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획기사]
박지은, 세계무대에선 '천하무적'
농심배선 ‘뉴 월드스타’ 안국현, ‘금싸라기 2승’
志石居士2011-10-16 11:21:58
10월 셋째 주 중국의 베이징(北京)과 쑤저우(蘇州)에서는 한중일 단체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1라운드와 유일의 세계여자대회인 궁륭산병성배가 나란히 열려 세계 바둑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는 한 마디로 '한국 성공, 중국 불만, 일본 참패'

▲우승컵을 들은 박지은.
[궁륭산병성배 결산] "역시 월드퀸" 박지은, 대회 2연패 성공
◇…베이징의 농심배에서 안국현이 연승의 신바람을 내고 있을 무렵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孫武)의 유적지에서는 '월드 퀸' 박지은이 2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의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한·중·일 3국과 북한·대만·유럽·북미 대표 16인이 자웅을 겨룬 이번 대회에서 박지은은 쾌조의 4연승으로 대회 2연패에 성공하며 명실공히 '월드 퀸'임을 입증했다. 특히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숙적 루이나이웨이(芮乃偉)와의 준결승에서 박지은은 농익은 기량을 마음껏 과시하며 우승을 예고했다. '철녀'라는 별칭답게 초반부터 거칠게 달려드는 루이 9단의 인파이팅을 노련한 변신술로 잇달아 따돌리며 시종 여유롭게 반면을 운영한 끝에 단 한번의 찬스도 허용치 않은 채 매조지했다. 공격 일변도의 기풍에서 자유자재의 유연한 기풍으로 업그레이드된 박지은의 강미가 유감없이 발휘된 완승국이라고 할까.
치열했던 루이와의 준결승에 비하여 중국의 보루 탕이(唐奕)와의 결승전은 차라리 싱거울 정도. 중반 한 순간 위기가 있었으나, 탕이의 조급한 과수를 정확히 응징한 끝에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어 우승을 확정지었다. ☞ 하이라이트 바로가기
박지은, 국제무대에선 천하무적…90% 가까운 고감도 승률
◇…박지은은 이번 우승으로 '역시 국제용'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박지은은 그동안 국내 기전에서는 루이나이웨이와 조혜연에게 밀려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국제 기전에 나서기만 하면 펄펄 날며 발군의 성적을 보여왔다. 2003년 당시 개인전이던 정관장배를 석권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대리배(폐지), 2008년 원양부동산배(폐지), 2010년 초대 궁륭산병성배에서 잇달아 우승한 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 대회 2연패에 성공함으로써 통산 4번째 세계제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뿐만 아니라 그는 단체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2004년부터 국가단체대항전으로 바뀐 정관장배에서 한국팀의 수문장으로 5회 우승의 든든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특히 지난해 8회 정관장배에서 내로라하는 중국과 일본의 강호를 연파하며 막판 4연승으로 한국팀의 역전 우승을 이끌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농심배에 이창호가 있다면, 정관장배에는 박지은이 있었다고 할까.
36승5패 (87.8%) 박지은이 최근 5년간(2007년 12월 이후) 거둔 국제기전 전적이다. 무려 90% 가까운 고감도 승률이 그가 현재 이견 없는 세계여류최강임을 수치로 뒷받침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지은과 루이나이웨이와의 관계.
국내 여류기전에서는 분명 3관왕(명인․국수․기성)에 올라있는 루이 9단이 TOP이지만, 국제 기전에서는 반대로 박지은이 단연 최강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 박지은과 루이의 상대전적을 보면 더욱 재미있다. 루이 9단이 한국 무대에서 뛰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초반에는 박지은이 많이 밀렸다. 그래서 통산 상대전적에서는 10승14패로 뒤져 있지만, 국제 기전 전적만 보면 6승1패로 오히려 루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박지은은 주요 중국 기사들과의 상대전적에서도 모두 앞서고 있다. (☞ 표 참조) 말 그대로 한국 여류바둑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정상을 지키는데 단단히 버팀목을 하고 있다고 할까. 수년전 이창호가 농심배에서 막판 5연승으로 역전 우승을 견인할 때 중국바둑계에서 '공이증'(恐李症)이 나돈 것처럼 이젠 박지은에게 중국 여류기사들이 '공박증'(恐朴症)을 느낄만한 압도적 전적이다.
■ 박지은의 주요 중국 기사 상대전적(국제 기전)

▲ (왼쪽부터) 루이나이웨이, 박지은, 박지연.
한국 4강 가운데 3자리 싹쓸이, 세계최강 면모 과시
◇…단체전인 아시안게임과 정관장배 우승에 이어 개인전인 이번 대회마저 석권함으로써 한국은 명실공히 세계 여류바둑최강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특히 주최국의 이점을 안고 인해전술로 나선 중국의 최정예 멤버들을 제치고 출전 선수 전원(박지은, 박지연, 루이나이웨이)이 4강에 진출하는 초강세를 보인 것은 박지은의 우승 못지않은 큰 성과.
지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눈에 띄게 강해지고 저변이 두터워진 한국 여류바둑은 수년전 중국 여류바둑계의 세대교체 성공으로 인해 한때 나돌았던 '대중국 위기설'을 잠재우고 당분간 세계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킬 것으로 전망된다.

▲안국현(왼쪽)은 저우루이양에 이어 사카이 히데유키까지 꺾으며 2연승을 거뒀다.
[농심배 1라운드 결산] 중국, No,1 저우루이양 조기탈락으로 큰 타격
◇…4국까지 진행된 농심배 1라운드에서는 일본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명이 탈락한 가운데 한국과 중국이 나란히 2승(1패)를 기록했다. 겉보기엔 한국과 중국이 호각세를 보인 것 같지만, 엄밀히 분석해보면 중국이 크게 밑진 결과가 분명하다. 믿었던 에이스 저우루이양(周睿羊)을 너무 일찍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팀이 자국 랭킹 1위 저우루이양을 과감하게 선봉으로 내세운 것은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1라운드를 싹쓸이하면서 단단히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필승의 의지 표명이었으리라. 그러나 적어도 3승 이상은 해줄 것으로 굳게 믿었던 저우루이양이 한국의 루키 안국현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조기 탈락하면서 오히려 큰 타격을 받았다. 심각한 전력 손실은 물론이거니와, 무모한 선수 기용으로 화를 자초한 중국의 코칭스태프에게 쏟아지고 있는 중국 바둑팬들의 비난 여론에 이중고를 겪게 된 것이다.

▲돌을 담는 저우루이양(오른쪽). 표정이 밝지 않다.
특히 그동안 '중국 랭킹 1위'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국제무대에서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해온 저우루이양은 이번에도 한국의 '무명 신인'에게 무력하게 패퇴함으로써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특히 그가 형편없는 국제기전 성적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중국 랭킹 1위를 지켜온 데 대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중국 랭킹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번 1라운드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안국현.
데뷔전에서 ‘기대밖의 2승’ 올린 안국현, 스타덤에 올라
◇…반면, 2국에서 거함 저우루이양을 격침시키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한국팀의 막내 안국현은 여세를 몰아 일본의 타이틀 홀더 사카이 히데유키(坂井秀至_碁聖)마저 꺾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초 이번 대회가 국제무대 데뷔전이나 다름없는 안국현에게 큰 기대를 거는 이는 별로 없었던 게 사실. 특히 첫 상대인 중국의 선봉이 저우루이양으로 결정나면서 비관적인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과연 대국 내용에 들어가서도 슬로우 스타터인 안국현이 저우루이양의 화려한 반면운영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그러한 예상은 쉽게 현실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둔탁한 듯 하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끈끈한 기풍에 빼어난 종반운영을 자랑하는 안국현의 뒷심이 빛을 발하면서 중반 이후 바둑의 흐름은 묘하게 흘러갔다. 저우루이양의 방심을 틈타 한발 한발 추격하던 안국현은 드디어 황무지 같던 중앙에 뜻밖의 대가를 형성하면서 역전에 성공했고, 이후에도 빈틈없는 끝내기로 차이를 벌린 끝에 오히려 낙승을 일궈냈다.
☞ 관련 기획기사 바로가기 '랭킹 1위'의 낙승을 믿어 의심치 않던 중국 선수단과 부담없이 지켜보던 한국 선수단에게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승리한 안국현(왼쪽)이 원성진, 사카이 히데유키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세를 탄 안국현의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이튿날 사카이 히데유키와의 3국에서도 이어졌다. 이 대국에서도 안국현의 초반은 좋지 않았다. 지나치게 실리를 탐하다 중원에 막강한 대세력을 허용해 일찌감치 위기를 맞이한 것. 그러나 사카이의 잇단 완착을 틈타 신들린 듯한 안국현의 타개솜씨가 빛을 발했고, 흑의 우주류가 초토화되면서 뜻밖의 단명국으로 막을 내렸다.
☞ 하이라이트 바로가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어진 4국에서 안국현이 중국의 신병기 탄샤오(檀嘯․중국 랭킹 3위)를 상대로 또다시 역전승을 거둘 기회를 놓치며 3연승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당초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한국팀의 막내 안국현이 중국 랭킹 1위와 일본의 중견 타이틀 홀더를 연파하며 값진 2승을 올린 데 대해 “120%의 활약을 해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막식에서 각국 출전 선수들의 기념촬영.
'역대 최약체' 오명 씻고 11번째 우승 전망에 청신호
◇…12회 대회 동안 무려 10번이나 우승을 독차지한 한국이지만, 이번 대회에 임해서는 왠지 불안감이 감돌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국가대표팀에 랭킹 1~3위(이세돌․박정환․최철한)이 본선보다 치열하다는 예선에서 모조리 탈락함에 따라 대표팀에 제외됐기 때문.
그동안 10회 우승 가운데 8회나 우승을 결정지은 '농심배 수호신' 이창호가 와일드카드로 합류했지만, 예전 전성기 때만 못한 그의 성적과 나머지 4인의 멤버 또한 ‘최정예’라는 수식어를 달기엔 미흡했기에 ‘V11'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공교롭게도 5인 모두 무관(無冠)인 한국 선수단을 두고 일각에서 '역대 최약체'로 폄하하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개막식에서 강유택, 안국현, 김지석, 원성진,
그러나 막내 안국현이 기대 이상의 대활약을 해주면서 'V11'을 향한 한국팀의 신호등에는 일단 파란불이 들어왔다. 우승을 두고 각축할 중국팀의 에이스가 일찌감치 탈락했다는 현실적 이득 외에도 자신감과 사기가 충천해진 것이 보이지 않는 큰 소득이다.
절대강자가 사라진 요즘 세계 정상급 기사들의 실력은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 한중일 3국의 대표급 선수라면 대국 당일의 컨디션이나 자신감이 승패를 좌우하지, 랭킹이나 타이틀은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무장된 한국팀의 전도는 비교적 밝아졌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역대 농심배에서 한국팀이 늘 초반에는 불안한 출발을 보여온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번에는 비교적 산뜻하게 출발했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1차전 4국 당시 검토실. 일본 선수단은 자국으로 향한데다 한국과 중국이 나뉘어 검토를 해서인지 검토실이 한산한 모습.
대회장 주변 분위기 예상외로 한산
◇…늘 뜨거운 열기를 토해냈던 대국장과 검토실 주변이 이번 라운드만은 예상외로 한산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때마침 동시에 열린 중국리그 탓인지 늘 인산인해를 이루던 기사, 팬, 취재진의 규모가 크게 줄어 한산한 느낌마저 주었다. 대회 이튿날 저우루이양이 조기 탈락한 것도 대회장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게 한 몫 했으리라.
여기에 1국과 3국에서 잇달아 패해 1라운드에서 1승도 건지지 못한 일본 선수단이 일찌감치 방을 빼 귀국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한산하던 검토실 주변을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는 게 현지 취재 기자의 전언이다.
인터넷망 관례로 검토실이 2층(한국)과 3층(중국, 일본)으로 분산된 것도 썰렁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요인이었는데, 그래도 한국 검토실에서는 김인 단장을 비롯하여 원성진, 김지석, 강유택 등 한국팀의 선수들이 시종 밝은 분위기로 검토와 안국현 선수의 응원에 열을 올렸다. 특히 주최측의 특별 초청으로 현지에 간 조훈현 9단이 검토실의 분위기를 이끌며 한국 선수단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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