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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사]

당돌한 체코 아마추어 대마를 잡은 유건재

유건재 8단과 함께 한 체코에서의 에피소드

한상대 교수2011-09-17 12: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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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국립박물관

오늘은 대회 둘째 날이다. 전날 체코의 8강이 온종일 '슈퍼그룹 풀리그'를 벌였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강행군이다. 회원들이 젊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하는 대국도 견디어 낸다. 결과는 작년 우승자 온드레(Ondrej Silt 24세)가 다시 챔피언에 올라서 한국에 가게 되었다. 이번이 세 번째 우승이다. 그는 일본에서 3년간 원생으로 공부한 경력이 있다. 우승한 후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안 하고 자기 여자친구와 한 5분쯤 축하포옹을 하고 서 있다.

수퍼그룹 멤버들도 오늘은 일반대회에 참가한다. 슈퍼그룹에서 제일 어린 15세의 루카쉬(Lukas Podpera)가 유건재 8단에게 지도기를 청해왔다. 3점 대국인데 그는 전혀 물러남 없이 강수 일변도로 유건재 8단을 일축해 버린다. 바둑회 총무인 그의 아버지 밀로쉬(Milos)가 3년전 내가 한국대사배 준비모임 차 왔을 때 12세 난 자기 아들을 한국에 보내 프로기사로 만드는 문제를 심각하게 상의해 온 일이 있었다. (유건재 8단 이하 유 8단)

▲ 유건재 8단에게 지도를 받는 루카쉬(왼쪽)

▲ 2008년 대사배 준비모임(다네크 회장, 안영길 8단, 알레스, 밀로쉬 총무, 필자, 강경랑, 홍슬기)

그때 나를 따라온 제자 안영길은 현재 호주, 홍슬기는 필리핀, 강경랑은 영국에서 보급을 하고 있다. 지도기를 관전하고 있는데 오대사가 와서 나는 그와 기념기를 두었다. 내가 오대사에게 "석점으로 할까요?" 했더니 그는 웃으며 무조건 5점을 놓는다.

그런데 그의 행마에 전혀 빈틈이 안 보인다. 승부처에서도 맞바둑처럼 받아친다. 바둑을 두텁게 계속 처리를 하는데 숨이 막힌다. 석점으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도중 대국을 중단하고 나가게 되어 내가 구제를 받았다.

▲ 오대사와 필자의 기념대국

오대사의 안내로 점심을 먹으러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에 갔는데 일부는 수리 중이고 나머지는 독인인들의 단체 예약으로 꽉 찼다고 한다. 잠깐 들어가 봤지만 중세건물이라 식당 내부 분위기가 엄숙하다. 오대사가 “중세 수도원 일부를 식당으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시죠” 하더니 차를 몰고 시내 외곽 수도원으로 간다.

오늘도 본인 운전이다. 오대사가 주말을 우리에게 올인하고 있다. 너무 고맙다. 브레브노프 수도원 입구건물을 식당으로 쓰고 있는데 이름이 클라스테르니 셍크(Klasterni Senk)이다. 오래된 건물이라 이 곳도 분위기가 무게가 있다.

▲ 브레브노프(Brevnov) 수도원 수도원(Monastery) 내부

▲ 식당 내부/ 식당 앞에서

우리는 유명한 체코 음식 3가지를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그 중에 돼지 무릎 요리가 나왔는데 나는 돼지무릎에서 이렇게 많은 고기가 나오는지 몰랐다. 식사 중에 오대사가 나에게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는 보고 가시죠. 며칠만이라도 더 묵으세요" 한다.

내가 아쉬워 죽겠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감질이 나서 죽겠다. '프라하의 봄'을 3주 동안 주로 두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한 군데는 루돌피눔인데 여기에 오는 길에 봤고 다른 한군데는 프라하市 음악홀인데 오대사가 보여 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식사 후 그리고 향했다.

차로 시가지를 통과하며 나는 새삼 프라하가 주는 느낌에 대해 생각해 봤다. 프라하는 다른 동구 도시들 보다 분위기가 밝다. 체코도 시골 도시에 가면 우중충해 보이는 구석이 많은데 프라하는 페인트 색깔이 대체로 환하다. 도시는 부다페스트에 비해 여성적이다.

강과 언덕을 잘 이용하여 도시 미관을 극대화 했다. 관광도시라 물가도 지방에 비해 비싸다. 그래서 지난번엔 내가 시골에 가서 쇼핑을 했다. 체코의 인종은 슬라브족에 속하는 체코인이 90% 이상이다. 그래서 덩치들이 크다. 영토는 78,866 평방 km 라 남한보다 작고 바다가 없다. 인구는 천만이 조금 넘고 1인당 소득은 2011년 현재 2만 5천 6백불이다.

▲ 루돌피눔 음악당(Rudolfinum Concert Hall)

▲ 드보르작 홀(내부)

▲ 오베크니 둠 프라하 시 음악홀(Obecni Dum Concert House)

▲ 바로 뒤가 자동차 길이라 겨우 입구만 찍었다 /내부 스메타나 홀

일명 '오베크니'라고 불리는 시(市) 음악홀은 분주한 거리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니까 조용하고 오래된 건물이 주는 분위기가 있다. 프라하는 히틀러가 전쟁 후 이 곳에 와서 살기로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2차대전 중에 폭격을 안 했다고 한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닌데 두 명이나 나에게 그 얘길 한다. 전쟁 속에서도 오래된 건물들이 살아 남은 건 프라하의 행운이다. 나는 오대사에게 우리를 프라하 성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오대사에게 주말에 자기 시간도 줄겸 유사범에게 프라하 성을 구경시켜 주려는 목적이다. 오대사가 우리를 성 앞에 내려 준 후 떠났다.

프라하 성(Praha castle)은 블타바강의 서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프라하 초기부터 존재해 왔고 프라하의 아이콘이자 체코의 상징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과 보헤미아 왕들이 이곳에서 통치를 했으며 현재는 체코 공화국 대통령 관저가 이곳에 있다. 프라하 성은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성(古城)이다. 길이는 약 570 미터, 폭은 약 130 미터에 달한다. 프라하 성은 관광코스로 개방되어 있는 장소도 있고 전시회, 연회, 공연 등의 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공간도 있다.

▲ 성 입구 이 건물 뒤로 가면 육중한 성당 건물이 앞을 가로 막는다

건물입구로 들어가 뒤로 돌아가면 갑자기 커다란 성당이 우리를 압도하며 앞을 가로 막는다. 유명한 고틱양식의 상 비투스(St. Vitus) 성당이다. 서기 925년부터 개발되어 황제나 왕들이 이 곳에서 예배보고 사망후 묻혀있는 곳이다. 체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까를 4세(Karel IV 1316–1378)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프라하를 제국의 수도로 정한다. 그는 프라하의 구시가에 1348년 대학을 설립한다.

까를대학은 중부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최초의 독일어 대학이다. 당시의 건물이 아직도 대학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대학 캠퍼스와 만난다. 까를대학, 까를다리와 함께 프라하성의 대부분도 까를 4 세때 축조된 것이다. 또한 그의 치세 때 체코어가 공용어로 사용됨으로써 체코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런데 다네크 회장이 "프라하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적이 없었다"고 우긴다. 내가 "당신이 박사라는데 전공이 뭐냐?"고 하니까 "수학"이라고 한다. 내가 "그러니까 모르지, 나하고 내길 걸겠느냐?"고 하니까 약간 망설이더니 "안 걸겠다"고 한다. 조금 전 자신있게 우기던 모습이 아니다. 자기가 확인해 보겠다고 한다.

2년 전에 독일의 홀거박사와는 독일역사를 놓고 내기를 해서 내가 좋은 식사를 얻어 먹은 적이 있었는데 다네크는 안 걸려든다.^^ 내가 대학에서 유럽역사를 강의한 사실을 그들이 모르니까 가끔 걸려든다.

성당 앞에는 관광객이 붐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유사범에게 말하고 갔다 왔는데 유 8단이 안 보인다. 성당 앞에서 10분쯤 서있는데도 안 보인다. 혹시 전망대쪽에서 구경하나 해서 그리로 뛰어갔는데 안 보인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 성내를 부지런히 돌아봤으나 안 보인다. '그래도 잃어버린 곳에서 기다리는게 옳지' 하는 생각에 다시 성당 앞에 와서 1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래도 안 나타난다.

'영어가 짧은 유 8단이 혼자 성을 내려갔을리는 없겠고 본인은 얼마나 불안하고 고생을 할까?' '돈은 있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의자가 있길래 앉았더니 옆에 앉은 노부부가 호주식 영어를 한다. 나도 호주출신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멜본에 있는 모내쉬대학 교수인데 영국 옥스포드대학에 교환교수로 왔다고 한다. 나도 70년대에 모내쉬에 있었다고 하자 반가워 한다. 서로 아는 교수를 찾아내자 얘기가 더 많아진다.

그 와중에도 내 눈은 끊임 없이 유 8단을 찾고 있었다. 내가 "친구를 잃었다"고 하니까 "꼭 이리로 올테니까 걱정 말라"고 위로한다. 사람 마음이란 이상하다. 아무 근거가 없는 그말도 내게 위안이 된다.

▲ 비투스 성당/ 실종 직전의 유건재 8단

이 때 멀리서 유 8단이 이리로 걸어오는게 보인다. 세상에 유 8단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가 날 보면 반가워서 어쩔줄 모르리라 기대했는데 유 8단은 덤덤하다. '어? 내가 괜히 혼자 속을 썩였나?'라고 생각하며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묻자 유 8단은 내가 성당 옆 골목으로 간 거로 착각하고 그 방향 관광객 행열을 따라 그냥 흘러갔다고 한다.

한참 가다가 내가 안 보이니까 돌아 왔는데 시간을 들이며 구경하면서 천천히 온 것이다. 나와 떨어진 동안 불안에 떤 구석이 전혀 안 보인다. 그 태도를 보니까 내가 울화통이 터지려고 한다. 호주부부가 "축하한다"며 떠난다.

내가 유 8단을 안 건 1973~4년경이다. 얼마 전 작고한 양동환 선생이 운영하던 바둑서적 광지출판사에서 였다. 종로 영풍문고 뒤편에 있었다. 당시 유 8단은 자그마하고 귀여운 총각이었다. 별명은 '유묘수'였고 성격이 순해 항상 웃지만 무슨 일을 만나면 경우가 밝고 상황을 정리하여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일을 만들어내는 재주도 좋아서 바둑 TV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명지대 바둑학과를 만드는데 적극 참여했다. 현재는 고양시 바둑팀을 만들어 감독으로 있다.

내가 75년에 호주로 떠날 때 그는 나에게 한국기원 5단증을 선물로 주었다. 30년 후에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그의 딸 선영이를 내가 가르쳤다. 내가 선영이에게 "네 아버지가 총각일적 내가 한국을 떠났는데 대학교 3학년인 너를 지금 가르치니까 감개가 무량하다"고 했다.

그가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되자 나는 기뻤다. 곧 그에게 찾아가서 나와 같이 한국바둑 세계화를 하자고 하자 그가 내 뜻에 100% 동의를 한다. 내가 "곧 쌍 페테르부르크에서 2003 유럽대회가 있는데 거기에 같이 가서 국제바둑의 흐름도 읽고 한국대사배도 추진합시다" 하고 설득하여 러시아에 같이 갔다. 당시 한국대사배를 추진하려는 내 꿈을 실현하려고 러시아 바둑협회,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미리 연락하여 공동회의를 약속해 놨다.

▲ 대회장 무대/ 포스터

2003년 8월초 2주에 걸친 유럽대회가 쌍 페테르부르크에서 끝나자 나는 유 8단과 같이 1천 km가 넘는 모스크바로 가서 한국대사관, 러시아 바둑협회회장단,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대사배 개최에 대한 모든 사항에 대해 합의를 봤다.

나는 그와 독일, 네덜란드에 가서도 같은 일을 했다. 명지대 임성빈교수, 바둑필자 이광구씨도 동석했다. 학생 중 최유진은 기쁨조로 데려갔다. 그런데 유 8단이 귀국한 후 일의 추진이 잘 안 된다. 그가 사무총장이 되자마자 외유를 한 것이 기사들 사이에 평판이 나쁘게 난 모양이다. 놀러 간게 아닌데.

한국으로 돌아간 유 8단이 사무총장을 일찍 그만 두는 바람에 한국대사배 개최에차질을 빚는다. 내 실망이 컸다. 한국기원 내부에서 세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하길래 나는 그때부터 마음 속으로 한국기원은 지워버렸다. 나는 독일과 네덜란드에 다시 가서 대사배를 추진했으나 러시아까지는 못 갔다. 그래서 러시아 한국대사배는 개최가 늦어지게 된다.

이 나라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대사배를 개최하고 있고 현재 10여개 국가가 한국대사배를 개최하고 있다. 대바협의 협조로 우승자는 국무총리배 세계대회 자기나라 대표로 한국에 온다. 전 세계에 적어도 3~40개국이 한국대사배를 개최하면 좋겠으나 바둑계의 지원 없이 내 개인으로 이 일을 추진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나의 시간, 노력, 주머니 사정이 그 일에만 올인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내가 지원만 받을 수 있다면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대사배를 많이 창설할 준비는 되어 있다. 아니면 한국정부가 정책적으로 이 일을 하면 제일 빠르다.

▲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프라하

▲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성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성에서 까를다리가 있는 곳까지 언덕 길을 따라 내려왔다. 내려오는 코스가 프라하라는 도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경관, 상점, 건물들이 풍부하다. 시내로 내려오자 길이 막힌다. 벙어리 장애인들의 데모가 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수화를 하니까 그 것도 색다른 풍경이다. 긴 행열이 계속되고 경찰들은 데모데를 따라 다니기만 한다. 구시가 광장 근처에서 카프카 박물관이 있길래 그 곳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쉬었다. 오래 걸었더니 몸이 나른하다. 나는 잠깐 카프카 박물관에 들어갔다.

카프카(Franz Kafka 1883 ~ 1924)는 체코의 유대계 소설가이다. 법학을 전공하여 1906년 법학박사가 된 후 보험회사에 취업한다. 그러나 그의 평생 꿈은 문학이다. 그래서 항상 글을 썼다.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보험회사에서 1922년 퇴직, 1924년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자기가 죽으면 자기의 모든 글을 소각하라고 유언으로 남겼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기가 소장하고 있던 카프카 글을 정말 소각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가 카프카의 유작, 일기, 편지등을 출판하여 현대 문학사에 카프카의 이름을 남긴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를 작곡한 마스카니(Pietro Mascagni)는 자기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 태워버리려고 악보를 난로 아궁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나 그의 작곡과정을 지켜본 친구가 자기 귀에는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하여 그 악보를 꺼집어내어 몰래 오페라 선발위원회에 보냈다. 결국 마스카니의 작품이 선택되어 오페라 중 '간주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같은 주옥같은 멜로디가 아직까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나는 카프카의 여자친구는 그의 작품세계를 몰랐음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가 노트 20권과 35편의 편지를 비밀리에 숨겨가지고 있었는데 1933년 게슈타포에 압수당했다. 이 유실된 원고에 대한 국제적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는 조금 쉬다가 시상식에 참가하러 대회장으로 돌아갔다.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 ~ 1924) 카프카 동상(Kafka statue)

▲ 온드레와 리우 대국/ 유건재 8단 해설

우리가 대회장에 도착하니 유 8단에게 결승국 해설을 부탁한다. 체코의 1인자 온드레와 중국 프로 2단 리우(Yuanbo Liu)와의 오픈팸피언 결승국 기보다. 나는 유 8단의 해설을 통역하고 온드레는 옆에 있다가 수시로 자기의견을 말한다. 리우 2단은 청중석에 앉아서 듣기만 하고 있다.

리우 2단은 이 대회에서 6백유로를 탄후 후에 여러 유럽대회를 돌며 우승컵과 상금을 다 가져간다. 유 8단이 "프로기사가 자존심이 있지 모든 대회에서 입상을 하니 보기가 좋지만은 않네요"라고 한다. 뒤이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입상자들에게 선물과 돈을 주고 오대사는 대사배 트로피를 증정했다. 선물의 많은 부분이 한국대사관에서 온 거다. 한국 기념품을 받고 한국 라면을 먹으며 체코인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게 값이 얼마나 된다고 다른 대사관들은 신경을 못 쓰는지 모르겠다.

▲ 저단 우승자/ 저급 우승자

▲ 여성부 우승자 클라라 3단


▲ 온드레/ 리우


▲ 오픈 챔피언 리우/ 한국대사배 챔피언 온드레

▲ 입상자 단체사진

체코 바둑역사 2
체코인 흐르코바(J. Hricová)와 체플리(A. Cieplý) 두명이 유럽연맹의 이사가 되면서 체코는 유럽연맹의 핵심역할을 한다. 그들의 노력으로 체코는 1993년과 2005년에 유럽대회(European Go Congress)를 프라하로 유치한다. 현재 유럽대회의 랭킹제도는 체플리 박사가 고안한 것이다. 여류강자 흐르코바는 어린이 바둑도장을 운영하여 130여명의 청소년이 현재 그녀에게서 배우고 있다. 그녀는 2000년에는 세계청소년대회를 프라하에서 개최하여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녀는 현재 유럽연맹 부회장이다. 그녀는 친한파로 나와는 오랜 친분이 있다.


▲ 산에서 보는 프라하

강자들
온드레(Ondra Šilt)와 얀(Jan Hora) 두명의 6단이 있다. 5단진은 현회장 다네크(V. Daněk), 네차니스키(R. Nechanický), 시마라(J. Šimara) 등 3명이다. 루카쉬(Lukas Podpera)는 청소년 대표인데 5단진에 속한다. 온드레는 2010 세계대회에서 일본대표를 이기며 5위에 입상했다.

그는 아마추어 중 동양계를 빼고는 세계최강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체코팀은 마인드 스포츠대회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해 한국팀에게 패했다. 페어대회에서도 바르토바(Bártová)와 호라(Hora)가 16강전에서 일본에 지는 등 동양계를 빼고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 운이 좋으면 무대 대국도 가능하다/ 바둑판 운반등 궂은 일은 다 하는 페터 2단

▲ 대회가 끝났어도 이들의 바둑축제는 끝날줄 모른다

우리는 저녁을 다네크 회장네 동네에 있는 전통 체코식당에서 먹었다. 저녁에 집에 온 후 다네크가 유 8단에게 두점으로 도전한다. 유 8단이 자기에게 첫 날 졌고 루카쉬에게 오늘 졌으니까 3점을 못 접는다는 논리인데 어느 순간 유 8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나에게 "석점으로 이번에도 이기면 두점으로 대국하겠다고 말해 주십시오" 한다. 그 말을 듣고 다네크가 이상한 미소를 띄며 3점을 깐다. 그때부터 유8단이 좋아하는 술도 입에 안대고 대국에 올인한다. 다네크의 “유 8단은 체코 5단과는 두점, 6단과는 선으로 두는 실력이다”라는 발언을 잠재워야만 한다.

나는 응접실에서 다른 식구들과 담소를 하다가 12시가 되길래 들어가 잤다. 이 때도 응접실에선 두명이 수읽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아침식사를 하며 유8단의 얼굴을 보니까 밝다. 내가 "승부가 어떻게 되었어요?" 하니까 유 8단의 얼굴에 미소가 스친다. "대마 하나를 때려잡고 끝냈습니다" 한다.

패한 다네크는 아무 말이 없다. 만약 이겼으면 "한국 프로는 체코 5단을 석점을 못 접는다"라고 떠들텐데 유 8단이 용케 그를 잠재웠다. 유 8단이 오늘 오후에 떠나기 때문에 우리는 시내에 나와서 구경도 하고 쇼핑센터에도 들어 갔다. 유8단은 다른 바둑쟁이들처럼 쇼핑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

유 8단이 바둑회 회원들과 공항으로 나간 뒤 나는 오대사를 만났다. 오늘 저녁을 대사관저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 대한항공 시간이 7시 반이라 5시 반부터 식사를 시작했다. 나와 다네크회장 부부가 손님이다. 원래 친한파 클라라 3단을 초청했으나 대학생인 그녀가 시험이 있다고 하여 다네크 부인 렌카가 대신 오게 되었다.

렌카가 나에게 귀속말로 자기가 이런 자리에 오게되어 "영광"이라고 한다. 대사관저에 도착하니까 입구에 '한상대 교수를 위한 만찬'이란 표말이 서 있다. 식탁에도 자리마다 메뉴판처럼 생긴 종이에 같은 내용이 영어로 써 있다. 내가 중요한 사람들과 만찬을 많이 해 봤으나 의전을 통한 이런 대우는 일생 처음이다. 감명이다. 내 카메라는 고장났고 유 8단은 자기 카메라를 갖고 서울로 갔다. 대사관저와 만찬장면을 카메라에 못 담은 게 유감이다.

▲ 프라하 거리

한국대사관저는 원래 유태인 재벌이 살던 곳인데 나치에게 압수당했다고 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대통령 관저를 수리하는 동안 체코 대통령이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이 저택은 크고 잘 지었다. 정원에는 야생 노루가 살기도 하는 곳이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대사관 직원 한명이 내 여권을 갖고 공항에 나가 미리 체크인을 해 놓았다. 식사 후 오대사가 자기 차로 공항까지 바래다 준다. 오늘은 주중이라 체코 운전기사가 차를 몬다.

공항에 가는 길에 오대사가 “내년엔 꼭 사모님과 같이 오십시오” 한다. 내가 출국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오 대사가 서서 손을 흔든다. 이렇게 겸허하고 바둑을 사랑하는 한국대사가 있는 한 체코에서 한국바둑의 위상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체코인들 사이에 오 대사의 인기가 벌써 높다. 이런 것이 바람직한 외교관 상이다. 내가 서울에서 외교관 8명에게 바둑을 가르친 적이 있다. 캐나다 대사, 독일 부대사, 호주 이민관, 네덜란드 영사 등이다. 그들이 처음엔 열성을 보이나 몇 개월을 계속 못한다. 바둑은 재미가 붙기가 그만큼 힘든 게임이고 자기네도 바빠서 한두 번 빠지다 보면 계속하기가 힘들어 진다. 한국에서 외교관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 체코 국기/ 국장

한국 바둑이 세계최강이라고 해도 눈섭하나 까딱도 안하고 협조를 안 해주는 대사도 있다. 예를 들어 바둑을 못 두고 싫어하는 호주주재 한국대사는 매년 대사배를 안하겠다고 해서 내가 외통부 차관실, 대양주 국장실에 가서 전화로 압력을 넣어야 했다. 그러면 마지 못해 돈 5백불만 바둑회에 보내고 대사배 대회장에 얼씬도 안 해서 내가 대사관에 전화해서 막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적도 있다. 그가 재임 기간동안 이 일을 반복하길래 바둑도 문화활동이고 국위선양 종목인데 화가나서 내가 민원을 써 놓았다가 대사임기가 끝난다고 하길래 참았다.

여기서 체코편을 마친다

한상대(전 시드니대교수 sdhahn@gmail.com)

▲ 체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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