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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손오공, 큰 배에 오르다!

- 서능욱9단과 대주배 이야기

김종서 작가 2011-12-28 09: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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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40년 만의 우승

재주 넘치는 손오공이 마침내 큰 배에 올랐다.
근두운을 타고 여의봉을 휘두르며 동서남북 휘젓고 다녀도 눈을 떠보면 삼장법사(조훈현)의 손바닥 안을 맴돌았던 손오공이 천신만고 끝에 대양을 가로질러 큰 배의 뱃머리에 올라탔다.
실로 눈물겨운 40년 만의 여정이었다.

▲ 조훈현(왼쪽)vs서능욱. 복기장면.

12월 27일 오후.
왕십리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이 175수만에 돌을 거두자 상대 서능욱 9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하라운지 검토실이 술렁거렸다.
승자와 패자가 나란히 라운지로 내려오자 박수가 터졌다.

▲ 생애 첫 우승컵을 거머쥔 서능욱 9단.

서능욱의 생애 첫 우승!
모든 이들이 뜨겁게 축하해주었다.
입단한지 40년 만에 이룬 꿈의 쾌거였다.
시상식이 준비되는 동안 서능욱 9단은 복도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여보! 나 우승했어!"

"누구한테 가장 먼저 우승 소식을 전하셨습니까?"
"누구겠어요? 아내한테 해야죠."
그에게 다가가며 물으니 핸드폰 폴더를 덮으며 두 팔을 벌린다.
복부비만의 사내들이 화장실 앞에서 포옹을 했다.
며칠 전 우리는 둘만의 송년회를 나눈 적 있었다.
북경도사의 찻집에서 보이차를 열 잔 이상 마셨고 노래방에 들러 마이크를 잡았다.
서9단은 노래를 좋아하는 마니아다.
혼자서 노래방에 가면 4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만큼 레퍼토리도 다양한데 그날은 이상하게 슬픈 노래를 주로 선곡했다.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데 필자의 귀에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대주배 결승전을 앞둔 시점이라 그 놈의 ‘님’이 타이틀로 자꾸 들렸다.
중학생 때 프로에 입단해 유감없이 천재성을 과시했지만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서보질 못 했다.
당대에 조훈현과 서봉수라는 큰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훈현은 가장 절친한 선배였지만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서능욱의 13차례 도전기 중 12번을 좌절시킨 상대가 바로 조훈현이었다.
그 나머지 한 차례는 이창호였다.

▲ 돈암동 시절을 추억하며 걷고 있는 필자(왼쪽)와 서능욱 9단.

자정을 넘긴 시각에 서능욱 9단을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했다.
그의 집은 종로구 부암동. 청와대 옆길을 따라 인왕산 자락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비탈에 있었다.
심야의 차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적 서봉수 9단을 넘어섰습니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데 결승에서 조 국수를 만난 느낌이 어떻습니까?"
"여전히 어려운 분이죠. 그러나 쉽게 물러서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40년 동안 극복하지 못한 산인데 한번쯤은 넘어서야죠."

▲ 서능욱 9단.

그의 대답은 언제나 막힘없이 시원시원하다.
그런데 단순한 임전소감의 립 서비스로 들리지 않았다.
희뿌연 산동네의 가로등 아래서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조훈현 국수는 필자의 외삼촌이다.
아직까지도 바둑 현장에서 만나면 지갑을 열어 귀여운 조카(^^)에게 용돈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의 일대기를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필했고, 그의 일생을 옆에서 관찰하고 있는 측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은 서능욱9단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조훈현의 158번째 우승기록도 전인미답의 세계신기록으로 가치가 높지만 서능욱의 생애 첫 우승의 비중이 당사자에게 훨씬 커보였기 때문이다.

▲ 필자(왼쪽)와 서능욱 9단.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직후 서능욱 9단은 상기된 얼굴로 소감을 밝혔다.
비록 세월이 흐르고 흘러 노장기사들만의 대회인 대주 배의 우승컵을 차지했지만 그 가치를 저울질하는 일은 부질없으리라.
평생의 허들이었던 조훈현과 서봉수를 넘어 50대에 기염을 토한 손오공 서능욱 9단의 아름다운 성취는 그 자신의 삶에 큰 획으로 남을 것이다.

▲ 서능욱 9단의 우승을 축하하며 건배!

S#2. 대주 배 비하인드 스토리

한국기원 맞은 편 식당.
대주 배 챔피언을 위한 축하연 자리가 만들어졌다.
주인공보다 양상국 사범이 더 기분 좋은 얼굴로 건배를 제의한다.
양상국, 이기섭, 서능욱.
그리고 대주 배를 만든 김대욱 사장.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술잔을 부딪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회고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말이라고 했다.
부산 출신 이기섭 사범은 프로에 입단하면서 서울의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어 생활했다.
그때 동향의 후배인 김대욱이 자주 찾아왔다.
그는 당시 서울공대 조선(造船)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이기섭의 자취방은 바둑청년들의 사랑방이었다.
서능욱과 김대욱은 이때부터 함께 바둑을 두며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 이기섭 7단.

"말도 마소. 저 친구들 밥해 먹이느라 대장금 노릇했다 아이가. 그래도 서능욱은 가끔 쌀도 사오고 돼지고기도 들고 왔지. 염치가 있는 친구라."
그런데 학생 김대욱은 염치를 차릴 만큼 여유가 없었다.
가난한 고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이기섭 사범님은 물론이고 양상국 사범님께서도 술을 자주 사주셨지요. 저 선배님들 덕분에 바둑도 많이 늘고 어려웠던 시절 외롭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람 좋아하는 양상국 사범은 70년대에 13평 연립주택에 살면서도 동료와 후배들을 자주 불렀다고 했다.
그 돈암동 자취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바둑을 두던 멤버들이 30여 년 뒤에 즐거운 표정으로 건배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 후원사 TM마린 김대욱 대표.

부산 사나이 김대욱 사장은 경남고 출신으로 야구선수 최동원의 1년 선배인데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서울공대를 나와 현대조선과 대우조선에서 근무했다.
조선업의 윤곽을 파악한 뒤로 대기업을 뛰쳐나와 TM마린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의 선박회사에 보일러 등 다양한 기계장비를 중계 납품하는 에이전시 회사다.
대형 선박회사와 거래 선이 단단하고 고수익 사업이라 비전도 밝다.
“제 사업이 망하지 않는 한 대주 배는 계속될 겁니다.”
TM마린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대주 배의 전망 때문이다.
왜 시니어 기전을 후원하는가 물었다.
“제가 어려웠을 때 양상국 사범님과 프로기사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신세를 갚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깔끔하고 속이 다 시원한 대답이 돌아온다.

▲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필자(왼쪽)와 김대욱 대표.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조세래 감독이 만들고 있는 바둑영화에도 군소리 없이 제작비를 투자했다.
또 부산바둑협회 부회장을 맡아 크고 작은 바둑행사에 마음을 쓰고 있다.
한 마디로 의리를 아는 부산 사나이다.

▲ 축하를 받는 서능욱 9단(맨 왼쪽)의 쑥쓰러운 듯한 미소가 이채롭다.

S#3. 바둑은 이래서 아름답다

타이젬에 서능욱 9단의 우승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많은 유저들이 축하 메시지를 달았다.
댓글마다 진심과 해학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유쾌하고 가식 없는 준키9단의 캐릭터는 아직까지도 인기 만점이다.
어느 곳에서 그 누가 바둑을 원해도 기꺼이 마주앉아 돌을 쥐는 서능욱 사범의 흔쾌함을 아는 이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40년 만에 이룬 노장기사의 꿈이 참으로 보기 좋다.
30여 년 전 프로기사의 자취방에서 바둑을 즐겼던 한 대학생이 먼 훗날 프로기전을 만들어 보답한 사연이 참으로 훈훈하다.
이래저래 2011년의 세밑은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하다.
누가 뭐래도 바둑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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