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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타]

'프로기사의 세 가지 행복은…'

장수영 바둑도장 원장 장수영 9단 인터뷰

김지은2012-04-04 2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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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팬들이 실제로 만나고 싶어 하지만 쉽게 접하지 못하는 바둑스타인 프로기사는 바둑현장을 누비는 바둑기자들의 주요취재원이기도 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200명이 약간 넘는 프로기사. 이들과 자주 보고, 취재를 목적이든, 아니든 적지 않은 말을 주고 받다보면 어느 새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프로기사들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주 보다보니 적어도 초면에 느끼는 낯선 느낌은 없다고 한다면 이 글을 보는 바둑팬은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바둑기자가 프로기사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눈 여겨 보게 되거나 무언가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정관장배 1차전을 마친 후 귀국한 문도원이 김혜림과 진한 포옹을 하는 모습.

기자에게도 그런 경우가 물론 있는데 한 례로 지난해 1월 정관장배 취재를 마친 후 공항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문도원의 7연승으로 타이젬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당시 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기자는 문도원, 박지연, 김미리 등 출전 프로기사들과 함께 귀국했다, 당시 인천공항에 문도원을 마중 나온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문도원의 부모님과 동문인 김혜림. 장수영 바둑도장 출신인 김혜림은 동문 언니 문도원을 함박웃음과 함께 진한(!) 포옹으로 맞이했다.

어찌 보면 별 일(?)도 아닌데 왜 그 때 그 장면이 뇌리에 박힌 것인지 기자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이후 한국기원이나 기타 취재장소에서 장수영 바둑도장 출신 프로기사들이 모여 있으면 계속 눈길이 갔다. 삼삼오오 모여서 깔깔거리고 나이차가 적지 않음에도 함께 있으면 유독 즐거워 보이던 그들. 간간이 마주친 그들을 계속 보던 중 '동문보다는 가족 같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전달됐다.

▲지난해 입단한 박영롱과 김성진

돌이켜보면 장수영 바둑도장은 서중휘, 강창배, 박영롱, 김성진, 박경근 등 연구생을 졸업한 후 입단한 케이스가 많았다. 22살까지 입단을 꿈 꾼 기자의 경험으로 볼 때, 성인이 된 후 입단에 도전할 때에는 너무나 두려운 벽이 많았다. 좁은 입단문을 향해 달리며 '자신과의 싸움'은 기본이었고, 이 외에도 '주변의 시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나 큰 벽으로 다가왔었다. 그 벽들을 그들은 제2의 가족으로 이겨냈나 보다.

이렇듯 왠지 모르게 평소 눈길이 갔던 장수영 바둑도장이 3일부터 6일까지 중국 명문 도장 중 하나인 거위홍 바둑도장과 교류전을 가진다.

2000년 서울 마포에 터를 잡은 장수영 바둑도장은 2003년 서건우를 시작으로 지난해 박경근까지 총 15명의 입단자를 배출했다. 아마도 동문들이 화목한 가족문화를 형성하게 만든 것은 그들을 이끌어준 지도사범들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교류전 취재를 핑계 삼아 찾은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원장 장수영 9단에게 평소 궁금했던 장수영 도장 문화를 비롯해 거위홍 도장과의 교류전에 대한 내용 등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수영 9단.

- 장수영 바둑도장을 언제부터 운영하게 되었는지, 또 계기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999년도 경기도 분당에 야탑바둑사관학교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지도 사범으로 나선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당시 야탑바둑사관학교에는 14~5명의 소규모 인원이 다니고 있어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더군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지도하던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계속 제가 지도하기를 원하셔서, 2000년 서울 마포구에 14명의 제자를 데리고 바둑도장을 오픈했죠. 바둑도장을 운영하려고 보니 제자들의 학교수업 병행문제도 걸렸는데, 다행이 경성 중-고등학교에서 바둑특기반이 개설되어 힘이 되었습니다. 개원을 결심할 때까지 승부에 대한 욕심도 조금 있었지만, 언젠가 제자를 키우는 것이 제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금은 권갑용 바둑도장, 충암 바둑도장, 양천대일 바둑도장과 매년 입단자를 꾸준히 배출하는 등 국내 바둑명문도장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처음 운영했을 때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14명의 제자를 아침부터 새벽 두시 까지 혼자 지도하다시피 했는데 힘들더군요. 강창배, 서건우 등 입단에 가까워진 제자들의 단련을 위해 프로 및 아마강자들을 “지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한, 두명씩 입단하고, 입단한 제자들이 도장에 와서 후배 동문들을 지도해주니 힘이 됐죠.

▲장수영 바둑도장의 문도원과 거위홍 도장의 고위의 대국 모습.  

- 거위홍 도장과의 교류전은 어떻게 추진하게 됐나요.
박병규 7단과 이용찬 6단이 지난 3월 바이링배 참가 차 중국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거위홍 원장을 만나 추진했습니다. 각 도장의 실력향상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의 교류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1라운드 장수영 바둑도장은 연구생만 출전했다고 했는데, 거위홍 바둑도장 프로기사(1~3단)들을 상대로 6승 6패를 거뒀네요.
실제로 입단권에 있는 연구생들로 멤버를 구성해 내보냈는데, 최상위쪽이 다 이겨서 6승 6패를 했네요. 거위홍 도장 프로기사들이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최근 바이링배와 비씨카드배에서 한국기사들이 중국 신예기사에게 부진한 성적을 거둬 논란이 많았죠. 교육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대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기사들의 부진에 대해 좁은 입단문호, 기전의 속기화 등 원인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고기전에서 우승을 많이 한 사람이 속기를 못 두지는 않거든요. 결국 속기에 익숙해진 한국기사들이 3시간 바둑에 익숙한 중국기사들에 졌다기보다는 실력자체가 중국에 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입단 후 중국 천재들이 국가의 지원과 정상급 기사 투입 훈련시스템으로 점점 실력을 갖춰나간 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죠.

우리나라는 입단 문이 좁아 입단 전 실력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입단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입단하면 랭킹 50위 권 안에 무난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현 입단권에 있는 이들의 실력은 높은 편입니다. 그 제도가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버티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입단 후 관리'라는 겁니다. 보통 입단을 한 후 기사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도장에서 공부하던 묶여있던 이전 생활을 벗어나 자유를 느껴 공부에 소홀하게 됩니다. 사실 입단이라는 것은 ‘프로기전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뿐이거든요. 40년 동안 기사생활을 한 입장으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일반 기사들이 정상권 기사보다 재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노력의 결실이겠죠.

현 한국바둑계의 시스템 상 한국기원이 이런 부분을 추진하기 힘들고, 각 도장들이 입단 후에도 출신 프로기사들을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제자들의 경우 입단을 하면 제가 직접 부모님과 통화해 계속 도장에 나오도록 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장수영 바둑도장의 원생들

- 평소 장수영 바둑도장 출신 프로기사들을 보면 굉장히 우애가 돈독해 보여 가족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 교육에 가장 중점적으로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인성'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굉장히 중요하고 쉽게 맺어지지 않는다."고 항상 제자들에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선배들은 후배들을 끌어주고, 후배들은 형, 누나 등 선배들을 따르도록 분위기 형성에 노력합니다. 지도 사범들에게도 제자들을 지도할 때는 엄격해야하지만 그 속에서 부드러움을 잃지 않도록 강조합니다.

(거위홍 원장은 "장수영 바둑도장의 학습 분위기가 매우 좋은 것 같다. 전담지도사범이 수업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리까지 하는 것이 인상 깊다. 중국에서는 담당 지도사범이 수업시간이 종료되면 바로 귀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수영 도장에서는 수업 종료 후에도 지도 사범이 꼼꼼히 관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현 수석지도사범인 박병규 7단은 장수영 9단의 제자 아닙니까? 그래서인지 더욱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데요.
도장을 막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한 제자인데 추진력도 좋고, 성실해서 믿음직스럽습니다. 충암바둑도장, 양천대일 바둑도장과 함께 교류전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도장 리그 운영도 많은 변화를 주는 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후에 제가 도장에서 물러난 뒤 제자 중 박7단에게 전체적인 운영을 맡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 제자들에게 “프로기사가 바둑으로 얻는 세 가지 행복이 있는데 좋은 재주를 갖추는 것,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 좋은 제자를 만나는 것." 이라고 자주 말합니다. 제 제자에게 활동할 수 있는 또 다른 터전을 주는 것도 행복이고, 계속 제자를 양성하는 것을 보는 것도 행복할테니까요.

- 좋은 말씀을 듣다보니 인터뷰가 길어졌네요. 끝으로 도장 운영에 있어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현재 60명의 제자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더 많은 제자들을 지도하고 싶다던지 이런 욕심은 없습니다. 입단을 못한 제자들을 보면 가슴이 무거위지고 먹먹해져서인지, 작은 바램이라면 제가 맡고 있는 제자들을 모두 입단시키는 것이 자그마한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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