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타이젬스페셜]

나를 노래하는 바둑

-여류국수에 등극한 박지연

김종서 작가2012-03-24 15:49:19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S#1. 비오는 날의 수채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그녀가 상암동 타이젬을 찾아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이에 그런 약속이 하나 있었다.
"사고를 한 번 치고 타이젬으로부터 밀착취재를 당해보고 싶어요."
왕십리 소녀시대 무여회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박지연은 그때 그렇게 말했다.

▲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은 박지연은 패션 감각이 독특하다.

솔직발랄한 캐릭터였다.
이미 그 이전에 삼성화재 배에서 중국의 떠오르는 신예 퉈지아시를 격파하고 당당하게 16강에 진입하면서 대형 사고를 친 적 있었던 그녀.
그러나 16강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인물포커스와 만나고 예쁜 캐리커처를 그려달라고 했다.
인물포커스 캐리커처는 주인공의 별명이나 기풍, 성격 등을 이미지로 압축한다.

▲ 박지연.

“별명이 뭐죠”
“개찌요. 강아지예요.”
“정관장 때 문도원은 메뚜기로 그렸지만 박지연을 강아지 시츄로 그리면 좀 이상할 것 같은데?”
“(웃음) 강아지는 좀 그렇네요.”
“나는 박지연하면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자꾸 떠오르던데.”
그녀, 작년 청풍명월 바둑가요제에 참가해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열창했던 엔터테이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여류기사 후원의 밤 행사에서도 김혜림과 듀엣으로 가수 못잖은 노래 솜씨를 선보였다.
“노래 부르는 모습으로 그리는 게 좋겠어.”
“그래요. 바둑을 둘 때 노래를 할 때 행복하거든요.”

▲ 국수가 되었으니 국수를 먹기로 했다.

S#2.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루이나이웨이가 떠나간 빈자리에 과연 누가 들어설까?
여류국수전은 바둑계의 호기심을 반영하는 무대였다.
여류 바둑계의 기둥인 박지은은 늘 영순위답게 한쪽 시드 사다리를 유유하게 타고 올랐다.
최근 가장 기세가 강렬한 신예 최정은 16강전에서 박지연에게 덜미를 잡혔다.

▲ 제17기 여류국수전 결승3국.

결국 박지은과 박지연으로 압축된 결승전.
피열한 접전 끝에 박지연이 2:1 역전승으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승부가 가려진 순간 박지은은 무척 아쉬워했다.
한 시간 동안 복기를 하며 엉킨 수순을 책망했다.
우승을 했으나 박지연은 착잡했다고 밝힌다.

▲ 박지연.

“지은이 언니가 확실히 저보다 센 것 같아요. 이번에 3시간짜리 바둑을 세 판 두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어휴 갈수록 바둑이 어려워요.”
제1국에서 패배하고 박지연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력한 상대 박지은의 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만약 2국이 바로 이어졌다면 밀렸을 거라고 했다.
다행이 한 달간의 공백이 있어 내상을 치료하고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박지연은 아주 당차고 씩씩해보인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주 여성스런 면모가 포착된다.
섬세하고 예민하다.
관객이 많은 무대 위에서 펄펄 날아다니고 춤을 추는 박지연.
웬만한 남자기사들도 반상에서 마주하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그녀.
알고 보면 그런 강한 캐릭터는 지극히 여성스런 박지연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갑옷인지도 모른다.
거친 승부세계를 달리면서 그렇게 진화한 거다.

▲ 황룡사쌍등배 한국팀 3장으로 출전한 박지연(오른쪽)

“읔, 맞아요. 저는 울렁증이 심해요. 큰 승부를 앞두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애를 먹곤 하거든요.”
긴장의 정도에 따라 성적의 그래프가 정확하게 그려진다고 했다.
황룡사쌍등배에서 3장으로 출전해 왕천싱과 대국할 때 손이 떨렸다.
왕천싱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고 한국 낭자들이 연패해 부담이 컸다.
자신만만했었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견디질 못했다.
대국하기 전에 한국 팀의 수문장이 되겠다고 시원하게 밝혔는데 지고 말았다.
“어휴, 그때 너무 창피했어요. 말이나 하지 말걸.”
그러나 필자는 그런 박지연의 자신감이 보기 좋고 그런 후회를 들으면서 미소를 머금는다.
입이 무겁고 신중한 스타일도 나쁘지 않으나 감정의 기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스타일도 괜찮아 보인다.
흔들리고 아프니까 젊음이라 하지 않던가?


S#3. 책과 노래가 강심제

박지연은 일곱 살 때 친구가 다니는 바둑교실에 따라갔다가 돌을 만지게 됐다.
아홉 살 때 차수권 도장에 입문해 정식으로 바둑을 배우게 됐는데 바둑영재들에게 판판이 깨지는 아픔을 당했다.
지는 게 너무 싫어서 도장에 나가지 않으려고 차가 오면 방구석에 웅크리고 버텼다.
언젠가는 차수권 사범이 '미래의 꿈'을 그리라고 했는데 지연은 이창호와 바둑을 두어 이기는 그림을 그렸다.
2006년,17세에 프로 입단했고, 이듬해 지지옥션에서 3연승, 2008세계마인드스포츠 은메달, 여류명인전 도전자 결정전, 여류기성전에서 준우승했다.


▲ 인터뷰 도중 웃는 박지연.

이제 스물두 살 꽃피는 청춘이지만 바둑의 길에서 너무 많은 빛과 그림자를 겪은 승부사 박지연.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기타도 제대로 배우고 싶구요.”
그녀는 뭐든 마음먹으면 올인하는 체질이다.
얼마 전 인천 시청 앞에서 바둑 인들이 아시안게임 바둑종목 채택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할 때 박지연이 가장 열성적으로 뛰었고 가장 많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냈다.
바둑연구회 모임인 무여회와 바둑 젊은이들의 온라인 모임 바세바에도 적극 참여하고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
큰 시합을 앞두고 울렁증이 심한 것은 예민한 성격 탓이리라.
그 증세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은 양약이나 한방 같은 의료적 방법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 아닐까?
책도 좋고 노래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심장은 뜨겁고 강하되 두뇌는 냉철한 승부사가 되어 우리 바둑의 대들보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