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원정대]
아마바둑의 역사가 정맥회에 흐른다
동호회 원정대가 정맥회를 찾았다.
김지명 아마6단2011-09-08 13:00:00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내기바둑이 성행하던 시절, 1982년엔 영등포 연흥극장 뒤 서울기원과 동남기원이 있었다. 당시에 바둑이 가장 강한 동네가 영등포 ,미아리, 왕십리 정도였다. 그 중 특히 영등포가 강했다. 고수도 많았지만, 인원도 가장 많았다.
영등포에 있던 고수들을 떠올리자면, 얼핏 생각나는 이름만 나열해도 지금의 강자들이 많다. 김진환 ,박성균, 임종렬, 박영찬 ,안재성 ,서부길 ,김동엽 등 무척 많았는데, 지방에서 바둑 한 번 둬보려 올라오면 꼭 거치는곳이 영등포였다. 교통편이 영등포역에서 내리면 바로 걸어서 10분이라 편리함 때문에 고수들의 거점이 되었으리라.
영등포의 정맥회. 그렇다 오늘은 영등포다.
정맥회.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80년대에 강동쪽에 생긴 석맥회(지금은 활동이 뜸하다), 91년에 영등포쪽에 생긴 정맥회, 이름이 비슷해서 혼돈하는 사람도 있다.
석맥회는 양상국 8단과 임동균 이홍렬 사범이 주축이 된 친목 위주의 선비스타일 기우회라면 정맥회는 흔히 말하는 수호지의 양산박 느낌이 묻어나는 친목보다는 실전 위주의 모임이었다. 지금은 곳곳에 활성화된 리그들이 있지만 당시에 리그전이라면 정맥회가 거의 독보였다. 자비로 참가비를 내고 아마고수들에게 배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물론 프로 지망생들도 많았다. 필자도 그곳에 종종 찾아가곤 했다.
▲ 포항영일만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아마7단에 오른 양덕주.
정맥회는 2010년 현재 회장인 박주홍이 취임하면서 색채가 많이 달라졌다. 40여명의 회원들은 영등포 쟈스미기원에서 한 달에 두 번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두 달 단위로 열리는 A조, B조 풀리그 성적에 따라 상금과 강등이 결정된다. 지도사범은 김좌기 프로. 정맥회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다. 회원이 다른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게 되면 그 상금 만큼 한번 더 회장님이 상금을 지급한다. 골프대회 선수 스폰서가 하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정맥회 회원들은 좋겠다.
그 효과일까. 얼마 전 회원인 양덕주 선수가 포항영일만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상금 획득과 아마7단까지 오르는 겹경사를 누렸다.
▲ 정맥회 안철규 고문.
대국자 소개부터 하자. 정맥회의 안철규(변호사) 고문이다. 박주홍 회장과는 둘도 없는 라이벌로 어쩌면 그렇게 둘이 실력이 비슷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호적수다.
▲ 배윤진(왼쪽) vs 안철규 고문.
언제나 처럼 바둑내용은 흑이좋고 승리는 백이 가져가고의 패턴이라 내용생략. 국후 대국자 안철규 고문에게 소감을 묻자, "솔직히 4점 칫수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도 지다니 역시 프로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 4점 칫수는 충분히 극복할 날이 오지 않을까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맥회 실무진들과 간단히 소주 한 잔을 하고 헤어지려는데, 회장님이 전체회원 회식에 배윤진 사범과 함께 초대를 한다.
2주일 후, 회식 취재를 위해 쟈스미기원을 가는데 초대 받은 배윤진사범 대신 송태곤사범이 대타로 합류했다. 안철규 고문이 패한 후, 안철규 고문의 라이벌 박주홍 회장이 대신 설욕전을 하겠다고 같은 칫수로 "한번 더"를 외쳤다고 한다. 2주 후 취재와 설욕전이 약속됐는데, 배윤진 사범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자 배윤진 사범의 절친 송태곤 사범이 자원했다.
▲ 송태곤의 양면기.
송태곤 사범이 오자 박회장의 라이벌 설욕전 의미가 퇴색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양면기.
필생 라이벌 안철규와 박주홍, 그리고 송태곤의 양면기. 뚝딱 뚝딱 45분만에 두 판이 끝난다. 결과는 두 사람 모두 한집 패. 진정한 라이벌이다. 송태곤 사범에게 양쪽 한 집이 의도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절대 아니다. 두 분 실력이 비슷하고 한집은 정말 우연이다."라고 한다. 너무 강한 부정이라 더욱 의심이 간다.
▲ 회식은 빠지지 않는다.
▲ 김수영은 이번 응씨배 대학생바둑대회 우승자로 박주홍 회장에게 특별포상금을 받았다
이어지는 회식자리에서 이야기꽃으로 밤이 깊어간다. 2,30년 전에 알던 영등포 형님들의 얼굴들이 이제는 새롭게 느껴진다. 내 얼굴이 변한 건 모르면서 형들 얼굴에 핀 주름이, 그리고 머리에 내린 하얀서리가 안타깝기만 하다.
▲ 정맥회의 최고참 김진환아마7단.
그렇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앞으로 20년 후에도 이렇게 모여 주름이 더 깊어진 얼굴을 보며 수담을 나눌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랜만에 형들을 만난 즐거움, 흐른 세월의 안타까움, 정맥회 회원들의 화목함을 부러워하는 감정까지 여러 감정들이 교차되어 기분이 묘했다.
바둑은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미흡하다. 바둑은 게임이 아니다. 끈끈한 정이 묻어 나오는 아주 훌륭한 소통과 교류의 도구다. 나는 바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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