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스페셜]
당신의 天國
- 강릉 고광록 변호사의 바둑 서재
김종서 작가 2011-09-11 15:46:57
▲ 고광록 변호사.
S#1. 강릉의 바둑 마니아
오래 전 무척 쓸쓸해 보이는 방랑기객 한 사람이 그랬습니다.
"저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바둑서적들을 서재에 모아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책들은 강릉의 바둑 친구에게 보냅니다. 그 친구라면 틀림없이 오래 간직해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타이젬에 '바둑서재'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는 野人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강릉에 바둑문화를 아끼는 분이 있습니다. 좋은 책을 구하면 그 분께 보냅니다. 그러면 안심이 됩니다."
필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무수한 바둑 친구들의 입에서 강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강릉까지 몇 번을 들렀어도 그 주인공을 취재하기 어려웠습니다.
주인공이 바둑매체와의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기 때문입니다.
▲ 소금강 계곡에서 필자와 고광록.
강릉의 바둑 광 고광록 변호사를 만난 것은 올 여름 소금강 4대 동호회 대항전에서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지만 악수를 나눈 건 처음이었습니다.
▲ 동호회 대항전 시상식
부드러운 표정이 말해주듯 고 변호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입니다.
드러내길 쑥스러워 하나 하고 싶은 일은 물불가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워낙 바둑을 좋아해 바둑 친구들과 어울리고 바둑행사를 후원하다 보니 그 인품과 열정에 매료된 지역 인들이 기어이 강원도 바둑협회장으로 추대해버렸습니다.
고사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바둑행사의 전면에 나서기가 영 껄끄럽다고 고백합니다.
▲ 서재 전경
"좋은 바둑 책을 많이 모으셨다면서요? 참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재를 좀 보여주실 수 있는지요?" "아직까지 공개한 적 없는 공간인데 작가님께는 보여드리겠습니다."
원래 남자들의 서재는 황실의 후궁과도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부인들에게 함부로 보여주길 꺼려합니다.
그가 서재를 공개한 이유는 타이젬 회원님들과 바둑문화에 관한 생각을 진지하게 나누고 싶어서라고 생각해봅니다.
▲ 위기명인 기성전
▲ 정석사전들
▲ 오청원 기타니를 비롯한 일본대표기사선집
▲ 바둑사전과 기보들)
서재의 칸마다 바둑서적들이 주제 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바둑 인들에게는 친숙한 책들입니다. 그러나 수집하려면 가격도 만만치 않고 구하기도 어려운 책들입니다.
고 변호사는 이런 책들을 경매 사이트나 바둑 친구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입했다고 합니다.
▲ 서고를 여는 고 변호사
구석 쪽의 책장을 여니 오래된 책들이 가득합니다.
▲ 신정기보
▲ 뒷면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보 집으로 알려진 신정기보입니다.
1933년 겨울에 채극문 국수가 창간한 월간잡지입니다.
형식은 강의록이지만 바둑잡지의 효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 오래된 책들

▲ 힐기사전
아주 희귀한 힐기사전입니다.
과거 폐쇄적이었던 일본 바둑계의 문파들이 비밀리에 자기들끼리 연구했던 비법사전이라고 합니다.
▲ 망우청락집
즐겁게 하여 근심을 덜쳐버린다는 망우청락집입니다.
서기 1100년 경 중국 북송의 휘종 때 편찬된 기보집입니다.
손책과 여범의 대국 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바둑소설들
바둑소설들도 빠짐없이 모았습니다.
고 변호사는 어려부터 무협소설을 즐겨 읽었습니다.
지금도 김용의 무협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무협소설이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초창기의 스케일이나 서사적인 묘사를 극복하지 못한다네요.
▲ 조남철 기보집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이 바로 조남철 국수의 기보집입니다.
고급한지로 인쇄한 조남철 기보집은 한정판으로 만들어져 희귀합니다.
▲ 월간바둑
월간바둑 영인본입니다.
박성균 사범이 모아왔던 것들입니다.
▲ 세고에 부채
일본 대표기사들의 부채도 눈에 뜨입니다.
후지사와의 부채는 안영이 선생께서 보낸 선물입니다.
고 변호사가 명절인사 차 과자를 선물로 보냈는데 답례로 온 거라네요.
진심이 통하면 어떤 귀한 것이라도 내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제4회 잉창치배 대회 때 4강전이 강릉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사용됐던 바둑판이 경매에 나왔지요.
바쁜 일이 있어 경매에 참가하지 못하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이 보유하고 있었다네요.
고 변호사는 부랴부랴 강 회장을 찾아가서 이 바둑판을 경매 가격에 되샀다고 합니다.
바둑판의 가격이 따로 정해져 있겠습니까?
바둑판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보물도 되고 개다리 소반도 되는 것이지요.

▲ 바둑판 앞의 4사람
한가위를 맞아 바둑애호가의 서재를 소개했습니다.
요란한 이벤트보다도 내면으로 풍성한 선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의 서재는 어두울수록 영혼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책으로 가득해 유리창까지 뒤덮는 어둠을 말합니다.
고광록 변호사는 앞으로도 계속 책을 모을 것입니다.
필자도 앞으로 좋은 책이 생기면 강릉으로 보낼까합니다.
저 분이라면 언젠가 아담한 바둑문화 기념관이라도 만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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