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한라산 백록담 주변에 아직도 잔설이 희끗한데 산 아래로는 벚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군요. 그리고 파란 바다와 뭉게구름. 제주도는 수채화의 팔레트처럼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아주 우연하게 제주도를 찾았는데 바둑 나그네의 눈에 전설 속의 영물들이 나타났습니다. 갈색 거북이와 하얀 사슴이 이 번 스페셜의 주인공들입니다.
▲ 거북 바둑판, 뒤로 제주도 바다가 보인다.
▲ 1100고지 휴게소에 세워진 백록상.
그 영물(靈物)들은 바둑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인 효(孝)와 의리, 사랑의 덕목을 품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몽롱한 꿈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과장이 없는 현실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길.
S#1. 조선의 國手, 서애 유성룡
얼마 전 육형제 바둑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선시대 유성룡 대감의 휘호가 새겨진 거북 바둑판이 제주도에 출현했는데 어찌 감정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유성룡 초상화. (출처- NEWSIS)
유성룡(1542~1607)은 선조 때 병조판서로 임진왜란을 치렀고 곧 영의정이 되어 임금을 보필했던 인물입니다. 국난을 맞아 권율과 이순신을 등용한 명재상(宰相)이자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어 받은 학자로도 유명합니다. 또 유성룡은 조선의 국수(國手)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바둑을 아주 잘 두었다고 합니다. 유성룡의 바둑 에피소드는 두 가지가 전해집니다. ‘치숙(痴叔)’ 이야기는 바둑계에 널리 알려져 있죠? 유성룡이 고향 안동에 내려왔을 때 집안에서 바보 아저씨로 알려진 분이 바둑을 두자고 합니다. 국수 급인 유성룡이 대수롭지 않게 치숙과 마주했는데 세 판을 내리 졌다고 하죠. 그런 다음 치숙이 정색하고 말합니다. “내일 어떤 중이 자네를 찾아 올 걸세. 그러면 상대하지 말고 나에게 보내도록 하게나.” 바둑을 통해 치숙의 비범함을 깨달은 유성룡은 머리를 숙입니다. 이튿날 진짜 묘한 느낌의 중이 찾아옵니다. 유성룡은 두말없이 중을 치숙에게 보내지요. 그 중은 일본이 보낸 첩자였습니다. 치숙은 그 첩자를 위협해 자신의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일본으로 돌아간 첩자는 안동첩보를 그대로 보고합니다. 그 덕분에 임진왜란 때 조선팔도가 왜군의 말발굽에 짓밟혔는데 유독 안동지역만은 전화를 피했다고 합니다.
▲ 유성룡의 글씨. (출처- NEWSIS)
바둑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선조가 왜군을 피해 중국 국경의 의주(義州)로 피난했을 때 명나라 도독 이여송과 만나게 됩니다. 조선에서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이여송이 사령관 격으로 대군을 이끌고 왔죠. 그런데 이여송이 오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여송은 피난 온 선조를 시험하기 위해 바둑을 청합니다. 바둑을 둘 줄은 알지만 지략가 이여송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선조는 끙끙 앓지요. 거절하자니 명나라 도독을 무시하는 게 되고, 응하자니 망신사기 십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조선의 국수 유성룡이 묘안을 냅니다. 야외 정원에서 바둑을 두는데 유성룡은 햇빛가리개 양산을 들고 선조를 보필합니다. 그리고 양산에 작은 구멍을 뚫어 햇살로 착점을 훈수하는 거죠. 그래서 아주 절묘하게 빅으로 화국을 이끌어냅니다. 선조와의 수담을 기분 좋게 끝낸 이여송은 이튿날 명나라 대군을 이끌고 출정을 합니다.
▲ 유성룡의 안동서원.
<청구야담>에 등장하는 유성룡의 바둑 이야기는 오늘날 바둑 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실제로는 풍요로웠을지라도 기록은 극히 빈약한 조선시대에 유성룡은 바둑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는 이야깁니다.
S#2. 유성룡의 바둑판이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의 바둑인 유성룡 대감의 낙관이 찍힌 바둑판이 실존한다면 그 가치를 어느 정도로 매겨야 할까요? <TV쇼 진품명품>에 들고나가 감정을 받으면 과연 전광판에 동그라미 몇 개가 찍힐까요? 그러나 그 프로그램에 바둑판 감정사가 없어서 감히 가치를 측정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타이젬 스페셜을 통해 필자가 유성룡의 바둑판으로 전해진 거북 반을 소개합니다. 바둑문화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직접 감정해보시지요.
▲ 위에서 본 거북 바둑판.
예사롭지 않은 바둑판이죠? 닳아버린 거북이 머리와 손때 묻은 흔적들이 바둑판의 나이를 보여줍니다. 19줄에 왼쪽 가장자리는 수리한 흔적이 보입니다.
▲ 바둑판 전면. 등껍질 조각이 치밀하고 왼발이 앞으로 나와 역동적인 포즈를 위하고 있습니다.
▲ 꼬리 쪽에서 본 모습.
역시 왼발과 오른 발의 각도가 다릅니다. 움직이고 있는 형상이죠. 그리고 서애진장(西厓珍藏)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서애 유성룡이 간직한 바둑판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 바둑판 측면의 한시.
일수상교일월장(一手相交日月長) 바둑 한 수씩 두다 보니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게 세월이 흐르는구나,
▲ 반대쪽 한시
흑백상박건곤대(黑白相撲乾坤大) 흑과 백이 어울리고 부딪히니 하늘과 땅을 걸고 싸우는 것 같구나. 뭐 대략 이런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작년에 필자가 조선통신사 취재를 갔을 때 교토의 적광사에서 [건곤굴]이라는 조선 바둑 인의 글씨를 보았습니다. 조선인들은 바둑에 우주가 압축되어 있다는 인식을 했던 것 같습니다.
▲ 거북이 복부
좀 민망한 자세지만 거북 바둑판을 거꾸로 엎어봤습니다. 거북이의 목이며 네 다리의 형상이 분명하고 암컷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바둑판과는 형식이 좀 다르죠? 이 바둑판의 재료는 은행나무 뿌리입니다. 다리는 뿌리의 갈래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조각했으며 바둑판은 나무 밑둥으로 보입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는데 바둑판으로 쓰려면 반드시 열매를 맺지 않는 암나무를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북이도 암컷인가 봅니다.
▲ 화점 표시. 바둑판에는 화점이 아홉 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 바둑판을 확인하는 필자
거북 바둑판을 보고 있노라니 꼭 뭐에 홀린 기분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이 바둑판을 만지고 있는 것일까? 정말 유성룡이 간직했던 바둑판일까? 이 바둑판 위에서 수담을 나눈 이들은 과연 누구누구일까? 또 오고 간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일까? 타이젬 소설 코너를 통해 <낭만기객>을 연재하면서 도끼자국 비자반과 양철 바둑판 이야기를 땀땀이 그려가고 있습니다만 오늘 또 이 거북 바둑판을 보면서 무수한 영감이 뇌리를 스칩니다.
S#3. 거북 바둑판의 비밀
제주도에 홀연히 나타난 거북 바둑판. 일단 나이는 꽤 오래된 게 확실합니다. 현재 확인된 바둑판의 경로는 서울과 일본 나리타 공항 부근의 사찰을 거쳐 제주도까지 그려집니다. 유성룡의 소장반이 사실이라면 아마 그가 정계은퇴 이후 기거했던 안동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현재 이 바둑판의 소장자는 제주 방성문화원 홍종범 원장입니다.
▲ 필자와 홍 원장, 도두동 선착장에서 대화중이다.
이 분에게로 바둑판이 전달된 사연이 애틋합니다. 홍 원장의 부친은 스님입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사찰 터로 알려진 수정사(水精寺) 주지 스님입니다. 이 스님이 최근 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일본의 교포 스님이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제가 수행을 쌓는 불자라서 가진 게 없고 유일한 보물이 바로 거북 바둑판입니다. 평생 소중하게 간직해 온 애장품인데 스님의 병환 소식을 접하고 문득 거북이 생각이 났습니다. 바둑을 사랑하는 후원자가 한국에 많을 테니까 이 바둑판을 경매해서라도 치료비로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여 기증자는 설명합니다. 30여 년 전 서울의 대가 댁에서 우연히 이 바둑판을 보았는데 너무 소유하고 싶어 주인에게 의사를 전했더니 귀한 불교 탱화와 교환하자고 했다네요. 그래서 전국의 사찰을 돌며 1천만 원을 들여 탱화 두 점을 구했고 비로소 바둑판과 맞바꿨다고 합니다. 그 스님이 일본의 사찰로 가게 될 때 바둑판도 들고 나갔습니다. 일본에서 교포 사업가 한 사람이 거북 바둑판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베팅했습니다. “사찰 하나 지어줄 테니까 바둑판을 내게 줄 수 없습니까? 그 당시 사찰 하나 짓는데 3억 엔 정도 소요됐다 하니 30억인 셈입니다. 하지만 스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미 사찰도 있고 더 이상 아무런 욕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이번에 제주 노스님의 병환 소식을 듣고 거북이의 효용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현재의 소장자 홍종범 원장은 거북 바둑판을 기증 받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자신의 운명이 거북이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홍 원장의 출생지는 제주도 구몰리동입니다. 구몰리동(龜沒泥洞)은 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 있다는 지명입니다.
▲ 한라산 거북바위.
또 그는 한라산 중턱 수악교 부근 거북바위에서 오래 기거했다고 합니다. 그 거북바위는 남해 거북이가 신령이 되기 위해 한라산을 오르다 산신의 노여움을 사 굳어버린 제주의 설화가 깃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아버님의 병환과 함께 자신을 찾아온 거북 바둑판을 보고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고 합니다. 과연 신통한 거북이가 노스님의 병환을 고쳐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진품 여부를 떠나 제주도에 나타난 은행나무 거북 바둑판은 인간애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알기 어려운 이 바둑판이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만 타이젬 스페셜을 통해 기록만은 확실히 해두고자 합니다.
S#4. 필자의 눈에 비친 바둑판의 흠결(欠缺)
분명히 거북 바둑판은 아름답고 고색이 창연합니다. 또 미학적으로도 눈길을 끄는 매력이 넘칩니다. 원 소장자의 증언에 따르면 가치도 제법 있는 듯싶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엽 유성룡 대감의 바둑판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소장자에게는 미안한 판단이지만 필자의 느낌에 그러합니다.
▲ 바둑판의 낙관
바둑판 측면에 새겨진 서애 낙관입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글자를 파낸 흔적이 보입니다. 유성룡의 호는 서애(西厓)입니다. 애(厓) 자는 언덕을 의미합니다. 사전과 지명을 훑어보니 유성룡의 고향 안동 지방에 감애리, 마애리, 현애리 등의 지명이 보입니다. 그래서 유성룡이 고향의 언덕을 호로 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거북 바둑판의 글씨는 원래 물가 애(涯) 자로 새겨졌습니다. 나중에 오류임을 깨닫고 누군가가 삼수변을 날카로운 금속으로 파버린 것 같습니다. 명품으로 저울질하기 위해서는 치명적인 오류이자 흠결입니다. 그러나 필자처럼 작가 입장에서는 그 오류에 오히려 호기심을 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리 썼으며 또 누가 저리 좋은 바둑판에 저리 서툴게 흠집을 낸 걸까? 희한합니다. 명반으로 포장을 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급스럽게 흠결을 지우고 감출 텐데 거북이는 저런 상처까지도 아무렇게나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 도대체 이 거북 바둑판의 가치는 어느 정도 매겨질까요?