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타]
칭전에 다녀와서 (2)
칭전에서 열린 제3회 국제 도시대항전
이광구 아마6단2011-09-03 12:15:00
▲ 한려수도를 방불케 하는 빠이허후의 산과 물.
숙소는 훌륭했다. 3인 1실이라기에 넓은 땅에서 사람을 좁게 재우는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객실 자체가 널찍한데다가 천정이 높고, 복층 구조다. 2층은 1층의 절반이 좀 안 되는 넓이지만 아늑해 독실 기분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 창밖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나무와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있었다. 호수 건너 저쪽 기슭에 나룻배 한 척이 보였다. 나룻배는 저 혼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아침이 기대되었다.
이튿날부터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 쿠폰을 들고 식당에 내려간 선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것이었다. 그랬다. 눈여겨보지는 않았지만, 어제 저녁 만찬 때는 어린 아이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오늘 새벽에 도착한 건가.
▲ 대회장 전경.
대회장에는 바둑판 49개가 놓여 있었다. 10판 씩 5줄인데, 마지막 줄 맨 끝에 한 자리가 비어 있다. 33개 팀, 98명이 참가한 거다. 3명 한 팀이니 어느 팀에서 선수 한 명이 못 온 모양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대회장을 둘러보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어린 아이들이 절반이 넘는구만."
"절반이 뭐야. 스무 살 이하가 70~80%는 되는 것 같은데."
"이거 일반인 대회가 아닌데."
"초청 공문에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일반인 대회인지, 주니어 대회인지, 어린이 대회인지, 그걸 분명히 해 주었어야지. 얘네들은 그런 구분이 잘 없는 모양이지."
"아니야.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국제 대회도 대개 이런 식이야. 이럴 거라고 짐작은 했어. 그래도 이건 좀 심하네…^^"
"우리도 우리가 올 게 아니라 현찬이 쪽 (고양시 바둑 선수단 주니어부의 김현찬 정찬호 조인선)이 올 걸 그랬네."
"붙어보지, 뭐. 얘들이라고 다 쎄겠어?'
"아냐~. 쎄. 흐미~ 얘들하고 하루 세 판씩을…"
"게다가 제한시간이 각자 1시간 반이야. 3시간은 간다고 봐야지."
"벌써 골치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하하."
"해보자구. 모처럼 전지훈련 한번 빡세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나저나 외국 팀은 우리 말고 어디 어디가 왔대?"
"참가자 명단에는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미국 프랑스 팀이 보이네."
"일본은?"
"일본은 온다고 했다는데 안 보이네. 베트남도 온다고 했다가 못 왔대."
"국제가 아니라 범 중국권 대회네, 뭐…^^ 대만이나 홍콩이나, 마카오도 그렇고, 싱가포르도 그렇고."
"미국도 화교가 왔을 걸."
▲ 프랑스 파리에서 온 소년. 유일한 서양 친구였던 것 같다.
"저기 저 친구는 프랑스 사람 같구만. 나이는 어려 보이네."
"프랑스도 셋 중에 저 청년인지, 소년인지만 오리지날인데. 둘은 화교구."
"그건 어쩔 수 없지. 시민권이 말해 주는 거니까. 요즘은 인종을 따지면 야만인 소리를 들어요. 글로벌이잖아, 글로벌."
"거 참, 되게 똑똑하네…^^"
우리와 같은 원탁에서 식사하면서, 우리 얘기를 들으며 간간이 미소를 짓거나 까르르 웃는 사람이 있었다. 꾸이양공항에서부터 우리 안내를 맡은 사람이었다. 스물다섯 살, 꾸이주대학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우단(鄔丹)'이란 이름의, 이름만큼 예쁘고 밝고 티 없는 여학생이었다.
언어학을 하면서 한국어를 2년쯤 공부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드문 케이스다. 교사나 교수가 되는 게 꿈이고, 한국에도 한 번 와 서울 부산 경주 제주도 등지를 구경했으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말을 아직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해 의사소통은 30~40%밖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대회 기간 동안 불편은 없었다. 무엇보다 무지하게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잘 안 통하면 갖고 다니는 전자사전을 찾거나, 당장 뛰어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인터넷을 뒤져 알아왔다. 잘 모르는 한국어가 나오면 수첩에 뜻과 발음을 꼼꼼히 적었다.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판은 일찌감치 3패. 우리 선수들의 바둑은 빨리들 끝났다. 1시간 반이란 것도 우리에겐 아직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우리는 요즘 아마대회는 거의 다 그렇고, 프로대회도 속기가 많아져 길어야 30분에 30초 초읽기 3회고, 그것도 길다고 해서 20분 혹은 10분에 20초 초읽기 3회가 보통이다. 인터넷 대국은 시간은 아예 없이 처음부터 10초로 두는 것도 흔하다. 그런 번개 바둑에 익숙해 있다가 별안간 1시간 30분으로 두려니 시간 안배, 페이스 조절이 여의치 않았던 거다. 점심 식탁은 풀이 좀 꺾인 분위기. 각오는 했지만 허탈한 모양들이었다.
"시간 조절이 잘 안 되네. 다음 판부터는 장고하면서 두어야겠네."
"아니 그런데 중국 얘들은 왜 사람을 빤히 쳐다보지? 한 수 두고 쳐다보고, 한 수 두고 쳐다보고. 그거 아주 신경 쓰이던데. 기분도 별로 안 좋고."
"예의들이 없는 건가, 기 싸움을 한번 해 보자는 건가."
"몰라. 중국에서는 그게 예의가 없는 게 아닌 건지도 모르지."
▲ 호텔 주변에서 한 컷.
호텔 주변은 절경이었다. 날씨도 쾌청했다. 여기는 해발 1000미터. 햇살은 따가웠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했다. 우리 초가을 날씨였다. 누군가 LA 날씨하고도 똑같다고 말했다. 중국 내륙이고, 위도도 우리보다 훨씬 낮아 무덥고 끈적끈적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오늘 아침 비록 바둑은 졌더라도 지난 두어 달, 서울에서, 한국에서는 매일 비 오는 것만 보다가 여기 와서 정말 오래간만에 화창한 하늘을 보는구나, 그게 큰 위안이 되었다.
낮에 보니 나무와 숲과 호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는 옥수수가 있었다. 산비탈이건 호숫가건 강변이건 경작할 수 있는 곳에는, 틈만 나면 거기에 옥수수 떼가 무리지어 있었다.
▲ 나룻배와 소.
간밤에 보았던 나룻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배에는 두 사람. 서서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은 뱃사공, 앉아 있는 사람은 손님, 저 나룻배 한 척이 호수의 이쪽저쪽을 왕래하는 교통수단일 터였다. 소 한 마리가 강가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가끔씩 나룻배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제법 멀리 오긴 멀리 왔구나.
선수들은 점심 후 잠을 잤다. 경각심이 들었다. 계속 지기만 할 수는 없었다. 구경은, 시간도 없었지만, 다음이었다. 피곤을 풀어야 한다. 말은 없었지만, 모두 이심전심이었다.
둘째 판도 3패. 속기파 곽웅구 선수가 점심 먹으며 장고를 해야겠다고 했으나 뜻대로 안 되었는지, 대국자 중 앞에서 몇 번째 일찍 돌을 거두고 일어섰다. 코치(?)로 동행한 신길수 국장이 곽웅구 선수에게 다가갔다.
"또 제일 먼저 끝났어? 좀 천천히 끝나란 말이야."
사람 좋은 곽 선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알았어. 천천히 둘게."
▲모두들 점심 먹으러 나갔는데, 우리 선수들은 배고픔도 잊고 복기에 열중하고 있다. 지금 밥이 문제냐.
셋째 판에서 김동섭 선수가 1승을 알렸다. 드디어 물꼬를 텄다. 저녁 후 선수들은 다시 일찍 자리에 들었다. 내일부터 반격이다.
신길수 국장은 입맛을 다셨다. 신 국장이 동행할 때는 바둑 외에도 목적이 있었다. 황과수폭포와 용궁이었다. 황과수폭포는 세계 4대 폭포의 하나라고 했다. 거기는 꼭 가봐야 한다고 했다. 교통편과 경비 따위를 열심히 체크하고 있었다. 낮에는 호텔 주변을 살펴본 것 같았다.
"저쪽에 구멍가게 비슷한 게 하나 있기는 하더라구요. 음식도 파는 것 같아요. 오늘 밤에는 거길 한번 가봐야겠어요. 물이 맛이 없어서,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어요."
셋째 날, 대회 이틀째부터 승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자고 먹고 두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제는 불평이 없었다. 왔으면 이겨야지. 신 국장은 오전에 호수에 나가 나룻배를 타고 건너갔다 왔다. 나룻배 주인 사공이 자기 집으로 안내해 먹을 것도 내 놓고, 식구들도 소개시켜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흠뻑 젖었어요?"
유 단장이 껄껄 웃었다.
"밭두렁 걷다가 미끄러져서 물에 빠졌대. 카메라 지키느라 더 빠졌대."
신 국장이 무릎을 조금 다쳤다. 혼자만 재미있게 다니다가 벌 받은겨.
"경치도 좋고, 사람들이 너무 순박하고 인심이 너무 좋아요. 어릴 때 시골 생각이 나요. 마음이 정말 푸근해지고…. 오길 잘 했네요."
밤 깊어 선수를 뺀 세 사람은 호텔을 벗어났다. 길은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가로등 하나가 없어 사위는 칠흑이었다.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어 그걸 등불 삼아 걷다보니 문득 불빛이 나타났다. '농가락(農家樂)'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이미 얼굴이 얼큰해져 있는, 마흔 이쪽저쪽으로 보이는 주인장이 마당에 탁자를 놓고 전등을 밝혀 주었다. 맥주는 좋은 게 중국 돈 5원, 덜 좋은 게 3원. 중국 1원이 우리 170원으로 보고, 한 병에 900원, 500원 꼴이다. 안주는 호수에서 잡은 피라미 같은 생물고기와 새우, 볶은 땅콩과 채소. 기막힌 맛이다. 바삭바삭하고 전혀 느끼하지 않은 것이, 튀기는 기술은 역시다. 튀긴 음식을 아주 안 좋아하는 유 단장이 "아주 맛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주인장이 꾸이주의 명주라면서 '금회사회주(金回沙回酒)'라는 술을 한 병을 권한다. 52원, 9000원쯤이다.
주인장이 계속 뭔가를 설명하고, 수시로 담배를 건네준다. 우리가 알아듣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여남은 살 되어 보이는, 주인장의 딸일 것인 소녀가 우리 식탁 옆에 줄곧 꼼짝 않고 서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우리가 말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굳은 얼굴, 부동자세로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는 안주 네 접시에 마실 만큼 마시고, 선수들을 위해 술 몇 병, 맥주 몇 병을 샀는데, 중국 돈 300원, 우리 5만원이다. 유머 많은 신 국장이 싱글싱글, "이건 아닌데…"하면서 앞장서 지갑을 연다.
그래, 돈 없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여기가 살기가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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