둑 모임이 열리는 프라하 바둑클럽엘 들어서는데 입구에 체코 바둑협회의 목적이 써있다. ‘바둑을 통해 일본문화를 이해하고 일본과 우호관계를 증진하기 위함’이라고 되어 있다. 바둑은 일본만의 문화가 아닌데 이 내용이 영 신경에 거슬린다. 내가 당시 여자회장인 흐르코바에게 일본을 동양으로 대체시키면 좋겠다고 하니까 자기도 한국이 세계대회를 계속 제패하면서 느낀바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2년 후에 내가 다시 가보니까 문구를 고쳤다.

▲프라하

친선대회가 늦게 끝난 후 다 식사하러 갔는데 30여명이 식사한 후 나에게 식사 값을 내달라고 한다. 보통은 주최측이 내는 건데… 바가지를 쓴 그날 밤. 바둑모임이 늦게 끝나고 우리는 숙소로 가기위해 버스가 주차한 곳까지 약 2km이상 걸어갔다. 몸은 나른했지만 프라하의 밤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운전기사 발터가 자기는 밤 8시가 지나면 조금도 버스를 움직일 수 없다고 우긴다.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있다고 한다.

숙소에 갈 길이 없어진 우리는 할 수 없이 버스에서 잤다. 몸이 약한 이기봉사범이 자기는 버스에서 자는 게 힘들다고 하길래 우리집 사람을 시켜서 택시타고 아무데나 가서 호텔을 잡아 이사범이 자도록 해주고 오라고 시켰다. 한시간 후쯤 집사람이 돌아온다. 내 일생 처음 버스에서 앉은체 자봤다. 나는 학생들과 아침에 근처 지하철역에 가서 세수하고 음식도 거기에서 사 먹었다.

2. 여섯번째 방문
상념에 잡혀있는 동안 비행기가 열시간쯤 날라와 프라하에 착륙한다. 체코공항으로 입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다섯번의 방문은 다 육로로 들어왔다. 독일에서 세번, 오스트리아에서 두번 차로 국경을 넘었다. 체코가 EU에 가입한 후 입국수속이 쉬워졌다. 공항시설은 평범한 유럽수준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까 알레스가 손을 흔든다. 페터도 함께 나왔다. 알레스(3단)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핵물리학 박사를 취득하고 체코로 돌아와서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엘리트다. 그는 유럽바둑연맹의 이사로 바둑대회 점수계산과 랭킹 담당이다. 페터 2단은 바둑협회의 궂은 일은 도맡아 한다.

▲알레스 체플리(ALEŠ CIEPLY) / 블라디미르 다네크(VLADIMÍR DANĚK)

내가 3년전 한국대사배 창립문제로 왔을 때는 알레스의 집에 묵었으나 이번에는 체코바둑협회장인 다네크 집에서 묵기로 하였다. 내일 한국기원 파견기사로 유건재사범이 오는데 그와 같은 집에 묵기 위해서다. 다네크는 1980년대 초부터 나와 세계대회에서 여러번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국무총리배에 참가하러 한국에 와선 명지대 교수관사인 우리집에도 놀러왔다. 그의 집은 시내에서 20분 거리에 있는데 언덕위 공원 옆에 있는 커다란 2층 집에서 산다. 집에 도착하니까 그의 부인 렌카(Lenka)가 반갑게 맞이한다. 브르노에서 왔다는 청년 3명도 이 집에 묵고 있다. 그들은 대사배 바둑대회에 참가한다는 사실에 약간 들떠 있었다. 브르노는 체코 제 2의 도시로 산업의 중심지다.

▲인구 75만의 브르노(Brno) / 브르노 성 토마스 성당이 멀리 보인다

대사배 준비로 바쁜 다네크회장을 저녁이 되어서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우리가 좋았다 말았다”.고 하면서 “파견기사는 이슬아사범이고 여성바둑회에서 몇명이 따라 올 것 같다”고 해서 체코 바둑계, 특히 젊은층이 흥분했는데 나중에 유건재사범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지낸 유사범이 와서 영광이다”라고 외교적 발언도 잊지 않는다. 한국기원에서 나에게 이슬아사범이 간다고 해서 체코에 그렇게 알렸는데 츨발직전 갑자기 이사범이 안 가겠다고 한다며 유사범으로 바꿨다. 한국기원 4층에 있는 여성연맹 승순선회장도 “금년엔 힘들고 내년에는 몇명이 갈거에요” 하며 나에게 알린 직후였다.

저녁에 다네크 부부, 아들 마틴과 미카엘, 다네크 형의 아들 두명, 브르노에서 온 청년 3명이 모여 앉아 나를 중심으로 얘기 꽃을 피웠다. 주로 한국과 바둑에 대한 토픽이다. 다들 한국의 경이적인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네크가 자기 형이 지방에 사는데 아들 둘이 공부를 잘해 체코에서 제일 좋은 까를(Charles)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형이 프라하 동생 집에서 살면서 공부하게 해달라고 해서 현재 2년째 살고 있다고 한다. 한 명은 대학원생이다. 렌카가 조카들도 아들처럼 대한다.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라 영어를 꽤 잘한다. 누가 틀리면 서로 놀리고 깔깔대며 웃음이 만발한다.

나와 유사범에게 침실을 하나씩 주고 나면 방이 모자라 청년들이 슬리핑 백을 깔고 3~4명씩 한방에서 잔다. 아침에 일어나 이집 큰아들 마틴이 원반(Frisbee)던지기 대회에 나간다고 하길래 내가 새벽에 근처 공원에 나가 같이 원반을 던졌다. 나도 과거에 좀 던졌는데 마틴은 확실히 고수다. 아침식사 후 다네크와 숲길 산책을 40분쯤 했다. 오후에 나는 대사관에 들어가고 일부는 공항으로 유사범 마중을 나갔다.

유사범이 도착하여 먼저 다네크네 집에 가서 짐을 놔두었다. 유사범이 한국기원 선물을 좀 가져왔는데 물건 질이나 상태가 별로다. 그나마 남은 게 없어서 본인이 어렵게 준비해 왔다고 한다. 나도 오기전 한국기원에 들어가 양재호총장에게 가져갈만한 선물을 요구했더니 유창혁 부채 3개가 전부였다. 우리는 나와서 시내로 갔다. 시내를 돌면서 유사범이 프라하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한다. 차 안에서 유사범이 자기 핸드폰으로 드보르작의 신세계를 찾아서 들려준다. “프로기사에게도 이런 구석이 있다니 감명이라”고 했더니 유사범이 웃는다. 오늘 저녁 6시 체코 바둑협회 주최로 전야제 겸 나와 유사범을 위한 환영만찬이 열린다.

▲임페리얼 카페. 이 중 500년 된 방에서 만찬이 열렸다.

장소는 시내 복판에 위치한 임페리얼(Imperial) 카페다. 이름이 카페지 실제로는 고급식당이다. 예약한 500년 된 방은 오래된 방에서만 나오는 관록과 분위기가 묵직하게 배어있다. 상석에 한국인 3명과 후원사 대표들, 건너편에 체코 바둑협회 간부들과 회원 중 기부금을 낸 사람들이다. 식사 중 건너편 사람이 멀어서 대화를 하려면 말소리를 크게 내야만 했다. 음식이나 서비스가 체코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오대사가 작년엔 자기가 만찬을 냈더니 금년에는 보답으로 체코바둑협회가 내겠다고 미리 통고해 왔다고 한다.



▲대회 전 날 환영만찬

저녁식사 후 나와 유사범은 시내에 남았다. 처음 프라하에 온 유사범에게 내가 야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나는 유사범과 관광객이 많이 가는 까를 교(橋)까지 걸어가서 야경을 보았다. 관광지라 한국말도 가끔 들린다. 식사 중 오대사가 “한국 관광객이 1년에 10만명 이상 프라하를 방문합니다” 한다. 전에 ‘프라하의 연인’이란 TV드라마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내가 83년 헝가리에 갔을 때 전 헝가리에 한국인은 나 한명이었다. 그런데 과거 공산국가 도시였던 프라하에 1년에 10만명 이상이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우리 둘이서 옛 광장에서 차도 한잔하고 놀다가 택시로 숙소 다네크 회장집에 갔다. 다음날 알아 보니까 우리가 택시비를 배쯤 바가지를 썼다.

▲이 광장을 통해 나와 유사범이 까를교로 걸어갔다.

▲까를교에서 보는 프라하 성(까를 성)

▲까를교와 프라하 성

▲프라하의 밤

3. 한국대사배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시내 대회장으로 나갔다. 오늘 2011 한국대사배가 열리는 날이다. 체코에 여러번 출입을 했더니 대회장에 아는 얼굴이 많이 보인다. 서울 역삼동 내 교실에 자주 오던 여대생 클라라(Klara Zaloudkova 3 dan)가 와서 반갑게 인사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1년간 바둑공부를 한 친한파다. 개회식 무대에 후원사까지 여러 사람이 올라왔다. 대사배 장본인인 오대사와 창설자인 내가 좀 길게 얘기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간단히 두어 마디씩만 한다. 사회는 알레스가 보았다. 내가 노래 공부한 걸 아는 알레스가 청해 나는 축가까지 불렀다.


▲2011 한국대사배 개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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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갑렬대사의 개회사

4.체코 일간지와 인터뷰
개회식이 끝나고 체코의 2대 일간지 중 하나인 프라보(Pravo)에서 우르반(Urban)이란 기자와 인터뷰 약속이 있다. 나는 기자라고 하여 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60대로 보이는 사람이 왔다. 젊어서 문화부 기자로 들어가 아직도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오랜 기간 한 우물만 파니까 연륜에서 뭍어나오는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읽을 가치가 있는 좋은 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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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반 기자와 인터뷰

다음은 일간지 프라보에 난 바둑기사의 영역판과 원본이다

Go? The strategic game for children and managers!
Pravo daily June 23, 2011
Author: Pavel Urban (Translated by F. Blazek)

It is admirable what all the oldest and, at the same time, the most sophisticated board game in the world – called GO - is teaching us. One can write about Go like about the sports, but also like about the culture, social entertainment without any language barriers. The former world chess champion Emanuel Lasker called Go as a magnificent game with many unique features. „If the chess is considers as a king’s game, then, the Go is the emperor’s game“, he said.

Although the story of Go is revolving around East-Asian countries, it has many fans around the whole world. Even in the Czech Republic. Early of last May, the 40th Prague Go Tournament took place, and for the fourth time for the Cup of Korean Ambassador.

The Czech Go champion will go to Korea

In the conclusion of the tournament, Korean ambassador Gabriel Oh handed over a Cup to Ondrej Silt (24) from town of Zlin who had won it already for the third time. Thus, he got again the nomination to participate in the annual autumn tournament for the Cup of Korean Prime Minister. It is very prestigious tournament comparable with the world championship.

Ondrej Slit, holder of 6 Dan, was placed 5th at the World Go Championship in China last year. Thus, he has become the best European Go player: he was only behind players from: South Korea, China, North Korea (he was allowed to travel to China) and a player from Chinese Hong Kong.

“These are amateur championships. But the Absolute number one Go player in professional championships is also South Korean during last two decades. Currently it is LEE Se-dol (27),” told Pravo in Prague. Professor Hahn Sang-Dae, advisor to the KABA(Korean Amateur Baduk Association). He helped to establish the Korean Ambassador Cap Tournament which is regularly held in tend European countries. Mr. Hahn has visited Prague already for the sixth time.

Professor Hahn, why this game is so fascinating that over 60 million people in the world are devoting to it?

First of all, it is a game which everyone can play. Even the children in the kindergartens can learn it playing. There are specialised schools in the East Asia where the children, starting from the age of 6, have Baduk as the main subject (up to 8-10 hours a day). The main aim is to become a professional Baduk player by the age of 15. The baduk professionals are highly placed in the social scale (incomparably higher than, for example, chess players in the Western Europe. Ondrej Silt, as a former young junior European champion, had a unique opportunity to attend the Japanese Go school as ‘insei’ at his age of 12-16 years).

It is not only the logical thinking which is the most decisive in this game. Equally important is the intuition and perception of harmony. After all, this game originated 4-5 thousand years ago in China which is rating the harmony among the highest values. The Baduk game arrived to Japan through Korea only in the 7th century.

▲한국대사배 2011 개회식

Go is called “weiqi” in Chinese (which translates as "board game of surrounding"), "baduk" in Korean, “go” in Japanese. So, there are 3 names for this game. However, due to the fact that this game came to the Europe and America only after the WWI through Japanese businessmen, it has become known under the name “go”. Sometimes it is confused with English word “go” (approx. to walk, pronounced like “gou”). In Czech, we pronounce it “go”.

The game is played by two players who alternately place black and white stones on the vacant intersections (called "points") of a grid of 19×19 lines (alternatively 9x9 and 13x13 boards). Black moves first.

▲2011 한국대사배. 101명 참가 The computer has not yet won

The object of the game is to use one's stones to surround a larger portion of the board than the opponent. Once placed on the board, stones cannot be moved, except in the case that they are captured. When a game concludes, the controlled points (territory) are counted along with captured stones to determine who has more territory. Games may also be won by resignation – one may resign if one has fallen too far behind in total points.

Go rules are simple but there are so many possible combinations that this Go remains the only game in which a man is stronger than a computer. It does not mean that it is very complicated. It is rather extending the possibilities of creative ways of thinking.

We can play Go at home with family members or friends only for a fun. But the professionals play for hundred thousands of dollars. Who wants only to practise, the 9x9 and 13x13 boards are sufficient. It is easier to keep attention on smaller boards and the game lasts for a shorter time.

Wins that one who keeps his head cooler in the game, but at the time who proves his determination.

“This is very close to the Asian way of thinking which reflect, for instance, in the economy. One of the leading Japanese managers, former executive director of Japan Air Lines, Mr. Yasuyuki Miura even wrote a book about how the principles and the strategy of the Go game could be successfully applied in the international trade, solving of economic problems and expansion to the overseas markets,“ said Ales Cieply, international referee and the spokesman of the Czech Go Association which is associated member of the Czech Sports Association and GO International Federation.

Go started to be played in the Czech Republic in the 1960s Starting from the 1970s, a championship of the Czech Republic is held annually. The CR has already hosted three times the Go European Congress. Last November, city of Brno hosted the 16th European Go Championship of Juniors.

Similarly like in judo and karate, there are Go ranks: weak players are measured using ‘kyu’ 20 – 1 (No. 1 is the highest) and masters ‘dan’ grades 1-7. First dan is above 1st kyu, 7th dan means the professional performance (yet 6th dan means the same like grandmaster in chess).

Asia is thinking in a global way

“Go is beautiful strategic game in which every player can prove his character and must show whether he prefers lower gaining but sure ones, or he pursues audaciously the generous plans although he runs big risks. It means, whether the player is only defending what he gained, or, whether he is able to sacrifice his possessions and strive for the compensations elsewhere. Whether he is rather defender or attacker and what extent of risk he is able to accept. People say that after one game of Go, you will learn much more about your competitor than if you would spend with him one week on holidays,“ said Vladimír Daněk, President of the Go Association.

Mr. Danek is recommending the Czech businessmen to study Go game, because through it they can learn what their Asian counterparts are thinking about them, when they have a meeting with them.

“The Czech players, if they have not been playing Go for tends of years, are still inclining to count everything and to play Go rather like chess. And this is bad. It is necessary to keep on top of things and to take into consideration the general strategy then the local struggles. The people in Asia have a global strategy in their blood. We can see it, for instance, at present in the activities of China in the world. The Czech Republic is operating only in four-year elections terms, but in Asia, they are drawing plans for 25 years ahead and so on. The strategy is always long-term one,“ Danek said.

▲한국대사배 2011년 5월 7-8일 프라하

So, it is a good recommendation also for the Czech politicians. I wonder if they could start studying Go game and try to catch up with the successful East-Asian managers. Every one, be it junior or senior, businessman or a politician, who wants to get more information on Go game, can find them on the contact address: goweb.cz.



7. 오갑렬대사

인터뷰가 끝나고 나와 유사범은 오대사를 따라 시내로 나갔다. 체코 운전기사가 주말이라 쉬어서 오대사가 직접 운전한다. 사실은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신혼부부가 있었다. 관광회사를 거치지 않고 자기네끼리 프라하에 와서 부딛혀 보려고 한다고 하길래 내가 토요일 12시에 구시가광장 시계탑 아래로 오면 그 근처를 안내해 주기로 했다. 오대사가 그 얘길 듣더니 자기가 그 신혼부부까지 식사를 쏘겠다고 한다.

그런데 주차를 못시켜 그 근처를 두어 바퀴 도느라고 한 십분 늦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시계탑 앞으로 가서 10분 이상 기다렸으나 신혼부부는 끝내 안 보였다. 왔다면 신랑이 키가 커서 찾기가 쉬웠는데. 아마 정각에 와서 나를 기다리다가 안 나타나니까 그냥 어디로 간 것 갔다. 오대사가 아주 좋은 식사를 냈는데 신혼부부가 그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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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광장

오갑렬대사는 바둑인이다. 그래서 바둑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대사배 바둑대회에 관련된 모든 이메일은 본인이 직접 쓴다. 나와도 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오대사는 모르지만 내가 오대사와 연관된 일이 한번 있었다. 재외동포신문에서 해마다 ‘자랑스러운 외교관(영사상)’을 뽑는다. 심사는 극비로 진행되는데 나는 4명의 심사위원 중 하나다. 150 명의 많은 후보 중에서 당시 오갑열 상해총영사의 행적이 내 눈길을 끌었다. 다른 위원들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우리는 3대 1로오갑열 총영사를 최고 외교관으로 선택했다.

집에와서 그 애길 하니까 집 사람이 “저도 그분을 잘 알아요. 외교통상부 재외동포 담당대사라 정기적으로 만나요” 한다. 집사람은 외통부장관 재외동포담당 자문위원이다. 그가 체코대사로 발령을 받았다. 하루는 집 사람이 그와 회의에서 만난다고 하길래 오대사에게 체코에서 대사배 개최건을 얘기하고 나와 만남을 주선하라고 했다. 저녁에 돌아온 집사람이 “안 만나셔도 그분이 잘 하실 거 같아요. 본인이 더 적극적이고 신나 하시던데요” 한다.

그 후 나는 인천시장과 식사 자리에서 그와 동석을 했으나 분위기상 대사배 얘기는 못 꺼냈다. 그리고 오대사는 체코로 떠났다. 나는 체코 바둑협회에 연락하여 “신임 오대사가 바둑인이니까 대사관에 찾아가 보라”고 연락했다. 이번에 와 보니까 그는 영어도 잘하고 거품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겸손하고 인품이 좋다. ‘지위지향적’이던 과거 대사들에 비해 ‘업무지향적’인 오대사를 보니까 “우리나라도 발전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대사가 모두 오대사만 같으면 한국바둑 세계화가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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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범, 오대사, 필자. 프라하 시내를 걷다가 한 커트(붉은 셔츠는 바둑대회 용)

구 시가지 까를대학교 앞에서 내가 이 대학은 세계 최초 독일어 대학이라고 하면서 특히 15세기초 신과대학장이었던 후스(Jan Huss 1369-1415)교수에 대한 얘길 했다. 그런데 오대사가 저쪽으로 가길래 따라 갔더니 광장 한 복판에 있는 동상을 가리키며 웃는다. 가서 보니까 후스교수 동상이다. 나는 이 동상을 전에부터 봐왔지만 누구 동상인지 이름 확인을 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보헤미언 후스교수의 동상인줄 알았으면 내 학생들을 그 앞에 데리고 가서 설명을 했을텐데. 오대사가 후스에 대해 이미 잘알고 있는데 내가 잘난척하고 떠든 것 같다.

후스는 종교개혁을 하려다가 실패한다. 루터보다 100년전이다. 그는 면죄부판매 등 카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한다.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진다. 후스는 처형직전 주장을 철회하면 용서하겠다고 하자 “나는 영원한 수치대신 죽음을 택하겠다”며 거절한다. 나무에 불이 붙자 “주님, 저를 형벌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죽어갔다. 그의 나이 46세 때다. 진리 앞에선 타협을 모르는 후스가 존경스럽다.

▲구시가 광장에 있는 후스동상 / 천문시계

구시가광장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이 곳은 모차르트의 돈죠바니가 초연된 장소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교회 정문 위에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다. 시계가 매 시간 벨소리와 함께 맞추어 인형들이 차례로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광장 한 복판엔 후스교수 동상이 있다. 광장 내부는 마치 건축물 전시장 같다. 고틱,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끝자락은 볼타바강을 건너는 ‘까를 대교’와 연결되어 있다. 대교로 가는 길 좁은 골목안에는 수정제품 등 기념품 가게들로 꽉 차있다.

▲구시가 광장

8. 체코 바둑역사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바둑은 두어지기 시작한다. 프라하 체스클럽 한구석에서 모였다. 바둑모임은 라이만(L. Raimann)이 주도를 하고 그는 유럽바둑대회까지 체코로 유치한다. 프라하 근처 작은 마을에서 1965년 유럽대회가 개최되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 바둑대회를 시작하고 73년부터는 유럽 다른나라에서도 참가를 시작한다. 당시 체코의 최강자는 코칸들(M. Kočandrle) 2급이었다. 1977년 프로코프(D. Prokop)가 체코바둑협회를 창설한다. 체코 강자 중 한명이면서 현 체코바둑협회장인 다네크도 이무렵 바둑을 시작한다.

▲어린이 지도다면기 / 수 읽는 자세가 만만치 않다

70년대 초에 수십명 밖에 안 되던 회원이 지금은 3천명을 헤아리고 많은 클럽이 전국에 있다. 이제는 환경이 누구나 바둑을 둘 수있게 되었다. 매년 15개의 바둑대회가 열리고 프라하와 브르노 대회는 100명 이상이 참가하는게 보통이다. 2년전부터 한국대사배 바둑대회가 창설되어 100여명이 참가하는 국제대회가 되었다. 여기에서 최고성적을 거둔 체코 선수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무총리배 세계대회에 체코대표로 참가한다. 이번에 중국 프로기사 한명이 상금 6백 유로를 노리고 참가했다. 요즘 유럽 여러 대회에서 상금을 휩쓸고 있는 친구다.

2편에 계속….

한상대(전 시드니대학교수 sdh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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